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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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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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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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없는 날, 야구장선 뭐하고 놀까…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문을 연 후쿠오카 돔구장[전승훈의 아트로드]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로 세워진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BOSS 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빅보이’ 이대호 선수가 뛰던 일본 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후쿠오카PayPay돔은 1993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보스 이조 후쿠오카’는 경기가 없을 때에도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지상 40m 높이에서 건물 벽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는 약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 스마트폰으로 숲 속 동물과 물고기를 수집할 수 있는 환상의 디지털 아트세계, 직접 배팅과 수비, 주루 플레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익사이팅한 야구 체험존까지…. 이 건물에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팀랩 포레스트(teamLab Forest)’다. 한 때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AR(증강현실)을 업그레이드해 재미와 학습을 겸비한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다. 내부로 들어가면 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 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앱을 깔면 본격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화살을 쏘아 동물을 잡고, 바다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벽에 있던 동물이 화면으로 들어오는데 동물의 특징과 생태를 설명해주는 문구가 제공된다. 잡은 동물은 다른 숲에 가서 놔줄 수도 있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컬렉션을 완성하다보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또다른 방(Immersive Museum FUKUOKA)으로 가면 모네, 고흐,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몰입형 전시(9월 10일까지)도 펼쳐진다.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해 야구장, 축구장 등 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거나 지자체의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코로나 기간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지었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83) 소트트뱅크호크스 회장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 뿐 아니라 아라카와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을 재현해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가 투수가 되어 공을 던져보며 구속을 확인해보는 코너도 있다. 와인드업을 해서 던져보니 처음에는 70km, 나중에는 94km가 나왔다. 사력을 다해 던졌는데도 100km를 넘지 못했다. 두산베어스 전 프로야구 선수 유희관이 120km대 직구로 ‘느림의 미학’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얼마나 빠른 것인가. 더 던지면 어깨가 아플 것 같아 100km를 깨겠다는 욕심은 접어야 했다. 대신 포수를 향해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깨는 제구력 게임을 즐겼다. ​ 다음은 타격이다. 스크린 골프처럼 스크린 야구를 펼치는 곳이다.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공이 화면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정타를 맞추려고 힘껏 휘둘렀는데 장타가 나오지 않았다. 공의 약간 아랫부분을 맞춰야 공이 뜬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윙을 수정하니 ‘빵’ ‘빵’하며 장타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췄다. 짜릿한 손맛이다. 뒤에서 바라보던 일본 여성들도 환호성을 질러댔다. 다음으로는 수비 연습. 화면에서 투수가 볼을 던지면 좌우로 움직이는 구멍에서 공이 튀어나온다. 공이 나오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달려가서 글러브로 공을 잡고, 1루수 또는 3루수로 지정된 곳으로 송구를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달려가 전진수비를 해야 시간내에 정확히 송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이 펑고를 쳐주고 송구하는 훈련을 한 느낌이다. 두 번이나 수비게임을 하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다음에는 주루와 견제 연습이다. 출발신호가 들리면 실제 홈에서 1루까지 거리를 영상 속 선수와 달리기를 겨룬다. 견제는 1루에서 2~3m 정도 리드를 하고 있다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재빨리 귀루하는 게임이다. 투수의 동작을 유심히 보고 순발력을 다해 귀루해야 세이프를 받을 수 있다. 정말 야구장에서 공격과 수비, 주루의 모든 것을 체험해볼 수 있는 3차원 게임이다. 운동을 하며 놀다가 출출해지니 3층 푸드홀로 향했다.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맛집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센스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대형 TV화면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팀의 김하성 선수 출전 경기 생중계를 보면서 맥주와 커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입구에는 오타니, 트라웃 등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펍에서 축구경기를 보는 것처럼, 메이저리그 야구를 즐기면서 햄버거와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먹는 곳이다. 음료 중에는 불량식품처럼 형광색 초록빛이 나는 상큼한 멜론티가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운코 뮤지움'(UNKO Museum FUKUOKA, 9월3일까지 전시)이다. ‘운코’는 한국말로 ‘응아’랑 비슷한 의미다. 똥이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가면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가 놓여 있고, 관람객들은 손에 아이스크림모양의 운코를 들고, 머리에 운코를 단 헤어밴드를 하며 즐거워 한다.분홍색, 노랑색, 연두색 운코가 마카롱 과자나 케익모양으로 놓여 있는 테이블은 공주의 애프터눈 티테이블이다. 커플이 들어가는 운코 러브방, 음악에 맞춰 화면속에서 날아오는 운코를 터뜨리며 춤을 추는 댄스게임방, 바닥에 있는 운코 그림자를 밟으면 총천연색으로 터져나가는 게임방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 전시장 입구에는 변기가 놓여 있다. 소프트뱅크 경기 시구를 위해 이 곳을 찾았던 이대호 선수가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보려는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 똥’을 비롯해 수많은 동화책에서 똥을 주제로 한 그림에 아이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똥모양을 귀여운 캐릭터와 게임, 액서세리로 만들어 즐기는 일본의 문화는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 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 Kyusu)’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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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가 뛰던 돔구장, 승리하면 불꽃쇼와 함께 지붕이 열린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지난 7일 밤 9시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PayPay 돔. 9회 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4대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정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홈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정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정 너머로 힐튼호텔과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한화로 약 1000만 원 가량. 호크스팀이 승리를 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홈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41) 선수가 2014년부터 4번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QR코드를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좌석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소프트뱅크 호크스팀의 선수와 감독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도 판다. 감독의 도시락이 가장 비쌀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감독과 코치 얼굴이 들어간 도시락은 2000엔인 반면, 4번타자 호타준족 외야수 야나기타 유키의 도시락은 2300엔으로 가장 비싸다. 10kg짜리 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짓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무릎꿇고 호스를 꺼내내 컵에 생맥주를 따라준다. 미식(美食)을 즐기며 야구경기와 치어리더, 마스코트의 다양한 쇼까지 즐기는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했다. 일본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구단이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은 후쿠오카 PayPay돔 밖에 없다. 한국계 일본인 기업인인 손정의가 인수한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좌석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기업 스폰서들에게 마케팅용으로 판매해 재정자립도는 높였다. 야수의 플레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코카콜라석은 그물망이 없어 헬멧을 쓰고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해변의 의자처럼 파라솔 밑에서 누워서 볼 수 있는 좌석도 있고, 명란젓 회사와 증권사가 협찬해 독특하게 꾸민 좌석도 있다. 매일매일의 경기도 기업 스폰서의 이름을 붙여주며, 시구는 연예인이 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날의 스폰서 기업의 회장이나 사원대표가 시구를 한다. 후쿠오카 돔구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장애인석이었다. 구석에 마지못해 만들어놓은 좌석이 아니라 내야가 잘 보이는 위치에 널찍한 테이블과 좌석이 함께 있었다. 의자를 접거나 옮길 수 있어 휠체어 전동차를 탄채 장애인도 야구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 4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은 관광객들을 위한 돔투어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 파리, 베를린의 오페라극장이나 뉴욕, 런던의 뮤지컬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돔투어는 ‘돔만끽 코스’와 ‘어드밴처 코스’로 나뉜다. ‘돔만끽 코스’는 투수들이 워밍업하는 불펜 연습장, 선수들의 락커룸, MVP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경기장의 잔디를 밟아보고 선수들의 타격, 수비연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 홈플레이트 근처에 있는 원정팀 덕아웃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수와 감독이 대기하는 곳을 축구에서는 벤치라고 하는데 야구에서는 왜 ‘덕아웃(dug out)’이라고 부를까? 해설해주는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투수의 볼을 포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그라운드보다 약간 낮은 자리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대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덕(dug·파내다)’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는 내야의 인조잔디였다. 보통 인조잔디는 선수들이 슬라이딩했을 때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고, 비가 올 경우 미끄럽다는 단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천연잔디를 선호한다. 그런데 소프트뱅크 홈구장의 인조잔디를 자세히 보니 천연잔디와 거의 다름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구장 관계자는 옛날 버전의 짧은 인조잔디와 리모델링한 현재의 인조잔디를 비교해주는 모형을 갖고 설명했다. ‘필드터프’로 불리는 현재의 롱파일 인조잔디는 길이가 약 6.3mm로 길었다. 잔디는 4.4mm 높이의 푹신한 소재가 감싸고 있는데, 위에 노출된 부분은 천연잔디처럼 부드럽게 이리저리 눕게되는 형태였다. 어드밴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투어를 신청한 관람객들에게는 안전을 위해 플래시가 장착된 헬멧과 목장갑을 나눠준다. 이어서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계단 통로를 올라간다. 후쿠오카 PayPay돔의 백스크린인 ‘호크스비전’은 점보제트기 3대를 세워 둔 것과 같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계단을 타고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 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장인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천청에 대기하며 불꽃놀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승리를 기원한다고 한다. 1만2000톤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름 약 21m인 세 장의 지붕이 돔 둘레를 따라 이동하며 전부 열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면적만해도 5900평이나 되며, 두께 4m에 이르는 지붕 한 장의 무게는 4000톤으로 사람이 천천히 걷는 속도로 움직인다. 평소에는 지붕을 닫은 채 경기를 하다가 날씨가 맑고,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날, 홈팀이 승리했을 때 뚜껑이 열린다. 불꽃놀이 장인이 걸어가는 천장행 통로는 관람객은 갈 수 없다. 대신 허리를 낮춰 개구멍을 통과하니 돔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이 나왔다. 통로 옆으로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있는 레일이 놓여 있었다. 돔구장이 열릴 때 사용하는 레일이다. 돔구장 밖으로 나아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의 홈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이탈리에 피렌체에 갔을 때 보았던 두오모 성당의 돔지붕처럼 아름다웠다. 어떻게 중세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 위로 둥근 곡선의 지붕을 얹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보고 있는 돔구장은 지붕이 열리고 닫히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지붕 바깥으로 나가니 후쿠오카 앞바다 하카타만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랑의 종’이 매달려 있다. 연인끼리 와서 이 종을 울리면 사랑이 이뤄진다던가. 비내리는 후쿠오카의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종의 줄을 당겨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Kyusu)’ 네이브 스토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을 살 수 있다.