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채은

전채은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전채은 기자입니다.

chan2@donga.com

취재분야

2024-03-25~2024-04-24
문학/출판64%
문화 일반17%
인사일반7%
사회일반3%
역사3%
경제일반3%
기타3%
  • “다양한 북방민족 역사 연구가 ‘中 역사굴기’ 막는 대안”

    중국 헤이룽장성 동북부에 있는 면적 12만 km²의 삼강평원에서는 두만강, 연해주 일대에서 발굴된 집자리, 토기와 비슷한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두만강 유역에서 발흥한 옥저 계통의 문화가 삼강평원까지 북상한 흔적이다. 농사를 지어 생활했던 옥저인은 북쪽에서 찾은 기름진 땅에서 300여 년간 살며 거대한 성터를 일궜다. 이곳에서는 250여 기의 성터가 발견됐고, 이 중 가장 큰 성터는 풍납토성의 규모를 능가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51)가 지난달 발간한 책 ‘옥저와 읍루’에는 옥저와 읍루에 대해 새롭게 발굴한 고고학적 결실이 담겼다. 옥저는 기원전 4세기∼서기 246년, 읍루는 기원전 4세기∼서기 559년경 존재했던 북방민족이다. 강 교수는 10년간 러시아와 중국, 한국을 다니며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은 북방민족인 옥저와 읍루를 연구했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북방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중국의 역사 팽창주의를 막는 대안이 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연구로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그동안 삼강평원에서 발견된 성터를 옥저인이 지은 것이라고 보는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삼강평원의 각종 유물들은 옥저인의 문화와 똑같았다. 잡곡농사에 유리한 지역을 따라 이동했던 옥저인의 습성을 고려하면 이동경로 역시 설명 가능했다. 강 교수는 “이 책 출간과 비슷한 시기에 삼강평원을 연구하는 중국학자들도 이 성터의 주인을 옥저인으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헤이룽강 하류에서 쑹화강 유역에 걸쳐 있는 읍루 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철화된 철도끼가 발견됐다는 점도 강 교수가 꼽는 학문적 성과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국내 연구자가 거의 없는 분야인 북방민족을 연구하는 강 교수는 “북방민족 역사가 한국의 역사가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북방민족의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네 것과 내 것을 나누는 것은 한국사 왜곡의 지름길”이라며 “역사의 다변적인 흐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3-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평생 딱 한번 나오는 인생 이야기 찾아다녀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문학동네의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 이연실 씨(37)가 내민 명함 앞면엔 서점 매대에서 한 번쯤은 본 책들의 제목이 빼곡했다. 뒤집어보니 원고지 양식의 빨간색 칸에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며 보호할 수 있기를’이라는 일본 만화책 ‘중쇄를 찍자!’의 대사가 쓰여 있었다. 이 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자꾸만 되새기고 싶은 문구라 이런 명함을 만들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최근 ‘에세이 만드는 법’(유유출판사)을 출간한 이 씨를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굵직한 에세이들을 엮어내 출판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하지만, 본인이 직접 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씨는 15년간 ‘맨땅에 헤딩’하며 얻은 모든 지혜를 이 책에 담았다.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에세이를 찾아내는 것, 그게 에세이 편집자의 역할이에요.”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에세이는 무궁무진하다. 일기도 에세이다. 하지만 이 씨가 찾아 헤매는 건 그 사람이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이야기다. 희귀질환으로 키가 110cm까지만 자란 이지영 씨의 취직 분투기(‘불편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데뷔 10년을 맞는 인기 작사가의 첫 에세이(‘김이나의 작사법’)가 그런 글이다. 본인의 이번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15년 차 편집자로서 내놓는 에세이 편집법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요. 열정을 갖고 출판사에 들어온 신입 편집자들이 금세 지치는 걸 많이 봤어요. 그 후배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솔하게 썼습니다.” 책에는 저자 섭외부터 보도자료 배포에 이르는 모든 출간 과정에서 편집자가 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슬아 작가 에세이의 제목을 지으며 어떤 고뇌를 했는지, 김이나 작사가 책에 두를 띠지의 문구를 두고 작가와 어떤 실랑이를 벌였는지 등 인기 에세이의 탄생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묘미다. 이 씨가 엮은 책들 중에도 초판본을 소진하지 못한 에세이가 많다. 그는 이런 책들을 경기 파주시에 있는 문학동네 사무실 한곳에 모아두고 ‘1쇄의 전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끔씩 책을 만들다 지치는 순간이 오면 이 씨는 고개를 들어 ‘1쇄의 전당’에 꽂힌 채 먼지가 쌓여 가는 좋은 책들을 올려다본다고 한다. “저 책들을 출판사가 잊고 독자가 잊고 심지어 작가마저 잊더라도 저만은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랍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3-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400만 인종학살… 죽음의 땅에 갇힌 비극의 얼굴들 [책의 향기]

