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청와대는 19일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사진) 등 미국 의원들이 한국 방문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홀대를 받았다는 일부 논란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례적으로 이들의 방한 논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 따르면 매케인 위원장(지난달 27, 28일), 맥 손베리 하원 군사위원장(28, 29일),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28, 30일), 딕 더빈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31일) 등 미국 의원들이 지난달 말 집중적으로 청와대 방문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매케인 위원장을 우선 면담 대상으로 보고 28일 오찬을 제안했지만 매케인 측에서 ‘27, 28일 방한이 어려우니 31일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이에 31일로 약속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매케인 측이 ‘한국 방문이 어렵다’고 최종적으로 알려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앞서 일본의 한 언론은 매케인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희망했지만 청와대가 확답을 주지 않는 등 소극적인 대응을 해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결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더빈 총무는 31일 대통령을 만났고 손베리, 가드너 두 분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는데 왜 홀대론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설명에 대해 매케인 위원장 측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 소식통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매케인 위원장 측도 문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지만 서로 일정이 안 맞았다는 대목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거물 정치인인 매케인 위원장이 다소 서운함을 느낄 소지는 있었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한 예로 한국에서는 정 안보실장이 손베리 위원장만 만났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손베리 위원장을 비롯해 일본을 방문한 하원 군사위 소속 의원 8명을 모두 접견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미 의회 인사들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여권의 한 인사는 “이번 논란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이 한미 관계를 흔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적극 만남을 성사시킬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작부터 저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한미 관계를 위해 발전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달 말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이 매케인 위원장을 만날지 주목된다.유근형 noel@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한미 정상회담(29, 30일)을 코앞에 두고 양국 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이은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 발언 파문 탓이다. 자칫 북한 김정은만 어부지리를 얻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미관계가 ‘적전분열’까지는 아니어도 금이 가 있는 ‘적전균열’ 형국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전제로 한 ‘조건 없는 대화’와 남북중일 4개국 월드컵 공동 유치 등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이어질 4강 외교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익을 위해선 북핵 문제 해결을 주변국에만 맡길 수 없다. (우리가 주도해) 협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짙어지고 있다. 미국 내에선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 지연과 대북 대화 재개 움직임이 과거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를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 백악관에서 한반도 안보 현황을 논의하면서 사드 배치 지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문정인 특보의 한미 군사훈련 축소 발언 등은 미국 내 우려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한미 간 파열음이 확산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9일 문 특보에 대해 “앞으로 있을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엄중하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문 대통령과의 오찬이 무산된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 군사위원장 ‘홀대’ 논란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연일 대남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14일 “평화를 원한다면 미국의 호전적 망동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핵 문제는 당사자인 미국과 우리(북한)가 논할 문제다. 남측이 참견할 것이 못 된다”고 했다.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절하는 동시에 한미 간의 틈새를 벌려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문병기 weappon@donga.com·주성하 기자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한미 간 대북정책 균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미국의 우려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문 특보가 대북 유화 발언을 내놓으며 한미 정상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북한에 억류됐다 ‘식물인간’으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 씨 사건으로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어서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선 “문 특보 발언의 의도가 뭐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경악하는 워싱턴 문 특보가 16일(현지 시간)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중단을 전제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한국 내 전략무기 자산 축소를 시사하자 미 국무부는 즉각 반박 논평을 냈다. 카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와 중단은 북한과 중국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올 3월 중국은 미국에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의 방어 협력 차원에서 벌이는 훈련을 북한의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과 비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워싱턴에서 문 특보를 비공개로 만난 한 외교 소식통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이러니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가시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문 특보가 연세대 특임명예교수라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내놓은 발언이라는 이유에서다. 