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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n‘s Gone Now’를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면 ‘내 남자가 잠깐 빵을 사러 나갔다’로 들리지만, 빌리가 부르면 ‘내 남자가 짐을 싸서 영영 떠나버렸다’로 들리죠.”(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빌리’ 중) 전설적 재즈 보컬 빌리 홀리데이(1915∼1959)는 쓰디쓴 커피만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격동의 삶을 살다 갔다. 10세 때 성폭행을 당한 뒤 성매매 여성으로 살았으며 남편과 연인의 학대와 착취, 약물중독에 평생 시달렸다. 고난의 심연에서 뽑아낸 듯 ‘I’m a Fool to Want You’ ‘Don‘t Explain’ ‘God Bless the Child’ 등 명연을 숱하게 남겼다. 4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빌리 홀리데이’는 그런 그의 삶을 새로 채색한 작품이다. 전기 영화이되 픽션이다. 홀리데이 역을 맡은 R&B·솔 가수 앤드라 데이(37)가 놀라운 열연과 열창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체화해냈다. 배우 데뷔작임이 믿기지 않는다. 데이의 음성은 홀리데이에 비해 두께가 얇지만 그 기교는 물론이고 나른하며 비통한 표정까지 모사한 열창 장면들이 모조리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명곡 ‘Strange Fruit’을 부르는 데이의 클로즈업 장면이 압권이다. 인종주의자들의 린치로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흑인들의 모습을 이상한 과일로 비유한 곡. 영화의 원제는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즉 ‘합중국 대 홀리데이’다. 개인의 비극적 삶을 넘어 인종차별에 맞선 투사로 홀리데이를 조명한 영화의 의도에 데이의 열연이 호응한다. 그간 홀리데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았다. 2019년 작 ‘빌리’도 그중 하나. 그러나 극영화인 ‘빌리 홀리데이’가 나온 건 1972년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 이후 49년 만이다. 당시 주연은 당대의 팝스타 다이애나 로스였다. ‘레이디…’는 인종차별과 마약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사에 초점을 맞췄다. 극 분위기가 밝고 로맨스의 비중이 높았고 로스의 연기도 시종 밝은 편이었다. 그룹 ‘슈프림스’ 출신의 로스는 흠잡을 데 없는 가창을 들려줬지만 홀리데이의 무게감을 재현한 깊이의 측면에서는 데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로스와 데이는 각각 홀리데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골든글로브에서 로스는 신인여우상, 데이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채널A 인기 육아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매주 금요일 오후 8시)가 올해 처음 제정된 아동 권리 관련 상인 ‘초록우산 어워드’를 수상했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는 11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미디어 콘텐츠 분야 최고상인 ‘내 인생 최고의 영상’에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오은영 박사는 인물 분야 최고상인 ‘우리들의 우상’ 부문을 수상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3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초록우산 어워드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관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수상자 선정에 직접 참여했다. 전국 129명의 지역별 아동심사위원단이 후보자를 선정한 뒤 8월 24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생의 인터넷 투표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어느 겨울밤, 서울 마포구의 음악 바. 테이블 앞에 비치된 신청곡 용지로 손을 뻗는다. 알파벳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다. ‘Pat M…’ 여기까지 쓴다면 내 친구 Y는 아마 또 탄성을 지르겠지. “오, 팻 메시니! ‘Are You Going with Me?’ 들으려고? 이런 날 딱인데….” 하지만 나는 오늘 당신의 기대를 깨고 싶다. 노랗게 변색된 종이 위로 난 이제 막 어떤 재즈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마저 적어 넣으려 한다. #1. ‘Pat M…artino’. 그렇다. 나는 지금 미국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마티노(본명 Patrick Azzara)의 기이한 인생에 관해 생각하던 참이다. 메시니만큼 대중적 열광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세계 재즈 음악가들의 상찬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역사적 연주자. 마티노는 10대 때 이미 두각을 나타냈다. 데뷔작 ‘El Hombre’(1967년)부터 그가 지닌 음표의 온도는 유별났다. 스윙 리듬의 찰기가 넘치는 비밥부터 실험적 재즈 퓨전까지…. 다채로운 팔레트 위를 질주하는 그의 기타는 듣고만 있어도 귀가 개운해진다. 명료하고 이지적이지만 따뜻하고 종종 뜨겁다. #2.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 경구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들은 늘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고 없는 죽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마티노의 삶을 설명하려면 저 경구를 조금 비틀어야 한다. 메멘토 비타(Memento vita). ‘삶을 기억하라.’ 마티노는 그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자신의 삶을 기억해내는 데 보내야 했다. #3. 장애를 극복한 음악가를 마주할 때면 겸허해진다. 4년 전 이맘때 경기 가평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만난 미국 재즈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턴이 생각난다. 세계적 연주자인 그는 2016년 여름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낙상으로 인한 양팔 골절상과 오른팔 신경 손상. 기타리스트에겐 거의 사망선고였다. 피나는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곱아서 굳어버린 오른손가락에서 픽(pick·손에 쥐고 기타를 퉁기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 가발 고정용 풀과 양면테이프로 손을 고정한 채 무대에 오른다. 그는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고통도, 자신마저 잊어버린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4. 2016년 만난 미국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케빈 컨은 시각장애를 가졌다. 바로 맞은편에 앉은 기자의 형체는 어렴풋이 보이지만 이목구비는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컨은 미니애폴리스시 외곽 숲 지대에 산다. 그곳의 대자연은 컨의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많은 걸 들려준다. 사슴, 여우, 코요테의 울음이 만드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와 희미하게만 보이는 초록 풍경이 컨의 음악이 태어나는 곳이다. #5. 어떤 불행은 잠입하지 않는다. 별안간 닥쳐온다. 연주자로 최고의 입지를 누리던 1980년, 팻 마티노는 급성 출혈성 뇌동정맥기형으로 뇌수술을 받는다. 대수술은 그를 죽음에서 건졌으나 삶의 일부를 소실시켰다. 