정원수

정원수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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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원수 부국장입니다.

needju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90%
사설/칼럼10%
  • 오세훈 “소득 하위 25~30% 이하만 집중 지원하는 ‘안심소득’ 내년 실험”[파워인터뷰]

    《“지난 3개월여는 기초 작업을 하는 마음이었다. 조직 개편과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시의회를 통과한 만큼 이제 뛸 수 있는 인적 물적 준비는 마련됐다.”4·7보궐선거로 서울시청에 재입성한 오세훈 서울시장(60)은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7월 1일∼2011년 8월 26일 서울시장을 지낸 오 시장은 18일로 1985일째 서울시장을 맡고 있다. 전임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3179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장수 시장이다. 오 시장은 박 전 시장 때 6층 집무실에 있던 수면공간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작은 책상을 뒀다. 약 1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오 시장은 원고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방안, 부동산 대책 등 시정 현안을 막힘없이 답변했다.》 ―선거 때 ‘첫날부터 능숙하게’라고 했는데, 취임 100일을 평가해 달라. “공약을 반영해 일을 하려면 조직 개편과 추경안 통과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조직 개편은 거의 바꾸고 싶은 체제로 바꿨고, 추경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살렸다. 뛸 수 있는 기본은 시의회의 협조 끝에 마련됐다.” ―여당이 절대 다수인 시의회와의 협조가 쉽지 않았을 텐데…. “6월 한 달은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시의회 의원들과 같이했다. 상임위별로, 4선 이상, 의장단 등 거의 3, 4주 동안 식사 정치를 한 셈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안 오신 분도 계셨는데 점점 분위기가 좋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시의회 110석 중 101석 아닌가. 의회가 맘만 먹으면 식물시장을 만들 수 있다. 갈등적 요소는 줄이고 합의할 수 있는 것만 전면에 내세워서 대화하는 방식을 취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 같다.” ―최근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자가 치료 시스템’을 언급했다. “싱가포르는 8월 5일 전후로 2차 접종률을 67%까지 올린다고 한다. 전 국민이 한 번씩은 백신을 맞는 셈이다. 이 정도면 코로나19를 독감처럼 대하는 게 가능하다. 일상에서 걸리면 치료하고 약간 조심하며 관리하는 게 가능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아직 우리는 2차 접종률이 10%대 초반 정도밖에 안 돼 당장 논의할 단계는 아니지만 4차 피크가 지나고 8월 말부터 백신 사정도 호전되면 그걸 전제로 우리도 그때쯤 싱가포르의 시스템 도입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하면 1인당 600만 원이 든다. 언제까지 격리를 시키겠나.” ―취임 초 ‘서울형 상생방역’ 제안했는데…. “서울형 상생방역은 사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자영업자 영업시간에 차등을 둬 생업의 타격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안으로 방역을 최대화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의해 채택된 게 거의 없었다. 처음 제안했을 때 자가검사키트가 보편적으로 활용됐다면 많은 확진자가 밝혀지고 지금의 4차 대확산을 어느 정도 막았을 것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은 다른 듯하지만 같다”고 했다. “공공 재개발·재건축과 민간 재개발·재건축을 시장에서 혼용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두 시스템이 경쟁도 하고 협업도 하면서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투기 방지책 마련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하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조금 다르다. 재건축 안전진단기준 완화나 초과이익 환수 등은 정부가 양보한 게 없다. 저는 ‘주택임대차 3법’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아직 손댈 생각이 없고 답답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공급에 관해서는 함께 경쟁하면서 주민 선택에 따라 해나가자는 공감대가 있다.” ―박 전 시장 재임 때 추진한 사회주택 사업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적지 않다. “10년간 방향 설정을 잘못한 주거 정책 중 하나다. 사회적 협동조합 내지는 중소 건설업체가 서울시가 제공하는 땅에 주택을 지어 장기 임대사업을 하는 것인데 구조를 보면 ‘중간 마진’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물량도 민간 기준 4000가구 정도이고 실제 입주한 것은 1000가구 남짓이다. 사회적 기업 등이 계속할 이유가 없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관리하면 된다.” ―서울형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예컨대 100억 원이 투입됐는데 절반 정도가 인건비로 빠지면 예산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금까지 파악한 것은 특정 시민단체가 거의 다 장악하다시피 했다. 중간에서 시민단체가 관여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들이 서울시로 계약직이나 개방직 형식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직원들은 무언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런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전부 다 바로잡아야 한다.” ―‘서울런’ 사업을 추진하면서 계층 간 이동 사다리 복원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를 더 심하게 한 것이다. 자산 격차를 벌려놓은 게 부동산이고, 소득 양극화를 벌려놓은 게 역설적이게도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었다. 제가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서울시만이라도 격차 해소 방안을 모색해 보자며 내놓은 게 ‘서울런’이다. 소득, 주거, 복지, 일자리 격차 해소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육 격차 해소가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의지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 공부 잘하는 애들을 따라갈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서울런이다.”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설계도가 나왔다면 설명해 달라. “저와 몇 달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격렬하게 해왔던 논쟁인데 이 지사가 대선 경선이 시작되면서 꼬리를 내린 것 같다.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로봇 등의 영향으로 과도기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어 실리콘밸리 등에서 나온 논의다. 안심소득은 그 대안이다. 어려울수록, 가난할수록 지금보다 더 받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중위소득 100%, 정확히 중간을 자른 뒤 (저소득층에) 주는 것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밑에서 25∼30% 안팎의 어디쯤을 잘라야 할지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강서구 일가족도 복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기초수급자 제도로 가난한 분들을 다 보호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자산 기준 등 여러 제약 때문에 사실 절반 이상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분들을 안심소득으로 다 구제할 수 있다. 우선 서울시 단위에서 몇백 가구를 대상으로 실험할 것이다. 비용도 100억 원 밑으로 최소화해 미래형 복지 시스템의 방향에 관한 대안을 모색하는 실험을 해보려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복지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잡은 전 국민 고용보험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고용보험기금도 급격하게 줄고 있는 데다 자영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희 기증관’의 서울 건립을 둘러싸고 부산, 대구 등 지방의 반대 목소리가 크다. “2만 점이 넘는 작품을 동시에 전시할 수는 없다. 수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부산, 대구, 광주 등에서 순회 전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훨씬 더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대선 출마는 안 한다고, 서울시장에 재도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서울비전 2030위원회’ 사업들이 대부분 5년 계획이다.” ―30대 당 대표 선출 등 국민의힘의 변화를 어떻게 보나. “바람직한 변화의 시작이다. 우리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실망, 이런 것들이 젊은 당 대표 선택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원내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부족한 부분은 빠른 속도로 채워 나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의 언어로 정치권의 언어가 표현되는 순간 오히려 더 피부에 와닿는 정치 언어로 진화해 가는 단계라고 평가하고 싶다.”오세훈 서울시장△ 서울 출생(60)△ 대일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변호사△ 제16대 국회의원(2000∼2004년)△ 제33, 34대 서울시장(2006년 7월∼2011년 8월)△ 제38대 서울시장(2021년 4월∼현재)인터뷰=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정리=박창규 기자 kyu@donga.com정리=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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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처벌받지 않는다는 신화’ 사라져야