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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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놀이와 美食, 짜릿한 야구체험까지… 돔구장에서 만나요[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의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보스 이조(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대호가 뛰던 돔구장의 불꽃놀이7일 오후 9시 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돔구장. 9회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4-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장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안방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장 너머로 힐턴호텔,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 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약 1000만 원. 호크스팀이 승리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안방 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 선수(41)가 2014년부터 4번 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 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 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좌석까지 배달해 주는 미식(美食)과 생맥주를 즐기고, 치어리더와 캐릭터 댄스까지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 한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처럼 야구장에는 돔 투어 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돔만끽 코스’는 불펜 연습장, 라커룸, MVP 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방문팀의 더그아웃을 둘러보고 경기장의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다. 어드벤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투어팀은 플래시가 달린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구장 내 점보제트기 3대 크기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통로를 올라간다.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약 20분에 걸쳐 1만2000t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천장의 복잡한 구조물 사이에 뚫린 구멍을 통과해 돔구장 지붕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이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처럼 아름다웠다. 지붕 밖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 ‘사랑의 종’이 설치돼 있다. 비 내리는 후쿠오카 하카타만의 바닷가 절경을 바라보며 종을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스포츠와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 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 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최근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 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문을 열었다. 야구 체험과 가상현실(VR) 게임, 디지털 아트, 음식과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83)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 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뿐 아니라 아라카와 히로시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 재현해 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속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 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 투구 속도를 재보고, 코치가 쳐주는 펑고를 잡아 송구를 하고,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게임도 있다. 스크린 골프처럼 투수가 실제로 던지는 공을 타격하는 방도 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혔다. 짜릿한 손맛이다. 여성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팀랩 포리스트’다.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증강현실(AR)을 업그레이드한 환상적인 공간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아 화살을 쏘고, 그물을 던지면 동물을 잡을 수 있다.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모네,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몰입형 전시도 연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운코(Unko) 뮤지엄’이다. ‘운코’는 우리말로 ‘응가’랑 비슷한 의미다.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로 변신한 분홍색 연두색 운코 캐릭터와 게임에 열광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정을 알다가도 모를 느낌이었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놀다가 출출해지면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3층 푸드홀로 가면 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선스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메이저리그 생중계를 보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여행 정보=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 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이조 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안방경기 할인 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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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귀족 스포츠 폴로 경기를 제주에서? 폴로와 만난 현대미술[전승훈의 아트로드]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나잖아요? 바로 그 손맛에 하는 겁니다. 멈춰져 있는 골프공을 잘 맞추기도 어려운데,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잔디 위를 구르고 있는 공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들이 공을 좇아 쏜살같이 달려 간다. 말 위에서 긴 스틱을 휘둘러 하얀색 공을 맞추자 ‘탕’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소리, 환호성소리.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알려진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진기한 장면이다.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제주 폴로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콘크리트와 목재를 이용해 한옥처럼 편안하게 햇빛을 끌어들이는 긴 처마가 인상적인 건물이다. 탁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는 폴로 클럽에는 약 3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일본에서 경기를 하러 오는 회원도 있다. 현재 폴로는 전세계 약 80여 개국에서 3만 여명이 즐기고 있다. 국내의 선수층이 매우 얇다보니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서 경기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영국 옥스포드, 캠브리지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경기를 벌였다. 또한 한국 대표팀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폴로 경기의 유래폴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경기다. BC 6세기~AD 1세기에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성행했으며 원래 국왕 직속 기마대의 훈련용 경기로 펼쳐졌다. 한 팀이 100명 정도로 구성됐던 당시의 폴로 경기는 호전적인 민족이 행하는 축소판 전투와 다름없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폴로는 아라비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동양에서는 ‘격구(擊毬)’로 불렸는데 말을 타고 하는 경기이기에 귀족 스포츠가 됐다. 격구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전해졌다. 통일신라 고분 모서리 기둥에는 ‘폴로 스틱을 든 페르시아인’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 무인정권 시절에도 격구는 각종 궁중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용비어천가’ 제44장에 격구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무과시험에서도 정식 과목이었다. 조선시대 군사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이십사반(二十四般) 무예의 하나로 격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13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를 정복하면서 인도에도 폴로를 전파했다. 처음으로 폴로 경기를 한 유럽인들은 인도의 아삼 주에 있던 영국인 차(Tea) 농장주들이었다. 이들은 1859년 실차르에서 최초의 유럽인 폴로 클럽을 결성했다. 1866년 초 인도에 주둔해 있던 제10 경기병대소속의 장교들이 팀을 짜서 경기를 한 이루 폴로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1875년경 폴로는 영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됐다. 리치먼드파크와 헐링엄에서 여러 번 경기가 펼쳐지면서 1만 명 이상의 관중들을 끌어모았다. 처음엔 이 경기를 영국에 소개한 군인들 사이에서 성행했지만, 차츰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후 폴로는 모든 스포츠 중 가장 귀족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됐다.폴로는 서양 왕족들이 스스로 즐겼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에게 폴로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폴로의 기본 정신은 ‘사교’다. 말을 타고 달리는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과 에티켓을 지켜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경기 중에는 선수는 물론 모든 관람자들까지 경기를 마친 후에는 함께 해야하는 의무적인 행동이 있다. 바로 잔디밭 위로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봇(divot) 자국을 다함께 밟아주는 행동이다. 영국의 찰스 국왕도 예외없는 ‘잔디밟기’ 에티켓이다.●폴로 경기의 규칙폴로는 말을 탄 선수가 ‘말렛(Mallet)’이라고 불리는 스틱을 이용해 공을 치며 진행된다. 450kg 정도의 말을 탄 채 돌진하는 모습은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또한 선수가 스틱을 이용해 상대방의 스틱을 쳐서 스윙을 막거나 방해하는 동작들은 화려한 검무를 보는 듯 하다. 시속 60km로 달리면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경기도중 말 위에서 다른 말로 갈아타기도 하면서 사람과 말이 하나로 호흡하는 현란한 승마 기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중순 제주 한국폴로클럽을 찾았을 때는 중학생 선수 11명의 데뷔 게임이 펼쳐졌다. 대부분 회원의 자녀 선수들.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해 6개월간 훈련을 거쳐 첫 폴로 시합을 하게 된 것이다. 성인들의 게임과 달리 경기장 규모를 작게 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나무 망치가 달린 스틱을 휘두르며 공을 패스하고, 골문으로 슛을 할 때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날 경기와 연습을 지켜보면서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와 남종훈 부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폴로 경기 규칙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 데뷔한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을 했나. “제주 국제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와서 훈련하는 친구들도 있다. 작년 8월부터 금요일 밤에 비행기타고 내려와서 토요일, 일요일에 세 번의 연습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작년 겨울에는 태국에서 전지훈련도 갔다 왔다. 무엇보다 폴로가 재미가 있으니까 열심히 한다. 동물을 컨트롤 하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다.” ―폴로 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폴로는 한 팀에 4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한다. 각 팀 선수들은 1~4번의 번호를 붙인다. 1번과 2번은 포워드(forward)이고, 3번과 4번은 백(back)이 된다. 그 가운데 3번 선수가 에이스로 패스를 전담하며, 팀 전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원하는 방향과 거리에 맞게 정확하게 볼을 전달해주어야 득점으로 연결이 될 확률이 크다.” ―어떤 전술이 있나. “축구처럼 다양한 작전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한다. 스페인 축구처럼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티키타카’ 전술을 쓰기도 하고, 롱패스 위주로 하는 전략도 있다. 패스를 할 때는 달려가는 말과 선수가 가는 방향을 예상해 앞서서 밀어주어야 한다.”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quarter),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period)와 같은 개념이다. 각 처커 사이에는 3분씩의 휴식시간과 5분간의 하프타임이 있다. 심판은 말을 탄 2명의 엄파이아와 사이드라인의 1명의 래퍼리로 구성된다. 선수들은 말에 올라 탄 채 말렛으로 공을 쳐서 상대팀 골문에 넣으면 1점이 주어진다. 상대팀 말과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바로 뒤에 있는 경우 공을 치려는 상대의 말렛을 자신의 말렛으로 막는 것은 허용된다. ―폴로 경기를 할 때 말은 몇마리나 필요한가. “폴로 경기는 4처커를 뛰는데,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양팀 선수 8명이 필요한 말이 총 32마리다. 심판이 타는 말까지 합치면 34마리 정도다. 보통 말은 한 처커를 뛰고 나면 퇴근한다. 말이 축구장 6배 될 정도로 큰 운동장에서 전속력으로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시합을 할 경우에는 한 처커 경기 도중에도 2마리씩 말을 갈아 타기도 한다.” ―제주 한국폴로클럽에는 말이 몇마리가 있나.“75마리의 말이 있다. 그 중 85%는 폴로클럽 소유의 말이고, 나머지는 회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말이다. 개인 소유의 말은 본인만 탈 수 있다. 연습이나 시합에서 본인이 길들인 말을 탔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합 중에는 내가 소유한 말이라고 해도 한 처커 밖에 탈 수가 없다. 나머지 처커는 클럽 소유의 말을 빌려서 타야 한다.”​―폴로경기에 사용하는 말은 어떤 종류인가.“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서 데려오는 ‘폴로 포니(Polo Pony)’라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폴로에 특화된 훈련을 받는데 보통 7,8살 된 말을 수입해 온다. 품종 자체가 굉장히 순하고 영리하다. 폴로경기를 하다보면 말끼리 자리싸움을 하다가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말의 경우 경기가 격렬해져 부딪치게 되면 순간적으로 날뛰어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폴로포니는 부딪쳐도 본인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이 돼 있다. 지능이 높은 말은 오토매틱 자율주행처럼 선수가 공을 치기 좋은 위치로 알아서 찾아간다.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체중이동만으로도 말이 방향을 전환한다. 중간 등급 정도의 말은 약 4000~5000만원 정도 가격이다.”