    1927년 소련 공산당 최상부를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은 단일하고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명분하에 민간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독일에서 벌인 대량 학살은 스탈린에게서 힌트를 얻은 결과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400여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쟁이 아닌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시체가 쌓인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르는 땅을 ‘블러드랜드(bloodland)’라고 일컫는다. 미국 예일대에서 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가 독일, 폴란드 등 국가의 기록보관소 16곳의 자료를 토대로 쓴 연구서 ‘피에 젖은 땅’이 번역 출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등 굵직한 전쟁사를 펴낸 앤터니 비버는 이 책이 “당시 스탈린과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적 아집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된 유럽사를 그리기 위해서는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스탈린은 1933년 우크라이나의 배고픈 농민들에게서 식량을 강제 징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8년 뒤 히틀러 역시 소련 전쟁포로들의 식량 배급을 끊으면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총살과 가스실 이전에 ‘굶겨 죽이기’가 있었던 것. 1933∼1945년 블러드랜드에서 숨진 1400여만 명의 민간인 중 절반은 굶어 죽었다.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통계와 숫자만을 가지고 살상의 역사를 기록하는 대신 죽어간 희생자들의 표정을 조명했다는 점이다. 극도의 배고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었다. 가장 어려서, 혹은 가장 착해서 가족과 이웃의 먹잇감이 돼야 했던 이들의 얼굴을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생존자 카페’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2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 했던 트라우마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두 책의 주제가 이어지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전해질 울림도 더욱 클 것이라고 판단해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고 말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엘리자베스 로즈너의 부모는 집단수용소나 학살지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배고픔의 기억이 뼈에 새겨져 닭을 먹을 때면 뼈다귀의 골수까지 빨아 먹는 어머니, 평생 ‘생존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로즈너는 결코 집단학살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저자는 트라우마와 부모 세대의 기억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들의 자녀를 만나러 떠났다. ‘피에 젖은 땅’에서도 알 수 있듯 20세기 유럽 인종 학살의 양태는 단일하지 않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로즈너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언제나 나는 무엇이 우리를 분리하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을 공유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책은 감히 내가 평화를 위해 바치는 제물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3-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독립운동 박사논문 작년 단 2편… 의병들이 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해였던 2019년, 국내 독립운동사를 다룬 박사학위 논문 6편이 심사를 통과했다. 다시 말하면 국내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려는 신진 연구자가 6명 배출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100주년 반짝 특수’ 성격이 있었다. 2019년을 전후해서는 관련 연구자가 거의 배출되지 않았다. 이 분야 학문 후속 세대의 명맥이 거의 끊겨 가는 양상이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중견 학자들은 “신진 연구 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뚝 끊긴 신진 연구자 이계형 국민대 사학과 교수가 최근 국내 독립운동사 박사학위 논문 추이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6년 0편, 2017년 2편, 2018년 1편 등 미미하다. 지난해 발표된 근대사 박사학위 논문은 총 14편이었는데, 이 중 국내 독립운동사를 다룬 것은 2편뿐이다. 1980년대에는 매년 10여 명씩 쏟아졌던 독립운동사 신진 연구자가 일 년에 한두 명 수준으로 줄어든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먼저 독립운동사 연구가 누적되면서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생겨 인기가 떨어졌다. 대학들이 역사를 비롯한 인문 분야를 축소하면서 교수 채용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2010년대 들어서는 교수의 퇴직과 함께 사학과를 폐과하는 대학이 속속 생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한 서울 사립대 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가 너무 없다 보니 이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만 해도 장학금을 줘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고 침체된 분위기를 전했다. 기존 연구자들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아직 연구되지 않은 내용이 많은데, 이대로 학문 후속 세대가 끊길까 봐 우려하고 있다. 이 교수는 “3·1운동도 이미 연구가 많이 이뤄져서 더 발굴할 내용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예컨대 전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곳과 일어나지 않은 곳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지도자의 유무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의 연구는 여전히 미진하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곳은 전국 약 3000개 면 중 3분의 2 정도다. 이 교수는 “똑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때인 장날을 통해 3·1운동이 전파됐는데, 왜 어떤 곳에선 사람들이 참여했고 어떤 곳에선 참여하지 않았는지 추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외 독립운동사 연구도 속도가 안 나긴 마찬가지다. 이 분야는 중국과 일본, 미국 등에 걸쳐 방대한 해외 자료를 찾고 연구해야 하는 영역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해외를 무대로 한 독립운동사 박사학위 논문은 최근 5년간 2편(2018년, 2019년 각 1편)에 그쳤다.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기성 연구자들의 연구는 틈틈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신예 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독립운동사에서 생활사로 그렇다면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몰리고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운동사에서 생활사로 관심이 옮겨 갔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박성순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영웅 중심적 서술은 과거 독립운동사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때 필요했던 관점이다. 독립운동사의 기본적인 뼈대가 선 지금은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대중적 기반에 대한 물음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근대사 학계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다만 연구가 끊기는 분야가 생기지 않도록 신진 연구 인력을 충분히 양성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이 교수는 “신진 연구자들이 학문에 집중할 수 있는 현실적 토양이 마련돼야 젊은 연구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채은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 2021-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성선설’을 믿으면 순진한 거라고?

    소년 6명이 무인도에 고립됐다. 구출되지 못한 채 15개월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소년들의 비극적 결말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소외됐을 것이고, 다친 소년은 버려졌을 것이며, 아마도 서로를 해쳤을 것이다. 윌리엄 골딩은 소설 ‘파리대왕’(1954년)에서 어리고 순수한 소년들마저 그 본성은 추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1965년 6월 태평양을 표류하다 통가제도의 바위섬에 갇혔던 소년 6명은 15개월간 고립됐을 때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나눴다. ‘파리대왕’ 속 소년들은 불을 차지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지만, 현실의 소년들은 힘을 합쳐 어렵게 피운 불을 1년 이상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와 유발 하라리가 각각 ‘이기적 유전자’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성악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악설을 뒷받침한 실험들이 왜곡됐음을 지적하고, 서로를 믿지 못할 때 모두가 권력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함을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1961년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은 이미 답이 정해진 실험이었다. 밀그램은 피험자가 타인에게 전기충격을 어느 수준까지 줄 수 있는지를 측정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험 10년 뒤 밀그램의 저서에 따르면 당시 전기충격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믿은 피험자는 56%에 불과했다. 연구진이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은 피험자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저자는 ‘방관자 효과’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캐서린 수전 제노비스 살인사건도 일정 부분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죽어간 제노비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37명이 아니라 3, 4명의 이웃이었다면 즉각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건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게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건 용감하고 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적십자 활동한 그들, 항일무장투쟁도 벌였다