    “요즘도 이런 검사가 있나요?” 서울경찰청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 신분인 A 검사의 서울남부지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경찰이 확보한 구체적 진술과 증거 등으로 압수수색영장은 반려되지 않았고, 법원에서도 그대로 발부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영장이 집행됐다. 경찰청이 1991년 옛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독립한 뒤 30년 만에 경찰이 현직 검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불명예 1호 기록’을 갖게 된 A 검사는 굳이 분류하자면 엘리트 검사에 가까웠다. 반부패 수사를 담당한 경력이 있고, 부장검사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서울남부지검의 핵심 부서까지 맡았다. 인사 발표 전에는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었다. 예상과 달리 A 검사는 부장검사에서 지방 소재 소규모 검찰청의 부부장검사로 강등 발령이 났다. 동료 검사 몇 명이 깜짝 놀라 서울남부지검에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조차 “그 검사 경력을 보면 아주 화려하다”면서 “제가 받은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배 한 척 없던 가짜 수산업자 김모 씨(43·수감 중)의 금품 로비 의혹에 박영수 전 특별검사, 정치인 등이 연루된 과정을 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A 검사는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팀에 두 차례나 파견 근무를 했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박 전 특검이 ‘(A 검사가) 전보를 가는 지역의 사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인물’로 김 씨를 A 검사에게 소개했다. 박 전 특검은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예비후보였던 B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변호 활동을 했는데, B 씨와 김 씨가 수감 생활을 같이했다. 박 전 특검은 B 씨, A 검사는 박 전 특검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김 씨는 정치인과 검사, 경찰 등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콕 집어 더 소개받으면서 인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방대 법대를 중퇴한 김 씨는 30대 초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라고 속여 서민 36명에게 1억6000여만 원을 뜯어내던 생계형 사기꾼이었다. 그런데 2017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뒤 박 전 특검 등 ‘힘을 쓸 수 있는 배경’을 알게 되면서 ‘1000억 원대 재력가’ 행세를 했다. 돈 문제로 형사사건과 민사소송 등에 얽혀 있던 김 씨가 이들에게 고급 차량을 제공하고, 골프장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접대를 한 것을 선의로만 보기는 어렵다. 30년 동안 경찰은 검사 비위를 수사하려다 여러 번 좌절했다. 2012년 조희팔 사건 수사 때 경찰이 부장검사의 금품수수 증거를 일부 확보했는데도 검찰의 송치 명령에 수사를 접어야 했다. 김 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보낸 선물 등을 사진으로 찍어 휴대전화에 남겼다고 하지만 이번 금품 로비의혹 사건에도 장부나 명단이 있는 건 아니다. 거물급 인맥이 공개된 이후 김 씨는 “경찰이 진술을 강요하고, 휴대전화를 위법적으로 압수수색했다”며 출석 통보에도 불응하면서 구치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에서 진술하면 손해고, 검찰에서 말해야 조그만 혜택이라도 볼 수 있다는 피의자들의 오랜 통념이라고 볼 수 있다. 경찰이 피의자의 수사 비협조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이번 사건은 피의자의 바람대로 “게이트가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부 특권층은 수사도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신화가 앞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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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후진국형 붕괴 참사와 ‘철거왕’ 업체의 그림자

    2013년 7월 다원그룹의 이모 회장(당시 43세)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은신처 근처에서 체포됐다. 전관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4개월 넘게 잠적했고, 검찰이 잠복 끝에 이 회장을 길거리에서 붙잡았다. 당시 전국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철거 공사 90% 이상을 독점 수주해 ‘철거왕’으로 불리던 이 회장은 약 1000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으로 의심되는 로비 대상의 영문 이름 이니셜과 금액이 적힌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입수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일부 지방의회 관계자 등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로비 내역을 함구했다. 쇼핑백에 현금을 담아 건네던 방식이어서 이 회장의 구체적인 진술 없이는 수사가 진척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악명 높았던 ‘철거깡패’ 용역업체 ‘적준’ 회장의 운전기사로 출발한 이 회장은 2000년대 이후 다원그룹을 1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회사로 키웠다. 그는 평소 “한 번에 현금 수억 원 이상을 벌 수 있다”며 철거 사업의 전망을 높게 봤다고 한다. 검찰 수사 때도 “5년이고 10년이고 견디면 철거 사업을 절대로 뺏기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지만 다원그룹은 아직 건재하다. 이 회장의 동생 2명이 이 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원그룹 계열사의 임원을 맡고 있던 이 회장의 동생 A 씨는 2007년 9, 11월 광주 동구 학동 일대 재개발구역의 철거업체 선정을 부탁하면서 6억5000만 원을 전달한 사실이 2011년 수사로 밝혀졌다. 조합 측과 친분이 있던 B 씨에게 현금을 건넨 것이다. 재개발조합 정비사업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던 B 씨는 금품 수수 혐의로 2012년 징역 1년이 확정됐지만 출소 뒤 학동 재개발조합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해체계획서와는 정반대로 건물을 밑동부터 제거하는 철거로 9일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곳의 바로 옆 구역이다. 만연한 재개발·재건축 비리를 막기 위해 2009년 조합과 철거업체가 직접 계약을 할 수 없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관리법’ 일부 조항이 개정됐다. 지금은 조합이 아닌 시공사가 철거업체와 직접 계약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이주 대책과 석면 해체와 같은 용역들은 불법 하청, 재하청 구조로 진행되고, 여기에 다원그룹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은 시공사와 계약한 한솔기업이 다원그룹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철거 과정에 참여한 업체 최소 5곳이 다원그룹의 친인척이나 전직 직원 등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점을 파악했다고 한다. 현금 로비가 통하면 철거업체는 거액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단가를 낮춰 불법 재하청을 주면 막대한 차익을 남긴다. 결국 철거 현장에서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속도전만 우선시된다. 경찰의 수사 책임자인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최근 광주경찰청을 방문해 다원그룹 의혹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2013년 다원그룹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는 미완으로 끝났다. 경찰은 후진국형 붕괴 참사 뒤에 짙게 드리운 다원그룹의 그림자를 이번에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그것이 철거 공사의 부조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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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아이들에게 빚 떠미는 유일한 나라