청와대는 비공식 브리핑에서도 “학자로서 개인적 의견”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개인 의견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문 특보를 임명하면서 “통일, 외교, 안보 정책 기조와 방향을 저와 함께 챙길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로 다자외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만큼 북핵·통일 외교에서는 문 특보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문 특보가 대화의 조건을 놓고 북-미 간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정체된 상황을 흔들기 위해 전략적인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북대화 조급함 노출” 비판도 대북정책을 놓고 한미가 잇따라 이견을 노출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에 대한 진상 조사 이후 미국의 압박이 고조되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하며 가까스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던 데서 다시 분위기가 얼어붙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조급함을 노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북핵 해결 방안으로 1단계 핵 동결, 2단계 비핵화 등 단계적 해법을 제시하고 핵 동결 시 군사훈련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은 “문제는 다자외교의 틀 내에서 어떻게 서로 동의하고 검증할 수 있는 단계를 거쳐 포괄적 해결에 이르느냐”라고 밝혀 북한이 확실하게 핵 동결을 해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하지만 한미 간 사전 조율이 이뤄지기 전 미국이 문 특보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한미 양국의 견해차만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15일 6·15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전제로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미 국무부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우경임 기자}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 중단을 전제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북한 핵시설 타격에 동원될 수 있는 폭격기 등 한국 내 미군 전략무기 자산의 축소를 미국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문 특보의 발언에 즉각 불쾌감을 보였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미 간 대북정책에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문 특보는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를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정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의 전략자산 무기 역시 축소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특보의 발언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의 대가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에 제안할 구체적인 방안을 공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4월 2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 동결을 하고 핵 동결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이에) 상응해 한미 간 군사훈련을 조정하고 축소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특보는 또 특파원과 만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에 대해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미 정부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는 발언이다. 미국 측은 즉각 논평을 내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카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한국 방어를 위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인근 지역을 보호하며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및 전략자산 무기 축소는 북한과 중국이 주장해 온 사안이다. 청와대는 공식 대응 없이 비공개 브리핑에서 “개인적 의견으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만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문 특보가 대통령과의 아무런 교감 없이 돌발 행동을 했다면 응당 책임을 묻고,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즉각적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던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식물인간 상태로 석방된 것과 관련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극장에서 열린 쿠바 정책 서명식 도중 이같이 말했다. 이는 웜비어의 식물인간 석방 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공개적인 첫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웜비어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와 함께하며 그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며 “나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매우 재능 있는 팀과 함께 웜비어를 부모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23)는 북한 주장과 달리 식중독인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고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인 것으로 판정됐다고 미 의료진이 밝혔다. 웜비어 씨가 입원한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주립대 병원 의료진은 15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웜비어 씨가 북한 주장대로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렸다는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의료진은 웜비어 씨에 대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뇌 조직이 광범위하게 손상됐으며, 지속식물인간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라고 밝혔다. 이 병원 신경과 전문의 대니얼 캔터 박사는 웜비어 씨가 북한에서 폭행이나 구타를 당했을 수 있다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는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과거 전례를 보면 북한은 억류한 미국인들을 비교적 잘 대우했다. 미국과 대화하고 싶을 때 요긴한 ‘말 걸기’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2014년 비자 훼손을 이유로 6년형을 선고받고 억류됐다 7개월 만에 풀려난 매슈 토드 밀러 씨는 “고문받을 준비를 했지만 북한이 오히려 너무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말했다. 한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날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는 이길 것이지만 (한반도) 전쟁은 사람이 겪는 고통의 측면에서 1953년(6·25전쟁) 이후 어떤 전쟁보다 심각할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모든 가능한 외교적 노력을 남김없이 쏟아붓고 있다”고 강조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주성하 기자}
