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윤

김기윤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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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취재분야

2024-03-18~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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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7명 숨진 러 테러, 우크라에 화살 돌린 푸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실)에서 불과 20km 떨어진 ‘크로쿠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 시간) 무차별 총격 테러가 벌어져 최소 137명이 숨졌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분파인 ‘IS-K’(호라산)는 테러 직후 배후를 자처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별다른 정황 공개 없이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도주하려 했다”면서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주장했다.금요일이던 이날 오후 7시 40분경 콘서트 관람을 위해 공연장을 찾은 러시아 시민들은 무장 괴한의 자동소총 무차별 난사와 방화 등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4일 오후 6시(한국 시간 25일 0시) 기준 최소 137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 2004년 3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체첸 반군의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이후 20년 만에 러시아에서 벌어진 최악의 테러다.IS-K는 테러 직후 IS와 연계된 뉴스매체 ‘아마끄’를 통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IS-K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하루 뒤인 23일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총 11명을 검거한 뒤 우크라이나와의 연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러시아 당국이 구성한 사건 조사위원회는 “핵심 용의자 4명이 모두 브랸스크에서 검거됐다”고 설명했다. 브랸스크는 모스크바와 300km, 우크라이나와 약 100km 거리에 있다. 푸틴 대통령도 23일 대국민 연설에서 “초기 정보에 따르면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즉각 “우크라이나의 개입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푸틴을 비롯한 쓰레기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고만 한다”면서 “그들은 늘 같은 수법을 쓴다”고 반발했다. 백악관은 또 “3월 초 미 정부는 모스크바에서 계획된 테러 공격에 대한 정보를 러시아에 공유했다”고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테러의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몰아가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강화 명분으로 삼으려는 속내를 드러내자 첩보 공개를 통해 러시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6200명 공연장 출구 잠근채 총격… 엎드려 죽은 척해”크렘린궁서 20km, 러 심장부 테러… “총소리를 콘서트 시작으로 착각도”총기 난사뒤 커튼-좌석 불질러… 화장실-계단 등서 시신 수십구 발견러 “용의자 4명 등 관련자 11명 체포”… “730만원에 사주 받아” 주장 공개도 “테러범이 우리를 발견했고, 그중 한 명이 달려와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바닥에 엎드려 죽은 척할 수밖에 없었어요.” 22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쿠스 시티홀’ 공연장을 덮친 총격 테러에서 살아남은 한 10대 소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무차별 총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테러범들이 총기 난사 뒤 공연장에 지른 불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왼쪽 얼굴과 왼팔을 거즈로 감싼 채 병원에 누워 23일 러시아 관영 언론 ‘RT’에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끝내 죽은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테러는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연 지 닷새 만에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렘린궁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2004년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의 충돌로 314명이 숨진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로 꼽힌다. ‘현대판 차르(제정 러시아 황제)’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해 온 푸틴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객 향해 총기 난사, 떠나며 방화 이날 밤 이 공연장에는 1978년부터 활동한 러시아의 유명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6200석이 모두 매진될 만큼 인기 있는 콘서트였다. 하지만 무장괴한들이 정문에서부터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공연장 안팎은 ‘생지옥’이 됐다. 테러범들은 출구를 잠근 채 총기를 난사하고 공연장 안에 불을 질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오후 7시 40분경 위장복을 입은 테러범들이 미니밴에서 공연장 앞에 내렸다고 전했다. 테러범들은 자동소총, 권총, 칼, 화염병 등으로 무장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연장 유리문 안쪽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고, 길 건너에 있는 사람들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수십 명이 총격에 쓰러지자 이들은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공연장 안 관객들은 총소리를 콘서트 시작이라고 착각해 처음에는 대피하지 않았다. 일부 관객은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다 참변을 당했다. 엘레나 씨(61)는 “사람들이 무대 뒤쪽으로 몰려들자 테러범 중 한 명이 길을 막았다”며 “그러자 관객 중 한 명이 테러범의 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그를 기절시켜 수십 명이 탈출할 수 있었다”고 RT에 전했다. 다만 “그는 살아남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테러범들은 공연장 커튼과 좌석 등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화장실과 비상계단 등 관객들이 총격과 화재를 피하기 위해 숨었던 곳에서 시신 수십 구가 발견됐다.● 푸틴 “배후 처벌할 것” 예고했지만…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핵심 용의자 4명 등 관련자 1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특히 핵심 용의자들은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00㎞ 떨어진 브랸스크에서 붙잡혔다. 이들의 차량에서는 권총과 돌격소총 탄창,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 테러 용의자 대다수가 사주를 받은 타지키스탄 출신 외국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르가리타 시모냔 RT 편집장이 공개한 용의자 신문 영상에 따르면 용의자 중 한 명인 샴수트딘 파리둔(26)은 약 한 달 전 신원 미상의 ‘전도사(preacher)’로부터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파리둔은 “범행 대가로 50만 루블(약 730만 원)을 약속받았고, ‘나중에 100만 루블을 주겠다’고 재차 들었다”라고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내부 피로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20년 만의 최악의 테러 참사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테러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예고한 대로 ‘응징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카드를 꺼낼 수 있을지 딜레마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아시아는 서방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의 ‘뒷문’이어서 강경 대응을 하기는 부담이라는 것이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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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 아프간지부 “우리가 공격”…무슬림 탄압에 러 표적 삼아

    22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콘서트장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Khorasan·호라산)이다. 과거 시리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IS가 위축된 이후에도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에 걸쳐있는 호라산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원을 모집하며 세력을 키워왔다.미군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카불공항에서 폭탄테러를 감행해 미군 13명이 숨졌다. 이로 인해 미국의 특별 주시 대상이었으며, 미국이 이 단체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 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올 1월엔 이란의 케르만에서 발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추도식에서 폭탄테러를 벌여 100여 명이 숨졌다.IS-K는 이번 모스크바 테러 직후 성명을 통해 “대규모 기독교인 군중을 공격했다”고 표현했다. ISIS-K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체첸공화국 내 분리독립운동 등에 개입해 무슬림을 탄압한 것에 불만을 품고 오랫동안 러시아를 표적으로 삼아온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대테러 연구기관인 수판 센터 콜린 클라크 연구원은 “IS-K는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고, 선전매체에서 푸틴 대통령을 자주 비판했다”라고 전했다. 미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만 연구원도 “IS-K는 러시아가 무슬림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고 본다”면서 “IS-K에는 크렘린궁에 불만을 품은 중앙아시아 무장단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IS-K는 2022년 9월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러시아대사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도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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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년전 ‘여성 할례 금지법’ 만든 감비아… “종교 실천권 침해” 법 폐지 추진 논란