뇌수술 뒤 과거의 기억을 거의 모두 잃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가 눈앞에 내민 앨범 한 장에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너야. 기억나니?” 앨범 표지에는 기타를 든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지금 기타 줄이 몇 개인지도 모른다. 마티노는 저 남자, 마티노라는 기타리스트가 다시 돼보기로 했다. 도레미파부터 다시 시작한 기타 연습. 그리고 연습에 연습…. 그렇게 무려 7년 만에 복귀 앨범 ‘The Return’(1987년)을 내놨다. 그의 기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뜨거운 음표의 화염을 스피커 밖으로 내뿜는다. 그 뒤로 2017년 작 ‘Formidable’까지 15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기타 강습 비디오도 여러 편 찍으며 최고의 연주자로 황금의 나날을 보냈다. #6. 카세트덱의 카운터가 ‘0’으로 리셋되듯 내게 완전히 새로운 또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면? 과거의 삶을 따라잡으려 애쓸 것인가, 새로운 삶을 꿈꿀 것인가. 수십 년간 쌓은 성과를 몇 년 만에 재현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것은 의지의 영역일까, 재능의 영역일까. 마티노가 이달 1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마티노는 그렇게, 기타리스트로 두 번 살았다. 두 번의 삶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국 재즈계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연주자 41명이 뭉쳤다. 프로젝트 그룹 ‘한국재즈수비대’다. 22일 음반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를 낸다(디지털 음반은 10월 28일 먼저 발매). 기획자는 젊은 연주자 박한솔(34·베이스) 이하림 씨(29·피아노). 그간 국내 재즈계의 굵직한 프로젝트가 중견 연주자나 평론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돌아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용감한 기획이다. 4일 만난 두 사람은 “위기의 재즈계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당장 시작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폐업(작년 11월)이 발단이었지만 음반을 제작하는 몇 달 사이에 부산의 ‘몽크’, 서울의 ‘올 댓 재즈’도 줄줄이 문을 닫았어요. 비통한 심정으로 제작에 임했죠.”(박한솔) 재즈에서는 어떤 장르보다 라이브 클럽이 중요하다. 연주자 간 교감과 즉흥 연주가 재즈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합이 좋은 연주자들끼리 새 밴드, 새 음반을 구상하는 것도 클럽에서다. “삶의 의미를 못 찾아 방황하던 스무 살, 친구 따라 몽크에 갔다가 재즈 음악과 강렬한 접신을 했죠. 매주 부산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 클럽 ‘에반스’에 가서 잼(즉흥연주)을 했어요. 재즈 클럽은 생을 구한 감사한 존재죠. 이젠 그를 위해 제가 뭔가 해주고 싶었어요.”(이하림) 두 사람은 팬데믹으로 클럽 공연과 행사 섭외가 막힌 젊은 연주자들을 불러 모으고, 작사 작곡을 해 여덟 곡짜리 음반을 만들었다. 2000만 원이 넘는 제작비는 타던 차까지 팔아 충당했다고. 8곡 하나하나에 각 클럽을 음악적으로 묘사해 담았다. ‘서교동 야자수’는 클럽 팜, ‘천년의 섬’은 클럽 천년동안도를 기리는 식이다. 마지막 곡 ‘야누스, 그곳은 처음의 나무’는 디바 야누스의 운영자이자 재즈 보컬인 말로가 노래했다. ‘숲을 꿈꾸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아무 말 없이 이곳을 난 지켜왔네’ 하는 가사가 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앨범 제목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가 모토가 되고 큰 움직임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박한솔) 26일 서울 마포구 ‘문악HOM’에서 음악 감상회도 연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한국재즈수비대’를 검색하면 참여와 후원 방법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일일이 조사해 만든 ‘전국 재즈 지도’도 앨범과 티셔츠에 담았다. “재즈수비대는 두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41명이 됐고 이제 후원자 모두, 그리고 음반을 들어주시는 모두로 확대됩니다. 우리가 우리를 안 지키면 어떡하겠어요.”(이하림)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세계적 대중음악 교육 기관인 미국 버클리음대에 76년 역사상 처음으로 올 7월 여성 총장이 취임했다. 요즘 한국 문화에서 예술과 교육의 미래를 엿본다는 에리카 멀 총장은 첫 해외 출장지를 서울로 정했다. 그리고 국내외를 막론한 취임 후 첫 인터뷰로 6일 서울 마포구에서 본보와 마주했다. 멀 총장은 “재즈, 포크, 가스펠 등 타 장르와 대등하게 케이팝을 별도의 학제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클리음대는 그간 한인학생회 주최로 열던 연례 콘퍼런스 ‘케이팝 서밋’도 학교 차원의 대규모 행사로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영화 ‘기생충’, 방탄소년단, 케이콘을 보며 첨단 기술과 예술의 대담한 결합, 강렬한 내러티브의 힘을 동경했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역시 문화적으로 다채롭고 진보적 사고로 가득하군요. 여기서 받은 영감을 어서 학교에 출근해 적용하고 싶습니다.” 4∼7일에 걸친 멀 총장의 방한은 버클리음대와 협약을 맺고 10년째 장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CJ문화재단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멀 총장은 방한 기간 CJ와 서울재즈아카데미 관계자, 버클리음대 한국인 동문들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재즈 연주자 게리 버턴부터 팝 그룹 이매진 드래건스까지 다양한 음악가를 배출한 이 학교에는 김동률 윤상 켄지(SM 작곡가) 등 한국 음악인들도 다수 거쳐 갔다. 멀 총장은 클래식 작곡가, 지휘자 출신이다. 30년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음악 교수로 일했다. 2013년 스타 음악 프로듀서 지미 아이오빈, 닥터 드레와 의기투합해 USC 내에 ‘지미 아이오빈·앤드리 영(닥터 드레의 본명) 예술·기술·혁신경영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학장을 지냈다. 버클리음대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지명한 그는 예술·기술·혁신 특성화고교를 내년 로스앤젤레스에 세울 계획이다. “아우르는 학문 분야만큼이나 젠더와 인종도 다양한, 독특한 학제죠. 저는 다양성과 포용력이 예술가의 세계관과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문화의 세계화는 그의 새 롤모델이다. 멀 총장은 “대중문화와 그 유통 양상에서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 사례가 케이팝”이라며 “스토리텔링과 강렬한 시각 요소를 음악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줬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극찬했다. 멀 총장은 첨단 기술과 급변하는 사회의 보폭을 고등교육이 따라가지 못한다고도 진단했다. “스탠퍼드대나 예일대의 고민도 비슷할 것입니다. 온라인에 넘치는 정보를 맥락화하고, 온라인과 가상현실을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미래 적응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본교를 둔 버클리음대는 최근 몇 년 새 뉴욕은 물론이고 스페인 발렌시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도 분교를 세웠다. 멀 총장은 내슈빌, 로스앤젤레스 분교 신설도 고려 중이라고 귀띔했다. “음악과 내러티브의 결합에 있어 할리우드를 품은 서부는 주요 거점이죠. 