폴로 경기를 할 때는 말의 앞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붕대를 감고 타이즈를 신긴다. 팀을 구별하는 패션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말렛(스틱)이나 공에 맞을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말렛을 휘두를 때 털에 엉키지 않도록 목부분의 갈기는 면도를 하고, 꼬리털도 단정하게 땋아줘야 한다. 폴로 경기장은 골대에서 골대 사이 거리가 280m, 폭은 180m 정도다. ―폴로 경기의 규칙은.“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말렛으로 공을 휘두르는 폴로 경기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꼭 지켜야할 규칙은 달려가는 말의 진행방향이 절대 크로스되면 안된다. 말이 공을 향해 달려갈 때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경쟁해야 한다.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가로 막아버리면 사람과 말이 크게 다치게 된다. 이것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룰이다. 그리고 폴로는 한 골을 넣을 때마다 골대를 바뀐다. 만약 A팀이 오른쪽으로 공격을 해서 골을 넣었으면, 다음에는 골대를 바꿔 왼쪽으로 공격해서 골을 넣어야 한다. 필드가 굉장히 넓다보니까. 한 팀은 태양이나 바람을 마주보고 하고, 다른 팀은 등지고 경기를 하게 된다. 바람이나 햇빛의 영향을 양팀이 모두 똑같이 적용시키기 위해 골대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다.” ―또다른 에티켓은?“폴로에는 휴식시간에 관람객들이 모두 경기장으로 내려와 디봇 자국을 밟아주는 문화가 있다. 골프장에서 디봇자국을 덮어주는 매너하고 비슷한 것이다. 폴로는 매너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경기 중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도발이나 언행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클럽 멤버에서 퇴출된다.” ―폴로에 쓰는 공은 어떤 것인가. “폴로공은 플라스틱을 압축해 놓은 흰색공을 쓴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더 크지만, 경도 자체는 세지 않다. 사람이 맞으면 피멍 정도가 들 정도다.” ―프로리그 폴로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나. “골프에서도 핸디캡이 있듯이 폴로 선수들에도 핸디캡(등급)이 있다. 핸디캡은 -2골, -1골, 0골에서 +10골까지 있다. 숫자가 높을 수록 실력이 좋은 선수다. 보통 프로의 기준을 +3골로 본다. +10골은 최정상급 선수로 전세계에 몇 명 없다. +5골만 해도 정말 대단한 선수다. 보통 초보자들은 -2골부터 시작을 한다. 먼저 2점을 받고 경기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2골 핸디캡은 골프로 치면 18홀 모두 양파를 하는 수준으로, 140~150타 정도 치는 수준이다. 팀을 이뤄 시합할 때는 선수들의 핸디캡을 총합으로 계산한다. 만일 A팀의 핸디캡 토털이 +13골이고, B팀은 +12이라면 B팀이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한 골의 실력차를 인정해준 상태에서 시합을 하는 것이다.” ―폴로 경기를 배우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 “본격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고, 공을 치는 데까지는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첫 시합을 가진 청소년들의 경우 약 6개월간 연습을 했다. 어린 나이일 수록 더 빨리 배우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폴로 경기를 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 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지난해에 제주 폴로클럽에서는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영국과 미국 명문 대학의 폴로클럽을 초청해서 친선 경기를 진행했다. 폴로 경기는 경기자체도 즐겁지만, 경기를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교를 하는 과정도 무척 중요하다. 해외의 폴로 클럽에는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폴로 경기 자체의 매력은 무엇인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채를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난다. 폴로의 스윙도 골프와 매커니즘이 거의 비슷하다. 골프는 멈춰져 있는 공을 때리는 데도 잘 맞추기 힘든데, 폴로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움직이는 공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타는 실력이다. 기승 실력과 공을 치는 것은 한 8대 2정도의 비율로 기승이 더 중요하다.” ―폴로 선수들은 몸무게 제한이 있는가. “외국의 프로선수의 경우 약간 덩치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선수 몸무게가 가벼워야 말한테도 좋고, 경기력도 좋아진다. 100~120kg 되는 사람은 말에게 무리가 가겠지만, 그 이하는 폴로 경기가 가능하다. 폴로클럽 회원 중에는 80kg대도 있다.”―폴로 경기용 말의 수명은?“보통 말의 수명은 30~40년이다. 제주 폴로클럽의 말은 복지가 좋다. 넓고 깨끗한 마사에서 수의사들의 관리를 받으며, 미네랄과 비타민이 든 사료를 먹는다. 20살 정도면 경기에서 은퇴하는데, 은퇴 후에는 노동을 하거나 도축을 하지 않는다. 경기장 뒷쪽으로 가면 은퇴한 말들이 휴식을 취하는 목장이 있다. 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폴로 경기를 레슨해주는 프로들은 어디서 온 분들인가. “뉴질랜드, 영국, 아르헨티나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제주에 상주하며 지도해주고 있다. 현재 전세계 폴로 최강국은 아르헨티나다. 지난해 11월에 아르헨티나 프로리그 오픈컵에 초대돼 갔는데 인프라가 정말 좋았다. 한 동네에 축구장 6배 넓이의 폴로 경기장이 300개나 있었다.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말을 탄다. 상금이 큰 대회는 유럽에서 많이 열린다. 2024년에 파리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폴로를 시범경기 종목으로 넣으려고 한다.”―해외에서 폴로 경기의 위상은 어떤가.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받아들여진다. 영국의 찰스 국왕과 카밀라 왕비도 윈저성 근처의 폴로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폴로 경기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왕족이 폴로 경기를 하는데 국민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동북아에서 현재 폴로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일본에는 폴로클럽이 없다. 제주 폴로클럽 회원 중에 한 분이 일본 기업 회장의 손자가 있는데, 홋카이도에 폴로 경기장을 지으려고 준비 중이다. 중국은 폴로 경기장은 있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폴로 경기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폴로 클럽 회원의 경우 1년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폴로 경기는 해외에서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스포츠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폴로 경기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면 연간 약 1~2억원 정도 든다. 한 게임에 처커 4게임을 한다. 한 처커(7분30초) 마다 한번씩 말을 바꿔 타야 한다. 연습경기가 아니라 본 시합 때에는 한 처커에 2마리의 말을 타기도 한다. 한 경기에 총 8마리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국제대회 나가면 경기 참가비, 숙식비도 엄청나게 비싸다. 폴로 경기는 상금이 없고, 모든 비용을 참가자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폴로를 통해 글로벌한 인맥 네트워크를 맺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다.” ―폴로의 매력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가 폴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말 타기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누구나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무서워한다. 그만큼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해야 하는 운동이다. 폴로 클럽 회원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말에서 ‘떨어져 본 사람’과 ‘떨어질 사람’. 무조건 몇 번씩은 말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폴로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한다. 만나면 ‘야, 너도 폴로해? 말에서 떨어져봤어? 그래 너 멋있다!’고 말하며 금방 친해진다. 필리핀, 두바이에 가면 60, 70대의 나이에도 폴로를 열심히 하는 회장님들이 계신다.”●폴로클럽 안의 현대미술 갤러리“폴로 경기장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들이 많은데,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세계에 소개하는 갤러리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한국폴로클럽 아트갤러리 오픈 폴로컵’ 대회를 열었는데, 폴로 회원과 게스트들이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갖고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안에 있는 클럽하우스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인데 갤러리로 개조해 꾸민 것이다. 아트컨설팅과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미오컨템포러리가 운영하는 이 갤러리에서는 6월 15일까지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전통 한지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한 전광영 작가는 1994년부터 시작된 한지 오브제 작업을 토대로 다양한 크기의 스티로폼을 종이에 싸고 묶는 기법을 통해 조형성을 만들어낸다. 전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전시(Collateral Event)’로 선정된 바 있다. 세계 최대규모 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수백 건의 전시 중 엄선한 30건으로 뽑힌 전시다. 아시아의 보자기 문화에서 착안한 작가의 연작 시리즈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수히 많은 한약재 봉지를 바라보던 기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작은 조각을 만든 후 화면에 일정한 패턴으로 재배열해 그만의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 낸 것. 70~80년에서 많게는 150년 전에 만들어진 책들을 해체해 낱장이 된 한지가 작가의 손끝에서 수천수만의 매듭으로 연결되어 현대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된다. 한국코리아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님의 작품으로 올 첫 전시를 시작하게 되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이 가진 역동성을 예술이라는 문화와 접목시킴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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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한국폴로클럽에 문을 연 아트갤러리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 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멈춰 있는 골프공을 잘 치기도 어려운데, 달리는 말 위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맞힌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가 공을 쫓아 쏜살같이 달려간다. 달리는 말 위에서 긴 스틱(맬릿)을 휘둘러 하얀 공을 맞히자 ‘탕’ 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하며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환호성.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인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신기한 현장이다. 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폴로 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영국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와 같은 개념이다. 폴로를 할 때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한국폴로클럽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 오는 ‘폴로 포니(Polo Pony)’ 품종의 말 75마리가 있다.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경기 중간에는 선수와 관람객들이 잔디밭 위로 내려와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벗(divot) 자국을 함께 밟아주는 전통이 있다. 각국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폴로클럽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남종훈 한국폴로클럽 부대표) 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을 개조해 꾸민 이곳에는 현재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는 “폴로클럽에는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이 많아 한국의 대표 작가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병행전시(Collateral Event) 부문에 선정됐던 전 작가는 전통 한지(韓紙)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는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재배열하는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냈다. 한국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낸 세계적인 작가를 올해 첫 전시로 모시게 돼 의미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에 예술과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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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신안군 도초도 자산어보 촬영지

    영화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 선생이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주요 촬영세트는 신안군 흑산도가 아니라 도초도에 있다. 도초도 발매리 서쪽 끄트머리 언덕에 있는 가거댁(이정은)의 초가집이다. 대청마루를 둔 안채와 부엌, 돌담과 우물·평상·아궁이 등 영화 속 소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청마루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명당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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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일본 규슈 구마모토성

    일본 규슈에 있는 구마모토성은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지어진 성이다. 천수각 지붕 양쪽 끝은 호랑이 모양의 머리에 가시가 돋친 상상의 물고기 ‘샤치호코(鯱)’로 장식돼 있다. 불이 나면 물을 뿜어낸다는 ‘물호랑이’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성 곳곳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천수각의 샤치가와라(샤치호코가 장식된 기와)도 떨어졌다고 한다. 현재 구마모토성은 무너진 담장과 기와, 석재들의 본래 위치를 찾아 복원 중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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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바닷가에 핀 갯메꽃