    아프리카 국가인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만약 법이 통과되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할례 금지를 철폐한 나라가 된다. 유엔 등에선 반인권적 관습으로부터 성인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례를 막는 세계적인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 전체 의원 58명 중 42명의 찬성으로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 폐지 법안을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은 본회의 의결을 거쳐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폐지를 추진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를 종교적 미덕으로 여기는 이가 많아 폐지 찬성 여론도 상당하다. 지난해에도 할례 금지법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을 부과했는데, 이슬람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법 폐지 운동에 불을 지폈다. 유엔은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15세 이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행위는 전면 근절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은 “전염병과 기후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할례는 무슬림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할례를 겪은 여성은 올해 기준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2억3000만 명으로 파악된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은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성 할례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특히 소말리아, 지부티 등 여성 할례 경험자가 많은 나라들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구가 가파르게 늘면서 할례 경험자의 수치도 줄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수년간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에 팬데믹까지 겹치며 주민들이 정부보다 소규모 종교 공동체 등에 의존한 것도 할례가 지속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월드비전은 “유럽이나 북미로 넘어간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통해 악습이 퍼져 나가며 여성 할례는 특정 지역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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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비아, ‘여성 할례 금지 법안’ 폐지 논의…세계 최초로 할례 금지 철회한 국가 되나

    아프리카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할례가 고유문화와 종교적 활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안 최종 통과 시 감비아는 세계 최초로 할례 금지를 철회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유엔 등은 15세 이하 여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여성 할례를 전면 근절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할례를 겪은 여성이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 등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할례가 자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단체들은 고유문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악습이자 여성 폭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여성 할례 금지는 종교·문화 침해”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현지 시각)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에 전체의원 58명 중 47명이 참석, 42명이 찬성하면서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본회의 투표를 통해 법안은 최종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폐지 법안을 제출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법안은 종교적 충성심, 문화적 규범을 지키는 것을 추구한다.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가 종교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등 폐지 찬성 여론도 큰 편이다. 이날 의회에선 “난 (딸의) 아버지라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며 일부 의원들은 반대 의견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지난해 할례 금지 법안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이 부과됐는데 한 이슬람교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할례 금지법 폐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앞서 2015년 감비아 의회는 여성 할례 시 벌금 및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실상 제대로 된 단속은 없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감비아의 15~49세 여성의 76%가 할례를 받았다. 세네갈 다카르에 소재한 국제앰네스티의 선임연구원 미셸 에켄은 “여성 할례 금지 조치를 철회한다면 여성 권리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인구 폭발에 공동체 의존성 심화여성 할례는 성욕을 억제하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정당화돼왔다. 하지만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비위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추후 합병증은 물론 심하면 숨지는 사례도 발생해 각국 정부는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럼에도 할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화적,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이달 초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할례를 겪은 인구 전체 2억3000만 명 중 아프리카에서만 약 1억4400만 명이 파악됐다. 또 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 8000만 명, 중동 지역에서 600만 명 이상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암리에 관습처럼 행해지는 탓에 실제 사례는 추정치를 더 웃돌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 남미로 넘어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여성 할례가 자행되는 사례가 파악되면서 여성 할례는 세계적 문제가 됐다”고 월드비전이 지적했다.유니세프에 따르면 15~49세 여성의 99%가 할례를 받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기니, 지부티, 말리, 이집트 등 여성 할례 경험자가 많은 국가는 공통적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성 할례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해당 지역의 인구는 빠르게 급증하면서 할례 경험자의 수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니세프에서 여성 할례의 동향을 조사하는 클라우디아 카파 연구원은 “지금까지 이룬 진전은 할례 관습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국가에서 태어나는 소녀의 증가세에 비하면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아울러 수년 간 팬데믹을 비롯해 지속된 세계적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 가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정부보다는 소규모 공동체에 더 의존하는 점도 할례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 등은 “전염병, 기후 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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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하원, ‘환경오염 유발’ 패스트패션 규제법 첫 통과