    1920년 3월. 러시아어가 유창했던 조선인 청년 박영빈의 요청으로 체코군 군의관 베리코프가 연해주(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총 60정을 샀다. 한 달 뒤엔 박영빈이 직접 총 300정을 사들였다. 박영빈 뒤에는 당시 러시아 지역 대한적십자회 대표였던 박처후(1883∼?)가 있었다. 미국 한인소년병학교장이기도 했던 박처후는 항일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무기 구매와 간호사 양성에 적극 나섰다. 일제강점기 대한적십자회에서 활동한 박처후와 채계복(1900∼?·여)이 다음 달 1일 열리는 3·1절 102주년 기념식에서 정부 독립유공자 훈장(애족장) 수여자로 선정됐다. 대한적십자회 활동을 주요 공적으로 정부 훈장이 수여되는 건 이들이 처음이다.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된 몽양 여운형이나 198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안정근(안중근 의사의 동생)은 일제강점기 대한적십자회 총재를 지낸 적이 있지만, 이 활동을 주요 공적으로 인정받은 건 아니었다. 1919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총장이던 안창호 등이 세운 대한적십자회는 그동안 구호사업 등 인도주의 활동으로만 일반에 각인됐었다. 그러나 최근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 대한적십자회는 1920년 2월 독립전쟁에 대비한 ‘간호원 양성소’를 설치하는 등 항일 투쟁에 적극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해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교섭한 것도 이들 노력이었다.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적십자회가 무장 투쟁에도 적극 나섰던 것이다. 1883년 평북 순천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박처후는 24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1905년 6월 제국신문에 “자유와 권리란 학식이 있는 자만이 아는 것이며, 학식이 있으려면 교육과 외국 유람이 중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1908년 6월 공립신보에 ‘미주 유학생 박처후’라는 필명으로 “완전한 독립국, 완전한 자유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1909년 9월에는 신한민보에 “동포들은 탄식만 할 게 아니라 무기를 구입하고 전 국민이 군사훈련을 받아 나라를 다시 찾고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항일 무장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1920년 1월 이승만에게 편지를 보내 연해주에서 양성한 간호사가 미국적십자사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대한적십자회에선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대거 활약했다. 이 중 채계복은 러시아 지역에서 대한적십자회를 조직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함남 문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성하의 맏딸인 그는 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에도 수차례 등장한다. 대한적십자회 간호사였던 그는 1919년 12월 중국 간도에서 12명의 간호사가 미국적십자사로부터 간호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간도 15만 원 사건’ 기록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이 사건은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철혈광복단이 일제의 조선은행 자금을 탈취한 것이다. 채계복은 당시 거사에서 핵심 인물이던 독립운동가 최봉설의 총상을 치료해줬다. 이후에도 채계복으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은 최봉설은 훗날 그의 이름 중간 글자를 따 ‘최계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박환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의 정통성이 신흥무관학교에 있다고 보듯,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정신적 모태는 대한적십자에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chan2@donga.com·김태언 기자}

    • 2021-0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독자가 녹음한 오디오북을 ‘밀리의 서재’에… 수익형 플랫폼 구축 등 시장 확대 나선 출판계

    “에디터 J님께. 일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소설가 김초엽이 e북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공개한 ‘지구 끝의 온실’ 첫 문장을 클릭하자 2개의 녹음 메뉴가 떴다. 이 중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기자의 목소리가 녹음되고, ‘AI(인공지능)’ 버튼은 성우 목소리로 녹음이 시작됐다. 녹음을 마친 뒤 ‘발행’ 메뉴를 클릭하니 헤드셋 아이콘이 그려진 오디오북이 개인 계정에 생성됐다. 밀리의 서재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다.○ ‘스타 낭독자’ 만들기로 차별화 오디오북을 찾는 독자들이 늘면서 관련 콘텐츠 업체들이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출판계는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를 약 100억∼15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에 오디오북 시장 규모 추산치를 처음 집계해 발표할 예정이다. 밀리의 서재 녹음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약 1만 건이 다운로드돼 약 400개의 개인 계정에 오디오북이 만들어졌다. 이 중 약 150개는 공개 신청이 된 상태. 운영사 검수를 통해 공개된 오디오북이 3분 이상 재생되면 낭독자 계정에 100원이 적립된다. 적립금이 5만 원을 넘으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밀리의 서재는 이 서비스가 자사와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치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유튜브와 유튜버가 광고 수익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함께 일반인 중 ‘스타 낭독자’를 만들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오디오북은 텍스트를 그대로 읽기도 하지만 낭독자에 따라 짧은 감상이나 작품 해설을 가미하기도 한다. 같은 책이라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아직 서비스 초기 단계라 일반회원들이 제작할 수 있는 오디오북 종류가 한정적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전솜이 밀리의 서재 홍보매니저는 “전자책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오디오북 제작에 뛰어드는 출판사도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완독형·낱권 구매 서비스도 강연 전문 출판사 인플루엔셜의 계열사인 ‘윌라’는 ‘완독형 오디오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첫 장부터 끝까지 모든 챕터를 완독하려는 독자들을 겨냥한 전략이다. 반면 밀리의 서재의 경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는 독자층을 타깃으로 해 주요 챕터만 발췌해 녹음하는 제작 방식이다. 윌라는 오디오북을 전문 성우가 낭독해 콘텐츠 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윌라 관계자는 “지난 한 해 가입자 수가 3.2배 늘어 150만 명을 넘어섰다”며 “오디오 콘텐츠 전문이란 장점을 살려 단행본은 물론이고 ‘오디오 매거진’ 등으로 경계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낱권으로 오디오북을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도록 해 진입 문턱을 낮췄다. 오디오북을 부정기적으로 조금씩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밀리의 서재와 윌라의 경우 한 달에 1만 원 안팎의 구독 비용을 내야 한다. 두 회사는 구독 시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이용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공포문학의 거장 러브크래프트… 그의 인종차별주의 깨고 싶었다”