케이팝과 파트너십을 다지는 데도 유리하다고 봅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11월 세계 음악계가 ‘A의 전쟁’으로 물든다. 5일부터 꼭 일주일씩 간격을 두고 아바가 40년 만의 신보를, 데이먼 앨반(53·밴드 블러, 고릴라즈의 리더)이 7년 만의 솔로작을, 아델(33)이 6년 만의 앨범을 낸다. 선공개한 싱글들이 모두 호평 받고 있다. 공교롭게 이름이나 팀명에 모두 A가 새겨져 있다.○ 아바, 40년 만의 앨범 들어보니 “1970, 80년대로 돌아가는 항로는 내 삶의 지도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바타(ABBAtar) 투어란 아이디어가 생기기 전까지는….” 기자와 4년 전 독점 인터뷰에서 아바 멤버 베니 안데르손(75)이 말했다. 당시 안데르손이 2019년으로 예정했던 멤버들의 분신(avatar) 월드투어가 내년 시작된다. 국내 음원 플랫폼에는 5일 정오부터 서비스되는 아바 신작 ‘Voyage’의 전곡을 본보 독점으로 미리 들어봤다. 10곡에는 장식장에 넣어둔 오래된 LP판 냄새처럼 그 시절 아바의 향수가 충만하다. 40여 년 전 히트 곡과 무리 없이 섞이는 레퍼토리를 들려줘야 하는 아바타 투어의 고민이 그대로 감지된다. 신작의 열쇠는 여전히 앙네타 펠트스코그(71)와 안니프리드 륑스타드(76)의 가창. ‘Waterloo’ ‘Mamma Mia’를 수놓던 ‘탄산수’ 보컬은 더 이상 짜릿한 고음을 분출하지 않지만 특유의 다감한 목소리, 풍성한 화음이 음반 전체를 휘휘 감는다. 켈트 음악(‘When You Danced with Me’)이나 동요와 캐럴(‘Little Things’), 컨트리 발라드(‘I Can Be That Woman’)의 영향이 느껴지는 악곡 위로 두 여성 보컬은 다정한 모친처럼 노래한다. ‘Dancing Queen’ ‘I Have a Dream’의 스토리를 툭 건드려 깨우는 듯한 친근한 가사도 매력적이다. 오랜 벗을 초대한 연말 홈 파티에서 틀 만한 음반이다. ○ 앨반의 열반? 거장의 풍모 담은 신작 앨반의 신작도 미리 들어봤다. 1990년대, 밴드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 열풍을 선도한 블러의 리더, 세계 최초의 성공한 버추얼 밴드 ‘고릴라즈’를 성공시킨 ‘브레인’. 그가 이제 음유시인의 경지에 섰다. 11곡짜리 신작 ‘The Nearer the Fountain, More Pure the Stream Flows’에 앨반은 고즈넉한 모던 포크, 몽롱한 앰비언트 음악(편안한 환경 음악)을 섞어 청자를 낯설고 외딴 곳으로 데려간다. 물소리와 타악으로 시작하는 수록곡 ‘The Cormorant’ ‘Darkness to Light’, 혼란한 노이즈와 신경질적 관악을 혼합한 ‘Combustion’이 대표적. ‘나는 이 섬에 투옥된 것인가/헤엄쳐 떠나려 애썼네’라 읊조리는 앨반의 안개 낀 음성은 캐나다 음유시인 레너드 코언(1934∼2016)까지 연상시킨다. 록, 힙합, 아프리카 음악을 종횡하던 탐험가 앨반이 30여 년 항해 끝에 닿은 해안은 기암(奇巖) 가득한 무인도인 것 같다.○ 30대 첫 앨범, 중년 향하는 아델 ‘19’ ‘21’ ‘25’…. 아델은 지금껏 앨범 제목에 자기 나이를 붙였다. 삶의 이야기를 절창에 담았다. 신작은 ‘30’. 지난달 선공개한 싱글 ‘Easy on Me’는 절절한 모정을 담은 발라드다. 그 주위를 어떤 스토리와 멜로디가 둘러쌀까. 아바 해체 뒤 태어난 아델(1988년생)의 신작에는 아바의 수혜 아래 자란 스웨덴 음악가들, 즉 맥스 마틴, 셸백, 루드위그 고랜슨(루드비그 예란손·영화 ‘블랙팬서’ ‘테넷’ 음악감독)도 참여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국 전통 호랑이 설화를 소재로 방탄소년단이 등장하는 웹툰, 웹소설이 나온다. 하이브는 4일 유튜브로 중계한 ‘공동체와 함께하는 하이브 회사 설명회’에서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네 편의 작품을 내년 1월 15일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세븐페이츠: 차코(7Fates: CHAKHO)’다. 하이브 측은 “조선시대 범을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모티프로 한국 전통 설화를 엮어 재탄생시킨 이야기”라며 “운명으로 묶인 일곱 소년(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함께 시련을 겪고 성장하면서 왜 7명이어야 하는지, 운명은 무엇인지를 역동적인 스토리에 담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또 다른 작품인 ‘별을 쫓는 소년들’의 메인 캐릭터가 된다. 마법과 환상 동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이다. ‘다크문: 달의 제단’에는 그룹 엔하이픈을 등장시킨다. 하이브의 이런 시도는 인기 아이돌 가수의 팬덤과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스토리 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행보로 보인다. 최근 DC코믹스와 함께 배트맨 시리즈를 공개하며 글로벌 플랫폼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네이버웹툰과 협업해 케이팝, 게임, 웹툰과 웹소설을 두루 좋아하는 젊은층을 공략하는 포석이다. 하이브는 이날 국내 블록체인 기업 두나무와 글로벌 파트너십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NFT(대체불가토큰)를 활용한 아이돌 포토 카드(기념품) 등을 팬들이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수집, 교환, 전시하는 경험을 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국 전통 호랑이 설화를 소재로 방탄소년단이 등장하는 웹툰, 웹소설이 나온다. 하이브는 4일 유튜브로 중계한 ‘공동체와 함께 하는 하이브 회사 설명회’에서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네 편의 작품을 내년 1월 15일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세븐페이츠: 차코(7Fates: CHAKHO)’다. 하이브 측은 “조선시대 범을 잡는 ‘착호갑사’를 모티프로 한국 전통 설화를 엮어 재탄생시킨 이야기”라며 “운명으로 묶인 일곱 소년(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함께 시련을 겪고 성장하면서 왜 7명이어야 하는지, 운명은 무엇인지를 역동적인 스토리에 담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성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또 다른 작품인 ‘별을 쫓는 소년들’의 메인 캐릭터가 된다. 마법과 환상 동물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이다. ‘다크문: 달의 제단’에는 그룹 엔하이픈을 등장시킨다. 뱀파이어와 늑대 소년이 등장하는 판타지에 하이틴 로맨스를 결합했다. 소녀들이 등장하는 성장물 ‘크림슨 하트’도 환상과 모험을 접목한 판타지물이다. 하이브의 이런 시도는 인기 아이돌 가수의 팬덤과 지식재산권(IP)를 활용해 스토리 산업 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행보로 보인다. 최근 DC코믹스와 함께 배트맨 시리즈를 공개하며 글로벌 플랫폼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네이버 웹툰과 협업해 케이팝, 게임, 웹툰과 웹소설을 두루 좋아하는 젊은 층을 공략하는 포석이다. 하이브는 이날 국내 블록체인 기업 두나무와 글로벌 파트너십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NFT(대체불가토큰)를 활용한 아이돌 포토 카드(기념품) 등을 팬들이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수집, 교환, 전시하는 경험을 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훌륭한 기술자로서의 작사가를 뽑는 시험이 있다면 저는 아마 낙제일 거예요. 히트곡 수와 저작권료로 줄을 세운대도 마찬가지고요.”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씨(48)가 잔물결처럼 웃었다. 자신의 삶과 작사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출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책의 첫 장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율배반적 작품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연상케 한다. 