    프랑스 하원이 14일(현지 시간) ‘패스트 패션’ 제품에 최대 10유로(약 1만4000원)까지 단계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고객 수요에 즉각 반응해 1, 2주에 한 번씩 신상품을 쏟아내는 방식이 불필요한 소비와 환경 오염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상원까지 최종 통과하면 세계 최초로 패스트 패션에 제동을 건 사례가 된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은 이날 만장일치로 이른바 ‘패스트 패션 제한법’을 가결했다. 해당 법안은 2025년부터 제품당 5유로의 부담금을 부과하고, 판매 가격의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 2030년까지 최대 10유로까지 부담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제품 및 관련 기업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패스트 패션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실시간 반영해 기획·생산·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킨 패션을 뜻한다. 통상 브랜드들이 1년에 계절별로 4번 신상품을 내놓는다면 자라나 H&M 등은 1, 2주 단위로 선보인다. 중국 쉬인, 테무 등은 매일 신상품을 출시해 ‘울트라 패스트 패션’으로 불린다. 시장에 너무 많은 상품을 쏟아내다 보니 환경 오염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법안을 주도한 오리종당 안세실 비올랑 의원은 하루 평균 7200벌의 새 제품을 초저가로 선보이며 고속 성장 중인 쉬인을 콕 집어 환경, 사회, 경제적 여파를 지적했다. 프랑스가 패스트 패션의 과잉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을 두고 중국산 저가 의류로부터 자국 의류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프랑스 패션업계는 샤넬, 루이뷔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년간 저가 공세에 나선 해외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에 의해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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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폭죽놀이 12세 팔 소년 사살한 경찰 두둔 논란

    이스라엘 경찰이 난민촌에서 폭죽놀이를 하던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며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12일 “동예루살렘 내 이스라엘 점령지인 슈아파트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함단 알할룰리(12·사진)가 이스라엘 국경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당시 영상에 따르면 폭죽을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아이는 폭죽이 발사되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며 쓰러졌다. 라미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은 “경찰 쪽으로 공중에 폭죽을 발사한 용의자를 향해 발포했다”며 “전날부터 난민촌 인근에서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이 군경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폭죽을 쏴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대응이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을 총괄하는 이타마르 벤그리브 국가안보장관은 경찰을 치하하고 나섰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그는 소셜미디어에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경찰관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방식”이라고 썼다.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 의료진을 학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BBC방송은 12일 “지난달 12일 가자지구 나세르병원에서 군인들이 의사 등의 옷을 벗기고 구타까지 저질렀다”며 “병원 내 하마스 대원을 색출한다며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관련 영상에선 의료진으로 보이는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당시 피해를 입은 한 의료인은 “물을 뿌리고 모욕하는가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폭력을 휘둘렀다”고 폭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은 “매우 충격적 사건”이라며 “이스라엘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성토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무기 이전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휴전 협상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고 민간인 피해를 가중시킬 새로운 군사작전을 벌인다면, 이를 ‘레드 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군사 지원 제한도 이에 대한 방편 중 하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브리핑에서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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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죽놀이 12세 소년 사살…이스라엘 장관, 경찰 두둔 논란

    이스라엘 경찰이 난민촌에서 폭죽놀이를 하던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은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며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미국 CNN방송은 12일 “동예루살렘 내 이스라엘 점령지인 슈아팟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함단 알훌리(12)가 이스라엘 국경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당시 영상에 따르면 폭죽을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아이는 폭죽이 발사되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며 쓰러졌다. 라미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을 거둔 상태였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은 “경찰 쪽으로 공중에 폭죽을 발사한 용의자를 향해 발포했다”며 “전날부터 난민촌 인근에서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군경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폭죽을 쏴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대응이 정당했다는 주장이다.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을 총괄하는 이타마르 벤그리브 국가안보부 장관은 경찰을 치하하고 나섰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그는 소셜미디어에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경찰관에게 경의를 표현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방식”이라고 썼다.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 의료진을 학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BBC방송은 12일 “지난달 12일 가자지구 나세르 병원에서 군인들이 의사 등의 옷을 벗기고 구타까지 저질렀다”며 “병원 내 하마스 대원을 색출한다며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전했다. 관련 영상에선 의료진으로 보이는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당시 피해를 입은 한 의료진은 “물을 뿌리고 모욕하는가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폭력을 휘둘렀다”고 폭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 외무장관은 “매우 충격적 사건”이라며 “이스라엘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성토했다.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무기 이전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휴전 협상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고 민간인 피해를 가중시킬 새로운 군사작전을 벌인다면, 이를 ‘레드 라인’을 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군사 지원 제한도 이에 대한 방편 중 하나로 풀이된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브리핑에서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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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매체 “이스라엘軍, 구호품 기다리던 난민에 또 총격”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12일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현장 통제를 이유로 구호품을 받으려던 피란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압사 사고까지 겹쳐 최소 112명이 숨진 상황에서 비슷한 사고가 잇따른 것이다. 구호품 전달 및 통제 과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알자지라방송 등은 팔레스타인 매체 ‘와파’를 인용해 이날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한 교차로 인근에서 구호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주민 9명이 이스라엘군 전투기와 포병의 폭격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부상자 20여 명은 인근 알시파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공격과 관련해 지난달 29일 발생한 대형 인명 피해 때처럼 이스라엘군이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을 했는지, 아니면 광범위한 폭격으로 희생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슬람의 금식 성월 ‘라마단’을 맞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임시 휴전에 돌입할 것이란 기대 또한 일찌감치 빗나갔다. 오히려 확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평화, 화해, 연대를 기념하는 라마단이 시작됐는데도 가자지구에서 살인과 유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양측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11일 레바논 북동부 바알베크 일대를 공습해 최소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하마스는 물론 레바논의 친(親)이란계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바알베크는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에서 무려 1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수도 베이루트보다도 북쪽에 있다. 