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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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철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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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2024-04-20
칼럼100%
  • [횡설수설/이철희]M1 전차와 새 주한미군사령관

    1991년 걸프전쟁 때 미군 전차 ‘M1 에이브럼스’ 한 대가 진창에 빠져 고립된 채 이라크군 T-72 전차 세 대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M1은 옴짝달싹 못한 상태에서도 T-72 세 대를 모두 격파했다. 그중 한 대는 모래언덕 뒤에 숨어 있었지만 살아남지 못했다. M1에는 T-72가 쏜 포탄에 가볍게 긁힌 자국만 남아 있었다. 주포의 긴 사정거리와 디지털 사격통제체계, 혁신적인 보호 장갑(裝甲)으로 무장한 M1은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걸프전을 마무리 지었다. ▷이런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M1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차 지휘관으로 활약한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장군(1914∼1974)의 이름을 땄다. 그는 ‘기갑의 명장’ 조지 패튼 장군 휘하에서 화려한 전공을 쌓았다. “내가 육군 최고의 전차 지휘관이겠지만, 나에 견줄 만한 유일한 동료는 에이브럼스다. 그는 세계 최고다.” 패튼이 한 말이다. 그러니 미군의 2세대 주력 전차 ‘M60 패튼’이 3세대 전차 ‘M1 에이브럼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주베트남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에이브럼스 장군은 ‘육군 명가(名家)’를 이뤘다. 여섯 자녀 가운데 세 아들 모두 육군 장성이 됐고, 세 딸도 모두 육군 장교와 결혼했다. 그와 세 아들이 단 별이 모두 13개다. 그의 셋째 아들 로버트 에이브럼스 육군전력사령관(57)이 최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의 후임으로 지명됐다. 이달 말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르면 다음 달 한국에 부임할 것이라고 한다. ▷에이브럼스 지명자는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말기에 참전해 1, 10, 9군단의 참모장으로 일했고, 지난달 작고한 둘째형은 1990년대 주한 미2사단장으로 의정부에서 근무했다. 2사단의 부대마크를 산뜻하게 다시 디자인한 사람이 형 존 에이브럼스 전 육군교육사령관이다. 한미동맹의 미래를 놓고 말이 많은 요즘이다. 에이브럼스 일가가 한국과 맺은, 그리고 계속 이어갈 인연이 한미 간 굳건한 버팀목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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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남북관계, 임종석이 나설 일 아니다

    뜬금없었다. “특사단이 다시 평양에 갑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함을 안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어쩌다 한 번쯤 띄우던 가벼운 단상이나 소회가 아니었다. 그가 ‘판문점선언이행추진위원장’도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뭔가 거슬렸다. 임 실장이 글을 올린 것은 특사단 방북을 이틀 앞두고 특사 명단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평양에 가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으로 읽혔다. 수석특사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대신 그를 보내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던 터다. 그는 2월 김여정의 서울 방문 때 환송만찬을 주재했고 4·27 판문점 회담 때도 김여정의 카운터파트였다. 그로선 의욕을 보일 법도 하다. 그리고 여드레 뒤인 11일, 난데없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평양 동행 요청을 거절한 국회의장단과 야당 대표들을 향해 ‘올드보이가 아닌 꽃할배의 면모를 보여 달라’고 썼다. 호소라지만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격한 실망감이 묻어났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도 드러냈다. 그는 “저도 일찍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며 ‘중진들의 힘’을 강조했다. 사실 초선 국회의원 시절 그는 선배 중진 의원이 밤늦은 술자리에 호출하면 금세 달려오는 붙임성 좋은 소장파였다. 그렇게 재선 의원에 서울시 부시장을 거친 현실 정치인이 됐지만, 이번에 그의 의욕은 앞섰고 일처리는 서툴렀다. 30년 전 그의 모습마저 어른거리게 만들었다. 임종석 전대협 의장이 집회에 등장하면 학생 수천, 수만 명이 일제히 기립해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을 외치며 전대협 진군가를 불렀다. 대중스타 못지않은 인기였다. 경찰 포위망이 좁혀지면 학생 수백 명이 그를 에워싸 전경과 공방을 벌였고, ‘가짜 임종석’ 수십 명이 “내가 임종석이다” 외치며 그의 탈출을 도왔다.