전문 작사 기계가 되는 대신 진심을 담겠다는 다짐. ‘나는 작사가가 아니다.’ “어떤 글쓰기든 그 기본은 진짜 마음, 자신의 진심을 열어 보이는 거잖아요.” 그가 작사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장필순·1997년)는 세기를 넘어 음악 팬들의 마음속 창문을 끝없이 열어젖혀 서늘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올 한 해에만 다섯 차례 리메이크 됐다. 하얀 겨울이 멀리서 마중 나오는 이런 계절에 저 쓸쓸한 연가의 귓맛은 더 맵다. “스물네 살, 어느 추운 밤에 썼어요. 쉬운 말로 쓴 가사의 힘을 스스로 새삼 깨닫게 해준 곡입니다.” 그는 오빠 조동진(1947∼2017), 조동익 형제가 이끈 음악 공동체 ‘하나음악’의 신인 발굴 음반 ‘뉴페이스’를 통해 1999년 데뷔했다. 22년이 흐른 지금, 남매 중 막내인 그가 이제 손수 자신의 새 레이블 ‘최소우주’를 이끌고 있다. 신인 발굴도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가수 동은의 싱글 ‘을’이 시작점이다. ‘네오 유니버스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최소우주의 슬로건은 ‘문학적 음악’이에요. 작사 역량이 특히 돋보이는 싱어송라이터를 꾸준히 소개하려 합니다.” 조 씨와 최소우주는 내년 2월부터 ‘투 트랙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젊은 가수와 베테랑 가수가 하나의 신곡을 각자의 목소리로 불러 발표하는 시리즈. 첫 주자는 가수 정승환이다. 발표 전인 그 첫 곡 ‘연대기’의 가사를 조 씨는 신간에 미리 공개했다. 소설가 한강이 책에 추천사(‘네가 다 안고 가’라는 말을 코트 속에 품고, ‘흰 달빛처럼 혼자서 걷는’ 사람의 책)를 보탠 것도 흥미롭다. 한 씨는 조 씨 남매와 하나음악의 오랜 팬으로서, 신작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9월 출간)를 집필하며 조동익의 앨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제주의 풍광을 청각적으로 스케치한 음반 ‘푸른 베개’(2020년) 말이다. 제주도4·3사건을 다룬 한 씨의 소설과 맥이 통한다. 조동희 씨의 노래 가운데는 ‘그게 나예요’와 ‘동쪽 여자’를 특히 좋아한다고. 조 씨는 “2년 전 제 콘서트에 관객으로 오셨기에 인사를 나눈 뒤 가까워졌다. 한강 작가가 취미로 작사, 작곡도 하는데 자기 곡을 불러준 적도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함께 앨범을 내보자는 제안도 내가 했다”고 말했다. 조 씨의 마르지 않는 노랫말의 샘은 작은 단어 하나에서 흘러나온다. 사랑. “흔한 말이지만 그 정의는 오해되기 쉽죠. 상대를 옥죄는 미명도 되고요. 그러나 그이가 행복하면 나도 그냥 웃음이 나는, 그것이면 족히 사랑 아닐까요. 이 가을, 모두가 사랑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타다 서비스가 오늘부터 운행을 멈췄습니다.’ 극장 안을 건조하게 울리는 뉴스 코멘트. 그 위로 동글동글한 콘트라베이스의 양감이, 건축학적 피아노 화성이 올라탄다.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14일 개봉)은 시청각의 미스매치 기법이 절묘하다. 91분짜리 시사성 짙은 다큐멘터리에 시종 재즈 선율을 배치한 것.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윤석철 씨(36·사진)가 음악을 맡았다. 윤 씨는 가수 백예린, 자이언티, 폴킴의 연주, 작곡, 편곡도 맡은 전방위 재즈 음악가. ‘타다…’는 그의 영화음악가 데뷔작이다. “연출가(권명국 감독)께서 윤석철트리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작품을 촬영할 정도로 평소 팬이었다며 제안을 주셨지만 고민이 엄청 많았습니다.” 28일 전화로 만난 윤 씨는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둘러싸고 택시 노조와 타다의 갈등이 치솟는 장면을 작업할 때 가장 힘들었다. 비극성을 드러내려 단조로 만들었지만 어느 한쪽의 잘못도 아니기에 음악적 뉘앙스를 중립적으로 벼리려 여러 차례 음표를 고치고 화성과 악기도 덜어냈다”고 말했다. 영화는 타다 운영사인 VCNC 직원들의 분투를 주로 그린다. 하지만 잔상이 오래 남는 장면은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대도시 서울의 낮과 밤 풍경이다. 스크린 위로 윤석철의 이율배반적 음악, 즉 리듬은 경쾌하나 음표는 젖어 있는 선율들이 스칠 때의 공감각을 형언하기 힘들다. 윤 씨는 “무거운 악기를 싣고 공연장에 오갈 때 타다 베이직을 종종 이용해 봤지만 작곡가로서는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작곡 착수 전, 타다를 둘러싼 첨예한 쟁점과 의견을 최대한 많이 공부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미술 분야에서도 활약 중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내년 1월 2일까지 열리는 국내외 작가들의 특별기획전 ‘dreamer, 3:45am’, 김희수 작가의 ‘Normal Life Be Normal&People’(11월 28일까지 종로구 갤러리애프터눈)에도 음악을 보탰다. ‘dreamer, 3:45am’에서는 꿈의 세계를 음표로 그렸다. ‘ㄱ’자 공간에 펼쳐진 와이드 스크린이 배경. 그 안에 흩날리는 수만 개의 형광입자들이 입체음향으로 설계한 음표에 맞춰 춤춘다. 윤석철의 곡 ‘몽상가’(5분 47초)다. 비장하며 몽환적인 선율은 시각과 떼어서 들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드럼(김진영), 콘트라베이스(전제곤), 색소폰(박기훈)의 아날로그 연주를 녹음한 뒤 디지털로 보정하는 방식을 통해 풍성하면서도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화면 속 입자처럼 색소폰 음향 역시 바람에 날리듯 공간 속 스피커를 따라 움직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후반부 주제 선율은 망각의 세계로 저무는 꿈을 보는 허무감에 정신을 집중하며 피아노 위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창작했다고.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영화관과 전시장에서 울리는 저의 음악은 묘한 쾌감을 주더군요.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예술매체와 협업하고 싶습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섬진강변에 범상치 않은 흥이 내려온다.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전남 곡성군에서 열리는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다. 26일 전화로 만난 김백기 예술감독은 “직접 참여, 비대면 참여를 합해 총 26개국 38명의 예술가가 섬진강변에 실험예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부려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PANDEMIC… Hello ? Goodbye !’다. 메타버스와 GPS 기술을 대폭 활용해 팬데믹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조망하는 것이 특징이다. 첫날 압록유원지에서 열릴 개막 공연 ‘섬진강 아트 콘서트’가 그 한 예다. 콘서트는 판소리의 대표적 갈래인 동편제와 서편제를 나누는 경계선이 섬진강임에 착안했다. 각각 동편제와 서편제를 대표하는 김소현 권하경 명창, 동·서편제를 조화시킨 유파인 동초제의 박정선 명창이 한데 모여 우리 소리의 스펙트럼을 펼쳐낸다. 시낭송, 진혼무, 두루미춤, 굿, 길놀이가 거들고, 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작가의 설치 미술이 오라를 더한다. 무대 위 모니터에서는 GPS 앱을 통해 섬진강과 대황강의 형상을 실시간 드로잉으로 구현해낸다.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의 용궁 탈출 대목을 해학적으로 선보일 김소현 동편제 명창(섬진강 판소리학교 교장)은 “서편제가 양념 잘한 음식처럼 인정 많고 맛있는 소리라면 동편제는 장작 패듯 호방한 소리가 특징”이라며 “그간 문화적 조명이 적었던 지방에서 전통문화와 첨단 예술을 아우르는 축제를 한다고 하니 더욱 뜻이 깊다”고 말했다. 이 공연에 앞서서는 ‘메타버스 노리판 인 곡성’이 펼쳐진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 상에 해외 실험예술 작가들을 아바타로 초대한다. 