    A 씨가 여섯 살이던 1993년 아버지가 숨졌다. A 씨의 어머니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아버지가 B 씨에게 갚아야 할 약속 어음 1210만 원을 자녀와 함께 자동 상속받았다. A 씨는 성인이 된 2017년 8월 B 씨가 자신의 은행 계좌 등을 압류하자 재산보다 많은 빚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A 씨는 다음 달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상속채무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하고,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 2심에선 A 씨가 승소했다. 2019년 5월 대법원에 접수된 A 씨 사건은 대법관들의 견해차로 소부(小部)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지난해 1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상속인이 미성년자일 경우 법정대리인과 미성년자 중 누구를 기준으로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알게 된 때로 해석해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김재형 대법관 등 다수의견은 A 씨의 법정대리인인 어머니가 민법상 한정승인 신고기한(3개월)을 놓쳤기 때문에 미성년자라고 해서 예외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민유숙 대법관 등 반대의견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정승인 기한을 놓친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합은 다수의견(9명)이 반대의견(4명)을 앞서 하급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에선 ‘법적 안정성이 우선’이라는 사법소극주의자와 ‘적극적인 법 해석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법적극주의자 사이에 가장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판결로 꼽힌다. 그런데 다수와 반대 의견 모두 민법 개정의 필요성엔 공감했다. 반대의견은 “청년세대가 빚의 대물림으로 출발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지 않도록 사회가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다수의견도 “반대의견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한다. 미성년자를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대법원은 46쪽 분량의 판결서 38, 39쪽에 이례적으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상속 제도를 갖고 있는 해외 입법 사례를 상세하게 적었다. 사실상 입법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프랑스는 미성년자가 한정승인만 가능하고, 상속재산이 채무를 초과하는 명백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얻어 빚을 승계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1998년 민법을 개정해 미성년자는 상속채무에 대한 책임을 그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시점에 가진 재산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앞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녀가 상당한 채무를 부담한 채로 성년의 삶으로 방출되는 것은 자녀의 인격권에 반하는 위헌”이라며 입법을 촉구했다. A 씨와 똑같이 1억 원 이상의 빚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김유철(가명) 군과 그의 어머니 도모 씨. 그들은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을 취재하던 동아일보에 자신의 사연을 공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파산했지만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법을 꼭 바꾸고 싶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올 4월 해외 입법 사례를 바탕으로 미성년 상속인 보호 입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를 본 국회의원들이 미성년자는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프랑스, 독일 같은 민법 개정안을 10일 발의했다. 아이들이 재산보다 많은 빚을 물려받는데도 보호 장치가 전혀 없는 나라, 그 아이들이 청년이 되면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하라고 강요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에 국회가 이제 답해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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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청년 노리는 ‘악마의 목소리’, 지금 당장 막아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스물두 살의 배우 지망생 A 씨가 보이스피싱으로 200만 원가량을 잃게 됐다. 경찰에 보이스피싱 신고를 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6일 A 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지인이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잃고 홀로 괴로워하다 고통 없는 삶을 택했다”는 글을 올리자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 마음이 더 아프다” 등의 추모 댓글이 달렸다. 지난해 1월 20일 스물여덟 살의 취업준비생 B 씨는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됐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받게 된다”라는 ‘가짜 김민수 검사’의 말에 속아 420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B 씨는 사흘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B 씨의 아버지가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아들이 사기를 당한 420만 원에 대한 가짜 김민수 검사의 몫이 고작 50만 원이고, 그 돈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아버지의 한탄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학자금 마련을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었던 스물두 살의 대학생 C 씨. “길거리에서 현금을 받아 계좌로 입금하면 수고비를 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유혹에 지난해 7월 편의점 앞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건넨 916만7000원을 전달받았다. 수고비 56만7000원을 뺀 860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했다.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두 차례 더 했던 C 씨는 같은 해 10월 1심에서 사기방조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 3월 항소심 재판부는 C 씨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청년 A, B, C…’가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20대 이하 피해자는 2019년 3855명에서 지난해 5323명으로 전년 대비 38%포인트 늘어났다. 유독 20대 이하만 증가했다. 여기엔 금융당국이 계좌이체 범죄에 대한 방지책을 강화하면서 직접 만나 돈을 전달받는 이른바 ‘대면 편취형’으로 범죄가 진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대면 편취형은 지난해 1만5111건으로 전년 대비 5배 늘었다. 취업난에 청년들이 보이스피싱 수거책 아르바이트에 뛰어들면서 청년층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피의자가 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나 금융당국, 국회가 그동안 노력을 전혀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의 비극은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도 해결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범죄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법망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 취약계층만을 공략해왔다. 이 범죄 피해자의 약 90%는 서민층이다. 지난해 6월 관계부처 합동 종합대책엔 피해자의 중과실이나 고의가 없다면 금융기관이 원칙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이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에 전화를 하면 “우리 책임도 있다”며 피해액의 절반을 입금해주는 영국 사례 등을 참고했다고 한다. 국회는 금융기관의 피해 배상 책임과 관리 감독 의무를 강화하는 관련법안 8건을 발의했다. 과실이 없는 기관에 책임을 지운다는 법적 논란, 악용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로 논의가 1년 가까이 답보 상태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0년 5000여 건에서 지난해 3만1000여 건으로 10년 만에 6배로 늘었다. 획기적인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지 않으면 이 추세를 꺾을 수 없다. 지금 막지 못하면 앞으로 더 어려울 수 있고, 그 사이 수많은 취약계층, 특히 청년층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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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객관의 의무’ 저버린 검사, 일벌백계해야

    “어쨌든 나는 검사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 왜 하겠나.” 1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44)는 요즘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공익의 대표자로 일컬어지는 검사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하는 이른바 ‘객관의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과연 이 검사는 검사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올 1월부터 3개월 이상 이 검사 등을 수사해 온 수원지검 수사팀의 공소장 내용은 이 검사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검사는 2019년 1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여러 차례 만난 뒤 면담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차관에게 성 접대와 금품 등을 제공한 윤 씨가 하지도 않은 말을 면담보고서에 허위로 기재했다. 예컨대 윤 씨가 만난 적도 없는 검찰 고위 간부들이 윤 씨에게 금품 등을 제공받았다고 기록한 것이다. 같은 해 3월 23일 이 검사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면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금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 사건번호로 입건된 피의자처럼 속여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았다. 허위 면담보고서를 기자에게 건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차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당일 관련 보도가 나오게 했다. 출금 나흘 전이었다. 이 검사 측의 해명 내용을 더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검사는 평검사 신분 아니냐. 전직 차관을 평검사가 주도해서 출금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200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 검사는 중소형 로펌에서 2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9년 경력 검사로 임용됐다. 지인들은 ‘어떤 일이든 의욕적으로 일하는 검사’로 이 검사를 기억하고 있다. ‘검찰 내부 인사에게 칼을 들이대는 업무는 향후 보직에도 좋지 않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진상조사단 근무를 자청했다고 한다. 이 검사는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50)의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같은 로펌에서 일했다. 이 비서관은 2019년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범정부 차원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업무를 맡고 있었다. 검찰이 당시 통화기록 등을 추적한 결과 이 비서관은 검찰의 적폐청산을 담당하던 이 검사에게 수시로 연락했다. 이 검사는 검찰에서 “이 비서관이 ‘법무부, 대검과 조율이 됐으니 출금하라’고 연락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청와대, 법무부, 대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과거사 진상조사 전 검찰이 김 전 차관에게 여러 차례 무혐의 처분을 한 점 등은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렇다고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개혁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게 하고, 그 며칠 뒤 피의자 신분이 아니면 불가능한 긴급 출금을 해야 했을까. 이 검사가 객관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을 당시 기획이라는 말이 군사정부 시절의 공작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검찰의 부서 이름에서 기획이라는 단어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 검사 등 관련자를 일벌백계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기획사정(企劃司正)’의 배후를 철저히 파헤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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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해체, 고민할 때다

    “오탈자 등 마지막으로 확인할 부분이 있어 오늘 중으로는 판결서를 등록하기 어렵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에게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선고 당일인 23일 이런 이유로 판결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6번 연속 무죄 선고 뒤 첫 유죄가 나온 것이어서 그다음 날 법원 내부망 등록 이후 법관들이 판결서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A4용지 458쪽 분량의 판결서와 154쪽 분량의 별지 등 총 612쪽으로 구성된 문서를 놓고 법원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법원행정처 등은 일선 법관에게 지적(指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생경한 논리에 동료 법관들은 가장 먼저 놀랐다. “헌법에 재판 독립이 명기되어 있는데, 위험한 판결이다” “법을 창조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별지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명단이 그대로 실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거기엔 2017년 2월 당시 인권법연구회 회원 101명의 이름과 직급, 법원 내 소속 기관, 인권법연구회 탈퇴 및 유지 여부 등이 적혀 있다. 101명 중 73명은 기존에 가입한 다른 연구회를 탈퇴하고 인권법연구회 자격을 유지했고, 28명은 인권법연구회를 탈퇴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김기영 헌법재판관, 이동연 고양지원장, 이성복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73명의 명단에 있었다. 이 전 실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윤 부장판사의 이례적인 서울중앙지법 같은 재판부 4년 유임 결정에 관여한 성지용 서울중앙지법원장도 포함됐다. 법관들은 “다른 연구회를 탈퇴하면서까지 인권법연구회에 잔류했던 진성(眞性) 회원의 명단이 처음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직에 기용된 법관들의 인사 배경이 궁금했는데, 이번에 의문이 풀렸다”고 말하는 법관들도 있다. 명단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관 대다수가 판결서를 구해 해당 명단을 확인했다고 한다. 퇴직한 법관들은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법원 관련 업무를 하는 로펌이나 기업도 ‘실세 법관’ 명단을 구하려는 촌극이 빚어졌다. 인권법연구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한 달 전인 2011년 8월 세계인권법과 북한 인권 문제 연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사법 정책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2017년 2월 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회원들이 피해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 취임을 전후해 이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 검찰 수사 요구, 재판 관련 업무까지 주도하면서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직접 반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법관 인사와 재판의 편향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부 분열의 진앙으로 이 모임이 지목되고 있다. 로마법을 공부한 전직 대법관의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지금의 왕이 노예가 되고, 노예가 왕이 되어야 정의가 실현되는가. 그것은 또 다른 부정의의 세계를 창출하는 것 아닌가.’ 인권법연구회는 해체를 고민할 때다. 김 대법원장이 재임 중인 지금이 최적의 시기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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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서울대, 내달부터 코로나 신속 검사…대면강의 앞당길 것”[파워인터뷰]