    몸이 갈라지며 흰색 촉수를 뻗는 괴물, 낯선 고대의 의식, 기괴한 흑마술…. 미국 작가 맷 러프(56)의 소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선 공포 문학의 거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모티브가 펼쳐진다. 제목만 봐선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했을 것 같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러브크래프트의 서사를 영리하게 비꼰 흔적이 보인다. 2016년 발표한 이 작품으로 저자는 이듬해 미국의 권위 있는 공상과학(SF) 문학상인 인데버상을 받았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최근 은행나무에서 출간됐다. 러프의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러브크래프트의 도덕적 실패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의 예술을 즐길 수 없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비판한 건 인종차별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검둥이들의 탄생(On The Creation of Niggers)’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길 정도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가 심했다. 저자는 “1980년대 대학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흑인 친구가 인종차별이 두려워 등산조차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러프는 책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한 ‘짐 크로(Jim crow) 법’의 시대를 통과한 1950년대 흑인들의 삶과 고통을 정교한 방식으로 조명한다. 흑인 주인공들은 눈앞의 괴물들과 싸우는 동시에 백인 남성 중심의 권력구조에도 저항한다. 저자는 “정확한 시대 묘사를 위해 1950년대 신문기사와 ‘선다운 타운스’ 등 미국 흑인을 다룬 역사책을 깊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개별 인물들의 설정에도 인종차별 문제를 섬세하게 고증해 반영했다. 주인공 중 하나인 흑인 청년 애티커스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등장한다. 저자는 “미국엔 흑인들이 전쟁에 나가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국가로부터 차별받는 흑인들에게 더 강한 애국심이 강요되는 역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6·25전쟁을 마지막으로 흑인부대가 해체돼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미국 HBO가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한 동명 드라마는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TV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저자는 “작품이 새로운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건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라며 “한국에도 드디어 작품을 알리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년만에 ‘듄’ 재번역… 예전 글 보니 땅 파고 들어가고 싶었죠”

    “다시 읽어 보니까 땅 파고 들어가고 싶던데요.” SF 거장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 전집(황금가지·사진)을 번역한 김승욱 씨(55)가 겸손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2001년 ‘듄’ 한국어 번역본이 처음 출간될 당시 번역을 맡았던 김 씨는 지난달 22일 같은 출판사에서 20년 만에 재출간된 신장판 전집을 재번역했다. 그런 김 씨를 15일 동아일보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듄’은 허버트가 1965년부터 20년간 쓴 SF 대작이다. 우주시대를 맞은 인류의 모습을 다뤄 SF 장르가 발달하지 않았던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의 인기를 끌었다. 황금가지는 10월로 예정된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 ‘듄’ 개봉을 앞두고 당초 18권 분량의 반양장으로 펴냈던 이 전집을 6권짜리 양장본으로 묶어 재출간했다. ‘듄’ 전집의 재출간 소식을 듣고 김 씨는 책 전체를 직접 검토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계약된 인세 이외엔 별도 보수 없이 이뤄진 작업이어서 출판사에서는 “꼭 고쳐야 할 부분만 간단히 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 씨의 마음에는 초보 번역자 시절의 작업물이 짐으로 남아 있던 차였다. 4300쪽에 이르는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에는 꼬박 6개월이 걸렸다. “기존의 독자들을 생각해 최대한 덜 고치려고 했지만 결국 20% 정도는 뜯어고치게 되더라고요.” 최초 번역본에는 20년 전 김 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2001년 김 씨는 주인공 이름의 원문인 ‘Paul Atreides’를 원칙대로 ‘폴 아트레이데스’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책에는 ‘폴 아트레이드’로 표기됐다. 초보 번역자의 생각보다는 “게임 ‘듄’의 번역을 따라야 독자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일부 편집자들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바로잡지 못했던 걸 이젠 베테랑이 된 김 씨가 마침내 고쳤다. 김 씨는 “부끄러운 대목도 있었지만 ‘제법 분위기를 살렸네’ 싶은 부분도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도 원작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SF 소설 마니아였던 김 씨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기 전부터 ‘듄’ 시리즈의 명성을 알고 있었다. 손에 받아든 게 고작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기쁜 마음으로 덜컥 작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장장 3년에 걸친 번역 작업이 그렇게 시작됐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 씨에게는 즐거운 경험이기도 했다. 김 씨는 “너무 일찍 태어나서 다른 행성을 못 가보는 게 한스러웠을 정도였다”며 웃었다. 1960년대에 쓰이기 시작한 작품임에도 환경과 여성 문제를 일부 다뤘다는 점이 김 씨가 꼽은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번 신장판도 김 씨와 같은 마니아들이 발 빠르게 반응했다. 출간 1주일 만에 초판 3000세트가 전부 팔려 급히 증쇄에 들어갔다. 아직 ‘듄’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김 씨는 이렇게 전했다. “분량이 어마어마하지만 걱정 마세요. 1권을 읽어보시면 이어지는 시리즈는 술술 읽힐 테니까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한국을 알기 위해 중국을 공부하다

    최근 흡입력 높은 칼럼과 에세이를 통해 특유의 ‘공부 철학’을 설파해온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국내에서 첫 학술서를 펴냈다. 이 책은 그가 2017년 영국에서 발간한 동명의 책(‘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영국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집필된 이 책은 한국어판에 새로운 내용이 보강돼 원서의 2배 이상으로 두꺼워졌다. 영국 출간 당시 중국 정치학자 샤오궁취안(蕭公權)의 ‘중국정치사상사’ 영역본(1979년)이 나온 이후 약 40년 동안 정체됐던 이 분야의 학문적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을 잘 이해하고 싶어 중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 알고자 할 땐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을 폭넓게 파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이 때문에 책은 ‘정치사회’ ‘국가’ ‘귀족사회’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중국 정치사상의 거대한 서사를 망라한 후 이것이 조선 등 동아시아 각국에 미친 영향을 짚었다. 저자는 “독자가 현재의 중국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생각보다 넓게 펼쳐지는 세계에서 그만 길을 잃게 만드는 게 나의 바람”이라고 썼다. 이 책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 분야의 기존 연구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이 역사를 만들기보다는 역사가 중국을 만든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에 따라 중국학계의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의 허구를 밝히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중국은 단일체이기보다 구성물이었으며, 중화민족의 이미지는 인공의 조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중국 정치사상서 상당수가 중국 학자들의 기존 관점에 입각한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중국 정치사상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당신을 울린 그놈…책 속에 가둬라”