앞서 10일에도 동예루살렘의 종교 분쟁지 ‘알아끄사 사원’에 모인 무슬림들을 곤봉으로 진압했다. 아랍권과 ‘강 대 강’ 대치만 이어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정보기관이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국내외 불신이 커지고 있으며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전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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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마단 첫날, 이스라엘-무슬림 ‘동예루살렘 성지’ 충돌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 ‘라마단’이 시작된 10일 동예루살렘 내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동 성지(聖地) ‘알아끄사’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이슬람교도가 충돌했다. 특히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무슬림의 알아끄사 집결을 주문했고, 이날 이스라엘 경찰 또한 진압 과정에서 곤봉을 휘둘러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이 중동전쟁의 확전 기폭제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날 이슬람교도 수십 명이 라마단의 첫날 밤 기도를 위해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한 곳인 이곳의 모스크(알아끄사 사원) 경내로 들어가던 중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경찰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무슬림들을 진압하는 동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경찰 10여 명이 한 골목에서 곤봉을 휘두르자 무슬림들이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도망치거나 일부는 곤봉에 맞으면서도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이스라엘 측은 “40세 이상 무슬림 여성의 예배만 허용했는데 해당 남성들이 통제 지침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약 14만 ㎡ 크기인 알아끄사에는 이 모스크 외에도 기독교 교회 등이 있다. 알아끄사가 있는 동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전까지 요르단 영토였다. 전쟁 승리로 이곳을 차지한 이스라엘은 아랍권과 충돌할 때마다 이곳의 탄압을 강화해 논란을 불렀다. 특히 최고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지난해에만 세 차례나 알아끄사를 찾아 “우리가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행보가 같은 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주요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마스는 당시 기습 공격의 작전명을 ‘알아끄사의 홍수’라고 명명했다. 하마스는 9일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안팎의 모든 전선에서 이스라엘과 대결하겠다”며 무슬림의 알아끄사 집결을 촉구한 상태다. 즉, 라마단을 맞아 신앙심에 고조된 일부 강경파 무슬림이 이스라엘 군경과 재차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또한 같은 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지상전을 강행하겠다며 “그곳(라파)으로 가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9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에 숨어 있던 하마스 고위 간부 마르완 잇사가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잇사는 지난해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군사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의 최측근이다.알아끄사동예루살렘 성전(聖殿·temple)산을 일컫는 아랍식 용어.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모두 신성시해 종교 분쟁이 잦다. 특히 이곳의 모스크 ‘알아끄사 사원’은 이슬람의 3대 성지로 꼽힌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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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뼈만 앙상… 가자 굶주림 온몸으로 알린 10세 소년 하늘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해골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깡마른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모습으로 가자지구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줬던 팔레스타인의 열 살짜리 뇌성마비 소년 야잔 카파르네가 4일 숨졌다. 그를 치료한 의료진은 영앙실조, 호흡기 감염증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9일 보도했다. 그간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왔던 카파르네의 사진에서는 그의 얼굴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가자지구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줬다. 눈도 푹 꺼졌고 턱은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에 살던 카파르네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전만 해도 아침 식사로 달걀과 바나나 등을 먹었다. 뇌성마비 치료도 받았다. 전쟁 발발 후 가족 전체가 피란길에 오르면서 부드러운 고영양식을 섭취할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의 한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이 병원 의료진은 영양 부족이 그의 면역 체계를 약화시켰다고 지목했다. 최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또한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가자지구 어린이와 노인 등 최소 20명이 굶주림과 탈수로 숨졌다”고 밝혔다. 많은 구호단체들은 지금같이 식량 부족이 심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아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일부터 시작되는 이슬람 금식 명절 ‘라마단’을 앞두고 실시됐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임시 휴전 협상도 끝내 불발됐다. 가자 주민의 고통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親)이란 세력인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의 홍해 민간 선박 공격으로 6일 첫 민간인 사망자가 나오자 미국이 주도하는 영국 프랑스 등 다국적 연합군이 9일 후티의 무인기(드론) 수십 대를 격추하는 보복에 나섰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날 ‘X(옛 트위터)’를 통해 “연합군이 아덴만과 홍해 일대에서 후티의 드론 최소 28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영국 또한 구축함 ‘HMS 리치먼드’호가 ‘시셉터 미사일’을 이용해 후티 드론 2대를, 프랑스 또한 호위함 ‘랑그도크’호 등이 드론 4대를 격추했다고 각각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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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뼈만 남았던 가자 10살 소년, 끝내 사망…온몸으로 전쟁 참상 알려

    흡사 해골처럼 보이는 창백한 피부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턱, 뼈만 남은 듯한 깡마른 몸에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던 사진 속 한 소년. 손엔 주사바늘을 꽂은 채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던 그의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면서 소년은 온몸으로 가자지구의 비참한 상황을 증언했지만 끝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9일(현지 시간) 미 뉴욕타임스(NYT)는 영양실조 상황 속에서 호흡기 감염과 뇌성마비 등 투병 끝에 숨진 가자지구의 10살 소년 야잔 카파르네가 4일 이미 숨졌다고 보도했다. 현재 육로를 통한 인도적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아와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가자지구의 열악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숨진 야잔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NYT에 따르면 그는 전쟁 이전에는 비영리단체가 파견한 물리치료사가 야잔의 집에서 물리·약물치료 등을 통해 수영을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한다.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그리고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이후 야잔의 가족이 모두 피란길에 오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야잔은 부드러운 형태의 고(高)영양식이 필요했는데 이는 피란 중에는 구할 수 없었으며, 남들보다 면역력이 약한 탓에 비위생적 대피소를 떠나 수차례 거처를 옮겨야 했다.마지막엔 야잔의 가족이 도착한 곳은 이스라엘이 최근 대대적 지상군 투입을 공언했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이곳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야잔은 영양실조에 호흡기 감염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숨졌다. 그를 치료한 병원 의료진에 따르면 영양 부족으로 인한 면역 체계 악화가 주된 사망 원인으로 지목됐다.소년 야잔을 비롯해 최근 가자지구에선 어린이, 노인 20여 명이 기아와 탈수 증세로 사망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최근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영양실조로 사망한 어린이 중 2명이 태어난 지 이틀도 안 된 영아라고 밝혔다. 구호 단체들은 가자지구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죽음의 행렬’이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구호단체인 기아대책행동(Action Against Hunger)의 헤더 스토보 박사는 NYT에 “어린이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결국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영양실조가 아니었다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가자지구 북부의 2세 미만 아동 중 약 15%, 남부는 5%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육로를 통한 구호품 수송 트럭의 가자지구 진입이 어려워지자 식량과 의료용품 등 구호품을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작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충분한 물량을 전달하기에 어려우며 최근 낙하산이 잘못 투하돼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하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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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티 공격에 첫 민간인 사망… 美 “책임 물을 것”