(박찬수 ‘NL 현대사’) 당시 그의 이름은 북한에서도 회자됐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전대협의 평양축전 파견자 임수경 못지않게 ‘파쑈도당과 싸우는 신출귀몰 임길동’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 역할을 한다면 북한을 설득해 꼬인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 한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을지도, 또 주변에서 그렇게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을까. 가뜩이나 쌍심지를 켜고 청와대를 바라보는 보수 야당과 일부 국민의 눈초리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민주국가에서 모든 대외정책의 종착지는 국내 정치다. 아무리 훌륭한 국가 간 합의를 이뤄도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미국 두 전직 대통령의 경험은 그 성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총장 출신의 이상주의자 우드로 윌슨은 파리평화회의에서 국제연맹 창설을 관철시켰지만 상원을 장악한 고립주의 야당의 반대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뼛속까지 정치인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윌슨의 실패에서 철저히 배웠고 얄타회담 참석에 앞서 유력 야당 의원과 비공식적 동맹도 맺었다. 그의 사후에도 집단안보체제 유엔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래선 북-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과연 의회 관문을 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온통 중간선거에만 신경이 곤두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당장의 상황 관리에만 치중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내주 평양에서 나올 성과도 비핵화를 빼곤 대부분 잠정적 합의에 그친다. 지레 의욕을 앞세워 논란을 일으킬 이유도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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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동방경제포럼과 東北亞

    동서로 7700km에 걸친, 시차가 11시간이나 되는 러시아는 명실공히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대국이다. 150년 전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지금 북미까지 포함한 ‘유라시아메리카’ 국가를 자처했을지 모른다. 광대한 영토만큼 러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경계는 모호하다. 유럽 국가를 지향해온 오랜 역사 속에 지금은 유럽 강국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번번이 유럽과 충돌을 일으키는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21세기 차르’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도 이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냉전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피난처를 찾으려는 노력을 펴야 했다. 자연스럽게 2015년 시작된 ‘동방경제포럼’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이 3기 정권 출범과 함께 내세운 ‘강한 러시아’ 전략에서 이제 동아시아는 중요한 한 축이 됐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동방경제포럼이 오늘부터 사흘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 이 포럼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나 연쇄 회담을 한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일방통행으로 심기가 불편한 스트롱맨 3인의 대화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러시아는 올해 같은 기간에 군사훈련 ‘보스토크(동방) 2018’도 실시한다. 병력 30만 명과 각종 군사장비가 총동원되는 37년 만의 최대 규모 훈련으로 중국과 몽골 군대도 참여한다. ‘동방의 근육’을 과시하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만 잘 풀렸다면 이번 포럼은 북핵 외교 무대가 될 수도 있었다. 북한과 가까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이 용이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류하면 종전선언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그게 어그러지면서 남북미가 빠진 북핵 게임의 ‘2부 리그’ 정상들만 모이지만, 중-일-러 3국은 북핵 본게임이 시작되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역들이다. 내년엔 북핵 6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이 또한 헛된 기대로 끝날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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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시진핑, 드루와!” 트럼프의 위험한 손짓