    《“대학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인터넷 강의로 지식 전달은 가능했지만 대학은 사회적인 교류도 중요하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68)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캠퍼스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 2월 총장직에 취임한 오 총장은 취임사에서 “서울대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놓겠다”고 했다. 18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융합’과 ‘창의’, 그리고 ‘독창성’을 강조했다.》 ―4년 임기 중 절반이 지났다. “제가 취임하기 전에 서울대가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첫해엔 정상화를 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였고,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돼 뭐 좀 하려고 했더니 코로나 사태로 정신없었다.” ―코로나19 신속 분자진단 검사를 시험 도입한다고 들었다. “지난해에는 워낙 갑작스러워 학내에서 감염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1년이 지나고 나니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됐다. 대학은 사회적인 교류도 중요하다. 학생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올해는 방역 지침을 지켜가면서 그런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신속 분자진단 검사를 4월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검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전문 의료진이 면봉으로 코 안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은 같다. 하지만 신속 분자진단 검사 방식은 일반 검사와 달리 1, 2시간 내로 현장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험실을 써야 할 때 2시간 일찍 학내 임시 검사소에 와서 검사를 받고, 음성이면 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신속 진단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입찰 공고도 냈다. 관악구 보건소, 서울대병원에서 의료진을 파견 받는다. 국내 대학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검사의 정확성은 검증됐나.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이미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코로 하는 기존 검사 방식은 전문 의료진이 반드시 필요해 하루에 채취할 수 있는 검체의 수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타액(침)을 통한 검사는 분석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질병청은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타액 검사, 셀프 검체 채취도 허용하고 있다. 서울대는 기존 검사와 함께 타액 검사를 실시해 관련 데이터를 질병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언제쯤 대면 강의가 가능할까. “시험 도입은 현장 실험 실습이 필수적인 자연과학계열 대학원생 및 교직원 1800여 명이 대상이다. 검사 노하우와 데이터가 쌓이면 예체능, 공과대, 15인 이하 토론 수업 등 소규모 세미나로 확대할 생각이다. 2학기에는 대면 강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검체 채취 및 검사가 얼마나 쉬워지느냐에 따라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다른 대학, 초중등학교까지 확대되면 좋겠다.” ―서울대가 질적으로 탁월한 연구가 부족하다며 근본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서울대 하면 딱 기억나는 연구 분야가 없다. 그런 논문을 쓰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남이 안 하는 분야를 해야 한다. 그래서 교수 평가에서도 논문 개수보다 질적인 면을 따진다. 최장 3년까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특별연구년제’를 이번 달부터 시범 시행 중이다. 6년에 1년씩 주는 안식년을 발전시킨 것으로 교수들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 교육에 있어서 융합을 강조해 왔다. “앞으로 전공 하나로 졸업해서 평생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직업을 서너 번은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서울대는 학과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통합적 교육과정으로 전면 개편할 방침이다. ‘Inno-Edu 2031’ 프로젝트를 통해 매년 10% 내외 학과의 교육과정을 개편해 2031년까지 전(全) 학과 커리큘럼을 리뉴얼할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학생 설계 전공’과 융합교육 활성화를 위해 복수전공, 부전공, 연합전공 선택이 자유롭도록 제도적 제한을 없애고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언제든 수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남은 임기 동안 집중해서 추진할 부분이다.” ―입시제도에서 정시 확대에 부정적 입장이었는데…. “지금 수능은 문제를 틀리지 않게 훈련시키는 것에 그친다. 몇 개의 ‘킬러 문제’로 변별력을 주고 있다. 정시를 아예 없앨 순 없겠지만 전체 입학 정원의 40% 정도가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공정성 시비 논란도 있다. “학종이 공정성에 시비 논란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종은 학생이 관심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반면 정시는 결과만을 반영한다. 결과만 보면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안 듣고 학원에서 공부한다. 결과적으로 교실이 망가진다. 2023년도 정시에 내신을 ‘교과평가’로 반영하는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다. 학생이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지 않게 하자는 취지다.” ―올해가 법인화 10주년이다. 서울대의 장기발전 계획은…. “법인화 취지 중에는 서울대가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정적 자립을 하라는 것도 있다. 서울대 1년 예산이 연구비를 제외하면 약 8000억 원 수준이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재정 규모가 두 배는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이나 등록금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올해 ‘SNU홀딩스’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지주회사를 통해 벤처기업 창업을 돕고 대가로 기업 주식을 받는다. 회사가 커서 상장하면 주식이나 로열티 등을 팔아 이익을 실현하는 구조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실리콘밸리, 중국 칭화대의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을 모델로 삼았다.” ―지역 상생모델로 ‘관악S밸리’ 사업을 추진 중인데…. “학교 인근인 대학동, 낙성대동 일대를 창업 생태계로 활성화하고 벤처 창업도시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미 대학동에 창업공간을 마련했다. 문화관을 리모델링해 서울대 구성원만 쓰는 공간이 아닌 관악구민, 나아가 서울시민들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이번 학기부터 신임 교수 연구정착금을 실험과 실습 분야 1억 원(기존 4000만 원), 이론 분야 5000만 원(기존 3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이전에는 막 부임한 젊은 교수들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실험 장비 갖추는 데만 수년을 허비했다. 노벨상이 아이디어는 20, 30대에 나와서 10년 넘게 연구를 하고, 20년 동안 다른 학자들이 검증을 해서 60대 넘어 받는 게 대부분이다. 그만큼 젊을 때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젊은 교수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68)△서울대 물리학과 졸업△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한국연구재단 이사장△기초과학연구원 초대 원장△제20대 국회의원(2016년 5월∼2018년 10월)△제27대 서울대 총장(2019년 2월∼)정리=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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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정원수] 2011번째 ‘서울시장’이 풀어야 할 숙제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이 아니라 혹시 조선시대 천도 이래 최장수 아니냐.” 2018년 6월 서울시장 3선에 처음 도전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맞다. 안 그래도 내가 조선시대부터 조사를 해봤다.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 부·판윤이 그때는 당쟁의 자리였더라. 하루에 두 명이 동시에 재직한 적도 있었다”고 답했다. 서울시가 조선왕조실록 등을 근거로 집필한 ‘서울 600년사’에 따르면 1395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의 한성 부·판윤은 모두 1952명이었다. 당시에도 한성 부·판윤은 현재의 장관급인 6조 판서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정도로 직책이 높았다. 하지만 약 3개월에 한 명꼴, 1년에 네 명씩 수도 서울의 책임자가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는 임기가 좀 더 길어졌다. 광복 이후 76년 동안 서울시장은 38명(연임 포함)이었다. 평균 2년에 한 명꼴로 수도 서울의 책임자가 교체된 것이다. 박 전 시장이 천도 이래 2010번째 서울의 책임자였고, 다음 달 7일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서울시장은 2011번째가 된다. 4년 임기의 서울시장을 시민들이 직접 뽑는 1995년 민선 서울시장 체제 이후에는 서울시장의 근무 기간이 다시 배로 늘었다. 그중에서 보궐선거 당선으로 첫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한 박 전 시장은 3선에 성공했지만 성추행 의혹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해 8년 8개월 재직하면서 역대 최장수가 됐다. 관선과 민선을 한 차례씩 지내 약 6년 동안 재직한 고건 전 시장이 그다음이다. 다른 광역단체장만 하더라도 3선 한도를 채워 12년 근무한 전임자까지 있는데, 재선만 하더라도 가능한 8년을 근무한 서울시장은 역사상 단 1명뿐이다. 사실 수도 서울의 시정을 제대로 펼치려면 8년도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다. 백년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계획을 설계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동안의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을 위한 시장보다 ‘시장을 위한 자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 출마 등 다음 행보를 위한 자리에 더 무게가 실렸다. 역대 최장수인 박 전 시장의 후임은 다시 보궐선거로 뽑게 됐고, 차기 서울시장은 민선 서울시장 체제 이후 최단명(最短命) 서울시장이 된다. 당선이 확정된 날부터 임기를 시작하지만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1년 2개월만 근무하게 된다. 차기 서울시장의 역할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는 32년 만에 내외국인을 합쳐 1000만 명 이하로 인구가 줄어들었다. 어느 때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미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서울시장이 해결할 현안으로 부동산 안정화, 일자리 및 경제 활성화, 강남북 간 격차 해소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복합적이고 장기간 누적된 현안이어서 1년 2개월 안에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차기 서울시장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실험하기보다는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업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울과 서울시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글로벌 도시 서울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장기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뒤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해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 ‘장수(長壽) 시장의 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천년 서울을 준비하는 것이 서울 시민을 위한 길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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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 법관 인사[오늘과 내일/정원수]