김남형 대표작가(계원예대 광고브랜드디자인과 학과장)는 “아바타에게 입힐 의상은 곡성의 특산물인 백세미, 토란, 옥수수 등을 변형해 만들었다. 기념품과 NFT 아트 개념으로 사후에 판매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조지아의 미술단체 아티스트리움이 함께 만든 영상미디어전, 홍신자 무용가가 이끄는 식사 명상, 개그맨 전유성 씨와 동행하는 피크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행사 기간에 열린다. 모든 프로그램은 예술제 공식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한다. 행사를 총괄 기획한 김백기 감독은 국내 실험예술 축제의 선구자다. 2002년 한국 최초의 국제 실험 예술 축제인 한국실험예술제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열었다. 2014년에는 제주로 내려가 2019년까지 섬을 터전으로 제주국제실험예술제를 개최했다. 올해는 자신의 고향인 곡성에 새로 터를 잡았다. 김 감독은 “코로나19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농업, 생태, 환경을 예술과 융합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 강을 둘러싼 문화 콘텐츠도 계속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섬진강변에 범상치 않은 흥이 내려온다. 이달 30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전남 곡성군에서 열리는 제1회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다. 행사를 총괄 기획한 김백기 예술감독은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비대면 참여를 포함해 총 26개국 38명의 예술가가 섬진강변에 실험예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부려 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행사 주제는 ‘PANDEMIC… Hello ? Goodbye !’다. 메타버스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을 대폭 활용해 팬데믹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조망하는 게 특징이다. 첫날 압록유원지에서 열릴 개막공연 ‘섬진강 아트 콘서트’도 그렇다. 콘서트는 판소리의 대표적 갈래인 동편제와 서편제를 나누는 경계선이 섬진강임에 착안했다. 각각 동편제와 서편제를 대표하는 김소현 권하경 명창, 동·서편제를 조화시킨 유파인 동초제의 박정선 명창이 한데 모여 우리 소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친다. 시낭송, 진혼무, 두루미춤, 굿, 길놀이가 거들고 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작가의 설치미술이 오라를 더한다. 무대 위 모니터에서는 GPS 앱을 통해 섬진강과 대황강의 형상을 실시간 드로잉으로 구현해낸다. 판소리 수궁가를 선보일 김소현 동편제 명창(섬진강 판소리학교 교장)은 “그간 문화적 조명이 적었던 지방에서 전통문화와 첨단예술을 아우르는 축제를 한다고 하니 더욱 뜻이 깊다”고 말했다. 이 공연에 앞서 ‘메타버스 노리판 인 곡성’이 펼쳐진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해외 실험예술 작가들을 아바타로 초대한다. 김남형 대표작가는 “아바타에게 입힐 의상은 곡성의 특산물인 백세미, 토란, 옥수수 등을 변형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조지아의 미술단체 아티스트리움이 함께 만든 영상미디어전, 홍신자 무용가가 이끄는 식사 명상, 개그맨 전유성 씨와 동행하는 피크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행사 기간에 열린다. 모든 프로그램은 예술제 공식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한다. 김백기 감독은 “코로나19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농업, 생태, 환경을 예술과 융합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 섬진강을 둘러싼 문화 콘텐츠를 계속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11월호 기사 <내가 사랑한 뮤직비디오>.’ 얼마 전 한 패션 매거진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요청 공문의 저 첫 줄부터 살짝 설렜다. 세 편의 비디오를 추천하면 된다고 했다. 1980년대 이전, 1990년대, 2000년대 이후에서 각각 한 편씩 뽑고 고른 이유를 원고로 붙이는 형식. 수많은 뮤직비디오 속 명장면이 황허가 돼 나의 전두엽에 전류로 찌릿찌릿 흘러갔다. 긴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 나갔다. 일단 1980년대 이전에서는 뻔한 마이클 잭슨부터 피하고 싶다. 결국 택한 것이 노르웨이 팝 밴드 아하의 ‘Take On Me’. 조금은 뻔하지만 ‘원 히트 원더’(한 곡만 히트시키고 잊힌)의 비장미가 좋다. 지금 봐도 너무도 ‘힙’한 저 비주얼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1. 얼마 전 아하의 다큐멘터리도 개봉했다. 제목은 ‘아-하: 테이크 온 미’. 찾아보니 개봉관이 서울, 인천, 부산에 각 한 곳씩. 한반도에 딱 세 곳뿐이다. 아하는 그런 밴드다. “아하 알아?” 물으면 “8?” 했다가 “그, 왜, 흑백 애니메이션이랑 컬러 실사랑 오가는 뮤직비디오, ‘Take On Me’ 부른 밴드!” 하면 “아-하!” 하는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밴드. #2. 혹여 응답자의 ‘아-하! 포인트’가 “그, 왜, 맥콜 광고…”란 힌트에서 터졌다면 그는 영락없이 20세기 소년, 또는 21세기 아재이리라. 때는 1988년.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개최로 민족 자긍심이 요즘만큼이나 올라 있던 해다. 일화가 야심 차게 내놓은 맥콜이란 음료가 있었다. ‘콜라 독립 선언’으로 유명한 815콜라보다도 무려 10년이나 앞선, 음료업계의 핵실험급 사건. 서구적 ‘쿨’의 대명사 콜라, 민족적 청량감의 지존인 보리차…. 동서양의 미각 충돌을 감행한 음료는 훗날 무가당 맥콜이란 변주도 준다. ‘88키드’는 제로 같은 얄팍한 말을 쓰지 않는다. 당이 없으면 무가당이다. #3. 혁명적 음료 맥콜은 조용필이 출연한 TV 광고로도 화제를 모았다. 펜 세밀화로 그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오가며 전개되는 영상. 조용필에게 당시 국내 역대 최다 출연료인 1억 원을 지급했다고…. 그러나 그것이 당시 국내 팝 음악 팬들 사이에 “아-하!” 하는 반응을 끌어낸 것은 명백히 아하의 ‘Take On Me’의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4. 1985년에 나온 아하의 ‘Take On Me’는 맥콜처럼 충격적이었다. 보컬 모튼 하켓의 매력적인 외모와 음색, 한번 들으면 일평생 맴도는 도입부 신시사이저 리프(riff·반복 악구)…. 노래는 빌보드 싱글차트 1위, UK 싱글차트 2위를 찍고 뮤직비디오는 1986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에서 트로피 여섯 개를 채갔다. 팝의 변방이던 노르웨이는 들끓었다. 그러나 이후 ‘N-Pop’ 같은 물결은 생겨나지 않았으니 아하는 여전히 노르웨이의 국민 영웅이다. #5. 영화 ‘아-하…’는 노르웨이에서 노르웨이인들이 제작했다. 노르웨이어로 듣는 인터뷰들이 흥미롭다. 이야기는 아하 결성 이전인 1974년 오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언젠가는 영국 런던에 가 팝스타가 되자는 소년들의 꿈 이야기부터 풀어낸다. 솔로로 ‘Can‘t Take My Eyes Off You’까지 히트시킨 꽃미남 보컬 하켓 외에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Take On Me’ 이후 보이 밴드 이미지를 벗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을 목표로 음악 자체에 집착한 기타리스트 폴, 뛰어난 리프를 많이 만들었지만 메인 작곡가 폴의 기세에 눌려 늘 불만인 키보디스트 마그네 말이다. #6. 멤버들의 갈등과 분투는 보자니 애잔해지지만 돌아보면 아하는 ‘Take On Me’ 한 곡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밴드다. 뮤직비디오는 MTV 시대가 만개하고 퍼스널 컴퓨터가 대중화한 당대에 의미심장했다. 