    지난해 1월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13세 소녀 ‘V’와, 그를 상대로 수년에 걸쳐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르는 50대 남성 작가 ‘G’의 이야기가 출판됐다. 프랑스 쥘리아르 출판사의 대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 바네사 스프링고라(49)는 책에서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출간과 동시에 프랑스 문단과 독자들은 이 소설이 대문호 가브리엘 마츠네프(85)의 과거 성폭력을 폭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인 ‘동의(Le consentement)’는 예술가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에 눈감았던 프랑스 문단의 위선을 고발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3개월 만에 18만 권이 판매됐다. ‘동의’는 국내에서도 은행나무 출판사를 통해 1일 출간됐다. 스프링고라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집필을 결심한 계기와 문단계 성폭력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가해 작가를 책 안에 가두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갓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들딸의 모습이었어요.” 30여 년간 가슴에 품고만 있었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글로 옮기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와 성인의 경계에 접어든 자녀들은 저자가 처음 그루밍 성폭력에 노출됐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성인의 욕망을 지녔지만 한없이 취약한 10대의 특성을 가까이에서 보며 저자는 어린 자신 역시 얼마나 무방비한 존재였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피해의 기억을 되살려 문장으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당초 저자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허구의 인물을 앞세워 글을 쓰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저자는 “결국 1인칭으로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2017년 2년 만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책을 쓰는 건 문단계 성폭력 피해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반격이기도 했다. 가해 작가는 성폭력 피해자들과 있었던 일들을 작품 소재로 자주 활용했고 이는 고스란히 2차 피해가 됐다. 저자는 서문에서 “너무도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갇혀 맴돌며, 살인과 복수가 우글대는 꿈을 꿔왔다”며 사냥꾼이 쳐놓은 올가미로 사냥꾼을 잡는 것처럼 그(가해 작가)를 책 안에 가두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선언했다.○ “권력형 성폭력 폭로 계속돼야” 한국에서 문단 성폭력 폭로는 2016년 나왔고, 2018년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이를 본격적으로 고발하는 신호탄이 됐다. 최 시인의 행동은 문단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로 이어졌지만 프랑스에선 아직까지 추가 폭로가 나오지 않았다. 저자는 “출판사들이 판매 중이던 마츠네프의 책을 회수했고 2013년 그에게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수여했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사임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도 “문단은 여전히 비밀스러운 영향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 또 다른 폭로로 번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에는 대만에서도 문단 내 성폭력을 다룬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발표됐다. 저자 린이한은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 아니냐”는 문단과 독자들의 추궁에 시달리다 출간 두 달 만에 26세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문학 강사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스프링고라는 “때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의 저항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런 유형의 학대를 증언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종이책 홍보, 예전처럼 안 합니다”