    “나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이 있다. 그것은 공정하게 재판하는 ‘좋은 법관(a good judge)’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숨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 연방대법관은 1993년 7월 상원의 인사청문회에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 상원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법관은 공정하게 판결할 것이라고 선서한다”면서 “어떤 암시나 예측, 특정 사건에 대한 무관심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법관으로서의) 공정함과 독립성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은 나흘 동안의 청문회 일정 중 첫날 ‘암시하지 않고, 예측하지 않고, 예고하지 않는(No hint, No forecast, No preview)’ 공정한 재판의 3가지 필수 원칙을 처음 내세웠다. 그는 청문회 내내 낙태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질의에 60여 차례 답변을 회피했다. 이때부터 공직자 검증을 위한 청문회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법관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에 노코멘트로 답변하는 것이 용인되는 전통이 생겼다. 이후 30년 가까이 수많은 연방대법관 후보자들은 청문회에서 “나는 ‘긴즈버그의 표준(The Ginsburg Standard)’을 따르겠다”는 답변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법관의 표준’으로 평가받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을 떠올린 건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단행한 법관 인사 때문이다. 2017년 9월 취임한 김 대법원장의 4번째 법관 정기 인사를 보면서 현직 법관들은 “어떤 판결을 하더라도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졌다”며 동요하고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인사 원칙이 깨진 굉장히 이례적인 인사다. 심각해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 재판 결과와 재판 진행 상황이 법관 인사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선 판사들이 갖게 됐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재판을 1년째 공회전 중인 재판부는 인사 관례를 깨고 4년째 잔류했다. 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법정 구속한 1심 재판부의 잔류 신청은 거절당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무죄 선고 전력이 있는 재판부는 인사 원칙대로 3년 만에 해체됐고, 정반대의 재판 성향을 보였던 재판부 판사 3명은 원칙의 예외를 각각 4∼6년씩 인정받았다. 대법원은 “사건의 규모와 재판 진행 상황, 인사 희망을 고려했다”고 하는데,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김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좋은 재판’을 강조했다. 좋은 재판의 본질은 재판의 공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당사자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특히 권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누가 재판을 하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재판 불복이 줄어들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 있다. 그런데 전례 없는 법관 인사로 불행하게도 일부 사건의 재판 결과를 암시하고, 예측하고, 예고할 수 있게 됐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대법원이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사법개혁입법’을 의식해서 인사를 단행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구조적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내용 등의 관련 법안은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한데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2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국회의 과반 동의만 있다면 제도는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법개혁은 불가능하다. 법관들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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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척간두에 선’ 청년변호사들[오늘과 내일/정원수]

    몇 년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의 분쟁조정위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의뢰인이 수임료 일부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약 50만 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한참 동안 망설이던 청년변호사의 표정이 아직 잊히질 않는다. 수임 기간이나 변론 내용만 보면 결코 과한 수임료라고 보긴 어려웠다. 결국 청년변호사가 조정을 거부해 소송 절차로 넘어갔다. 요즘 서초동에는 100만 원 이하 수임료 반환 소송이 종종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400∼1700명씩 쏟아져 나왔다. 1906년 변호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100년 만인 2006년 등록 변호사가 1만 명을 넘어섰고, 그 이후 8년 만인 2014년 2만 명, 다시 5년 만에 3만 명에 도달했다. 올 1월 현재 휴업 중인 변호사를 제외한 활동 중인 변호사는 2만4000여 명이다. 이 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출신이 1만3500여 명,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시험 출신이 1만600여 명이다. 아직 로스쿨 출신이 절반에 못 미치는데, 내년쯤에는 로스쿨 출신이 과반이 될 것이다. 변호사 업계가 적자생존의 시대로 바뀌면서 전체 변호사의 40%가량인 약 1만 명의 20, 30대 청년변호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변호사들만의 은어(隱語)도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막변’이다. 로스쿨을 졸업한 막내 변호사인데, 낮은 월급에 기피 사건인 ‘교폭절’(교통사고, 폭력, 절도) 사건을 주로 맡는다고 한다. ‘블랙 로펌’이라는 말도 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 기업처럼 청년변호사들에게 매달 100만 원의 월급으로 6개월간의 고강도 실무 수습을 요구하는 로펌이다. 필수 코스인 실무 수습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버틴다고 한다. 로스쿨을 졸업한다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매년 1500명 안팎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에서 ‘검클빅’(신임 검사, 법원의 로클러크, 대형로펌 변호사)이 될 수 있는 인원은 각 100명씩 300명 정도다. 중소 로펌의 경우 월급이 200여만 원, 1년 연봉이 3000만 원에 불과하다. 개인 변호사로 개업하면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는 매달 1인당 평균 1건 이하의 사건을 수임했다. 1건의 평균 수임료가 500만 원 이하였는데, 청년변호사의 수임료는 평균보다 낮다. 변호사시험 2기 출신으로 청년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김정욱 변호사가 전국 최대 지방변호사단체인 서울변회 회장에 최근 당선됐다. 변호사 업계의 주류가 로스쿨 출신으로 세대교체가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김 변호사는 당선 직후 “지금 변호사 업계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했다. 청년변호사 일자리 확보, 세무사와 법무사로부터 변호사 직역 수호, 변호사 업계의 ‘타다’로 불리는 법률 플랫폼과의 분쟁 등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사법연수원생과 달리 로스쿨 출신의 개성을 살려 새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반면 현안 대부분이 변호사 단체의 권한이 아닌 정부와 국회, 유사 직역 등과 머리를 맞대고 조정해야 하는 난제라는 점에서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공익적 이유로 설립된 변호사단체가 생존 문제에만 집중하면 자칫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는 생존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새 집행부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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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수사본부, ‘한국의 FBI’가 될 수 없는 이유[오늘과 내일/정원수]

    12일 밤 경찰청 교육정책담당관실은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전날 마감한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외부 공개 채용 지원자 5명 전체의 실명이 통째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마감 당일 경찰은 “절대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허언이 됐다. 경찰청은 1일부터 11일 오후 6시까지 국가수사본부장을 공개 채용하기로 하고, 모집 공고를 냈다. 10년 이상 수사 업무에 종사한 총경 이상 경찰 공무원, 10년 이상 경력의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이 지원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지원자가 몰릴 것에 대비해 지원자가 8명 이상이면 서류심사 단계에서 고득점순으로 7명을 추릴 계획이라고 사전에 공지했다. 하지만 지원자는 단 5명뿐이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전국 경찰 12만 명 중에서 형사와 수사, 사이버, 안보 분야의 약 3만 명을 지휘할 수 있는 요직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직원이 3만2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제복 조직인 경찰에서 국가수사본부장은 치안총감인 경찰청장 바로 아래 직급인 치안정감이다. 수사에 관한 한 같은 직급의 서울경찰청장 등 시도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권도 갖는다. 한국의 FBI 국장이라고도 불리는 자리가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무엇보다 권한과 신분 보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경찰 간부에게 “왜 지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실질적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껍데기 자리’ 아니냐”고 답했다. “오히려 경찰청장에게 ‘방패막이’가 하나 생긴 격”이라고도 했다. 국가수사본부장의 권한 등이 적힌 관련 법규를 찾아보면 이 발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장이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해 서면 지휘하는 사건 외에는 전권을 갖고 수사 지휘를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수사 착수나 진행, 종결 사항 등은 경찰청장에게도 보고된다. 경찰청장은 수사 내용은 파악하고 있지만 수사의 총책임자가 아니어서 부실 수사에 책임질 일이 없다. 예를 들면 과거 경찰 총수가 사과하고 사퇴한 ‘오원춘 사건’에 대해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신분 보장도 미흡하다. 국회의 탄핵이 없다면 임기 2년을 보장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추천과 검증의 투명성, 공정성, 중립성 확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외부 공모를 하고도 경찰청 심사에서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면 내부 발탁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첫 공모에서 전직 경찰 간부 2명과 변호사 3명이 지원했는데, 후보자 면면이나 자격을 놓고 경찰 내부에서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내부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래서야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을 제대로 선발했다고 할 수 있겠나. 추천과 검증 절차를 더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내·외부 천거와 공개 검증, 복수 추천이라는 다른 공직 후보자 등의 선발 절차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도입해야 한다. 경찰 수사의 외압을 막을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그 직책도 ‘경찰수사본부장’이 아니라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점에서 인사청문 대상인 경찰청장 못지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FBI 국장 후보자는 연방대법관 후보자만큼 낙마 비율이 높을 정도로 인사 검증이 철저하다. “최선을 기대하고, 최악을 대비하라”는 법언이 있는데, 국가수사본부장에 대해선 최악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국가수사본부장의 실패는 곧 경찰의 실패가 될 수 있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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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립적 공수처에 대한 소신’, 끝까지 지켜야[오늘과 내일/정원수]