만화 속 영웅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내밀히 교감하고,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같은 이들에게 쫓긴다. 나만의 방 안에서 시스템 탈주를 꿈꾸는 청년의 욕망과 꿈이 거기 있다. #7. 영화를 보다 민망하게 눈물이 흘렀다. 멤버들의 갈등이나 흥망성쇠에 이입해서가 아니다. 영화에 삽입된 ‘Take On Me’ 뮤직비디오의 말미, 구겨진 종이 속 만화에서 현실 밖으로 빠져나오려 애쓰는 하켓의 몸부림, 그걸 지켜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주인공의 표정. 청춘은 탈주를 꿈꾼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탈주를 꿈꾼다. 나는 사람이다. 나도 탈주를 꿈꾼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음원 사이트도, 무한 추천 플레이리스트도 없던 1980, 90년대. 귀 밝은 사람들은 표지에 박힌 네 글자만 믿고 귀한 용돈을 털어 집으로 음반을 모셔 왔다. ‘동아기획’의 작품들이다. 들국화, 시인과 촌장, 조동진, 김현식, 김현철, 이소라…. 한국대중음악의 품격을 높인 새 시대는 그렇게 왔다. 해가 지면 서울 종로구 대학로로 갔다. (김)광석이 형, (박)학기 오빠, (장)필순 누나, 여행스케치 언니 오빠들이 있는 곳. 연인의 손목을 잡고 앉은 극장의 작은 의자에서 TV에는 잘 안 나오는 그들의 땀방울과 음성을 두근대는 가슴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학전 소극장 이야기다. 향기로운 추억들이 손잡고 살아 돌아온다. 동아기획과 학전을 수놓은 음악가들이 2021년 가을, 다시 뭉친다. 22, 2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케이온’ 콘서트를 통해서다. 부제는 ‘우리, 지금 그 노래’. 1990년대 동아기획 음반 시리즈 ‘우리 모두 여기에’에서 따왔다.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장필순 ‘어느새’)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지하. 어둠과 적막이 지배한 오후 11시 30분의 지상 풍경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장필순의 밤안개 같은 목소리가 퍼졌다. “혹시 탬버린 있어요?” 장필순의 물음에 정지찬 음악감독이 검은 탬버린을 찾아와 손에 쥐여 준다. 보사노바 리듬 위로 이내 찰랑찰랑 탬버린 소리가 스며든다. 이날 연습은 이렇듯 즉석에서 레퍼토리를 추가하거나 편곡 아이디어를 내며 자연스럽게 놀이처럼 진행됐다. 함춘호, 장필순, 박학기,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이날 밤, 이들이 시간차를 두고 합류하며 리허설을 가장한 동창회가 이어졌다. 강수호(드럼) 서영도(베이스기타) 정재필 홍준호(기타) 안준영 길은경(건반) 조재범(퍼커션)…. 우리나라 최고 세션 연주자들의 집결도 장관. 전설들이 뿜는 음악의 귀기가 밤을 농밀하게 메웠다. 잘 만든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는 듯했다. “이렇게 다섯 명이 뭉치는 건 2011년 20주년 공연 이후 무려 10년 만이네요.”(여행스케치 남준봉) 여행스케치도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다. 현재는 2인 체제로 활동 중이지만 많은 이들이 5인조 이상의 풍성한 화음으로 여치(여행스케치의 애칭)를 기억한다. 아카이브 케이온에서는 이선아, 성윤용, 윤사라까지 합류해 역전의 멤버가 무대를 꽉 메운다. 멤버들은 “1991년 학전 개관 공연 때 동물원 형들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웃음) 우리가 대신 선 이후 참 많이 공연을 했다. 당시 동아기획, 하나음악 소속 가수들을 동경했는데 김현철, 이소라(당시 낯선사람들)와 학전에서 어울리며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2일 공연에는 조규찬 박학기 김현철 동물원이, 23일 무대에는 함춘호 장필순 유리상자 여행스케치가 참여한다. ‘무지개’ ‘향기로운 추억’ ‘동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시나무’ ‘제비꽃’ ‘신부에게’ ‘별이 진다네’ ‘내일이 찾아오면’…. 별빛 같은 노래들이 쏟아진다. 박학기는 “오랜만에 뭉쳤는데 여전히 눈빛만 봐도 척척 음악적 교감이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장필순은 “30여 년 세월을 훌쩍 넘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다. 서로의 노래를 함께 완성해 가는 특별한 무대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올해 초 SBS TV에서 방영한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가 단초가 됐다. “(고인이 된) (조)동진 형, (김)현식 형도 이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뭐, 대단한 열풍도 좋지만, 세상에 있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 이거야말로 이 무대가 소중한 이유 아닐까요.”(박학기)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그냥 한쪽에 앉아있지 마/시간낭비니까 … 투표를 해!/너의 권리를 행하라!’(‘Vote!’ 중) 새된 목소리로 외치는 직설적 메시지, 지글거리는 펑크 록 사운드…. 지난해 9월 미국 록 밴드 ‘린다 린다스(The Linda Lindas)’가 발표한 곡 ‘Vote!’는 영국의 섹스 피스톨스의 ‘Anarchy in the U.K.’처럼 강렬했다. “당시 미국엔 형편없는 대통령이 있었으니 다같이 투표로 바꾸자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엘로이즈·베이스기타) 2018년 결성. 다인종. 평균 연령 13.7세. 신선한 펑크 록 밴드, 린다 린다스의 멤버들을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그렇다. ‘투표!’란 노래를 만든 이들에게는 정작 선거권이 없다. 나이가 제일 많은 벨라(기타)가 17세, 드러머 밀라는 11세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가디언이 조명하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멤버가 극찬하는 팀이다. “부담감 따윈 없었죠. 우린 어떤 노래든 만들 수 있거든요.”(루시아·기타) 이들의 또 다른 대표곡은 ‘Racist, Sexist Boy’(인종차별자, 성차별자 소년). “반 친구가 ‘아빠가 중국 사람들하고 놀지 말래’라고 하는 걸 들었죠.”(밀라) 중국계 밀라는 하고픈 말을 노래로 짓기로 했다. “팬데믹 때문에 각자 집에 머물던 밀라와 제가 영상을 통해 함께 노래를 만들었어요. 원래 제목은 ‘Idiotic Boy’(바보 같은 소년)였는데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기에 ‘Racist, Sexist Boy’로 바꿨죠.”(엘로이즈) 또래 친구들은 댄스 팝이나 힙합에 빠져 있지만 린다 린다스의 영웅은 1990년대 여성 펑크 록 그룹 ‘비키니 킬’이라고 했다. “이모가 방탄소년단에 빠져 있고, 조카들도 우리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지만”(밀라), “우리는 (한국 펑크 록 그룹) 슬랜트(Slant)와 작은 펑크 록 클럽에서 함께 공연하고 싶어요!”(엘로이즈) 그룹명은 배두나가 여고생 펑크 로커 역을 주연한 2005년 영화 ‘린다 린다 린다’를 보고 감명받아 지었다고. “배두나는 최고예요. ‘괴물’에서의 연기도 좋아해요. 그가 부르는 노래가 언어를 뛰어넘어 제게 울림을 줬어요.”(엘로이즈) 린다 린다스는 10일 저녁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9, 10일 유튜브 등 무료 생중계) 무대에 선다. “이번에는 멀리서 영상으로 참여하지만 재밌게 봐주세요.”(벨라) “볼륨 높이고!”(밀라) “춤추세요!”(루시아) “다음엔 꼭 직접 가서 노래할 거예요!”(엘로이즈)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방탄소년단이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노래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여섯 번째 정상에 올랐다. 