    전남 신안군 우이도 모래산 언덕에는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이 활짝 피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면 함초롬히 얼굴을 내미는 꽃송이다. 갯메꽃은 거칠고 짠 소금기 바람 속에서도 모래밭에 뿌리박은 덩굴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염생식물이다. 진하고 화려한 색깔의 서양 나팔꽃은 외래 유입종이지만 육지 들판에 피어나는 토종 ‘메꽃’, 바닷가에 군락을 이뤄 피는 ‘갯메꽃’은 한복처럼 은은한 연분홍빛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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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호가 쏘아올린 ‘도요샛’ 이름의 비밀은?[전승훈의 아트로드]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날으는지~”(정광태, 이태원 ‘도요새의 비밀’)​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에 실려 궤도에 오른 ‘도요샛’은 무게 10kg에 불과한 초소형 인공위성 ‘큐브샛(Cubesat)’이다.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은 축구장만큼 큰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1000 kg이 넘는 대형위성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크기다. 초소형 군집위성인 도요샛은 마치 드론처럼 4대의 큐브샛이 함께 나란히, 또는 일렬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영어로 스나이프(SNIPE, Scale MagNetospheric and lonspheric Plasma Experiment)라고 불린다. 지구 자기장과 이온 전리층의 플라즈마 실험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목표가 담긴 줄임말이 SNIPE다. 그런데 영어로 Snipe는 ‘도요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위성이라는 뜻의 ‘SAT’을 붙여 도요샛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 가장 작고 멀리 나는 새, 도요새의 비밀 도요새라는 이름은 초소형 인공위성에 그야말로 딱 맞는 이름이다. 도요새는 ‘가장 작고, 가장 멀리 나르는 새’로 유명하다. 우리 가요에도 도요새는 많이 등장한다.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 수는 없어라~” (조용필 ‘마도요’)도요새는 지구의 순례자다. 붉은가슴도요새의 다리에 표식을 한 후 12년 만에 포획을 해보니 평생 52만km의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립 후즈라는 과학자는 100g 정도에 불과한 이 새가 날아다닌 여정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38만km)보다 더 길다고 해서 ‘문버드’(Moon Bird)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감동적인 관찰기를 책으로 남겼다.경기 화성호 습지에 많이 찾아오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습지를 찾는 마도요의 40%를 차지하는 종으로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다. 이 새는 북극권인 시베리아에서 짝짓기와 알을 낳고, 남반구의 끝자락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한다. 매년 2만70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새다.호주에서 긴 월동기간을 보낸 이들은 3~5월이 되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먹이를 먹어치우며 2주만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에너지가 지방으로 저장되는데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하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목적지는 한반도 서해안. 태평양을 건너오는 1만km의 구간 동안 먹이는 물론 물 한 모금도 못마시고, 날개를 접고 쉬거나, 잠도 자지 못한다.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도요새는 물에 빠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곳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음 뿐이다. 이렇게 도착 전에 30%는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도착할 때 쯤이면 몸무게가 40%이상 줄어들게 된다. 한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먹이를 보충하는 것이 시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의 갯벌에서 긴부리로 칠게나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한다. 여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9~10월에 다시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다. 그리고 겨울에 다시 호주까지 1만km를 날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겨울철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가 돌아올 즈음이면 떠들썩한 축제를 연다. 종을 울리며 무사히 돌아온 도요새를 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북반구로 떠나는 알락꼬리마도요 등 여러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모자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고 기도문을 외우는 도요새 환송식을 진행한다고 한다.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 갔을 때 국립빅토리아미술관 앞에 알락꼬리마도요와 비슷하게 긴부리를 가진 새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LED조형물을 보았다. 호주가 도요새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 도요샛 3기 ‘다솔’은 어디에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총 4기가 ‘완전체’인 군집위성이다. 4기가 우주에서 종대나 횡대로 늘어서 편대 비행을 할 예정이었다. 태양풍에 따른 ‘우주날씨’ 변화를 측정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전날 위성 분리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3호기(다솔)는 아직 교신이 안 됐다. 오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던 4호기(라온)는 수신에 성공했다. 도요샛과 같은 큐브샛 인공위성은 1999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스탠퍼드대학이 교육 목적으로 처음 개발했다. 우주공학교육에 주로 사용됐지만 점차 궤도 내 신기술 실험, 우주 환경시험 등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발전했다. 크고 무거운 대형위성은 개발과 발사에만 수천 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작은 크기의 큐브샛은 적은 비용으로도 제작과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4대의 각 위성들은 우주 공간에서 10km부터 100km 간격으로 천천히 멀어지며 편대 비행을 할 수 있다. 각 위성의 가스 추력기를 활용해 위성간 비행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4대가 동시 편대 비행을 하며 움직이면 관측대상에 대한 시공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는 잇점이 있다. 한 관측 대상을 서로 다른 시간에 관측하는 것 외에도 4대의 위성이 4곳의 지역을 관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일한 시간에 각 4곳의 공간적 물리량의 분포까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차세대소형위성 2호는 앞으로 2년간 태양동기궤도에서 지구를 하루에 약 15바퀴 돌면서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도요샛의 주 임무는 지구 가까운 곳의 자기장과 플라즈마를 관측하는 것이다. 천문연은 지속적으로 3호기와의 교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다만 만에 하나 교신이 계속 안 되더라도 3기로 임무 수행은 대부분 가능하다는 게 천문연의 설명이다. 당초 도요샛 4기는 횡대·종대 비행을 하며 우주 날씨를 관측하도록 설계됐다. 이재진 천문연 우주과학본부장은 “여러 대가 있으면 더 기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론적으로는 2기 이상이면 편대비행 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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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루즈와 스킨스쿠버의 성지, 사우디 홍해가 올해말 본격 열립니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올해 4분기 중에 홍해에 최고급 리조트가 들어서는 프로젝트가 완공됩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고대 유적과 문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오세요.” (알하산 알다바그 사우디관광청 대표)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대규모 ‘사우디관광 서울 로드쇼’를 열었다.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사우디의 16개 현지 관광협력사와 호텔 리조트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의 여행사와 항공사 등 관광업계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사우디의 주요 관광명소와 여행객 환대 정책을 소개했다. 사우디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관광에 1조 달러(약 1310조 원)를 투자해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성장하는 관광지로 자리잡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특히 사우디는 한국 시장을 아시아의 관광을 선도하는 영향력이 큰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사우디관광청은 “한국 관광객이 지난해 1만1000명에서 올해는 5만3000여 명이 사우디를 찾을 것으로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국영항공사 사우디아(SAUDIA)는 한국과 사우디를 잇는 직항편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8월부터 인천에서 수도 리야드로 가는 직항편이 운행됐는데, 올해 3월부터는 사우디 제2의 도시인 제다로 연결되는 ‘인천~제다 노선’도 추가해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무료 비자도 확대된다. 현재 한국인 관광객은 ‘e-비자‘(전자비자)를 발급받으면 사우디를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무료 호텔 숙박(1박)이 포함된 ’96시간 경유 비자‘를 신설했다. 두바이, 이집트, 요르단 등 중동지방을 여행하면서 사우디에 2~3일 경유해 관광하고 싶은 사람은 ’96시간(4일) 경유 비자‘를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무료 호텔 숙박(1박)도 제공된다.이날 사우디 관광로드쇼 갈라 디너에서는 K팝 그룹 ‘슈퍼주니어’가 사우디아라비아 관광청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날 슈퍼주니어의 이특, 신동, 은혁, 동해, 려욱, 규현은 사우디 관광청 홍보대사 임명장을 받았다.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해 영상 메시지를 보낸 리더 이특은 “최근 사우디 관광청의 초대로 멤버들과 여행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왔다”며 “사우디는 한국과 직항 노선도 있으니 많이 방문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하산 알다바그 사우디관광청 APAC 대표는 “K팝의 전설적인 그룹인 슈퍼주니어는 항상 사우디와 좋은 인연을 맺어왔다”며 “한국과 사우디가 서로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사우디 관광청은 2020년 6월 설립 이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주요 지역 총 16곳에 해외지사를 오픈했다.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아티스트 최초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슈퍼주니어는 2019년 아시아 가수 최초로 사우디 단독 콘서트를 열어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사우디 관광청과 함께 여행 예능프로그램 ‘램프의 기사’를 촬영하기도 했다. 사우디에는 6개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과 1만 개가 넘는 미지의 고고학 유적지가 존재한다. 사우디 정부는 고대 유적과 현대문명이 어우러진 리야드와 제다, 알울라를 사우디 관광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소개했다. 사우디의 발상지인 수도 리야드의 디리야 투라이프(Turaif), 제다의 알 발라드 구시가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알울라다.자연경관으로는 홍해가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손길이 닿지 않은 산호초를 자랑한다. 크루즈를 타고 휴식을 취하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으며, 제다 연안에서 연중 이용 가능한 스노클링 등 수상 레저 프로그램과 함께 깨끗한 해변을 즐길 수 있다. 2023년 시작한 홍해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유수의 호텔 브랜드와 함께 해변 및 섬 관광 개발을 하고 있다. 네옴의 섬도 개방하여 럭셔리 요트 섬인 신달라와 함께 공개한다.사우디 관광청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 알하산 알다바그는 “이번 로드쇼는 사우디 관광청이 기존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려는 한국 시장과 한국 여행 파트너에 대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알하산 알다바그 대표와의 일문일답.―슈퍼주니어를 사우디 관광 홍보대사로 임명했는데. 사우디에서의 K팝 인기는 어떠한가. “K팝 가수들은 사우디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아시아 관광객 유치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 슈퍼주니어, 블랙핑크, BTS 등이 사우디에 와서 공연을 했는데, 올 때마다 스타디움이 남녀 관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콘서트를 보면서 소리치고, 울고, 환호한다. 한국은 또한 게임 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생중계하는데 매우 인기가 높다. 엄청난 팔로워들을 갖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올해 9월 전 세계 최대의 게임 챔피언십 대회를 열 예정이다. 1등 상은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사우디를 세계에 알리는데 한국과 적극 협력하고 싶다.”―사우디를 관광하는 좋은 방법은.“사막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고대 유적이 즐비한 알울라에는 사막에 인피니티풀 수영장과 스파를 갖춘 해비타스, 반얀트리 같은 럭셔리 리조트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사우디 전통의 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은 에어비앤비와 같은 ‘게더른(Gathern)’ 앱을 이용해서 농가(Farm House)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 농장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소의 젖을 짜고, 닭장에서 신선한 계란을 직접 주워 오고, 야외에서 요리를 하는 사우디 전통스타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를 동반한 하이킹과 트레일을 경험할 수 있다. 농장은 20명 정도의 단체 관광객도 숙박이 가능하다.”―사우디에도 산과 계곡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 남부 산악지대다. 한국의 강원도처럼 높은 산에 숲이 우거져 있어 아름답고, 날씨도 좋고, 깨끗한 환경이 있다. 사우디는 모두 사막만 있는 줄 아는데 남부는 산과 계곡이 있어 캠핑족들의 성지다. 제가 로드트립을 갈 때 주로 가는 부저리시는 알바하랑 아브하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캠핑하기에 좋다. 테노마는 하이킹과 캠핑, 암벽등반으로 유명하다. 아브하에서는 산악을 등반하는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다.”―홍해 프로젝트는 언제 오픈하나. “올해 4분기에 완공돼 오픈할 예정이다. 식스센시스, 세인트레드시, 리츠칼튼 등 3개의 호텔 리조트가 먼저 문을 연다. 각 호텔별로 150~170개 정도의 침실이 있는 럭셔리 호텔들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홍해국제공항도 문을 연다. 매우 럭셔리한 컨셉으로 지어진 공항이다. 홍해의 섬에 리조트가 있는데 지속 가능하고, 해양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지어지고 운영될 것이다. 홍해국제공항은 제다와 네옴 사이에 들어설 예정이다.”―홍해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스포츠는. “홍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다. 아름답고 컬러풀한 산호초 군락이 매우 방대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잘 보전된 산호초 사이에는 다양한 수중생물들이 살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못하더라도 스노클링만으로도 바닷속 풍경을 보며 즐길 수 있다. 