    Q. 개츠비의 성대한 파티에 초대된 당신!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1. 파티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옷은 뭐 입지? 2. 초대를 받아서 가긴 가야 하는데…. 귀찮다. 첫 질문에 2번을 클릭하고 12개 질문에 추가로 답하자 출판사 문학동네가 2012년 세계문학전집 94번째 작품으로 발간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표지 이미지가 떴다. 작품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 기자의 성격과 가장 비슷한 고전문학 캐릭터라고 한다. 문학동네가 지난달 22일 자사(自社) 블로그에 게시한 ‘세계문학전집 MBTI 테스트’다. 이 테스트에는 9일까지 20만 명 넘게 참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출판사의 톡톡 튀는 마케팅 아이디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문학동네의 MBTI 테스트는 세계문학전집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이벤트다. 김혜연 문학동네 마케터는 “코로나 시국에 책이 많이 읽힌다고 하지만 독자들은 해외 문학을 가장 마지막으로 찾는다”며 “독자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책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학동네는 이벤트 참여자 중 10명을 추첨해 세계문학전집 중 표지를 새로 바꾼 ‘리커버 도서’를 증정했다. 독자들은 이벤트 결과와 상관없이 “꽤 정확하다” “내 실제 MBTI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링크를 공유하고 있다. 해당 이벤트가 시작된 날 문학동네의 ‘프랑켄슈타인’과 ‘오만과 편견’은 인터넷 서점의 실시간 검색도서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유튜브를 통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최근 출판사들이 유튜브에 뛰어들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건 민음사가 운영하는 ‘말줄임표’다. 현재 민음사TV 구독자는 약 4만3800명. 문학동네(2만1200명)나 창비(1만2800명)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많다. ‘말줄임표’에는 한국문학팀 편집자 2명이 직접 출연해 ‘교과서 속 문학’ ‘편집자 가방 속 책’ ‘북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출판사와 상관없이 책을 소개하고 있어 민음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가 내놓은 책이 더 많다. 자사 책 소개 영상을 주로 올리는 다른 채널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것이 오히려 구독자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있다. 이 채널은 에피소드별 추천 책 목록이 만들어져 블로그 등에 공유될 정도로 공신력을 얻었다.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나쓰메 소세키 전집 등 굵직한 책들을 펴낸 현암사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발랄하고 독자 친화적인 게시물로 호응을 얻고 있다. SNS에서 인기를 끈 ‘밈’(meme·출처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을 가져와 이벤트를 홍보하는가 하면 ‘남탕(남의 책 탐방기)’ ‘마작(마스크 쓰고 작은 서점 가기)’ 등의 콘텐츠를 연재하고 있다. 출판계 관계자는 “현암사 인스타그램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최근 2∼3년 새 팔로어 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이는 출판사의 이미지 변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이 사람이 쓰는 법]“살빼려다 거식-폭식… 거울속 내가 물었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같이 조여서 말라 죽자. #프로아나 #뼈말라.” ‘뼈의 모양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랐다’는 뜻의 단어 옆에서 ‘프로아나’라는 낯선 표현을 발견했을 때 김안젤라 씨(36·사진)는 문득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의미를 알아보니 이 단어는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와 ‘거식증(anorexia)’의 합성어로 마른 몸매를 위해 섭식을 강도 높게 제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중생 혹은 여고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보고 김 씨는 섭식장애의 일환인 폭식형 거식증을 앓았던 17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를 계기로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창비)를 쓴 김 씨를 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제 경험이 섭식장애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랐어요. 의학계에선 다이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섭식장애 1단계로 보는데, 한국 사회에선 다이어트가 너무 흔해서 이런 사실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김 씨는 무작정 블로그 계정을 열고 처음 섭식장애를 앓기 시작했던 19세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섭식장애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겠다는 사명감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벗어난 어두운 터널을 다시 걷는 작업은 고통스러웠다. 김 씨는 “특히 폭식할 때 끓어오르는 음식에 대한 극심한 욕망을 묘사할 때는 질병을 앓고 있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실제로 재발할 뻔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며 음식과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학습했고 이것이 섭식장애로 이어졌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지금보다 더 엄격하고 왜곡됐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외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건강에도 관심을 쏟는 분위기로 변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김 씨는 “실제 몸무게보다도 근육량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눈바디’(체중계가 아닌 거울을 통해 몸을 확인하는 것)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건강함을 위한 근육’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근육’을 추구한다면 체중계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 씨가 섭식장애를 극복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줬던 건 그의 ‘일’이었다. 패션 매거진 기자, 강의 콘텐츠 MD 등 다양한 일을 해 온 김 씨는 일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한때 양 허벅지 사이의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눈바디’로 살피며 강박적으로 살을 뺐던 김 씨는 이제 허벅지에 ‘기능하는 근육’을 기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기 좋게 올라붙은 허벅지 모양을 위한 근육이 아니라, 지난해 취미 붙인 스노보드에 실제로 쓰일 근육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모두가 각자의 스노보드를 찾았으면 좋겠어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영화로 만나는 제인 오스틴의 그녀들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2005년)은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손에 책을 들고 들판을 거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적 상상력이 필요한 지점에서 감독은 ‘읽는 여자’이자 ‘걷는 여자’였던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원작소설을 쓴 제인 오스틴의 오랜 팬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그녀의 지성뿐 아니라 걷기와 저항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한다. 책은 오스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공연 등 14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당대에도 탁월한 풍자와 은근한 유머로 사랑받은 그의 작품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급진성을 획득했다. 로저 미첼 감독은 영화 ‘설득’(1995년)에서 원작에 없는 설정을 가미해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오스틴은 원작소설에서 ‘여자는 배에 탈 수 없다’는 당시의 편견을 거부했다. 미첼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선원의 아내인 주인공 앤 엘리엇을 ‘기다리는 아내’에서 ‘항해하는 아내’로 둔갑시켰다. 오텀 드 와일드 감독의 ‘엠마’(2020년)에서도 주인공 엠마의 캐릭터가 각색됐다. 원작에서 뚜쟁이 엠마는 주변 사람들 중 같은 계층끼리 만나도록 연결해주기 바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2020년의 엠마는 하층 계급에도 차별 없이 다가선다. 원작의 변주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나는 흔히 쓰는 ‘원작에 충실하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으며 대사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영화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959년 첫 국산 라디오가 영화산업 꽃피우다

    ‘금성 라디오 A-501’.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생산한 라디오의 모델명이다. 대부분의 전자기기를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국산 라디오의 의미는 단순한 상품에 그치지 않았다. 라디오가 일반에 보급되자 이와 연관된 시장과 문화가 만들어졌다. A-501을 소장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대한역박)은 “금성 라디오의 탄생은 1960, 70년대 ‘기술만이 국력’이라는 구호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대한역박이 근현대 시기 소장품 4점을 집중 연구한 성과를 보고서로 최근 발간했다. 박물관은 약 15만 점의 소장품 가운데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친 상설전시실 전시유물 4점을 선정했다. 금성 라디오-501과 장면 정부 보고 자료인 ‘경제발전을 위한 대정부 건의’, 6·25 전쟁고아 감사편지,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금강산 안내지도다. 62년 전 등장한 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라디오 드라마’ 시대를 열었다. 금성 라디오의 출시 당시 가격은 2만 환으로 수입 라디오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라디오가 급속도로 대중에게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에 힘입어 1964년 10월부터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 ‘우리아빠 최고’는 높은 인기를 끌어 400회까지 제작됐다. 성공한 라디오 드라마는 영화로 제작됐을 때 흥행에 성공할 확률도 높았다. 영화 제작자들은 실패를 줄이기 위해 ‘청실홍실’을 비롯한 라디오 드라마를 원작으로 다수의 영화를 만들었다. 국산 라디오 보급이 국내 영화산업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보고서는 라디오 조립을 국가산업 관점에서 받아들인 국내 분위기도 짚었다. 당시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선 라디오 조립이 취미생활로 여겨졌지만 생산기반 시설이 절대 부족했던 한국에선 국가산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1960년 12월 발간된 ‘경제발전을 위한 대정부 건의’는 장면 정부가 추진하려 한 경제정책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문건이다. 박물관은 당시 종합경제회의를 심층 분석해 장면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수행한 활동을 조명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유물이나 과거의 문건만이 좋은 연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흔한 종이쪼가리처럼 보이는 소장품도 훌륭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만든 ‘금강산 관광 안내 리플릿’은 일제강점기 때 금강산 관광산업의 실체를 조명할 수 있는 문건이다. 1897년 6월 12일자 독립신문에는 금강산 관광객 모집광고가 실렸다. 금강산 단체관광은 일제가 식민통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조직한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서 본격화됐다. 그러다 1930년대 후반 들어 일정별 관광 코스가 정해지고 인근 여관을 소개할 정도로 체계화됐다. 박물관은 보고서에서 “금강산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순수한 조선 민족심의 상징인 동시에 관광이라는 외피를 입은 식민성이 현현한 장소였다”고 분석했다. 6·25 전쟁고아 편지는 보호자를 잃은 고아와 보육단체들이 후원자들의 원조를 지속적으로 받아내기 위해 어떤 피드백을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시덕 대한역박 조사연구과장은 “생활용품 연구는 사료가 아닌 실물 중심으로 접근하기에 당시 생활사와 사회문화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꿈의 초콜릿공장 주인은 나야 나”