“결국 터질 게 터졌다.” 미국 국무부가 15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지연 결정 이후 꾹꾹 눌러왔던 불편했던 심기를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터뜨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선제 타격 등 군사적 조치가 아닌 외교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왔지만 동시에 대화를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환경이 되어야 김정은을 영광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 재개 조건을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로 낮출 수도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달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긴급회의를 앞두고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내 트럼프 행정부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을 통해 “비핵화가 대화 재개 조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지난달 방미한 문 대통령의 대미특사단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대화 의지는 있지만 이를 위한 기준을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낮춰 잡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대화 재개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 재개 조건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사드 논란 이후 복잡해진 양국 간 기류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더욱 꼬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사드 논란과 관련해선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워싱턴 정가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거듭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더욱 요구하는 만큼, 북한의 가시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을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 정부는 북한 은행의 돈세탁을 대신해준 중국 기업을 기소하고 법원에 관련 자금 190만 달러(약 21억 원)에 대한 압류를 요청했다고 AP통신 등이 15일 보도했다. 미 국무부의 반응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지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화 조건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며 “한미 간 갈등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미국도 한국이 내건 대화 조건보다 남북회담 테이블에서 비핵화를 위한 보상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전략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신나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제안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15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입장은 변한 게 없다(Our position has not changed)”며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고 관여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 이행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기조를 밝힌 데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가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지연 논란 등과 맞물려 양국 간 신경전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사진)는 14일(현지 시간) 개성공단 재개 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제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틀 안에서 북측과 개성공단과 관련해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제적 제재가 있으므로 그것을 넘어서는 개성공단 재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9일부터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서 공공외교 활동에 나선 문 특보는 이날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미국이 지지해 주도록 하는 게 이번 정상회담의 큰 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특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논란과 추가 배치 지연 결정에 대해선 “지난 정부가 현 정부에 (사드 문제를) 완전하게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딕 더빈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등 미 의회 일각에서 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사드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론이 나오는 데 대해선 “그것은 미국 정부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와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앞서 문 특보는 13일 미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주최 세미나에선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접촉하며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탄두 20여 개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기정사실이자 현실인 만큼 핵미사일 활동을 당장 멈추게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어떻게 워싱턴이 바로 코앞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14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유진심프슨 스타디움 공원에서 만난 주민 메리 조에터 씨는 울먹거리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전날 동료 의원들과 야구 연습을 하던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등 5명이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내 아들이 유소년 야구단 연습을 했던 곳에서 정치 증오 범죄가 벌어진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폭스뉴스는 “공화당 의원을 넘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정권을 암살하려 했던, 정치적 동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사망한 범인 제임스 호지킨슨은 오래전부터 반(反)트럼프 성향을 보여 왔다. 지난해 대선에선 사회주의자를 표방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페이스북에 “트럼프는 반역자. 트럼프가 우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트럼프와 일당들을 끝장내야 한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를 청원하는 사이트를 소개하는 글도 올렸다. 미 언론이 전하는 호지킨슨의 범행 전 행적을 보면 트럼프와 가까운 공화당 인사들을 겨냥한 공격을 오랫동안 계획했던 것으로 보여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초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 해오던 주택수리업체를 접고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랑자로 지내 온 호지킨슨은 범행 현장 인근에 있는 YMCA를 한동안 오가며 동네 상황을 탐문했다. 이날 범행 현장에선 야구 연습을 하던 의원들이 공화당 소속인지 민주당 소속인지를 확인한 뒤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미 언론은 호지킨슨의 범행을 계기로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에 축적되어 온 극단적 진보 세력의 불만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 계속 돌출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알렉산드리아 유진심프슨 스타디움 공원은 교내 흑백 갈등을 극복한 노력을 그린 2000년 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실제 배경이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크다. 