제다에서 배로 45분만 타고 가면 베하다라는 섬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려 섬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큰 고기, 작은 고기 모든 종류의 해양생물을 볼 수 있다. 홍해의 제다와 요르단 페트라, 이집트 룩소르 등 홍해의 주요 관광지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홍해 크루즈도 매우 인기 있는 여행코스다.”―홍해프로젝트와 네옴프로젝트 사이에 관계는. “모든 프로젝트는 다 연관이 돼 있다. 네옴은 미래형 스마트도시다. 테크놀로지가 가미된 도시다. 홍해프로젝트는 럭셔리 휴양 리조트다. 사우디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고,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알울라 마라야 콘서트홀이 네옴프로젝트의 모델하우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권의 모든 왕과 대통령들이 모여서 하는 ‘아랍정상회의(GCC)’를 개최했었다. 당시 제대로 된 회의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알울라 사막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다. 수많은 디자인이 제안됐으나 우리는 사우디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방해하는 건물을 원치 않았다. 결국 겉면이 거울로 된 디자인이 채택됐다. 거울은 사막의 풍경을 반사한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사막의 풍경 속에서 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건축물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한국인 관광객들이 사우디아라비아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요르단, 두바이, 이집트 등 중동 국가와 사우디가 관광을 협력할 방안은. “우리도 최우선전략이 이웃 국가들과의 관광벨트 형성이다. 두바이 같은 중동에 한 번이라도 오고, 아랍의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사우디에 올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이고, 아랍문화의 정수이고 심장이다. 사우디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 역사 문화적 배경이 깊다. 요르단 페트라나 두바이에 온 사람들이 사우디에 들러 2~3일간 경유해 관광할 수 있도록 비자나 숙박에 도움을 주는 상품도 적극 개발하고 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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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전승훈의 아트로드]

    프랑스 남부 아를이 고흐가 사랑한 도시였다면, 엑상 프로방스는 폴 세잔(1839~1906)의 고향이다. 엑상프로방스 도심 북쪽 고지대인 로브 언덕에는 세잔의 아틀리에(Atelier Cézanne)가 있다. 세잔은 1902년부터 1906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매일같이 이 작업실에서 사과를 그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언덕길을 올라, 꽃이 피어있는 나무가 가득한 정원을 지나니 세잔의 아틀리에가 나타난다. 1층엔 매표소와 아트숍이 있고, 세잔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뜰리에가 나온다. 시간마다 인원 제한이 있어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한다. 아뜰리에에 들어서자 햇살이 쏟아졌다. 왼쪽과 오른쪽 벽이 온통 커다란 유리벽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광을 좋아했던 만큼 아뜰리에에서도 햇살을 중요시했던가 보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아뜰리에에는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모자가 걸려 있다. 야외에서 스케치할 때 갖고 다녔던 휴대용 팔레트와 붓, 의자와 우산도 놓여 있다. 또한 테이블 위에는 물병과 잔, 빨간색, 노란색, 푸른색 과일이 담긴 접시가 그대로다. 하얀색 테이블보가 아무렇게나 접혀 있는 것까지 그림 속 모습이다. 테이블 뒷쪽에는 세잔이 ‘해골 피라미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던 해골 3개가 놓여 있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해골은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모티브로, 인생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세잔은 189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후년들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해골 피라미드’ ‘해골과 촛불이 있는 정물’ 등 많은 정물에서 해골을 넣어 그렸다. 또한 석고상과 십자가, 도자기 등 그림의 소품 뿐 아니라 대형그림을 그릴 때 쓰던 사다리도 그대로 있다. 1895년 7월 날짜가 쓰여진 편지도 있는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에게 보낸 편지였다. 마치 작가가 잠깐 외출한 듯. 구석구석 세잔의 숨결이 느껴져 지금이라도 한쪽 문을 열고 세잔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곳에서 그린 세잔의 사과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번째 사과로 불린다. 첫번째는 이브의 사과, 두번째는 뉴턴의 사과다. 스티브 잡스의 사과를 네번째로 꼽는 사람도 있다. 청년시절 세잔은 파리의 살롱전에 번번이 떨어지고 1863년부터 1866년까지 연달아 입선에 실패했다. 파리 생활에서 세잔은 ‘물감만 떡칠한 그림’이라는 야유와 조롱을 10년이나 견뎌냈다. 1874년 첫 번째 ‘인상주의 작품전’이 열렸고 세잔은 석 점의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그러다 그는 38세가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하는데, 이후 기존 미술평단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선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세잔의 아뜰리에는 ‘관찰’의 성지다. 그의 관찰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꿰뚫어보는 것으로 나아갔다. 세잔은 200여 점의 정물화에서 사과의 형태와 색깔을 끝없이 관찰하며 그렸다. 옆에서 본 사과, 위에서 본 사과, 아래에서 올려다 본 사과, 썩은 사과, 싱싱한 사과… 그는 이렇게 다양하게 관찰해서 바라본 사과를 한 접시 위에 담겨 있는 것으로 그렸다. 한가지 방향에서 바라본 1점 투시 원근법에 익숙한 미술계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이른바 ‘입체파(큐비즘)’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세잔을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칭했다. 피카소는 실제로 세잔의 사과에 영향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피카소는 처녀들의 눈, 코, 입을 각각 다른 방향에서 쳐다보는 각도로 그린 후 한 얼굴에 넣었으니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은 피카소, 브라크, 앙리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의 현대미술 운동으로 이어졌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사과, 물병, 접시 등 정물의 모든 형태를 기하학적인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해 추상화의 단계로 나아갔다.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의 풍경화도 마찬가지였다. 삼각형의 산과 네모난 집과 둥글거나 뾰족한 나무들…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은 고전주의 회화를 넘어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잔의 아뜰리에에서 뒷쪽 로브(Lauves) 언덕길을 약 15분 정도 오르면 ‘화가들의 땅’(Terrain des peintre)이 나온다. 생트 빅투아르 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지점이다. 세잔은 이곳에 이젤을 펴고 생트 빅투아르산과 나무와 숲, 마을 풍경을 그렸다. 지금도 생트 빅투아르 산 아래로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삼각형, 네모꼴 모양의 집들이 점점히 박혀 있다. 세잔은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장 바시스탕 바유와 함께 이 석회산을 오르내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세잔은 무려 유화 작품 44점과 수채화 작품 43점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렸다. 이 곳에는 세잔처럼 생트 빅투아르 산 풍경을 그리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이드가 세잔의 작품을 담은 판넬이 세워진 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난 후 흰색 팔레트에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등 몇가지 색깔의 물감을 나눠주었다. 세잔 아뜰리에를 관람하고, 스케치도 해볼 수 있는 체험형 현지의 여행상품을 신청한 사람들인 듯하다. 이러한 관광객 외에도 자신의 스케치 수첩을 꺼내놓고 펜으로 슥삭슥삭 그리고 있는 아마추어 화가들도 많이 있었다. 세잔의 나이 67세. 1906년 10월15일에 그는 이 언덕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그것이 생트빅투아르 산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평상시 편두통을 앓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그를 세탁소 카트에 실어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다음날 그는 또 작업실에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쓰러졌고, 결국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엑상프로방스(프랑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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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백담사 계곡 돌탑

    설악산 백담사 앞 계곡에는 수천 개의 돌탑이 쌓여 있다. 바로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하는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 쌓은 것이다. 백담사 광일 스님은 돌탑을 잘 쌓으려면 넓적한 돌을 올려놓는 사이사이에 작은 고임돌을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은 고임돌을 구석구석에 받쳐 놓으면, 태풍이 불어와도 이 돌탑은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지탱하는 것은 곳곳에 있는 작은 고임돌 같은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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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과 맞닿은 야생화 탐방길, 천상의화원 곰배령[전승훈의 아트로드]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종영됐지만 배경이 됐던 곰배령의 인기는 해마다 더해 가고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점봉산은 한반도 전체 식물 종의 5분의 1에 이르는 854종이 자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설악산국립공원(197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1982년), 산립유전자원보호구역(1987년)에다 백두대간보호지역(2005년)까지 겹쳐 철통처럼 보호된다. 그래서 점봉산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입산 금지구역인데, 이 산 남쪽 자락을 생태 탐방 목적으로 2009년 7월부터 사전 예약을 받아 개방한 구간이 바로 곰배령(1164m)이다. 지난주 곰배령 등산로 입구에서 등록명부를 QR코드로 확인한 후 들어가니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근에 내린 봄비로 계곡에 가득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왕복 10km 정도의 곰배령은 계곡 주변의 숲길을 따라 넓고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곰배령은 야생화 관찰의 명소이기 때문에 전문가용 DSLR 카메라에 접사렌즈까지 장착한 탐방객이 많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기 위해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야생화 탐방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식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며 반갑게 소리친다. 이들은 꽃 이름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연을 즐긴다.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월 현재 곰배령에 가장 무성하게 피어 있는 주인공은 ‘홀아비바람꽃’. 한 개체에서 하나의 꽃대만 올라와 꽃 한송이를 피운다. 그래서 이름이 홀아비바람꽃이다. 곰배령 정상부 근처 숲속에는 별처럼 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보랏빛 얼레지, 푸르스름한 현호색, 노란색 피나물과 동의나물꽃, 산괴불주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 설악산을 찾을 때는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이용하면 좋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에 휴양림이 있다면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한려수도 등 전국의 산과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에는 생태탐방원이 있다. 매월 초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잡기 위한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을 예약하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곰배령 야생화 탐방, 백담사 계곡 트레킹과 명상 치유, 노르딕 워킹 배우기, 산양 복원 프로젝트 견학, 밤하늘 별자리 관찰, 소원등 만들기 등 자연과 생태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특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설악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설악산의 깃대종(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인 눈잣나무가 새겨진 나무조각으로 ‘소원등’을 직접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 해먹에 누웠다. 마당에 있는 조명을 끄니 갑자기 설악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다. 가장 먼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하다. 북극성과 샛별(금성)뿐만 아니라 국자 손잡이를 그대로 이어간 곳에 있는 밝은 별로 ‘봄의 대삼각형’ 별자리를 찾다 보면 밤이 깊어져 간다. 생태해설사가 이적, 아이유, BTS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우주와 별에 관한 최신 가요를 배경으로 낭독해주는 명상의 글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이곳에서는 구조 작업 중 힘든 일을 겪은 소방관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인제 백담사 계곡에서 펼쳐지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에메랄드빛 물이 흐르는 계곡길에서 노르딕 워킹을 배우기도 하고,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광일 스님과 함께 명상과 차담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하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 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그대로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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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꽃 야생화가 가장 늦게까지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 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 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 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드라마는 종영됐지만 배경이 됐던 곰배령의 인기는 해마다 더해 가고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해발 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점봉산은 한반도 전체 식물종의 5분의 1에 이르는 854종이 자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설악산국립공원(197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1982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1987년)에다 백두대간보호지역(2005년)까지 겹쳐 철통처럼 보호된다. 