    그윽한 눈매의 성숙한 청년 이미지인 티모테 샬라메(26)와 청량한 미소의 소년을 연상케 하는 톰 홀랜드(25). 두 사람 중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윌리 웡카’에 누가 더 어울릴까. 제작사 워너브러더스가 지난달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속편 ‘웡카’ 제작계획을 발표한 이후 웡카 역에 어떤 배우가 캐스팅될지에 영화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세계 최고 초콜릿 공장의 설립자 웡카가 자신의 공장을 이어받을 어린이를 찾기 위해 초콜릿에 숨겨둔 ‘황금 티켓’으로 세계 각국에서 어린이 5명을 초청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로도 1971년과 2005년 두 차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 영화 역시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던 공장의 환상적인 내부와 공장 곳곳의 신비로운 캐릭터들을 영상으로 잘 표현해 동심을 사로잡았다. 속편 웡카의 제작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만든 데이비드 헤이먼이 맡았다. 메가폰은 영화 ‘패딩턴’ 시리즈의 감독 폴 킹이 잡는다. 패딩턴 시리즈에서 킹 감독과 호흡을 맞춘 각본가 사이먼 파너비가 이번에도 대본을 집필한다. 속편에서는 초콜릿 공장을 열기 전 젊은 웡카가 겪은 모험담이 다뤄질 예정이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제작진은 소니픽처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한 홀랜드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인공 샬라메를 웡카 역의 배우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영화 ‘라라랜드’ ‘노트북’ 등에 출연한 라이언 고슬링과 ‘월플라워’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에즈라 밀러가 주연배우로 한때 거론됐지만, 제작진은 좀 더 어린 20대 중후반의 배우를 캐스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팬들 사이에선 제작사가 1971년 개봉한 진 와일더 버전의 웡카를 찾는다면 홀랜드를, 2005년 개봉한 조니 뎁 버전을 준비한다면 샬라메를 캐스팅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오가고 있다. 와일더는 영화에서 곱슬한 금발에 붉은색 중절모를 쓰고 웡카 역을 연기했다. 뎁은 짙은 갈색 단발머리에 검은색 중절모를 썼다. 제작진은 “앞으로 4개월 이내에 촬영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봉 예상일은 2023년 3월 17일.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인간이 神의 작품이라고요?

    진화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쓴 종교 비판서다. 2006년 ‘만들어진 신’을 통해 진화론 시각에서 종교의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한 지 15년 만이다. 저자는 비판의 수위를 한층 높였다. 1부 ‘신이여, 안녕히’에선 성경에 드러난 오류와 모순, 신의 부도덕함을 들춰내며 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의 시각에서 아브라함을 시험에 들게 한 신은 마치 질투심 많은 아내가 남편을 시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죄 없는 맏아들을 죽게 한 신은 잔인한 아동학대범과도 같다. 성경에는 방주를 타고 탈출한 노아의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각 대륙에선 해당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동물들의 뼈만 나왔다. 도킨스는 만일 신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쓴다면 신에게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내 아들을 인간으로 변신시켜 모든 인간을 대신해 고문당해 죽게 하면 어떨까? 미안하구나.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을 모르겠구나. … 나는 너를 여자의 자궁에 넣을 것이다. 너는 아기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고, 10대의 불안을 포함해 모든 것을 겪어야 할 거야.” 그는 책 후반부에서 동물행동학과 집단유전학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주장한다. 놀랍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생물체는 신의 재주가 아니라 자연과 진화의 법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우리가 추울 때 소름이 돋는 게 여러 증거 중 하나다. 온몸이 털로 덮여 있던 인간의 먼 조상은 털을 일으켜 세우는 것만으로 체온을 높일 수 있었다. 이제 인간의 몸은 더 이상 털로 뒤덮여 있지 않은데도 여전히 찬 바람에 소름이 돋는 건 진화의 흔적이 남아서다. 만약 태초의 인간이 피부가 매끈한 아담이라면 이런 흔적은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 종교로 인한 대립이 극심한 때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에 공감하는 무신론자라면 흥미를 끌 만한 책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1-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AI, 읽기 힘든 古典 한글로 번역 부탁해∼”