    가을이 왔다. 연일 비바람에 스산하기만 하다. 지난 봄 평양에서 열린 남측의 ‘봄이 온다’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의 말이 새삼 생생하다. “이번에 ‘봄이 온다’고 했으니 여세를 몰아 가을엔 결실을 가지고 ‘가을이 왔다’고 (공연을) 하자.” 그리고 어느덧 5개월, 가을이 다가왔다. 하지만 결실은커녕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게 지금의 한반도 정세다. 북한의 시간표대로라면 9월은 ‘김정은의 달’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 일흔 돌을 대경사로 기념한다”고 예고한 대로 9·9절에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자신의 ‘주동적 조치’로 이룬 업적을 자축할 예정이다. 그 앞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맞아들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주역의 연쇄 이벤트에 조역으로 들러리나 서줄 트럼프가 결코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4차 방북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트럼프는 이 계획을 전격 취소시켰다. 여차하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북한 김영철의 서한이 원인이었다지만, 여기엔 9월을 내다보는 트럼프의 불편한 심사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이에 못지않은 결정적 요인은 트럼프의 ‘거래 본능’이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폼페이오 방북 취소를 알리는 트위터에 “비핵화에 충분한 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며 “곧 만나길 고대한다!”고 했다. 타깃은 이번에도 중국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에 관한 우리 입장이 훨씬 강경해졌기 때문에 그들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내며 폼페이오 방북은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치 떼쓰는 아이를 달래거나 야단치느니 부모를 학교로 부르는 게 낫다는 교사 같은 태도다. 북핵 문제와 미중 무역전쟁을 하나로 엮은 트럼프의 머릿속 회로는 좀체 이해하기 어렵지만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로 보면 뭐든 끄집어내 주도권을 잡는 협상전략일 수 있다. 구미는 당기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아예 판을 흔들어 예측불허로 만들거나 판을 더 키워 덤까지 챙기는 고약한 방식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지난해 4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였다. 트럼프가 만찬장에서 시진핑에게 시리아 폭격을 깜짝 통보하는가 하면, 시진핑이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던 바로 그 자리다. 트럼프는 당시 시진핑에게 이렇게 말했다. “큰 거래를 해보고 싶은가? 그러면 북한 문제를 풀어라. 그것은 무역적자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무역적자는 눈감아 주겠다는 주고받기 제안이었다. 그게 통했는지 이후 중국은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했고, 그 결과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다고 트럼프는 믿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시진핑이 변심했다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중국이 은근슬쩍 제재를 완화하면서 북한의 탈선을 부추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어제도 중국의 대북 원조를 경고하며 ‘무역분쟁과 기타 이견들’을 시진핑과 함께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걸어 무역전쟁의 출구를 찾아보자는 은근한 초청장으로 읽힌다. 트럼프의 거래 유혹에 시진핑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두 나라의 ‘대국(大國) 기질’이 맞아떨어진다면 한반도는 미중 거래의 협상 칩이 되고 만다. 김정은이 더는 허튼 고집을 부려서도, 우리 정부가 엉뚱하게 북쪽만 바라보며 딴청을 부려서도 안 되는 이유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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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수줍음 많은’ 조명균을 위한 변명

    13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또다시 ‘회담 공개’를 들고나왔다. 아예 ‘회담 문화’를 바꾸자는 거창한 주장까지 내세우며 “골뱅이 갑(껍데기) 속에 들어가서 하는 것처럼 제한되게 하지 말고 투명하게 공정하게 알려질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제가 수줍음이 많아서 말주변이 리 단장보다 많이 못하다”며 완곡히 거절했지만, 리선권은 “그러면 북측 기자들이라도 놔두자”고 억지를 부렸다. 결국 조 장관은 “그러면 남측 기자들한테 혼난다”며 엄살을 떨어야 했고, 리선권은 못 이기는 척 “다음부터는 꼭 기자들 있는 자리에서 하자”고 물러섰다. 리선권은 과연 공개 회담을 원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으면서 남측 대표를 군색한 처지로 몰고 남측 언론을 은근히 조롱하기 위해 회담 때마다 으레 써먹는 수법일 뿐이다. 리선권은 1월, 6월에도 같은 주장을 했다. 