공원 바로 옆에는 영화 배경인 TC 윌리엄스고교가 있고, 공원엔 미국의 사회적 갈등과 그 치유를 다룬 영화의 의미를 기려 ‘HOME OF TITANS’(타이탄의 홈구장)라는 대형 문구가 걸려 있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차로 불과 2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서 평일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만큼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총기규제 이슈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공화당은 헌법을 내세워 총기 소유 자유를, 민주당은 총기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물류운송업체 UPS 창고에서도 총격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포함해 총 4명이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성명을 내고 “우리는 때로 의견이 다르지만 모두 미국을 사랑한다”며 단합을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자 사설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야구 연습장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은 민주당을 포함한 미국 민주주의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고 진단했다.알렉산드리아=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탕, 탕, 탕!’ 14일 오전 7시 9분경 미국 수도 워싱턴 백악관에서 차로 15분경 떨어진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야구연습장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총성이 수차례 울렸다. 다음 날 자선 야구경기를 앞두고 2루 부근에서 동료 국회의원들과 연습을 하던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가 엉덩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백인 남성인 한 괴한이 반자동 라이플총을 연습장 사방에 쏘아 대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수사 당국을 인용해 체포된 이 괴한이 일리노이주 출신으로 최근까지 부동산 업종에 종사해 온 제임스 호지킨슨(66)이라고 전했다. 미국인들은 집권 공화당의 하원 서열 3위 인사가 워싱턴 바로 인근에서 무방비 상태로 총격을 받자 큰 충격에 빠졌다. 괴한은 총기를 50발을 넘게 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체포됐다. 스컬리스 원내총무는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와 의회 경찰을 포함한 부상자 5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장에 있었던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 MSNBC 인터뷰에서 “AR-15 소총 소리 같았는데, 50∼60발은 발사된 것 같다. 현장에 의회경찰들이 없었다면 대학살이 벌어졌을 것이다. 야구장은 킬링필드였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총격 소식을 듣고 트위터에 “스컬리스 의원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는 이날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테러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조은아 기자}
미국 정부가 2009년 이후 발생한 대규모 해킹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식 경보를 발령했다. 미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13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히든 코브라(hidden cobra)’로 알려진 북한 해킹그룹의 사이버 활동에 대해 경보를 발령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의 대테러 전담 부서들이 북한을 특정해 해킹 공격에 대비하라고 성명을 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두 기관은 성명에서 “북한의 사이버 공격 행위자들이 미국과 전 세계의 미디어, 항공우주, 금융, 그리고 중요한 인프라 시설을 목표로 삼았다. 앞으로도 공격을 계속할 우려가 높다”고 경계를 당부했다. 이어 “북한 해커 집단이 2009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기관 및 미디어, 중요 인프라 등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벌여온 데다 앞으로도 군사적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사이버 공격을 계속할 우려가 높다”며 “오래된 버전의 소프트웨어 등이 표적이 되기 쉬운 만큼 관련 조치를 취하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등 세계 30여 개국의 은행 및 금융기관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으로 거액의 현금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지난달 약 150개국에서 피해가 발생했던 ‘랜섬웨어’를 이용한 사이버 공격 역시 북한 해커 집단에 의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13일 오후 10시 20분경(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렁큰 공항. 북한에 17개월째 억류됐다가 12일 석방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혼수상태로 고향에 돌아오자 미국인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억류되지 않았다면 올해 미 버지니아대를 졸업했을 웜비어는 이날 전혀 의식이 없어 보였다. 머리는 삭발을 하고 코에 튜브를 꽂은 채 사람들에게 들려 평양에서 타고 온 걸프스트림 전용기에서 내렸다. 부모인 프레드와 신디 웜비어는 성명을 내고 “버림받은 잔혹한 정권에 의해 우리와 아들이 얼마나 괴롭고 공포에 떨었는지 온 세상이 알기를 바란다”며 울부짖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한 미국인 대학생을 이처럼 만든 북한 측 처사는 세계에서 가장 사악하고 고립된 체제 가운데 하나임을 고려하더라도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이에 따라 조지프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까지 이어진 웜비어의 석방이 북-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웜비어의 상태를 감안했을 때 이번 윤 대표의 방북은 순수 인도주의적 목적에 방점이 찍혔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윤 대표의 12일 방북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윤 대표는 방한 중인 토머스 섀넌 국무부 정무차관을 수행할 예정이었는데 방한 직전 명단에서 빠졌다. 윤 대표가 이달 6일 북한의 요청으로 뉴욕에서 자성남 주유엔 북한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미 대학생 웜비어가 지난해 3월부터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균 감염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 급히 방북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웜비어의 상태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서 보고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를 잘 챙기라”며 방북을 지시했고, 윤 대표는 두 명의 의료진과 함께 민간항공기인 걸프스트림을 타고 일본을 경유해 이날 오전 평양에 도착했다. 앞서 윤 대표는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북-미 간 ‘트랙 1.5 회담’(민관 대화)에 참석해 억류 미국인 4명의 석방을 위한 협상의 물꼬를 튼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윤 대표의 방북 추진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당국자는 “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웜비어 석방 건을 자세히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동맹 간 정보 공유 차원에서 필요한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윤 대표가 1박 2일 동안 평양에 머물며 다양한 북측 인사를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직전까지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리용호 외무성 부상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한성열 등을 만났다면 더 깊은 대화가 오갔을 수도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웜비어 석방을 계기로 윤 대표의 방북 못지않게 지난해 7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를 선언했던 ‘뉴욕채널’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부활한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국무부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간 채널을 뜻하는 뉴욕채널은 북한의 핵실험 후에도 가동될 정도로 북-미 간에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던 소통 창구였다. 