두 개 그룹의 합작 곡이 1위를 차지한 건 이 차트 역사상 처음이다. 4일(현지 시간) 빌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발표된 싱글 ‘My Universe’가 9일자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My Universe’는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이 작사 작곡 노래를 함께했으며 영어와 한국어 가사를 함께 실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9월 ‘Dynamite’로 이 차트 1위를 차지한 뒤 ‘Life Goes On’ ‘Butter’ ‘Permission to Dance’를 차례로 정상에 올렸다. 제이슨 데룰로의 ‘Savage Love’ 리믹스 버전 참여까지 포함하면 약 13개월 동안 여섯 곡으로 정상에 오른 셈이다. 1964∼1966년 비틀스가 12개월 2주 만에 여섯 곡을 1위에 올린 것과 근접한 기록이다. 콜드플레이는 13년 만에 빌보드 1위에 올랐다. 그간 이들의 빌보드 핫100 1위곡은 2008년 ‘Viva La Vida’가 유일했다. 빌보드에 따르면 ‘My Universe’는 라디오 종합 차트에서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고 스트리밍 송스 차트에서도 21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음원 다운로드가 기준인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해 종합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등 각국 정관계 인사와 억만장자들의 역외 탈세나 조세 회피 내용이 공개됐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영국 BBC방송, 프랑스 르몽드, 독일 서부방송(WDR), 일본 아사히신문 등 117개국의 150개 언론사와 함께 탐사 취재해 3일 내놓은 ‘판도라 문건(Pandora Papers)’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WP에 따르면 문건에는 91개국에 걸쳐 전·현직 지도자 35명, 정치인 및 공직자 330명 이상, 포브스지에 등록된 억만장자 130명 이상을 포함한 여러 인사의 해외 계좌와 거래 내역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유명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시티 감독 주제프 과르디올라의 이름도 나온다. 압둘라 2세 국왕은 미국 캘리포니아, 영국 런던 등 세계 곳곳의 호화 주택 14채를 사들이는 데 1억600만 달러를 쓰면서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회사들을 이용했다. 블레어 전 총리 부부는 부동산을 거래하면서 편법으로 31만2000파운드(약 5억 원)의 재산세를 절약했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도 나라 밖으로 빼돌린 비밀 재산이 확인됐다. 푸틴 대통령의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이 모나코 해안가 고급 주택을 비밀리에 사들인 것도 드러났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측근의 이름도 등장한다. 보도가 나온 뒤 파키스탄 야당은 칸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ICIJ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스위스, 싱가포르 등 조세회피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14곳의 거래 내역과 e메일 등 1190만 건의 금융 관련 파일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 자료 작성 시기는 1996∼2020년이다. 일부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사된 역외 계좌만 2만9000개에 이른다. ICIJ는 “판도라 문건은 2013년 이후 공개된 역외탈세 문건 중 가장 많은 양”이라고 밝혔다. 국제투명성기구 영국 본부 책임자 덩컨 헤임스는 “이번 문서 폭로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부패 엘리트를 위한 시스템과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따로 있다는 걸 보여 준다”고 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조세회피처 이용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거액의 자산이나 부동산을 비밀리에 매입하면서 국민에게 돌아갈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 부패, 자금 세탁, 탈세 등이 동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판도라 문건’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뉴스타파와 ICIJ는 홍콩의 일신회계법인과 일신기업컨설팅 고객관리 파일에서 이 프로듀서가 실소유주이거나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홍콩 법인이 다수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 중 일부 법인에서 이 프로듀서 명의로 설립 및 관리 대행을 신청한 차명 서비스 신청서가 발견됐고, 5개 법인에서 수백만 달러가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M엔터테인먼트는 4일 “홍콩 소재 법인들은 미국 이민자인 이수만 프로듀서 부친이 한국에 보유하고 있던 재산으로 설립된 것이고 당시 한국의 은행 계좌에 있던 돈을 적법 절차를 거쳐 환전, 송금해 설립한 것”이라며 “해당 법인들에 대해선 2014∼2020년 국세청 세무조사, 금융감독원과 검찰청의 외국환 거래 관련 조사에서 모두 불법적인 자금으로 설립, 운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이름도 문건에 나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손 회장이 2009년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던 투자회사의 자회사를 영국령 케이맨 제도에 세웠고 이 법인이 2014년경 상용 목적의 소형 제트기를 산 것으로 문건에 적혀 있다. 이 제트기 소유권은 미국 신탁회사에 넘겨졌으나 리스 계약 체결 방식으로 손 회장이 비용을 내고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소프트뱅크 측은 “손 회장 개인 활동에 관여하는 법무·회계 등 복수 전문가에 의해 적절하게 처리됐다”고 해명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대표적 국악 관악기인 대금의 진면목을 집대성한 첫 음반집이 나왔다. 임재원 서울대 국악과 교수(64)가 최근 낸 ‘임재원 대금연주곡집’이다. 임 교수는 대금연구회 이사장,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한 대표적 대금 연주자이자 국악 교육자이며 행정가. 네 장의 CD로 이뤄진 이번 음반집에 그는 정악 독주와 산조부터, 가야금 기타 피아노와 이중주, 대금 협주곡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담았다. 29곡, 약 4시간 12분 분량에 걸쳐 다양한 장르와 연주기법을 망라했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실황과 스튜디오 녹음을 새로운 음향 믹스를 거쳐 채록했다. 대부분이 초연곡이거나 미공개 녹음이다. 최근 만난 임 교수는 “내년 2월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50년 국악 인생을 반추하고자 했다. 성악이나 현악 분야에는 종종 있었지만 국악 관악에서 이 정도의 분량과 레퍼토리를 담은 음반집은 종래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금은 청(갈대 속의 얇은 막)의 울림이 자아내는 청아한 음색이 영혼을 정화하는 악기죠. 삼국사기의 만파식적 설화에도 등장합니다.” 임 교수는 음반에서 고즈넉한 음색, 친근한 선율부터 현대음악의 실험성까지 대금의 넉넉한 음색에 유려하게 품어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임 교수가) 지금까지 대금 음악에서 이룬 모든 결과와 성과가 여기에 있다. 대금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가를 확인시켜 준다”고 평했다. 임 교수는 1990년 국내 최초로 개량 대금을 발표하기도 했다. 네 장의 CD는 음악의 다양성을 상징하듯 각각 춘, 하, 추, 동으로 명명됐다. 독주와 산조로 채운 ‘춘’이 전통의 힘을 보여준다면, 나머지 세 계절은 대금의 미래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에는 김일륜 중앙대 교수와의 가야금 이중주를 담았다. 