    “공수처장 힘든 자리다. 나라 생각하면 되면 좋겠고, 사람 생각하면 떨어져도 좋겠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는데, 그런데도 고사하지 않는 까닭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소명 때문이라 나는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를 지명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29일 김 후보자와 가까운 한 목사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렸을 때부터 김 후보자를 잘 알고 지낸 이 목사는 김 후보자에 대해 “예수를 진짜로 잘 믿고,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다음 날 문 대통령은 최종 후보군에 오른 2명 중 검사 출신을 배제하고 김 후보자를 선택했다. 김 후보자는 판사와 변호사, 특검 파견 수사관,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등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의 초대 수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터라 김 후보자의 자질 등은 법조계에서도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김 후보자의 학창 시절 친구와 사법연수원 동기, 함께 일한 법조인, 그리고 김 후보자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김 후보자의 평판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합리적인 보수 성향에 가깝고,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고집이 있다.’ 충북의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키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와 신앙생활에 집중해 ‘아주 완전한 모범생’으로 불렸는데, 말하자면 ‘개천용’에 가깝다. 경제학과 진학을 꿈꾸던 그는 고교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문화재를 연구할 수 있는 고고미술사학과로 진학했다. 경제학을 부전공하던 그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헌법학을 수강하다가 법학에 흥미를 느껴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년 6개월 만에 초고속 합격했다. 3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하던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옮겼고, 거기서 하버드대 로스쿨에 연수를 갔다. 동시통역대학원도 다녔다. 헌재에 근무하면서 서울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부 지인들은 검찰개혁 등에 관한 발언에서 보수 성향에 가깝다고 느꼈다고 한다. ‘옳다는 길은 죽어도 양보 안 한다’고 할 정도로 고집이 있다는 것도 주변의 일관된 평가다. 김 후보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 중 하나인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올해 새해 인사로 건넨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고집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측면에서 여권과 마찰을 빚은 법관 출신의 최재형 감사원장을 떠올리는 법조인도 있다고 한다. 여권이 공수처 조기 출범만을 지상 과제로 삼으면서 처장 후보자 추천과 검증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여권이 후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법조계에서 나온다. 김 후보자를 최근 만난 한 지인은 “공수처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세팅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려면 청와대, 검찰 등과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 후보자의 법조 경력 25년 중 수사 경험은 1999년 10∼12월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특검’ 수사관 파견 2개월이 전부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등 70여 명을 이끌 리더십도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공수처의 처음과 끝은 처장’이라고 할 정도로 처장은 인사와 수사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 운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히고, 검증받아야 한다. 취임한다면 공수처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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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돈 前 시장이 두 번이나 구속을 피한 방법[오늘과 내일/정원수]

    “저를 둘러싼 황당한 이야기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떠돌고 있다. 소도 웃을 가짜 뉴스, 모조리 처벌하겠다.” 지난해 10월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부산시는 “개인을 넘어 350만 부산시민을 대표하는 시장과 부산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는 별도의 입장을 냈다. 오 전 시장은 가짜 뉴스 척결을 위한 변호인단 8명을 구성하고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에 대해 강경 대응했다. 유튜브 채널 운영진을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형사 고소했고, 5억 원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때만 해도 오 전 시장은 ‘가짜 뉴스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국회의원 총선거 약 일주일 뒤인 올 4월 23일 오 전 시장은 집무실에서 또 다른 부하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고 시인한 뒤 자진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의 사퇴를 계기로 유튜브에서 제기된 성추행 사건도 다시 주목받았다. 부산지방경찰청이 올 8월까지 약 4개월 동안 관련 의혹을 내사했지만 오 전 시장이 시인한 강제추행 외에 추가 범행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그런데 부산지검의 추가 수사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오 전 시장에게 피해를 당한 또 다른 여성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어렵게 진술하고, 검찰이 증거 인멸과 관련한 녹취 파일까지 새로 확보한 것이다. 검찰은 강제추행 외에 무고 혐의를 추가해 오 전 시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신고자가 허위임을 알고서 다른 사람이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수사기관 등에 신고했다면 무고죄가 성립한다. 오 전 시장 측은 1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추가 추행 혐의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가 맞다고 한다면 인정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무고를 피하려고 형사 고소 당시 허위 사실인지를 몰랐다는 전략적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오 전 시장은 구속을 피했다. 오 전 시장의 두 번째 영장을 기각한 부산지법의 김경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와 피해자들과의 관계, 영장청구서에 적시된 구체적인 언동을 고려하면 피의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올 6월 경찰이 신청한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됐을 때만 해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짤막한 기각 사유만 나왔지만 두 번째 영장 때에는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더해진 것이다. 정당한 의혹 제기를 ‘부산시민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세우면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해 민형사상 소송전을 벌이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의 도리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오 전 시장에 대한 두 차례 영장심사 과정은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오 전 시장은 올 6월과 18일 두 차례 영장심사만을 위해 법원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원포인트’로 선임했다. 전관 변호사는 올 6월 1차 영장심사 때 “부산시장을 지낸 피의자가 자존심 등으로 자신한테 불리한 건 기억하고 싶지 않고, 실제 안 했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현상’일 뿐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오 전 시장을 방어했다. 2차 영장심사 때도 “기억나지 않지만 인정한다”는 방어논리를 폈다. “지병이 있는 73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은 오 전 시장은 자진 사퇴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피해자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었고,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제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 하고 있다”며 절규하고 있다. 피의자의 처지나 논리가 아니라 피해자의 심정이나 입장도 헤아리는 재판을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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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두순 시행착오’ 12년, 더 이상 반복 말아야[오늘과 내일/정원수]