그래서 점봉산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입산 금지구역인데, 이 산 남쪽 자락을 생태 탐방 목적으로 2009년 7월부터 사전예약을 받아 개방한 구간이 바로 곰배령(1164m)이다. 지난주 곰배령 등산로 입구에서 등록명부를 QR코드로 확인한 후 들어가니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근에 내린 봄비로 계곡에 가득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왕복 10km 정도의 곰배령은 계곡 주변의 숲길을 따라 넓고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곰배령은 야생화 관찰의 명소이기 때문에 전문가용 DSLR 카메라에 접사렌즈까지 장착한 탐방객이 많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기 위해 모두들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야생화 탐방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식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며 반갑게 소리친다. 이들은 꽃 이름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연을 즐긴다.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월 현재 곰배령에 가장 무성하게 피어 있는 주인공은 ‘홀아비바람꽃’. 한 개체에서 하나의 꽃대만 올라와 꽃 한송이를 피운다. 그래서 이름이 홀아비바람꽃이다. 곰배령 정상부 근처 숲속에는 별처럼 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보랏빛 얼레지, 푸르스름한 현호색, 노란색 피나물과 동의나물꽃, 산괴불주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설악산을 찾을 때는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이용하면 좋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에 휴양림이 있다면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한려수도 등 전국의 산과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에는 생태탐방원이 있다. 매월 초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잡기 위한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을 예약하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곰배령 야생화 탐방, 백담사 계곡 트레킹과 명상 치유, 노르딕 워킹 배우기, 산양 복원 프로젝트 견학, 밤하늘 별자리 관찰, 소원등 만들기 등 자연과 생태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특히 저녁식사를 마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설악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설악산의 깃대종(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인 눈잣나무가 새겨진 나무조각으로 ‘소원등’을 직접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 해먹에 누웠다. 마당에 있는 조명을 끄니 갑자기 설악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다. 가장 먼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하다. 북극성과 샛별(금성)뿐만 아니라 국자 손잡이를 그대로 이어간 곳에 있는 밝은 별로 ‘봄의 대삼각형’ 별자리를 찾다 보면 밤이 깊어간다. 생태해설사가 이적, 아이유, BTS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우주와 별에 관한 최신 가요를 배경으로 낭독해주는 명상의 글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이곳에서는 구조 작업 중 힘든 일을 겪은 소방관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인제 백담사 계곡에서 펼쳐지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에메랄드빛 물이 흐르는 계곡길에서 노르딕 워킹을 배우기도 하고,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광일 스님과 함께 명상과 차담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을 먹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글·사진 인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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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이중섭의 서귀포 섶섬

    제주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1951년)을 그렸다.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아내 마사코, 어린 아들 둘과 함께 제주로 피란 와 단칸방에 살았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은 아이들이 게를 잡으며 노는 모습이 담긴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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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한 사나이 고흐는 왜 정신요양병원으로 가야했을까 [전승훈의 아트로드]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 시내를 관통하는 강은 론강이다. 밤에 론강 변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돈 매클린의 팝송 ‘Vincent’의 가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고흐가 론강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기다란 그림자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는 고흐가 고갱과 함께 살던 ‘노란집’(Yellow House)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곧바로 강가로 향하면 5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다. 고흐는 저녁에 론강변을 산책했을 것이다. 봄철이라 저녁에 되자 미스트랄 바람(프로방스 지역 산에서 내려오는 특유의 지역풍)이 거셌다. 론강의 강물이 파도를 치는 것처럼 찰랑찰랑 너울이 일었다. 초저녁 하늘에는 샛별이 낮게 떠 있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거렸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정확한 장소를 찾아갔더니, 그림 속 성당도 보이고 둥그렇게 돌아가는 강변의 모습이 똑같았다. 고흐 그림 속에는 집집마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강물에 번졌을텐데, 지금은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가로등 불빛이 길게 일렁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나는 지금 아를 강변에 앉아 있다. 별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걷고 있어.”(‘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인상파 화가 그림 따라잡기 인상파 화가들이 살던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튜브 물감이 발명됨에 따라 인상파 화가들은 실내가 아니라 화판과 팔레트, 물감과 붓을 들고 다니며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이 살던 도시에 가보면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특정 지점을 만난다. 그림과 현장을 번갈아 비교해가면서 내가 화가가 된 듯한 기분으로, 그 시점으로 돌아가 현장을 바라보는 것은 여행의 특별한 즐거움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보고 난 후,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 집의 정원에 가보시길. 수련이 피어 있는 연못 위에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그림이 그려진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또 찍게 될 것이다. 아를은 35세의 고흐가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5개월간 머물렀던 도시다. 아를 시내 곳곳 길바닥에는 고흐가 걷는 모습이 그려진 동판이 붙어 있다. 이 동판을 따라가면 고흐의 그림 속 장소가 하나둘씩 나타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약 2년간 무명의 화가로 생활했던 고흐는 남프랑스의 따스한 햇살이 빛나는 아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파리에서 알던 몇몇 화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집을 빌리고, 아뜰리에를 꾸며서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꾼 것이다. 아를에서 그는 고갱과의 만남과 불화, 귀를 자르고 병원에 입원하고, 동네에서 쫓겨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겪지만, 이런 힘겨운 삶 속에서도 불굴의 창작을 계속한다. 그는 아를에서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 병원의 정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원형 경기장’ ‘해바라기’ 등 유화 200점, 드로잉과 수채화 100점 등 3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여행의 시작은 고흐가 살던 ‘노란집’(Yellow House)다. 기차역과 론강 사이의 광장에 있는 이 집은 고흐가 약 6개월간 살았던 집이다. 그 중에서 고갱과 살았던 기간은 단 두달간. 고흐가 노란집 자기 방을 그린 그림과 고갱을 위해 그렸던 해바라기는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이 광장 앞에는 고흐가 그린 ‘노란집’ 그림이 세워져 있다. 고흐가 살던 노란집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부숴졌으나, 그림 속 굴다리 위 기찻길은 현재도 그대로 있다. 노란집 옆에는 카페가 있었는데, 고흐가 아를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카페의 여주인이었던 지누 부인(Madame Ginoux)이다. 고흐는 지누 부인을 ‘아를의 여인(Arlesienne)’이란 이름으로 여러차례 그림으로 그렸다. 고흐 그림 속에서 지누부인은 프로방스 전통의상을 입고 책을 놓고 앉아 있는 정숙한 부인으로 그려진다. 또한 아를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투우 경기 그림에서도 고흐의 절친인 지누부인과 우체부가 등장한다. 아를의 투우 경기는 스페인 전통 투우와 게임의 룰이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투우사가 소를 칼로 찔로 죽이는 장면으로 끝나는 반면, 프랑스 아를에서는 여러 명의 투우사가 성난소를 피해다니며 소의 뿔에 묶인 리본을 많이 떼내가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발걸음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200여 통의 편지를 부쳤던 시청 앞 광장 우체국을 지나서 포룸 광장으로 향한다. 고대로마 시대 도시의 각종 이벤트가 펼쳐졌던 포룸광장 한쪽에는 고흐의 단골카페가 있다. 그는 이 곳에서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다. 그는 따뜻한 불빛 조명이 비친 벽을 노랗게 그렸는데, 푸른색 밤하늘의 별과 대조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래 벽이 노란색은 아니었고, 조명을 받은 부분을 노랗게 그린 것이다. 이 곳은 현재도 ‘반 고흐 카페’로 영업 중이다. 그런데 그림 속처럼 벽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뒤쪽 건물에서는 푸르스름한 조명까지 비춰놓았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반 고흐 카페가 조명의 디자인과 벽에 새겨놓은 글씨까지 그림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이 놀랍다. 고흐는 노란 벽면에 어두운 곳에 음영을 표현할 때는 초록색으로 칠했는데, 실제 이 카페에는 벽면에 노란색과 초록색을 칠해놨을 정도다. 지난달 초 포룸광장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투우 페스티벌 전야제여서 포룸광장에서는 밤새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는 파티가 열렸다. 고갱이 다툼 끝에 파리로 떠난 후 고흐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신의 귀를 잘라 종이에 쌌다. 그리고 사창가의 여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여인이 홍등가에서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설도 있고, 매춘부가 아닌 세탁과 설겆이 일을 도와주던 여성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론강의 어부들이 자주 가던 술집이 몰려 있는 곳은 노란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현재도 이 곳에서 ‘빨간 집’(La Maison Rouge)라는 상호를 가진 가게가 있다. 혹시 고흐가 찾아간 그 여인이 있던 집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빨간집’은 현재 꽃가게였다. 고흐가 종이에 싸서 준 선물에 귀가 있는 것을 발견한 여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고흐는 일단 귀에 입은 외상 치료를 위해 아를 시립병원으로 이송됐다. 시립병원은 현재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라는 이름의 고흐 기념관이 됐다. 병원의 1층 정원에는 분수와 연못 주변에 형형색색의 꽃이 심어져 있는데, 고흐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정원을 그림으로 그렸다. 정원에 세워진 그림을 보니 고흐가 그린 시점은 1층이 아니라 2층 병실 복도에서 내려다본 느낌이었다. 그래서 2층 중앙에서 약간 왼쪽 지점으로 가보니 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각도를 찾을 수 있었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병원의 외벽과 기둥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노란색이 칠해져 있다. 당시 실제 병원의 외벽이 노랗게 칠해져 있지는 않았겠지만, 현재 이곳은 고흐의 그림처럼 샛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시립병원에서 귀를 치료한 고흐는 한달만에 다시 노란집으로 돌아왔으나, 동네사람들의 민심은 흉흉했다. 사람들은 고흐를 위험인물로 봤다. 자신의 귀를 자해하고, 손수건에 싸서 여인에게 줄 정도의 끔찍함이라면 다른 사람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찰서에서 ‘고흐를 마을에서 내쫓고, 격리 시켜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아를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가이드 프랑수아 씨는 “아를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던 친구였던 지누 부인과 우체부마저 고흐를 내쫓아달라는 청원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흐의 정신적 병이 더욱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만일 지누 부인이 청원서에 서명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고흐에게는 고갱과 다투었을 때보다 더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외로움은 배가 되는 법이다. 결국 고흐는 동생 테오의 권유대로 아를의 노란집을 떠나 생레미 정신 요양병원에 지진입원한다. 생 레미는 아를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프로방스의 알피유 산맥의 줄기에 있는 숲이 우거진 생 레미에는 트레킹 코스가 있어 봄을 느끼며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흐가 1년 가까이 머물렀던 생레미 정신요양병원은 원래 중세 때부터 있었던 ‘생 폴 드 모솔’ 수도원이었다. 이 병원이 본래 수도원이었다는 사실은 아치형 기둥으로 둘러싸인 회랑식 정원(Cloister Garden)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생레미 정신요양병원은 지금은 고흐의 발자취를 담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짝마른 몸의 고흐가 화구를 들고 서 있는 청동 조각상이 서 있다. 내부 방에는 고흐가 입원해 있던 병실의 침대와 욕조 등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병원 주변의 산책로에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벚나무, 들판과 집 등 고흐의 그림 속 풍경이 펼쳐진다. 고흐는 생 레미에서도 하루에 1편 이상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고흐는 생레미에 입원해 있는 동안 동생 테오 부부가 조카를 낳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테오는 아들에게 형의 이름을 따라 빈센트라고 이름을 지었다. 고흐는 조카의 탄생 소식을 기뻐하며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그렸다. 푸른색 바탕에 벚꽃처럼 하얀 아몬드 나무 꽃이다. 