    친(親)이란 세력인 예멘 반군 후티의 연이은 홍해 민간 선박 공격으로 끝내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및 영국, 미국 상선만 공격하겠다던 공언과 달리 그리스 화물선에 탄 애꿎은 제3국 민간인 선원들이 숨져 비난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후티 근거지 등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 중부사령부는 6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오전 11시 30분경 예멘 아덴만에서 그리스 기업 화물선 ‘트루 컨피던스’호가 후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선원 최소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다친 4명 가운데 3명도 중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트루 컨피던스호엔 23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박은 중국에서 출발해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던 중에 참변을 당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지금껏 60차례 이상 홍해를 오가는 민간 선박과 다국적군 함정을 공격해 왔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온 건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공격 직후 야흐야 사리 후티 반군 대변인은 “해당 선박은 예멘 해군의 경고를 무시해 이번 작전에 돌입했다”면서 “정확한 미사일 공습으로 선박을 타격했다”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인했다. 지난달 18일 공격받은 영국 화물선 ‘루비마르’호가 3일 침몰한 데 이어 사망자까지 나오자 국제운송노동자연맹(ITF)도 성명을 발표했다. 스티븐 코튼 ITF 사무총장은 “아덴만과 홍해에서 선원들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으나, 오늘 끝내 비극이 발생했다”며 규탄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1월 12일부터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으나 지금껏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후티 반군은 무고한 민간인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후티 반군에 불법적으로 물품을 운송한 홍콩과 마셜제도의 해운사 두 곳과 선박 두 척에 대해 추가로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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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티 공격에 첫 민간인 사망…“선원 3명 숨지고 4명 부상”

    친(親)이란 세력인 예멘 반군 후티의 연이는 홍해 민간선박 공격으로 끝내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및 영국·미국 상선만 공격하겠다던 공언과 달리, 그리스 화물선에 탄 애꿎은 제3국 민간인 선원들이 숨져 비난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후티 근거지 등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전망이다.미 중부사령부는 6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오전 11시30분경 예멘 아덴만에서 그리스 기업 화물선 ‘트루 컨피던스’호가 후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선원 최소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다친 4명 가운데 3명도 중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트루 컨피던스호엔 23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박은 중국에서 출발해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던 중에 참변을 당했다.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지금껏 60차례 이상 홍해를 오가는 민간선박과 다국적군 함정을 공격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온 건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공격 직후 야흐야 사리 후티 반군 대변인은 “해당 선박은 예멘 해군의 경고를 무시해 이번 작전에 돌입했다”며 “정확한 미사일 공습으로 선박을 타격했다”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인했다. 지난달 18일 공격받은 영국 화물선 ‘루비마르’호가 3일 침몰한 데 이어 사망자까지 나오자 국제운송노동자연맹(ITF)도 성명을 발표했다. 스티븐 코튼 ITF 사무총장은 “아덴만과 홍해에서 선원들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경고해왔으나, 오늘 끝내 비극이 발생했다”며 규탄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1월 12일부터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으나 지금껏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후티 반군은 무고한 민간인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후티 반군에 불법적으로 물품을 운송한 홍콩과 마셜제도의 해운사 두 곳과 선박 두 척에 대해 추가로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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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하마스, 기습때 집단 성폭력 자행”… 후폭풍 거세질듯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당시 붙잡은 민간인 인질을 상대로 각종 성폭력을 자행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4일 발표됐다. 하마스는 그간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줄곧 부인했지만 성폭력 정황을 입증하는 유엔 차원의 보고서가 공개됨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일고 있다. 하마스 피해자들에게 법적 조언을 제공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스라엘 인권 변호사 아옐레트 라진 베트 오르 씨(45·사진)는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무관하게 모든 여성은 성폭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단지 이스라엘 여성 피해자만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팔레스타인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조를 촉구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지난해까지 이스라엘 여성지위향상위원회 위원장(차관급)을 지냈다. 이후 현지 시민단체에서 하마스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유엔 “하마스, 지금도 성폭력 자행” 프러밀라 패튼 유엔 분쟁성폭력 특사가 이끄는 유엔 특사팀은 4일 하마스의 성폭력 실태에 관한 24쪽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하마스가 성폭행, 성고문 등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풍부하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인질을 대거 붙잡은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축제 현장, 레임 키부츠, 232번 도로 등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여성 시신이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고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특사팀이 올 1월 29일∼2월 14일 이스라엘 현지를 방문해 직접 작성했다. 특사팀은 50시간 분량의 현장 영상과 5000장 이상의 이미지를 분석했으며 당시 구조대원, 현장 목격자 등과도 만났다. 패튼 특사는 “당시 생존자와 풀려난 인질들이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는 데다 사람들 앞에 나올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성폭력의 전반적인 규모와 범위,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공개했다. 특사팀은 하마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측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실태도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이스라엘군 역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구금돼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나체로 신문하거나 생식기를 구타하는 등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이스라엘 정부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각국 여성계, 하마스 피해자 무관심” 오르 변호사는 이날 전 세계 주요 여성단체가 하마스의 성폭력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전쟁을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간 여성계가 이뤄놓은 성폭력 방지에 관한 각종 성과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여성 인권은 각국의 외교 및 군사 갈등과 별개 사안이라고 밝혔다. 