이것이 웜비어 석방 건으로 재가동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북-미 간 소통의 계기가 지금보다는 자주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미국이 내건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고, 최근까지도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온 만큼 이번 방북으로 북-미 간 대화가 당장 급물살을 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많다. 뉴욕타임스 등 일부 언론은 웜비어가 북한에서 구타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유사한 방식으로 석방할 때마다 북-미 대화론이 나왔지만 실제론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일각에선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보다는 웜비어의 상태가 더 나빠져 북한에서 사망이라도 하기 전에 석방할 필요성을 느껴 미국과의 대화를 요청했고, 미국도 웜비어를 빼내기 위해 윤 대표를 평양에 보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억류자가 혼수상태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진 방북이고 추가적인 억류자 석방이 없다는 점에서 북-미 대화 재개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때마침 방북한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절친’으로 알려진 데니스 로드먼은 웜비어의 석방과는 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로드먼의 방북은 개인적인 일정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져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우경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지연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워싱턴에서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사진)은 12일(현지 시간)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정부가 미군 보호에 필요한 조치(사드)를 막는다는 인식이 형성된다면 주한미군 지원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급속히 악화할 것”이라며 “이는 잠재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이어 “사드 (추가) 배치 무산은 한미 동맹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으며 북한과 중국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사드 배치 결정 번복으로 중국이 한국의 새로운 대북 방어 조치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더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한국의 미사일 방어력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 진전을 저지하기에는 너무 느리게 발전하고 있다며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전략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의 취약성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이날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문 대통령은 옆집의 독재자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협공을 받는 처지”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미묘한 입장을 존중하고 사드 배치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지적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북한이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23)를 억류 17개월 만에 석방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13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그가 풀려나 미국으로 오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악동’ 데니스 로드먼이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을 방문했다. 웜비어 씨의 석방과 로드먼의 방문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경색 국면이던 미북 관계에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틸러슨 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으며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다른 미국인들의 석방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웜비어 씨는 지난해 1월 북한을 여행하던 중 북한 내 숙소인 호텔에서 ‘김정일 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억류돼 같은해 3월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북한에는 북-중 간 무역활동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박사 등 3명의 미국 국적자가 억류된 상태다. 웜비어 씨 가족들은 워싱턴포스트에 “아들이 북한에서 1년 넘게 혼수상태로 있다가 풀려났다”고 밝혔으나 정확한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무부의 발표는 로드먼의 평양 도착 이후 이뤄졌다. 로드먼은 이날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북은 (북한의) 문을 열려는 것”이라며 “내 방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꽤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둘 다 원하는 것을 달성하려고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로드먼은 ‘북한에서 달성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목요일(15일) 다시 보자”고 말해 이번 방북이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추진된 것임을 시사했다. 로드먼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오랜 인연이 있어 트럼프의 메시지를 갖고 방북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국무부는 로드먼의 방북은 미 행정부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미국 민주당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러시아 스캔들 의회 증언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회 증언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11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와 함께 품위 있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할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진술을 위해 트럼프 측과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검과 협의하겠다”고도 했다. 코미 증언 후 트럼프가 “러시아 사건 수사 중단을 지시한 적 없다. 특검 앞에서 선서할 수 있다”며 강공으로 나오자 이를 되받아친 것이다. 마땅한 ‘스모킹 건’(확실한 물증)이 없어 트럼프에 대한 탄핵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러시아 스캔들의 불씨를 살려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가 뉴욕연방지검 검사장에서 해고된 프리트 바라라도 이날 ABC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한 사법방해 수사를 시작할 증거는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코미의 주장을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변호사도 러시아와 관계가 깊은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 변호를 맡은 마크 카소위츠 변호사의 고객 목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러시아 국영은행 등이 올라와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 알루미늄 업계 거물로 꼽히는 올레크 데리파스카는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의 대표 주자로 푸틴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러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스베르방크도 고객 명단에 올랐다. 