    “나는 지켜보았습니다. 아픈 우리 아이를 법정에 세워놓고 자기가 아니다, 어린아이라 기억이 잘못됐다, 진짜 범인이 밖에서 또 강력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며 협박하던 자입니다. … 11년 전에 정부에서 그랬습니다. 조두순을 영구히 격리하겠다고 국민께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2008년 12월 11일 조두순이 당시 8세 딸을 참혹하게 성폭행한 이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최근 국회의원에게 보낸 호소문 중 일부다. 이런 기대와 달리 수감 중인 조두순은 12일 만기 출소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복귀한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가 도망치듯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사를 갔다고 한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청은 올 10월 조두순을 24시간 밀착 감독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 공동 대응책을 내놨다. 국회도 성범죄자의 실거주지를 더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조두순이 되돌아오는 시점에 반드시 되짚어보고, 기억해야 할 지점이 있다. 사회적 관심이 덜한 수많은 사건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허술하게 처리돼 왔는지, 또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을. 아버지가 “끔찍하다” “기억하기도 싫다”고 하는 장면들이다. 우선 수사와 기소 과정이다. 검찰은 수술 후유증으로 조사받기조차 힘든 피해자를 장시간 조사했고, 영상녹화 장비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진술을 요구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사건 발생 5개월 전 개정된 아동성범죄 특별법인 성폭력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검찰이 일반법인 형법상 강간상해죄로 조두순을 기소한 것이다. 형량 하한선이 더 낮은 강간상해죄로 기소된 조두순은 1심에서 징역 12년과 7년 동안의 위치추적기 부착, 5년 동안의 신상공개 명령을 선고받았다. 조두순은 항소를 했는데, 검사는 1심 선고 형량이 상해죄 기준선에 있다는 이유로 항소를 포기했다. 2, 3심에서는 ‘항소인에게 더 불리하지 않게’ 판단한다는 원칙 탓에 1심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지 못해 12년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잘못된 법 적용을 바로잡을 기회도 사라졌다.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한 것도 논란이 됐다. 피해자 측은 경황도 없고,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아 1심을 변호인 조력 없이 대응했다고 한다. 1심 형사재판의 변론 종결 전에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그 시기를 놓쳐 배상을 받지 못했다. 반면 조두순은 1심에선 국선변호인, 2심에선 법무부 산하 법률구조공단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다. 법률구조공단은 피해자 측의 변호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판이 정의 실현의 과정이었는지도 의문이다. 1심은 결심 공판을 포함해 3차례 공판이 열린 뒤 사건 접수 2개월여 만에 종결됐다. 전과 18범의 조두순은 그사이 6차례나 반성문과 탄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택한 뒤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경했다. 조두순 사건으로 드러난 사회 시스템의 오작동은 많이 개선됐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성범죄의 신상공개 제도와 전자발찌 제도, 피해자 인권 보호 대책 등이 보완되고 있다. 형법이 개정되면서 아동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높아졌다. 만약 지금 조두순 같은 범죄가 발생한다면 감경을 하더라도 최대 징역 50년에 처할 수 있고, 성범죄에선 음주를 이유로 감경을 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피해자에게 진 빚일 수 있다. 12년 동안의 시행착오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조두순 출소 이후 대책의 빈틈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때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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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수처법 개정, 헌재 선고까지 유보해야[오늘과 내일/정원수]

    “전날 밤에도 평의를 했다. 신속하게 위헌 여부를 판단하겠다.” 20일 유상범 등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4명이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해 신속한 선고를 요구하자 헌재 박종문 사무처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헌재는 유 의원이 올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 등을 심리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올 10월까지 헌재는 일반 국민이 낸 공수처 관련 헌법소원 청구 17건을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모두 각하했다. 하지만 유 의원과 강석진 전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이 제기한 헌법소원 2건은 헌법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 중이다. 헌재는 전원재판부 심리를 위해 올 6월부터 이달 7일까지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공수처법에 대한 의견을 서류로 제출받았다고 한다. 박 사무처장 말대로라면 관련 기관의 회신과 헌재연구관의 검토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헌법재판관들이 본격적인 평의를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공개 심리여서 정확한 내용은 알기 어렵지만 헌법재판관의 구성상 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대립이 큰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헌재 안팎에선 “헌법재판관들이 자주 밤늦게 평의한다. 곧 공개변론 여부를 결정하고, 그 뒤에 선고 일정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달 26일 선고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다음 달 이후 선고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는 행정부 소속인 기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수사기관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6부 요인, 국회의원, 판사와 검사, 3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 7000여 명이 수사 대상이다. 하지만 수사 착수나 진행 상황 등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현행 공수처법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공직선거법과 동시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처리되면서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본회의장에서 제1야당의 야유와 반대 시위 속에서 강행 처리됐다. 입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더라도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조항은 없는지 헌재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여야 하고,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다른 수사기관이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헌법 정신과 가치에 부합하는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맞느냐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헌재가 위헌 판단을 내린다면 독소 조항만 제거하면 된다. 거꾸로 합헌 판단을 내린다면 공수처 출범이 오히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당이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데, 야당이 공수처장 추천을 보이콧하게 되면 공수처가 어떤 수사를 하더라도 불복 시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공수처 수사 대상의 절반인 3000여 명의 판사가 소속된 사법부는 현행 공수처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에 또 다른 헌법기관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여당이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정부 여당만을 위한 공수처’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법이 시행된 지 5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초대 공수처장을 임명하기도 전에 법을 다시 개정한다면 향후 정치적 환경이 바뀔 때마다 공수처법은 개정 대상에 오를 것이다. 적어도 헌재 선고 전까지는 개정을 유보해야 한다. 공수처의 성공을 바란다면 여권이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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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는 여당이, 수사는 정부가 자초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국회가 감사를 요구한 사항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난센스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를 “난센스”라고 폄훼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발언을 최근 국회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감사원은 원전 감사를 왜 시작했을까. 지난해 9월 30일 국회 본회의장.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국회의 감사원 감사요구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1년 전 국정감사에서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석춘 당시 야당 의원의 제안 설명 직후 여당 의원의 반대토론 없이 곧바로 전자투표가 실시됐다. 203명의 투표 의원 중 162명이 찬성해 감사요구안이 통과됐다. 반대(16명)와 기권(25명)이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동의가 없었다면 감사 착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감사요구안에 찬성한 20대 국회의원은 문희상 정세균 추미애 이인영 최재성 박범계 전해철 등 여당 핵심 의원들이었다. 감사요구안은 국회의 감사 요구에 감사원이 3개월 안에 감사를 한 뒤 그 결과를 국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2002년 11월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제안해 2003년 1월부터 국회법 등에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반대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원이 국회 지시나 지휘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 뒤 국회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해당 법안이 통과됐고, 감사원은 국회가 요구한 사행성 게임, 저축은행 비리, 4대강 사업 등의 감사를 진행해 왔다. 여당이 아무런 저항 없이 감사에 찬성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생각은 여당과 달랐던 것 같다. 감사원이 국회의 통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하자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담당자의 이메일, 휴대전화에 저장된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지우도록 했다.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전날인 일요일 오후 11시 24분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122개 폴더의 문건 444건을 삭제했다. 자신이 원전 업무를 담당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를 다른 직원이 사용하자 그 직원으로부터 비밀번호를 미리 받아 삭제한 것으로 단독 범행으로 보기도 어렵다. 청와대 보고 문건 등 민감한 자료부터 복구를 못 하게 삭제해 문건 120건이 복구 불능 상태다. 감사 방해 혐의는 1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는 중대 범죄지만 감사위원회의 반대로 고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내부 지침은 범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총장에게 송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침상 수사참고자료에는 인적 사항, 죄명, 적용 법조, 범죄 혐의로 의심되는 행위, 자백 여부, 주요 증거, 증거 인멸 여부를 기재하고, 관련 증거자료를 첨부하게 되어 있다. 검찰은 이 자료를 근거로 거의 100%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에 나섰는데, 여당은 “윤석열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감사원이 원전 감사에 나설 수 있도록 찬성표를 던진 곳은 여당이었고, 산업부 직원들의 증거 인멸이 없었다면 검찰 수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멈춘다면 의혹이 사라질까. 진실은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걸 감추려고 한 쪽이 몇 배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반복적으로 학습해 온 교훈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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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검찰총장의 불문율’[오늘과 내일/정원수]