오르 변호사는 이스라엘 측의 성폭력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라면 이스라엘군 역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이번 전쟁이 비록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했지만 이스라엘의 지속된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어선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얻기 위해 몰려든 가자 주민에게 발포해 최소 118명이 숨지자 국제 사회의 반(反)이스라엘 여론이 고조됐다. 반면 이스라엘은 사망자 대다수가 압사했다며 조준 사격을 부인하고 있다. 오르 변호사는 “아직도 100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간인이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 있다”며 “하마스가 이들을 상대로 여전히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국도 도와 달라”고 강조했다. 다만 오르 변호사 역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 급증에 가슴 아프다며 가자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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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하마스, 민간인 인질 상대로 성폭력 자행” 발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당시 붙잡은 민간인 인질을 상대로 각종 성폭력을 자행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4일 발표됐다. 하마스는 그간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줄곧 부인했지만 성폭력 정황을 입증하는 유엔 차원의 보고서가 공개됨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일고 있다.하마스 피해자들에게 법적 자문을 제공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스라엘 인권 변호사 아옐렛 라진 베트 오르(45) 씨는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무관하게 모든 여성은 성폭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단지 이스라엘 여성 피해자만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며 “팔레스타인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이의 방지를 위한 국제 사회의 공조를 촉구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지난해까지 이스라엘 여성지위향상위원회 위원장(차관급)을 지냈다. 이후 현지 시민단체에서 하마스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유엔 “하마스, 지금도 성폭력 자행”프러밀라 패튼 유엔 분쟁성폭력 특사가 이끄는 유엔 특사팀은 4일 하마스의 성폭력 실태에 관한 24쪽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하마스가 강간, 성고문 등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풍부하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인질을 대거 붙잡은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축제 현장, 레임 키부츠, 232번 도로 등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여성 시신이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고 공개했다.이번 보고서는 특사팀이 올 1월 29일~ 2월 14일 이스라엘 현지를 방문해 직접 작성했다. 특사팀은 50시간 분량의 현장 영상과 5000장 이상의 이미지를 분석했으며 당시 구조대원, 현장 목격자 등과도 만났다. 패튼 특사는 “당시 생존자와 풀려난 인질들이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는 데다 사람들 앞에 나올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성폭력의 전반적인 규모와 범위,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공개했다.특사팀은 하마스뿐 아니라 이스라엘 측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실태 또한 공개했다. 특히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여성을 상대로 이스라엘군이 광범위한 성폭력을 자행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 “각국 여성계, 하마스 피해자 무관심”오르 변호사는 이날 전 세계 주요 여성단체가 하마스의 성폭력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전쟁을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간 여성계가 이뤄놓은 성폭력 방지에 관한 각종 성과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여성 인권은 각국의 외교 및 군사 갈등과 별개 사안이라고 밝혔다. 오르 변호사는 이스라엘 측의 성폭력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라면 이스라엘군 역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이는 이번 전쟁이 비록 하마스의 선제 공격으로 발발했지만 이스라엘의 지속된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어선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29일 이스라엘군이 구호품을 얻기 위해 몰려든 가자 주민에게 발포해 최소 118명이 숨지자 국제 사회의 반(反)이스라엘 여론이 고조됐다.오르 변호사는 “아직도 100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간인이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 있다”며 “하마스가 이들을 상대로 여전히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국도 도와 달라”고 강조했다. 다만 오르 변호사 역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 급증에 가슴 아프다며 가자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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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野대표 ‘총리 패싱’ 訪美… 네타냐후 “총리는 나 하나”

    이스라엘 전시내각에 ‘무임소(無任所) 장관’으로 참여한 야당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가 전쟁 해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전 승인도 받지 않은 행보다. 총리는 나 하나뿐”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으나 강경 일색인 네타냐후의 리더십이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일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간츠 대표는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을 만나기 위해 이날 워싱턴에 도착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렛 맥거크 중동 특사 등과도 만날 예정으로 휴전 협상 및 전후 구상, 구호품 전달 등을 다각도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간츠 대표의 방미가 내각 허가를 정식으로 받지 않고 진행됐다는 점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네타냐후 총리도 이틀 전에 갑작스레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간츠 대표 측은 성명을 통해 “1일 개인적으로 총리에게 연락해 방미 의사를 알렸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간츠의 독자 행보에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국방장관 출신인 간츠 대표는 전시내각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내에선 네타냐후 총리의 오랜 정적(政敵)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여권 관계자를 인용해 “총리는 간츠 대표에게 ‘총리는 나 하나뿐’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인질 석방 및 휴전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구호트럭 참사’ 등 민간인 피해가 확산되며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간츠의 방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에 대한 좌절감이 최대치에 이른 순간에 이뤄졌다”며 “미 행정부 내에선 함께 일하기엔 네타냐후보다 간츠가 낫다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의 전시내각이 분열되는 징후는 이전에도 감지됐다. 전시내각에 참여 중인 가디 아이젠코트 전 육군 참모총장도 1월 이스라엘 방송에 출연해 “대중은 더 이상 네타냐후의 지도력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선거가 필요하다”고 공개 비난했다. 한편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과 카타르 등이 중재하는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에 이스라엘이 당초 관측과 달리 3일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내각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생존 인질자 명단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마스 대표단은 카이로에 도착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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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헤란 곳곳 反이스라엘 문구… 일부선 “하마스 지원 그만”