이 은행의 부총재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을 만났으며 FBI가 해당 내용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화당 일각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특히 코미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e메일 스캔들 수사 당시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왜 메모를 남기지 않았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 당시 린치 장관은 코미와 만나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수사라는 표현 대신 문제(matter)를 조사하고 있다는 식으로 수위를 낮춰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당 루이 고머트 연방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전문매체 더 힐에 “코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장래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메모를 했다면서 린치 장관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했지만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외압 의혹을 제기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 대해 트럼프 측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와 코미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한동안 진실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코미의 (불법) 정보유출이 생각보다 훨씬 더 퍼져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한 일이) 완전히 불법이라고? 정말 비겁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9일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어제(코미의 증언)는 어떠한 공모도, 사법방해도 없었던 것을 확인해줬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FBI 수사 중단을 요청하고 충성을 요구했다는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이어 “나는 그(코미)를 잘 모른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내가 지금 한 말을 그(로버트 뮬러 특검)에게 그대로 말할 수 있다. 100% 선서한 상태에서 증언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트럼프가 강공으로 나온 것은 코미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물증, 이른바 ‘스모킹 건’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만큼 정면 돌파를 택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측근들도 ‘코미 때리기’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대선 기간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코리 루언다우스키 전 선거대책본부장은 9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코미는) 책을 팔려고 나선 거짓말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코미가 이번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1000만 달러(약 112억5000만 원) 상당의 출판 계약을 맺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면서 “이런 사람이 정부 관료에서 억만장자가 되는 방법을 보면 놀랍다”고 힐난한 뒤 “코미는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조정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숨은 권력)’의 일원이며 ‘스왐프 크리처(Swamp Creature·흉측한 모습을 일부 아름다운 외양으로 가린 괴물)’”라고 주장했다. 루언다우스키는 당초 백악관 내에 설치하려 했던 러시아 스캔들 관련 작전회의실(War Room)을 대신한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 청문회 후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를 옹호하는 세력이 점차 늘고 있다. 이는 코미 증언의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탄핵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존 매케인, 마코 루비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불편했던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을 감싸고 있다. 그레이엄 의원은 “대통령이 러시아와 한통속이라 수사를 받고, 사법방해로 조사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트럼프가 잘못한 게 있다면 부적절하고 무례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 정보위원회는 러시아 스캔들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코미에게 트럼프와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메모 복사본을, 백악관에는 두 사람의 만남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제출할 것을 각각 요청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정보위는 양측에 녹음테이프가 존재한다면 이를 포함한 모든 증거물을 제출해 달라면서 기한을 23일로 제시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13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박민우 기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연 문제를 놓고 한미 간의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시각이 머지않았다”고 위협했다. 미국 정부도 북한의 연내 ICBM 발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우리가 최근에 진행한 전략무기 시험들은 주체조선(북한)이 대륙간탄도로켓(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시각이 결코 머지않았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다”며 “반드시 있게 될 대륙간탄도로켓 시험 발사의 대성공은 바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총 파산을 선언하는 매우 중대하고도 역사적인 분기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대륙간탄도로켓 개발에 필요한 첨단기술들을 모두 우리의 것으로 확고히 틀어쥐었다”며 “우리나라에서 뉴욕까지의 거리는 1만400km 정도이고 미국의 모든 곳은 우리의 타격권 내에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마감 단계”라고 밝힌 지 약 5개월 만에 ‘북한이 모든 기술적 준비가 끝났다’는 점을 재차 선언함으로써 미국을 향한 협박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신문은 이날 논평에서 ICBM 기술적 완성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외부의 시각을 의식한 듯 “화성 12형(KN-17)이 최대정점고도 2111.5km까지 올라간 것은 관건인 대출력 발동기(엔진) 문제를 우리가 창조적으로 해결하였다는 것을 실증해 주었다”고 주장했다. 또 “미사일이 787km를 날아가 목표를 정확히 타격했다는 것은 대륙간탄도로켓 개발에서 핵심 기술로 꼽히고 있는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완전무결하게 확보했음을 확증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미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수퍼 국방부 핵·미사일방어정책 부차관보는 7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은 최근 시험에서 (대기) 재진입 운반체 개발 능력에서 큰 진전을 이뤄냈다”며 “북한은 올해 첫 ICBM 시험 발사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증언했다. 