    2018년 상반기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에게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 있다. 법조계 동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다음 검찰 인사 때 무조건 수사권이 없는 고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부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여권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이끌고 있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는 “제어가 안 된다. 우리한테 칼끝이 올 수 있다”고 했다. 한때 윤 지검장을 고검으로 보내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2년 동안 지켰다. 지난해 상반기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의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 지검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였다. 한 검찰 고위 인사는 “윤 지검장에게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총장이 아니라 마지막 총장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인사는 “윤 지검장의 수사 스타일과 두 번째 검찰총장은 잘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통상적으로 정권의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는 검찰 수사는 두 번째 검찰총장 때 많이 불거졌고, 두 번째 총장이 2년 임기를 다 채운다면 세 번째 총장은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1년이 남지 않은 내년 7월 시작한다. 여권 내 ‘윤석열 비토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17일 두 번째 검찰총장 후보자로 당시 윤 지검장이 지명됐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의 근거로 꺼낸 윤 후보자 가족과 주변 문제 의혹 등이 불거져 심야까지 이어졌다. 야당의 날 선 공격을 여당이 방어함으로써 윤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마무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공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는 격려를 했다. 임명장을 받은 당일 오후 윤 총장이 직접 썼다는 취임사가 공개됐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언급하면서 “형사 법집행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직후 검찰 인사도 윤 총장의 뜻대로 단행됐다. “여권의 자신감이 이 정도였나”라고 할 정도로 놀랐다는 법조인들이 많았다. 22일 윤 총장의 임기 중 마지막 국회 국정감사를 보면서 가장 눈길이 간 답변은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법을 집행해야 살아 있는 권력 또한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도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살아 있는 권력을 전현직 대통령, 사법부, 국가정보원, 대기업 등 윤 총장이 지휘해 왔던 수사 아이템으로 바꾸면 윤 총장이 평소에 했던 말과 거의 일치한다. 총장 취임 이후 여권이 윤 총장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을 수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이번에 제대로 수사해야 ○○이 결과적으로 수혜를 입는다”며 직진(直進) 수사를 강조해 왔다. 인사권을 뺏고,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감찰로 압박한다고 윤 총장이 달라질까. 둘러 가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상 아마 더 독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국감에서 윤 총장이 무력시위 하듯 퇴임 후 봉사활동을 언급하면서 정치와는 선을 긋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는 게 윤 총장과 가까운 인사의 얘기다. 1996년 김도언 전 검찰총장의 국회의원 출마 이후 역대 검찰총장은 “총장보다 더 높은 직위는 없다”며 정관계에 진출하지 않는 불문율을 지켜왔다. 윤 총장에게 우호적인 검사들 중 절대다수가 지금은 정계 진출에 반대한다. 하지만 인사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수준의 윤 총장 강제 퇴임이나 그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면 그 불문율이 깨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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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식에 反하는 수사가 합리적 의심만 키웠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심증은 가지만 입증이 어려워 진범을 사법처리를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무고한 사람을 기소 또는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 올 8월 11일 부임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의 취임사 중 일부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法諺)을 연상시키는 문구 그 자체는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다. 박 검사장은 직원들에게 “진술만 가지고 하면 안 된다. 진술은 이해관계인의 이익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부연 설명했다고 한다. 진술에 의존한 수사가 무죄로 이어져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서울남부지검이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부른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부 직원들은 박 검사장의 취임사에 “라임 사건 수사를 말하는 것 같은데…”라며 술렁였다고 한다. 박 검사장 부임 전인 올 6월 초 라임의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서울남부지검에서 금품 공여를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27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강기정 당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줄 ‘인사비’ 5000만 원을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에게 건넸다”고 처음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의 진술은 구체적이었다. “현금 5000만 원을 백화점 쇼핑백을 반으로 접어서 안이 보이지 않게 건넸다” “이 전 대표가 7월 24일 (금융감독원을 감독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국회의원을 만났고, 7월 28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강 수석을 만났다”…. 지난해 6월부터 라임은 금감원의 사전조사를 받았는데, 김 전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금감원 조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 인사에게 금품 로비를 시도한 것이어서 중대한 부패 사건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이 전 대표를 체포했다. 이 전 대표는 호텔에 간 사실, 김 전 회장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처음엔 모두 부인했다. 검사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증을 제시하고, 김 전 회장과의 대질 조사 끝에 1000만 원을 받은 사실만 인정했지만 그 돈의 명목은 강 전 수석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전 대표의 배달사고인지, 강 전 수석의 금품수수인지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갈림길에 선 검찰의 이후 수사 과정은 석연치 않다. 검찰은 이 전 대표에게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올 7월 초 알선수재가 아닌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영장 단계의 범죄 혐의가 기소 단계에서 종종 바뀌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알선수재는 돈의 전달 과정이 명확한 경우 돈을 받은 공무원까지 뇌물죄로 처벌된다. 하지만 변호사법은 알선한 부분, 그러니까 청탁을 받은 공무원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폭넓게 적용이 가능하다. 현직 청와대 수석의 수뢰 의혹을 입증해야 할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볼 수 있다. 구속영장에는 강 전 수석의 실명이 기재됐지만 공소장에는 강 전 수석의 이름이 빠졌다. ‘청와대 수석 등에 대한 청탁’ 대신 ‘국회의원 등’으로 수사 상황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강 전 수석은 박 검사장의 부임 전날인 올 8월 10일 청와대를 떠났는데 검찰은 첫 진술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전직 수석에 대한 조사 없이 처분을 미루고 있다. 김 전 회장이 8일 법정에서 갑자기 강 전 수석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라임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합리적 의심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상식적 수사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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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의 이념편향보다 양극화가 더 위험하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몰려다니는 줄은 몰랐다.” 최근 동아일보 법조팀이 서울대 한규섭 교수 연구팀과 함께 2005년 9월부터 올 9월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274건을 미국 연방대법관 분석 기법으로 조사한 판결 성향을 본 현직 판사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다.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민유숙 노정희 등 현직 대법관 5명이 전합 판결 38건 중 71.1%인 27건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 성향 판사들에게 각각 물었는데, 가장 흥미로워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엑셀 파일로 정리한 분석 전(前) 데이터를 다시 한 번 열어봤다. 분석 결과 현직 중 진보 성향 톱3인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의 동조 현상은 압도적이었다. 세 대법관은 전합 판결의 80%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이를 두 명씩 나눠봤더니 판결 일치 비율이 각각 김선수-박정화는 90.0%, 박정화-김상환은 87.5%, 김선수-김상환은 87.2%였다. 평균적으로 10번 중 9번을 같은 의견을 낸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이동원 안철상 이기택 노태악 등 대법관 4명은 진보 성향 대법관의 절반 정도인 약 40%의 판결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사회 변화와 국민의 뜻이 사법부 구성에 반영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과 국회의 인준, 대통령의 임명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집권당과 국회 의석 분포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구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젠더법연구회 출신인 진보 성향 5명의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정화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지만 나머지 4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다양화를 위해 제청권을 행사했다. 5명의 대법관 모두 법원 안팎의 후보 추천 절차를 거쳤고, 현 여당이 절반 미만이었던 국회 본회의에서도 최소 64%, 최대 84%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김명수 코트’ 전반기 3년을 분석하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의 대법원은 양분되어 있다. 현역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분석 대상인 전체 46명의 전합 구성원 중 진보 1∼3위 김영란 전수안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진보 성향이 약하다. 전체 보수 1∼3위인 안대희 김황식 민일영 등 자신만의 법 논리로 중무장한 보수 성향 전 대법관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과거 대법원들과 비교하면 대법관들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인데도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을,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반대의견이라는 예측 가능한 판결을 하고 있다. 대법원의 양극화는 사회적 울림이 큰 전원일치 전합 판결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적으로 ‘김명수 코트’의 전원일치 전합 판결 비율은 11.1%로 ‘양승태 코트’(33.6%), ‘이용훈 코트’(36.8%)의 3분의 1 이하인 역대 최저 수준이다. 비슷한 성향의 대법관들이 모여 전원일치 전합 판결을 양산한다면 소수의견이 등한시되는 획일적인 사법부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양극단의 대법관들이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고 난상 토론을 한 뒤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만장일치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판결 불복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분석으로만 본다면 김 대법원장은 임기 후반기에 5명의 대법관 후보를 더 제청할 때 김선수보다 더 진보적이고, 노태악보다 더 보수적인 대법관을 뽑아도 된다. 지금 절실한 건 양 진영의 논리를 조정해 ‘국민 모두를 위한 하나의 판결’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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