    “이란은 미국과 절대 가까워지지 않는다.” 1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의 건물 외벽 아래에 페르시아어로 적힌 문구다. 이 벽에는 미국 성조기 위로 낙하하는 미사일 포탄과 해골 그림이 있었다. 영어로 ‘미국과 함께 추락(Down with U.S.A.)’이란 글도 보였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왕정을 몰아내고 집권한 강경 보수 세력은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줄곧 미국을 악마화했다. 2002년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서방의 경제 제재도 계속됐다. 이 와중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당시 이란과 서방 5개국이 맺은 핵합의를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산 석유 등에 강도 높은 제재를 부과하며 경제난이 가중됐다. 이로 인해 이란 국민의 반미 여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기류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테헤란 곳곳에서는 미국은 물론 미국의 중동 최우방국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포스터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슬람 사원(모스크), 교차로, 박물관, 공원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는 사실상 이란을 대신해 이스라엘과 직접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공간도 어김없이 마련돼 있었다. 한 모스크 인근에서 만난 시민 모하메드 씨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주적(主敵)이다. 이런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은 헤즈볼라 대원은 순교자”라며 “순교자를 추모하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정부가 헤즈볼라,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등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국내 경제난이 심한데 왜 밖에다 돈을 퍼주냐는 의미다. 또 다른 시민 다니엘 씨(52)는 “이스라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란인은 평화를 사랑한다. 국민이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나라의 전쟁만 지원하는 정부를 지지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과 무역업을 한다는 카데르 씨(49)는 기자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후 “제재로 삼성, LG의 좋은 전자제품을 직접 들여올 수 없다. 설사 몰래 들여와도 암시장에서 엄청나게 비싸게 팔린다”며 “정부의 강경 외교 때문에 국민이 불필요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22년 9월 ‘히잡 의문사’ 등으로 정부에 반감을 가진 일부 젊은 층은 이스라엘과의 화해를 주문하기도 했다. 테헤란 외곽 타지리시 전통시장에서 만난 대학생은 익명을 요구하며 “이란 국민의 적은 우리 정부다. 그런데 적(정부)의 적(이스라엘)은 사실 친구 아닌가. 그래서 이란 국민과 이스라엘 국민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슬람혁명 전에는 이란에도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 당시에는 우리 모두가 친구였다”고 강조했다.테헤란=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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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들 “정치 관심없어, 경제 살려야”… 하메네이 “문제 해결 원하면 투표를”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투표하지 않겠습니다.” 28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만난 여대생 미나 씨(22)의 말이다. 그는 당국이 여론 통제를 위해 해외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려면 가상사설망(VPN)을 구입하게 하면서 뒤로는 유력 정치인 자녀들이 VPN을 제작해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며 “배신감을 느껴 투표하기 싫다”고 했다. 다음 달 1일 이란에서는 임기 4년의 의회(마즐리스) 의원 290명,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후계자 후보군 성격이 강한 8년 임기의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 88명을 뽑는 두 개의 선거가 열린다. 중동 정세의 키를 쥔 이란에서 열리는 데다 2022년 9월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후 치러지는 첫 전국 선거라 세계의 관심을 모은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만난 테헤란 시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신정일치 국가 이란에서는 헌법수호위원회의 사전 자격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 출마할 수 있다. 이미 온건·개혁 인사들의 출마가 대거 금지됐고, 지원자 약 4만9000명 중 약 3분의 1인 1만5200여 명의 출마만 가능하다. 이 중에서 개혁파 후보자는 20, 30명에 불과하다. 이에 4년 전 총선과 마찬가지로 강경·보수파 후보가 대거 당선될 것이며, 경제 발전보다 반(反)서방 노선을 중시하는 현 지도부의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먹고살기 힘든데 총선 관심 무(無)” 테헤란에서는 대형 선거 현수막이나 벽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육교와 전봇대 등에 벽보가 붙어 있지만 자세히 봐야 정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에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은 선거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 이들은 2018년 미국이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한 뒤 제재를 복원하며 가중된 경제난부터 해결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삼성 TV 등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파라그 씨는 핵 개발 의혹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로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생필품과 각종 가전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며 “오늘 TV를 산 사람은 며칠 후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현 상황을 개탄했다. 경제난이 심한데 누가 선거에 관심이 있겠느냐며 “주변에서 선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 A 씨 또한 “지도부는 늘 ‘국산품을 사용해 제재를 이겨내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들의 가족은 해외에서 명품 쇼핑을 즐긴다”며 “지도부의 그런 위선과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당국이 발표한 월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 안팎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식료품 등의 물가 상승률이 140%에 달한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높은 실업률, 낮은 임금, 휘발유 부족과 전력난도 만성화했다. 일부 시민은 “경제난에도 당국이 하마스, 헤즈볼라 등 타국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메네이, 투표 거부 움직임에 “적에게 놀아나”강경·보수파 후보만 출마하는 ‘짜고 치는’ 선거에 지친 시민들은 ‘투표 거부’로 맞서고 있다. 이미 2020년 총선의 투표율은 42.8%로,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치러진 총선 중 가장 낮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4년 전보다 더 낮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지 여론조사를 인용해 “전체 유권자의 약 3분의 1만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구의 투표율은 10%대 초반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거 보이콧 조짐이 감지되자 하메네이는 18일 “선거는 이슬람공화국의 기둥”이라며 “문제 해결을 원하면 선거에 참여하라”고 투표를 독려했다. 그는 앞서 올 1월에도 “선거 기피와 낮은 투표율은 적(서방)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내무부는 투표율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유권자 수를 4년 전 약 6570만 명에서 약 6100만 명으로 470만 명 줄였다.테헤란=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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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마단 앞두고 치솟는 이집트 물가… ‘식량 사재기’에 ‘골드 러시’까지[글로벌 현장을 가다]

    《“비싼 물가를 당신이 책임져라. 부끄러운 줄 알라!” 18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흘란(환영) 라마단’ 먹거리 장터 행사장.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을 앞두고 해마다 이집트 정부가 주최해 온 이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알리 알모셀히 공급·내부무역부 장관은 이날 성난 군중으로부터 “당장 여기를 떠나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경호원과 수행원들이 군중을 비집고 장관이 지나갈 길을 확보하려 했으나, 장관은 한참 동안 인파에 갇혀 난처해하다가 겨우 빠져나갔다.이날 행사에는 라마단을 앞두고 정부가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제공해 최근 고물가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정부 인사가 나타나자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역효과를 낳은 것. 한 시민은 “며칠만 지나도 무섭게 물가가 오르는 데다 라마단 장터에 와도 행사장 바깥에 있는 일반 상점과 가격 차이도 별로 없었다”며 “고물가에 좌절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마침 나타난 장관을 보고 폭발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빠르게 퍼지며 “무능하고 부패한 이집트 정치인들은 물러나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에 ‘#미친가격’ 유행 최근 이집트는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는 먹거리와 생필품 가격에 정부에 대한 원성도 폭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3연임에 성공한 뒤로 물가 상승률이 다소 완화됐다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 게다가 이집트 기준으로 다음 달 10일 시작되는 라마단은 치명적인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통상 라마단을 앞두고 식량을 비축해 놓기 때문에 언제나 이맘때면 물가가 10% 안팎 상승했다. 