구노, 카치니,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각각 피아노-대금 이중주로 해석해 잇달아 배치한 ‘추’도 흥미롭다. ‘대바람소리’(이상규 작곡)는 가야금, 피아노와의 이중주, 협주곡까지 세 가지 버전으로 담겨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100여 쪽 분량의 국·영문 해설지와 도톰한 종이 케이스로 소장 가치를 높였다. 임 교수는 “전통 곡의 높은 가치를 지키면서도 대금이 세계적 보편 악기와 협연하거나 그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보여주고자 했다. 후배들에게도 의미 있는 기록이자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자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음반집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된다. 주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들을 수 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팬데믹으로 인해 성수기인 여름에 열리지 못하고 연기된 대형 음악축제들이 이달에 기지개를 켠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2주간 연장된 수도권에서는 형식과 장소가 바뀌거나 연기, 취소되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사진)이 2일 출발선을 끊었다. 크라잉넛, 세이수미 등 출연진 절반은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 특설무대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시거레츠 애프터 섹스(미국), 해서웨이 등 나머지 팀은 미리 녹화한 영상을 내보냈다. 예년 같으면 수천, 수만 명이 운집했을 무대 앞에서는 사전에 모집한 현장 관객 452명이 띄엄띄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조용히 박수를 치는 광경이 이채로웠다. 부산은 그나마 거리 두기 3단계라서 일부 현장 관람이 가능했다. 야외공연을 불허하는 4단계의 수도권에서는 오랜 기간 준비한 축제가 엎어지기도 한다. 매년 수만 명이 찾는 가을 대표축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은 당초 하루 4000명으로 관객을 제한해 16, 17, 23, 24일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1일 공연 취소를 알렸다. 이달 9∼11일로 예정된 경기 가평 자라섬재즈페스티벌(나윤선, 선우정아, 조응민 등 출연)은 다음 달 5∼7일로 일정을 옮겼다. 페스티벌의 인재진 총감독은 “잔디마당을 지정좌석제로 운영해 관객 수를 제한할 것”이라며 “11월 자라섬의 밤 기온이 낮은 만큼 축제 시간표를 3시간 정도씩 당겨 오후 6시에 일정을 끝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 서울숲재즈페스티벌(루시드폴 이선지 등 출연)은 16, 17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30, 31일로 2주 미뤘다. 이 공연도 시작과 종료 시간을 두 시간 당겨 추운 밤 날씨에 대비하기로 했다. 야외에서 실내로 무대를 옮긴 공연도 있다. ‘해브 어 나이스 데이’(멜로망스, 소란 등 출연·23, 24일)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야외무대를 잡았지만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삼성홀로 장소를 바꿨다. 다리가 무거운 안방 관객들이 즐길 만한 비대면 콘서트도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윤상, 이날치, 이승환 등 출연)은 9, 10일 유튜브에서 전체 공연을 무료로 보여준다. 월드 DJ 페스티벌(9∼11일)은 중구 장충체육관 유료 대면 콘서트를 100% 비대면 무료 공연으로 돌렸다. 유튜브와 네이버 나우뿐만 아니라 U+VR로도 볼 수 있다. 고사 위기에 몰린 공연업계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한 대형 축제 관계자는 “주말과 연휴를 맞아 나들이객이 몰리는 식당과 관광지를 보면 참담하다. 방역대책을 이중 삼중으로 세우며 1년간 준비한 축제를 무료, 비대면으로 돌리는 심정이 무겁다”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내부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완벽한 몰입도의 앨범 만들기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제게 꿈같은 일입니다.”(제임스 라벨)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독특한 오감 체험형 전시 ‘비욘더로드’(11월 28일까지)는 철저히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국 전자음악 그룹 엉클(UNKLE)의 작품이다. 33개의 공간에 99개의 스피커를 배치해 입체화한 엉클의 음악이 회화, 비디오, 조향, 박제와 어우러져 유사 유기체가 된다.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의 효시 격인 ‘슬립 노 모어’(2011년)의 제작진이 참여했지만 이 전시의 심장이 엉클의 리더이자 영국의 전설적 음악가인 제임스 라벨(47·사진)인 이유다. 라벨은 18세이던 1992년 엉클을 결성하고 ‘모왁스 레코드’를 설립해 세계 전자음악과 트립 합(trip hop) 장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라벨은 “디지털 세상에서 음악은 쉽게 휘발된다. 공간을 활용해 대안을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벨은 엉클의 초기부터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가 참여한 데뷔 곡 ‘Rabbit in Your Headlights’의 뮤직비디오에는 드니 라방(영화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출연 배우)이 기묘한 연기를 보탰다. 당시 메가폰을 잡은 조너선 글레이저는 그 뒤 ‘언더 더 스킨’ 등으로 독보적인 영화 연출 세계를 보여줬다. 이번 전시에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대니 보일의 ‘트러스트’의 일부가 상영된다. 스크린에 투사된 ‘로마’ 영상을 배경으로 라벨의 ‘로마’ 헌정곡 ‘On My Knees’가 입체음향으로 뿜어져 나오는 순간은 전시의 여러 하이라이트 중 하나. “‘로마’의 해변 신은 거대한 기도처럼 사람 감정을 휘젓죠. 쿠아론이 첨단 촬영 기법으로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한 것처럼, 저와 제작진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전시장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전시장에 시종 흐르는 음악은 엉클의 2017년과 2019년 연작 앨범 ‘The Road’에 담긴 곡들. 라벨은 ‘The Road: Part III’ 음반을 만들어 곧 공개할 거라고 했다. 라벨은 “‘슬립 노 모어’ 제작진과 런던 토트넘에 있는 실험용 가옥들에서 세 달간 음향을 실험하고 큐레이션을 하며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오픈한 뒤, 저는 관객으로서 스무 번 정도 관람했습니다. 제가 만든 앨범이지만 매번 새 작품을 듣는 듯한 체험을 했죠.” 전시의 피날레 격인 디지털 교회 공간도 기묘한 인상을 자아낸다. 라벨은 “10년 전 런던 캠던의 실제 교회에서 내가 열었던 스탠리 큐브릭 헌정 전시에서 착안했다. 교회는 특정 종교를 넘어 도피처로서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했다. “팬데믹 이전에 기획한 전시입니다. 물질주의, 도널드 트럼프, 혼란한 세계를 표현하려 했죠. 그런데 팬데믹 이후 더 흥미로운 맥락을 갖게 됐지 뭡니까.” 라벨은 “보거나 듣거나 맡는 것에 머물지 말고 33개의 공간이 주는 총체적 경험에 집중해 달라”고 관객들에게 주문했다. 전시에는 한국적 요소도 담았다. 까치와 호랑이 박제 작품, 국내 거리예술가 ‘나나’의 그라피티다. “까치는 영국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또 호랑이띠죠. 청소년기에 저의 세계를 흔든 것은 동양 무예였습니다. 태권도를 비롯한 무예의 역사를 달달 외웠죠. 여건이 허락한다면 폐막 전에 꼭 서울 전시장을 찾고 싶습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