미 고위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일정에 대해 이같이 말한 것은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ICBM 발사 기회를 신중히 엿보고 있으며,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의 움직임이 최근 긴박해졌다고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미는 사드 갈등 봉합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사드 배치 지연 논란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을 되돌리지 않을 것으로 확언했다(assure)”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도쿄=서영아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8일(현지 시간) 오후 2시 50분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상황에 대한 회의 소식을 전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에 실망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갑자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런 식으로 규정(charaterize)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사드 배치는 미국 정부에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약 12시간이 지난 9일(한국 시간) 오후 4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임명 20일 만에 첫 기자회견에 나섰다. 정 실장은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이 결정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계속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이날 정 실장은 사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청와대는 사드에 대해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정 실장이 한미동맹 차원의 약속을 강조하며 사드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사드 배치 지연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기류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사드 배치 결정의 불투명성에 공세를 펴던 기조를 바꿔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과 함께 최고위급 회의체를 가동해 사드 문제 등 한반도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을 여럿 했다. “사드는 주한미군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동맹을 방어하는 데 중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는 당시(박근혜 정부에서) 동맹 간 (이미) 최고위급에서 결정된 사안이다”라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인 공화당 소속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사드는 한국 국민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라며 “사드의 완전한 배치와 관련한 어떤 환경적 우려도 신속하고 철저한 검토를 통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 논의를 제외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중과 달리 미국에선 사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리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13∼15일 토머스 섀넌 미 국무부 정무차관을 한국으로 보내 정상회담 일정과 현안을 조율하기로 했다. 정무차관은 미 국무부 서열 3위다. 일각에선 정 실장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의 잇따른 방미에 이어 섀넌 차관이 방한하는 등 한미 고위급이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협의하는 것을 두고 사드 논란 때문에 의제 조율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 당국자는 “미국의 한반도 라인,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 인선이 지연되는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가 ‘외교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 실장은 이날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미 간 약속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 배제 △국내적으로 필요한 절차 진행 △국익과 안보적 필요성 최우선 고려를 세 가지 원칙으로 제시했다. 환경영향평가로 사드 추가 배치가 지연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 자체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며 수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전날에도 “이미 배치된 2대의 사드 발사대는 환경영향평가와 관계없이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 실장이 “국익과 안보적 필요성을 고려하겠다”는 원칙을 함께 제시한 것은 미국의 사드 배치 비용 및 한미 방위비 분담 재협상 요구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자, 이제 일하러 갑시다(Let‘s get to work).”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9일 오후(현지 시간) 총리 집무실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자칫 집무실에 일하러 다시 못 들어갈 뻔했던 자신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빗댄 말이다. 그가 이끄는 보수당은 318석을 확보해 간신히 제1당을 유지했지만 이전보다 12석을 잃고 과반(326석) 유지에 실패했다. 자신이 임명한 현직 장관 5명이 선거에서 떨어졌다. 당내 입지를 다지고 이민자 차단을 포함한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추진하려 총선을 자청했던 메이 총리에겐 ‘혹 떼려다 혹 붙인’ 결과다. ‘영국 우선주의(Britain First)’를 외치며 지난해 6월 호기롭게 EU 탈퇴를 결정했던 영국인들은 당분간 극심한 내홍에 휘말릴 운명이다. 메이 총리는 선거 직후 “총리직 사퇴는 없다”며 10석을 얻은 북아일랜드 연방정부 정당인 민주연합당(DUP)과 공동 정부 구성에 사실상 합의했다. 그러나 노동당을 비롯한 야 3당은 “레임덕인 총리는 오래 버틸 수 없다”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BBC 로라 쿤스버그 에디터는 “메이가 조기 총선 결정이라는 현대사 최악의 실수로 94년 만에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이란 불명예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고 비꼬았다. 과반 정당이 없는 이른바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범하면서 브렉시트의 운명 역시 시계 제로 상태다. 한껏 기세가 오른 야당은 EU와의 단일 시장을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요구하고 있다. 역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하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권좌에 앉힌 미국인들도 같은 날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폭로로 ‘거짓말 대통령을 둔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미국 정치 체계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 ‘사법기관의 독립’을 망각한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폭주는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날 코미 의회 청문회장에서 만난 워싱턴 시민 잭 스피어스 씨는 “트럼프가 혼쭐나는 것을 보고 당장은 기분 좋을지 몰라도 미국의 위상과 자존심이 추락하는 것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어서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통합과 개방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주도했던 영국과 미국에서는 지난해 브렉시트와 대선 과정에서 분열과 단절이라는 반동이 유행했다. ‘자국 이기주의’를 외치다 위기에 빠진 대서양 동맹의 불안한 행보에 또다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