안 그래도 고공비행하던 물가가 더 하늘로 솟구쳐 버린 셈이다. 하지만 별다른 정부 대책이 나오질 않자 시민들은 관련 장관 등 정부 관료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하루만 지나도 가격이 뛰다 보니 최근 식량 사재기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21일 찾은 카이로 교외의 레합 전통시장에선 라마단을 약 2주 앞두고 식료품들을 말 그대로 ‘쓸어담는’ 이들이 가득했다. 사람이 적은 편인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점원이 새 과일을 채워 넣자마자 10여 명이 달려와 빠르게 상품을 챙겨 넣었다. 한 시장 상인은 “아무래도 빵과 과일, 견과류, 대추야자 등 라마단 기간에 먹는 간단한 먹을거리가 사재기의 가장 큰 표적들”이라고 귀띔했다. 라마단 기간엔 해가 뜬 낮에는 일절 금식이지만, 해가 진 뒤엔 주로 가족들이 모여 만찬을 즐긴다. 이웃들도 초대해 여러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라 오히려 평소보다 식품 소비량이 늘어난다. 게다가 일부 상점들은 라마단 기간에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아 이슬람권 국가에선 전통적으로 라마단을 앞두고 식량을 비축한다. 이날 전통시장을 찾은 네할 마흐무드 씨는 “며칠만 지나도 상품의 가격이 달라지니 하루라도 먹거리를 빨리 사놔야 그나마 덜 손해인데, 이미 늦게 온 거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화 중에도 대추야자를 쉼없이 주워 담던 그는 “라다만 물가를 감안해도 올해는 너무 심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가말 씨도 “주변 상점들도 며칠에 한 번씩 새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며 “손님들은 ‘가격이 또 올랐냐’며 불만을 터뜨리지만 상인들도 들여오는 가격이 계속 오르니 어쩔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집트 매체 알아흐람은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자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미친가격’이란 해시태그를 달고 가격이 오른 물품을 게재하는 게 이집트 청년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며 “이집트 TV 토크쇼는 물론이고 가족 모임 등에서 살인적인 물가 얘기를 빼놓고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외화 기근에 전쟁까지 ‘이중고’ 이집트 고물가는 수치로 봐도 심각하다. 최근 중앙공공통계청(CAPMAS)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집트의 물가는 1년 전인 2022년 12월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뛰어버렸다. 곡물·빵은 44.5%, 유제품·치즈류는 55.4%, 기름류는 27.9%나 증가했다. 심지어 과일이나 채소 등은 평균 60.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집트가 이렇게까지 고물가에 휘청이는 이유는 뭘까. 일단은 만성적인 외화 보유액 부족으로 경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중앙은행에 따르면 이집트 외환 보유액은 2022년 2월 기준 409억 달러(약 53조3131억 원)로 그리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잇따르며 외국 투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같은 해 8월까지 외환 보유액이 331억4000만 달러까지 떨어졌을 정도다. 지난해부터 외화 유출을 막고자 중앙은행이 달러 해외 송금을 통제하는 등 강력한 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특히 ‘두 개의 전쟁’은 이집트 밥상 물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의 밀 소비국으로 1년에 평균 1800만 t(톤)을 먹어치운다. 이 중 1000만∼1200만 t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수입량의 약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한다. 전쟁 초기엔 기존의 곡물 수출입을 건드리지 않는 ‘흑해 곡물협정’이 유지됐으나 지난해 러시아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해 이집트 및 중동 지역은 큰 타격을 입었다. 13년째 레합 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아흐디 씨는 “실제로 조금이라도 수입 원료나 원자재가 포함돼 있는 제품은 최근 가격이 더 가파르게 뛰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그로기 상태에 빠진 이집트를 다운시키는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 수입과 수에즈 운하 수익까지 망가뜨렸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민간선박까지 공격하며 촉발된 ‘홍해 물류대란’은 이집트 GDP의 2%가량을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 수익을 반토막 냈다. 이집트의 심각한 외화 부족이 이어지며 웃돈을 주고라도 달러를 사려는 암시장까지 활개치고 있다. 알아흐람은 “1달러당 공식 환율은 약 31이집트파운드(EGP)지만, 암시장에선 1달러가 72EGP에 이달 초 거래된 사례가 확인됐다”며 “불과 두달 전 50EGP 수준보다 더 오른 것”이라고 전했다. 이집트 정부는 불법 환전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화폐가치 하락에 금 투자에 몰려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최근 이집트에선 보다 안정적인 자산으로 평가받는 금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21일 카이로에서 귀금속 가게가 몰려 있는 칸엘칼릴리 시장을 찾았더니, 금을 직접 구매하거나 시세를 알아보려는 이들이 몰려 크게 복적였다. 호객 행위를 하던 한 점원은 “원래 예식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이 주로 많았는데, 지난해 말부터는 연령대 상관없이 금 가격을 문의하는 이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중년 부부는 “금목걸이나 팔찌를 보러 왔지만 착용 목적은 아니다”라며 “투자용으로 금을 싸게 구매하고 싶어 도매상점을 찾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24캐럿 기준 금 구매 가격은 지난달 1그램당 4343EGP까지 치솟았다. 이달 말 3429EGP로 떨어지며 다소 안정세를 찾고 있으나 확신하긴 어렵다. 이집트 공급·내부무역부의 금 거래 담당자인 나기 파라그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자산 분산 투자를 위해 현재 시장에선 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세계적으로 금값이 상승한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광산산업회의소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금 가격대가 너무 부풀려져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금 구매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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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하마스 ‘인질 40명 석방-6주 휴전’ 큰틀 합의”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다음 달 이슬람 금식성월(禁食聖月)인 라마단을 앞두고 짧게나마 휴전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등이 참여한 협상단은 ‘6주 휴전 및 인질 석방’이란 큰 틀에 합의하고 세부 내용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 최남단 라파 공습 계획을 철회하지 않아 막판 변수가 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5일 CNN방송에 출연해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 카타르 대표가 임시 휴전을 위한 인질 협상의 기본 윤곽에 합의했다”며 “구체적 내용 조율을 진행하고 있으며 며칠 내로 최종 합의에 이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각국 협상단은 지난주 프랑스 파리 협상에서 ‘하마스의 인질 약 100명 가운데 40여 명을 석방하면 양측은 6주 동안 휴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본안을 마련했다. 협상단은 이르면 26일부터 이를 바탕으로 후속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협상 내용엔 이스라엘이 인질과 맞교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수감자 300명가량을 석방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NYT는 이스라엘 정부 관료를 인용해 “라마단 시작 전에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며 “정부가 파리 협상에서 여러 조건을 받아들여 협상단이 카타르에서 후속 논의를 할 길이 열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최근 발표한 라파 지상작전 계획은 고수하고 있다. 라파에는 가자지구 피란민 약 140만 명이 모여 있다. 라마단에 전투가 격화된다면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확산될 수 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도 25일 “라마단 전투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슬람권 전체를 폭발적인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 경고했다. 미국 역시 민간인 대피 방안 없는 라파 공습에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설리번 보좌관도 “민간인을 보호하고 의식주를 공급할 명확한 계획 없이 군사작전을 진행해선 안 된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도 라파 공격 관련 계획은 보고받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휴전 협상을 앞두고 강경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협상이 이뤄지면 라파 공격은 ‘어느 정도’ 미뤄지겠지만 결국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협상에 대해서도 “하마스가 ‘망상적 주장’에서 벗어나야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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