생폴드모솔 수도원의 정원에는 고흐의 그림을 보명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고흐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그림에는 생명력 넘치는 봄날의 프로방스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고흐가 이 곳에서 그린 대표작은 바로 ‘별이 빛나는 밤’이다. 아침에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린 이 그림에서 사이프러스 나무는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밤하늘의 별빛이 파도처럼 흘러간다. 고흐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언덕과 구름, 집과 나무, 밤하늘과 별빛을 바라보는 자신의 황홀경의 감정을 그림 속에 가득담아 표현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은 아를에 새롭게 지어진 ‘루마(LUMA) 아를 뮤지엄’에 의해 건축적으로 재해석됐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신작이다. 외벽을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4개의 은빛탑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하늘로 솟아올라 간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타오르고 있다. 외벽은 햇빛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면모하는데, 특히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환상적이다. 건물의 푸르스름한 외관은 고흐의 그림 속 밤하늘이 되고, 오랜지색 조명이 들어온 창문은 맴도는 별빛이 된다. 아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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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미술관[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아를은 로마 원형경기장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로마 유적이 즐비하다. 또한 ‘빛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5개월간 머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곳이다. 최근에는 고흐의 그림을 모티브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LUMA) 아를’이 문을 열었고, 한국의 이우환 화백(86)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도 개관했다. 고흐와 세잔의 숨결이 살아 있는 프로방스로 미술 여행을 떠나보자.》 “Starry, Starry Night∼” 아를 시내를 흘러가는 론강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돈 매클린의 팝송 ‘Vincent’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봄철 프로방스 지역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거센 미스트랄 바람에 론강의 강물이 파도치는 것처럼 일렁이는 밤이었다. 초저녁 하늘에는 샛별이 낮게 떠 있고, 뭇별이 반짝 거렸다.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기다란 그림자를 그려놓았다. ● 고흐의 그림 따라 아를 여행고흐, 모네, 세잔 등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이 살던 프랑스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바로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를 시내 곳곳에서 고흐가 걷는 모습이 새겨진 길바닥 동판을 따라가면 고흐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35세의 고흐는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5개월간 머물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 병원의 정원’ ‘고흐의 방’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유화 200여 점을 그렸다. 고흐가 고갱과 함께 살았던 노란집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부서졌으나, 그림 속 다른 건물과 기찻길은 현재도 그대로다. AD 90년 로마시대에 세워진 원형경기장에서는 요즘도 투우 경기가 열린다. 올 4월 초에 찾았을 때도 오랜만에 열린 투우 페스티벌로 온 도시가 떠들썩했다. 아레나 앞에는 고흐가 그린 투우 경기장 그림 속에는 고흐가 ‘아를의 여인’이란 제목으로 그린 지누 부인의 얼굴이 또렷하다. 발걸음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부치러 다녔던 시청 앞 광장 우체국을 지나서 포룸 광장으로 향한다. 고대로마 시대 도시의 각종 행사가 벌어졌던 이 광장 한쪽에는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카페가 있다. 고흐는 따뜻한 불빛 조명이 비친 벽을 노랗게 그렸는데, 푸른색 밤하늘의 별과 대조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재도 ‘반 고흐 카페’로 영업 중인데, 그림 속처럼 벽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조명까지 복원해 놓았다. 함께 살던 고갱이 다툼 끝에 파리로 돌아가버린 크리스마스이브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휴지에 싸서 한 여인에게 선물로 준다. 고흐는 결국 동네에서 쫓겨나 생레미 정신요양원으로 이송된다. 고흐가 귀를 치료했던 아를 시립병원 2층에서 그는 정원을 그렸다. 지금은 ‘에스파스 반 고흐’라는 기념관이 된 이곳에서 정원의 분수와 꽃밭, 노란색 기둥을 쳐다보며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아를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생레미 정신요양병원이었던 생폴드모솔 수도원이 나온다. 고흐는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물렀는데, 아침에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밤하늘의 별빛이 파도처럼 흘러가는 그림이다. 정원에는 고흐가 병원에서 그린 그림을 보며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중엔 고흐가 동생 테오 부부가 조카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그렸던 ‘꽃이 핀 아몬드 나무’도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봄날의 프로방스 풍경이 담겨 있었다.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닮은 미술관요즘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은 2021년 6월 개관한 ‘루마 아를’ 뮤지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었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신작이다. 외벽에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4개의 은빛탑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하늘로 솟아올라 간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타오르고 있다. 금속 패널 군데군데 창문 모양의 유리박스 56개가 달려 있다. 외벽은 햇빛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면모하는데, 특히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환상적이다. 건물의 푸르스름한 외관은 고흐의 그림 속 밤하늘이 되고, 오렌지색 조명이 들어온 창문은 맴도는 별빛이 된다. 아랫부분 원통 모양의 유리 건물인 드럼(Drum)은 아를의 로마 원형경기장을 모티브로 했다. 이곳은 1938년부터 프랑스의 국영철도회사(SNCF)가 소유하던 철도 보관소였는데, 현재는 정원과 전시공간, 예술가 작업실, 호텔, 카페 등이 지어졌다. 루마 아를 내부 로비에는 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이 있다. 작가 카르슈텐 횔러의 작품으로, 자칫 엄숙해질 수 있는 박물관에서 웃음을 주는 장치다. 루마 아를 9층 테라스에는 프로방스산맥과 론강, 습지를 볼 수 있는 파노라믹 뷰가 펼쳐진다. 1층 로비에 있는 ‘드럼 카페(Drum Cafe)’에서는 동서양의 퓨전음식을 즐길 수 있는데, 천장에 빨강 초록 노랑 등 각종 배관이 노출돼 있다. 파리의 퐁피두센터 외관을 보는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아를 시내에 2022년 4월에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도 핫플레이스다. 일본 나오시마,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어 아를에 세 번째로 지어진 이 화백의 세 번째 작품 전시공간이다. 16∼18세기 3층 대저택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을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과 야외 테라스에는 돌과 철로 구성된 ‘관계항(Relatum)’ 작품 10점이 설치돼 있고, 2층에는 점과 선으로 이뤄진 회화 작품 30점이 전시돼 있다. ‘점 하나 찍으면 1억 원’으로 불리는 이 화백의 대형 작품을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곳에는 이 화백의 친구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의 콘크리트 작품도 있다.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두운 공간의 끝까지 들어가면 발밑에 하늘이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를이 고흐가 사랑한 도시였다면, 엑상프로방스는 폴 세잔(1839∼1906)의 도시다. 도심 북쪽 고지대인 로브 언덕에는 세잔이 죽기 직전까지 사과를 그리던 아틀리에(Atelier Cézanne)이 있다.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작업실 가운데의 테이블에는 세잔 그림 속 사과와 물병, 접시가 지금도 그대로 놓여 있다. 또한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모자, 석고상과 해골, 이젤과 팔레트, 모네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놓여 있다. 구석구석 세잔의 숨결이 느껴져 지금이라도 한쪽 문을 열고 세잔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세잔의 아틀리에 뒤쪽 언덕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화가들의 땅(Terrain des peintre)’이 나온다. 세잔이 사과와 함께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생트빅투아르산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세잔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뾰족한 산과 삼각형, 네모꼴 모양의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세잔처럼 수첩을 꺼내 생트빅투아르산을 펜으로 그리고, 수채물감으로 칠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입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가볼 만한 곳=프로방스의 대표적인 농산물은 올리브다. 아를에 있는 ‘마리위스 파브르(Marius Fabre)’는 1900년부터 4대째 천연 올리브 오일과 카마르그 습지의 소금 등 천연재료만으로 만드는 마르세유 비누의 명가다. 피부에 좋은 프로방스 전통 수제비누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 원형경기장 옆 레스칼라두(L’escaladou) 레스토랑에서는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맛볼 수 있다. 지중해에서 잡은 생선에 양념을 넣어 끓인 수프에 우선 빵을 찍어 먹다 보면, 테이블에서 직접 뼈를 발라 접시에 담아준다. 40년째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손맛은 비린 느낌 하나 없는 프로방스 전통 생선요리를 맛보게 해준다. 아를·엑상프로방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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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건축물로 재탄생[전승훈의 아트로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닮은 건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도시 아를에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건축물이 등장했다. 2021년 6월 문을 연 루마 아를(LUMA ARLES) 뮤지엄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의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O. Gehry)의 신작이다. 빌바오에서처럼 금속성 재질의 외피와 유리를 활용한 비정형적인 형태로 쌓아 올린 건축물은 한눈에 그의 작품인 걸 알아볼 정도다.UMA 아를은 프랑크 게리가 고흐의 그림과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프로방스 지방의 거친 바위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건축물이라고 소개했다. 아를은 1888년 2월부터 당시 35세였던 빈센트 반 고흐가 15개월간 머물며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아를의 여인’ 등 대표작 유화 200여 점을 그린 고흐의 도시다. 또한 원형경기장과 야외극장, 로마인 묘지 등 고대 로마 시대 유적이 즐비해 ‘프랑스의 로마’라고 불린다. 루마 아를 센터(LUMA Arles Complex)는 주변에 총 27에이커에 이르는 지역에 정원과 연못,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전시장, 카페, 호텔 등 다양한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부분이 메인 건물인 타워(La Tour)다. 1만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벽돌처럼 쌓아 올린 건물은 물결치며 일렁이는 외관을 뽐내는 4개의 은빛 탑으로 이뤄져 있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불꽃모양으로 타오르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금속 패널 군데군데에는 창문 베란다 모양의 유리 상자 56개가 달려 있다.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건물의 푸르스름한 외관이 밤하늘처럼 보이고, 그 안에 창문에 오렌지색 조명이 들어와 하늘에 빙글빙글 맴도는 별빛과 달빛처럼 느껴진다. 총 56m 높이의 12층 건물은 알루미늄 패널이 뒤틀린 벽면을 타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이 알루미늄 패널은 태양 빛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금속과 유리로 된 표면은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바뀌는 데 특히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노을이 질 때 아름답다. 아를에 있는 동안 프로방스의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 별빛을 캔버스에 담으려고 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끊임없는 노력을 건축물로 구현해낸 것이다. 아랫부분 유리로 된 거대한 원통 모양의 포디움인 ‘드럼(Drum)’은 아를의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아레나)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직경 54m, 높이 18m의 드럼은 총 670톤의 유리창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특이한 것은 포디움 위로 솟아오른 불꽃처럼 타오르는 알루미늄 패널이 원통형 건물 내부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관람객들은 매표소와 로비가 있는 드럼의 1층 출입구로 들어가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은빛 패널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 실제 가까이서 보니 알루미늄 패널의 표면은 매끈하지 않고, 미세한 구멍이 수백 수천개씩 뚫려 있는 형태였다.프랑크 게리는 또한 프로방스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나온 돌과 광물질도 건축에 활용했다. 알피유 산맥과 레보 드 프로방스(Les Beaux de Provence) 지역의 우뚝 솟은 거친 절벽과 바위의 몽환적인 질감이 건물 형태에 반영돼 있다.엘리베이터 옆 벽면에는 론강 주변 카마르그 습지에서 생산되는 소금 결정체를 타일로 만들어 붙였고, 화장실 거울 위에는 지중해 바다에서 채취한 해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무늬를 새겨넣은 타일로 장식돼 있다.루마 아를 입구에서 표를 끊고 입장하면 로비가 나온다. 로비에서 사람들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활동 중인 작가 카르스텐 횔러(62)의 작품으로, 자치 엄숙해질 수 있는 미술관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치다.아름다운 회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내려올 때 가장 빠르고 짜릿한 방법은 아랫도리에 자루를 입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미끄럼틀은 엘리베이터나 계단만큼 안전하고, 우아하게 높은 층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운송 수단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9층에는 테라스에 파노라믹 뷰가 펼쳐진다. 