    한국고전번역원(번역원)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고전 번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전 자동번역 서비스는 승정원일기 모델과 천문 고전 모델 두 가지로 나뉘어 공개됐다. 우리나라에서 한문으로 쓰인 국내 고전 번역에 AI 기술을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고전을 국문으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실물에 적힌 원문을 컴퓨터로 옮기고, 이 원문에 문장부호(표점)를 표기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원문 고전에는 고리점(마침표) 등 문장부호가 전혀 표시돼 있지 않아 전문 번역가가 표점을 찍는 작업만 완료해도 연구하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표점이 찍힌 텍스트를 국문으로 번역하면 비로소 국문 번역본이 나온다. 국내 최초로 AI 번역 기술을 개발하는 데 승정원일기가 활용된 이유는 우리 고전 중에서 비교적 번역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의 지시 내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전체 3243권 중 약 30%가 국문으로 번역된 상태다. 나머지 70%가량은 표점 작업만 마친 채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승정원일기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AI 번역기는 전문 번역가가 옮긴 30%의 데이터를 토대로 개발됐다. 승정원일기 웹사이트에 공개된 고전 원문을 자동 번역기에 넣으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70%의 내용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승정원일기의 국문 번역본에 기반을 두고 개발한 기술이어서 조선왕조실록 등 원문이 공개된 다른 고전을 넣으면 번역 정확도가 다소 떨어진다. 번역원이 AI 자동 번역 개발에 활용한 ‘말 뭉치’는 120만여 건에 이른다. 여기에 인명, 지명, 관직명 등 고유명사는 하나의 의미 있는 단어로 인식하지 않도록 따로 모아 학습시켰다. AI의 번역 결과가 승정원일기 초벌 번역으로 활용될 정도로 정확도는 높진 않지만 대학생이나 일반인이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활용 가치가 높을 거라고 번역원은 내다봤다. 정영미 번역원 역사문헌번역실장은 “승정원일기는 다른 고전에 비하면 비슷한 내용이 동일한 문체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 AI 학습에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14일 공개된 번역 서비스는 25일까지 1만7700여 명이 이용했다. 천문 고전 AI는 승정원일기의 데이터에 천문고전서 40여 권에서 뽑아낸 약 6만 건의 말 뭉치를 더해 개발했다. 서윤경 천문연 선임연구원은 “고전에 드러난 별자리와 기상 관측 결과, 관측기기 등을 활용해 2차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엉성하더라도 초벌 번역으로 활용할 자동번역 서비스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천문 고전 AI는 기상 현상, 관측기기 이름 등 고유명사를 수천 건 학습하도록 해 고(古)천문학자들이 연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백한기 번역원 고전정보센터장은 “표점을 찍는 등 번역 기초 작업이 활발히 이뤄져야 자동번역 개발에도 속도가 난다”며 “아직 번역되지 않은 70%의 승정원일기도 번역하는 대로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전 자동번역 서비스는 번역원과 천문연 웹사이트, 또는 한국고전자동번역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1-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장애-동물-장례… ‘다큐 맛집’ 된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다큐멘터리 자체 제작에 힘을 쏟으면서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틀을 넘어 다양한 주제를 새로운 형식이나 분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강점. 특히 지난해 선보인 작품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을 다수 수상하면서 ‘다큐 맛집’으로 각광받고 있다. ○ 장애, 동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 “캠프 첫날 지도교사가 키스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제 생애 가장 훌륭한 치료였죠.” 한 남성 장애인이 말한다. 난생처음 장애인도 성적 욕구를 지닌 한 인간으로 존중받았다고 느꼈다며, 이는 병원에서 받아 온 어떤 물리치료보다 삶에 더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국의 장애인 인권 발달사를 다룬 다큐 ‘크립 캠프―장애는 없다’의 한 장면이다. 다큐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1971년, 한 마을에서 열린 장애인 캠프에서 시작된다. 장애인이 소수자가 아닌 환경에 놓인 참가자들은 비장애 친구들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보여준 적 없었던 편안한 표정으로 캠프를 즐긴다. 캠프 말미에 이들이 나누는 토론은 장애인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가슴을 때린다. “아무리 엄마에게 화가 나도 화를 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 엄마는 나를 씻기고 보살피는 사람이어서 자칫 화를 냈다간 도움을 못 받게 되거든.”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심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우연히 바닷속에서 마주치게 된 인간과 문어가 교감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의 인물들처럼 인간의 손과 문어의 빨판이 최초로 닿는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번식하며 희생하는 작은 암컷 문어는 조용한 경외심에 사로잡히게 한다. 영상 전반에 낮게 깔려 바다의 모습을 더욱 장엄하게 만드는 배경 음악이 일품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톡톡 튀는 각본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감독 커스틴 존슨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수십 년을 살다 은퇴 후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 딕 존슨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로 한다. 주제는 다름 아닌 ‘딕 존슨의 죽음’. 딕은 미리 치르는 장례식을 통해 막역한 친구의 추도사와 조문객들의 표정을 엿본다. 평생을 성치 못한 발가락으로 살았지만, 딸이 만든 ‘천국 스튜디오’ 영상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온전한 다섯 발가락을 얻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함께 맨발로 춤춘다. 익살스러운 장면이 끊임없이 튀어나오지만 이 작품이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딸의 반성문이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커스틴 감독이 제안하는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부모의 죽음과 남은 삶을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다. 시리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프로풋볼 리그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미식축구 시리즈 ‘라스트 찬스 대학’은 2016년 첫선을 보인 후 지난해까지 5개 시즌이 제작됐다. 이들 작품에 외계인과의 교신에 일생을 바친 남자를 다룬 ‘존의 컨택트’를 더한 5개 작품은 미국 HBO, 내셔널지오그래픽 등과 겨루는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에서 최근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한 장르”라며 “시의성 있는 작품을 발 빠르게 제작하는 것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1-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지금은 우주시대, 공부하세요!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지구인의 존재는 최대한 감추고 외계에서 감지되는 인공적인 신호를 먼저 포착하는 데 몰두하는 게 좋을까. 인공적 신호의 발신 및 감지를 통해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적 작업을 ‘세티(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고 한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리 존재를 외계 생명체에 먼저 알렸다가 지구인이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일부 우주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었다. 논의는 “이 중대한 결정을 우주과학자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천문학자로, 세티코리아 대표인 저자는 지구인이라면 책임 의식을 갖고 우주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빅뱅이론부터 우주과학계 최신 뉴스까지 아우른다. 우주는 더 이상 일부 연구자의 영역이 아니며 모든 지구인이 우주과학계의 각종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티를 우주과학계에서 적극적으로 우주에 인공 신호를 보내는 ‘메티(METI·Messaging to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로 발전시킨 이유는 TV, 라디오, 휴대전화에서 발생한 전파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유 있는 결정이었다고 해도 이 같은 중대한 사안에 사회적 토론이 없었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티 프로젝트는 1984년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지만 2015년에야 미국 과학진흥협회 등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각각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산업에 뛰어들었다. 달에서 물로 된 얼음층이 발견되며 자급 가능한 달 기지를 상상해볼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중국, 아랍에미리트(UAE)는 인간의 화성 이주를 꿈꾸며 화성 탐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주과학계의 일원으로서 밤하늘을 바라봐야 할 때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1-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