루마 아를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프로방스의 알피유 산맥(les Alpilles)과 구불구불한 론강, 카마르그 습지(La Camargue), 몽마주르 수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아를 시내의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을 비롯한 시가지 전체와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행렬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풍경들이 루마 아를의 금속성 패널과 유리 상자와 어우러진다. 자연과 역사, 인공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아를 시내의 전망을 볼 수 있는 방은 8층에도 이어진다. 독일의 산업디자이너인 콘스탄틴 그르시치(58)가 디자인한 8층은 투명한 금속 커튼을 활용한 연극무대처럼 꾸며진 방이다. 금속 표면을 지닌 건축물 내부에 같은 금속으로 만든 커튼이 햇빛을 가리는 골목길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다.얇은 금속을 촘촘한 그물망처럼 엮은 커튼 너머로 프로방스의 산과 강, 아를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보인다. 9층의 테라스와 쌍으로 연결된 전망 좋은 공간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홀이다. 루마 아를 타워에는 메인 전시홀(1000㎡)과 2개의 작은 전시장이 있다. 조각과 그림,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건물 내에는 강의실과 아틀리에, 세미나실 등도 갖춰져 있다. 루마재단은 “2004년부터 환경, 문화, 교육,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시각예술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마 아를이 자리 잡은 지역은 19세기부터 있던 7개의 공장 터가 있었는데, 1938년부터 프랑스의 국영철도회사(SNCF)가 소유하고 있던 철도 보관소로 이용돼 왔다. 오랫동안 버려진 땅을 자연생태와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처음 꿈꾼 것은 마야 호프만이다. ​​스위스 출신 유명 컬렉터인 그는 2004년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1억5000만 유로를 기부해 루마 재단(Luma Foundation)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3년부터 아를에 프랑크 게리의 건축물이 중심이 되는 ‘아뜰리에의 공원(Parc des Ateliers)’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랜드홀, 포르주, 메카닉 제네럴을 포함해 이 공원을 이루는 6개 건축물에서는 연중 내내 각종 행사가 개최된다. 매년 여름에는 아를 국제 사진전이 열린다. 루마 아를 타워 1층 로비에 있는 ‘드럼 카페(Drum Cafe)’에서는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 중에는 동서양 퓨전 음식도 있는데, 만두처럼 생긴 음식의 재료에 ‘김치’가 들어간다는 메뉴판 설명을 보고 시켜보았다. 그랬더니 김치라기 보다는 소금에 절인 무 종류의 야채 샐러드가 들어가 있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유리창 전망이 좋은 드럼 카페는 천장 인테리어가 흥미로웠다. 빨강, 초록, 노랑 등의 각종 배관이 노출된 형태였는데, 마치 파리의 퐁피두센터 외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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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에 문을 연 이우환 미술관[전승훈의 아트로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도시 아를 시내의 한복판. 한국의 미술가 이우환(87)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이우환미술관(Lee Ufan Arles)을 만날 수 있었다. 2022년 4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미술관이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매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화랑미술제를 비롯해 국내외 대표적인 아트페어에서 최고 가격으로 팔리는 핫한 작품이다. 우스갯소리로 “점 하나 찍으면 1억, 점이 2개 있으면 2억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순한 점, 선으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 외에서도 특히 일본과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 2010년 일본 나오시마 섬에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졌고, 2015년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우환 공간’이 개관했다. 프랑스 아를에 세워진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 한국에 이어 세 번째 세워진 이우환 화백의 상설 작품 전시 공간이다.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던 이우환 화백은 2014년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궁의 초청으로 야외정원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제프 쿤스, 아니쉬 카푸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에 이어 초청받았던 것. 이 화백은 당시 돌과 철판을 재료로 한 ‘관계항’(Relatum) 연작 총 10점을 설치했다. 그렇다면 이우환 화백은 프랑스에서도 왜 하필 아를에서 미술관을 개관한 것일까. 프로방스의 아를은 빈센트 반고흐가와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등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도시로,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도시이자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흐는 아를에서 약 15개월간 머물면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란집’ ‘꽃피는 아몬드 나무’ 등 200여 점의 자신의 대표작을 남겼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프로방스의 자연 속에서 고흐는 바람과 별, 구름, 꽃, 나무를 찾아다니며 명작을 그릴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독한 외로움과 따돌림, 친구와의 다툼과 자해, 투병과 요양을 겪으며 인생의 가장 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 아를은 고흐 이전에도 ‘프랑스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이 잘 남아 있는 도시다. AD 90년 아우구스투스 1세 시절 지어진 로마 원형경기장은 2만5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인데, 지금도 투우경기장과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4월 초에 아를을 찾았을 때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열린 투우 페스티벌의 열기로 온 도시가 들썩였다. 또한 1세기경에 세워진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를 고대극장이 있고, 로마인 공동묘지 ‘알리스캉’도 잘 남아 있다. 또한 2021년 아를에는 초현대식 뮤지엄인 ‘루마(LUMA) 아를’이 개관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던 프랑크 게리의 신작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모티브로 한 루마 아를은 요즘 유럽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이러한 프로방스의 미술 여행의 중심지로 떠오른 아를 시내 한복판에 이우환 작가의 미술관이 생겼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이우환 화백은 인터뷰에서 “아를은 로마 제국 이래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 역사와 내 작품이 만나 서로 부딪히고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16~18세기에 지어진 ‘오텔 베르농(Hotel de Vernon)’ 저택이다. 로마시대 고대 원형경기장과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포룸광장 사이 골목길에 있는 대저택이다. 이 건물은 25개의 방이 있는 옛 3층 주택으로, 연면적 1350㎡ 규모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설계했는데,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도 안도 다다오가 참여했다.아를 이우환미술관 관계자는 “이우환 화백의 절친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저택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며 ”오래된 역사를 지닌 베르농 저택을 정제된 예술작품의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에 안도 다다오와 이우환 화백이 깊은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아를 이우환 미술관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로 된 벽 사이로 들어가면,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장 안에 있는 중심부에는 발바닥에 하늘이 있다. 어떻게 발밑에 하늘이 보이지? 하고 잠시 어리둥절한 순간, 자세히 보니 영상이었다. 하늘을 찍은 영상을 바닥에 틀어놓은 것이었다. 어두운 달팽이 콘크리트 벽 안에서 만난 낯설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입구의 콘크리트부터 1층은 온통 돌의 향연이다. 1층에는 이우환 화백의 돌과 철로 된 작품 10점이 전시되고, 2층에는 이 화백의 회화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사물과 세계의 관계에 천착하면서 일본 아방가르드 운동 ‘모노하’를 주도했다. 모노하는 1960~70년대 콘크리트, 유리판, 강철 등 산업 재료와 돌과 나무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 미술 운동이다. 이우환이 돌과 철, 유리판을 특정한 공간에 놓아 두는 설치 작품은 ‘관계항’(Relatum)이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돌과 철판, 유리를 공간 속에 다양한 형태로 놓아둠으로써 관객들이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한다. 라틴어인 ‘Relatum’은 철학 용어로 관계를 맺는 주체를 뜻한다. 예술작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공간의 변함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공간에서는 관객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우환은 사람들이 “아를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서 내 작품이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가란 작품의 매개자이자 중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며,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인 셈이다.“길가의 녹슨 병뚜껑을 보고도 가슴이 뭉클해질 수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많은 예기치 않은 순간들, 찬란하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더러운 순간들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우환)​돌 사이에 강철 막대가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우리의 대화는 엇갈림 속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는가.벽의 액자를 바라보는 돌멩이는 액자 속에 들어 있어야할 그림을 깔고 앉아 있다.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은 깔고 앉아 있고, 텅빈 액자 속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닐까.돌멩이에 꽂힌 철사가 벽에 뭔가 그리고 있다. 물음표?​천정에 달린 조명 빛이 커다란 접시에 담긴 물에 반사된다. 물빛이 흔들릴 때마다 천정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새겨진다. 고흐가 그린 아를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 같기도 하고, 해골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프면서도 찬란한 빛이 변화무쌍하게 공간을 가득 채운다. 돌을 유리판 위에 올려 놓다가 깨졌는데, 우연하게 금이간 유리판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내 삶의 단 한번의 선택도 내 인생에 커다란 금을 가게 할 수 있다. 깨진 금은 어디로 쫙 갈라져 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 그것도 하나의 인생의 지문으로 남을 것일 뿐. 1층 전시장 마지막 작품. 이우환이 손녀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바닥에 앉아 있는 돌멩이는 손녀이리라. 할아버지는 벽에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하얀색 캔버스를 걸어놓았다. 손녀가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작품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하얀색 도화지에 손녀가 자신만의 관계항을 그려,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뜻일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려 있는 도예 작품. 흙으로 빚은 판에 손가락을 깊게 찔러 넣은 자국으로 점을 하나 찍어 놓았다. 점과 선에 천착해 온 자신의 세계를 2층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주리라 하는 의도인 듯하다. 이우환 화백은 1973년쯤 부터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을 시작했다. 그는 점을 찍은 뒤 붓끝의 안료가 없어질 때까지 선을 긋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묵화에서 먹을 묻힌 후 물기가 날아가면 거칠어진 선이 남게 되는 ‘비백’ 효과를 서양화에서도 도입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본 아를의 한 소년은 “비행기가 날아갈 때 하늘에 남은 하얀 흔적같다”고 말했다고 한다.제트기 수십대가 함께 편대비행을 한 자국일까.구부러진 선도 나타난다.이번엔 점이다. 점이 두 개다.점 하나 찍었다. 설마 이 작품은 얼마일까?자유분방한 점들. 점 하나가 좀더 커지고, 길어졌다.점이 화분 모양이 된다. 동양화처럼 농담의 차이가 있는 점이다. 애플 로고처럼 단정하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3D 효과가 난다.점이 여러개로 변한다.점이 동그란 원을 이룬다. 점의 행렬이 뒤로 갈 수록 농도가 옅어진다. 왼쪽 방향으로 헤엄치는 올챙이들 같기도 하고, 매트릭스 영화에 나오는 컴퓨터 화면 픽셀 같기도 하다. 점이 컬러로 변한다. 붉은색과 푸른색 점이 포옹을 하면서 겹치며 한몸이 되고, 계단을 이루기도 한다.​ 이우환이 1층 야외 정원과 방에 돌과 철, 유리로 설치해놓은 ‘관계항’을 보고 난 후에 2층에 있는 회화 작품을 보니 비로소 그의 작품 세계가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이우환은 돌과 철로 ‘관계항’ 작품을 할 때는 야외나 방이라는 3차원 공간을 캔버스 삼아서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러한 돌과 철은 2차원 평면의 회화 작품에서는 붓으로 그린 점이 되고, 선이 되는 것이다. 집 안에 돌과 철과 같은 무거운 작품을 가져다 놓을 수 없으니, 회화 작품을 벽에 걸어놓고 점과 선의 관계항을 명상해보라는 뜻인 듯했다. 그의 점은 돌이고, 선은 쇠막대였다. 그의 캔버스는 입체적인 방이고,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를에서 이우환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세계 어떤 미술관이나 아트페어보다 가장 많은 작품을 보았던 것 같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에서도 야외와 실내에서 작품을 보았지만, 아를이 작품이 더 다양하고 많았다. 이 정도 크기의 이우환 작품을 이렇게 많이 모아놓다니. 과연 가격이 얼마나 될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우환은 아를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대여해주었다고 한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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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요즘 파리는 공사 중이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곳곳에서 문화유산 보수 공사를 벌이고 있다. 2019년 4월 화재 피해를 본 노트르담 대성당도 공사가 한창이다. 프랑스 정부는 5년 만에 재개관을 목표로 매일 500명의 인력을 투입해 공사를 벌이고 있다. 복구 작업에는 수령 150년이 넘은 참나무 1000여 그루가 들어갔다. 지난달 현장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12월 우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 있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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