남측이 무슨 책잡힐 일을 했는지, 회담을 비공개로 해야 할 말 못할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측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쩔쩔매듯 받아줘야 하는 남측 대표의 처지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북측 주장대로 회담을 공개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거 남북 대화 역사에서 벌어진 의도된 불상사만 떠올려 봐도 그 결과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1972년 9월 7·4공동성명 발표 2개월 만에 북한 적십자 대표단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6·25전쟁 이후 최초로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은 연도에 몰려와 손을 흔드는 수십만 인파의 열띤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서울을 떠날 때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들이 차창 밖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TV로 생중계된 북측 대표 윤기복의 개막 연설 때문이었다. 그가 연설에서 “우리 민족의 경애하는 김일성 수령” “영광스러운 민족의 수도 평양” 운운하자 항의전화 수백 건이 방송국과 경찰서에 빗발쳤다. TV 중계는 박정희 정부가 북측 인사의 언행이 우리 국민의 비위를 건드릴 것이라는 계산 아래 결정한 것이었고, 그 기대대로 사회 분위기는 일순간 희망에서 분노로 돌변했다.(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1994년 3월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시점에 열린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판문점 실무접촉. 양측 간에 거친 말들이 오간 끝에 북측 대표 박영수는 이렇게 위협했다. “서울은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한반도를 소용돌이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빠져들게 만든 ‘서울 불바다’ 발언이었다. 이 협박 장면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북한의 막말에 여론은 들끓었고 여당에선 “바보같이 당한 남측 대표를 경질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동안 회담 화면을 공개하지 않던 관례를 깬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54분 회담 중 자극적인 2분 40초 분량의 테이프를 방송사에 넘겼고, 방송사는 반말 섞인 격앙된 1분을 편집해 내보냈다.(김연철 ‘70년의 대화’) 이렇듯 회담 공개는 판을 깨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움직일 여론이라는 게 없는 북측 대표라고 자유로울까. 북측 회담일꾼의 신경은 온통 뒤통수에 몰려 있다. 회담은 오로지 1인의 관객, 즉 수령을 향한 연극일 뿐이기에. 그래서 진짜 속내는 카메라도, 마이크도 없는 사각지대에서 나온다. 안 보이는 곳에선 구걸에 가까운 읍소도 불사한다. 앞말 다르고 뒷말 다른 북측의 허튼 수작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제 젊은 수령의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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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기무사 해편

    기무가 떴다, 하면 사무실엔 일순 정적이 흐르고 이내 부산스러워진다. 책상 위 서류들이 날렵하게 치워지고, 책임자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보고하러 가야 해서….” 자신보다 훨씬 아래 계급인 기무요원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는 그 책임자의 평소 지론은 이랬다. “×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군에서 기무는 그만큼 불편하고 거슬리는 존재다. ▷국방장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현역 대령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도 그가 국군기무사령부의 100기무부대장, 즉 장관 감시역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지 싶다. 100기무부대는 국방부 청사 1층 꽤 좋은 위치에 있다. 부대장 방은 차관보급 사무실 수준의 넉넉한 크기다. 그 바로 위 2층에 장관실이 있다. 옛 청사 시절엔 장관실과 같은 2층의 맞은편 쪽에 있었다. 아무리 군의 수장이라도 자신 가까이 있으면서 언제든 청와대에 직보하는 그곳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 없다. ▷기무사의 새 이름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정해졌다. 보안·방첩을 주 임무로 하는 정보부대의 명칭이 왠지 어색한 것은 그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기무사의 모체는 1948년 만들어진 국방경비대 육군정보처 특별조사과였다. 이후 특별조사대, 방첩대, 특무부대, 방첩부대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다가 1968년 육군보안사령부로, 1977년엔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됐다. 보안사는 12·12쿠데타의 주축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하지만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파장으로 1991년 기무사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 ‘기무사 해편(解編)’을 지시했다. 해체 후 재편한다는 생소한 용어까지 사용했지만, 기무사개혁위원회가 건의한 3가지 방안(사령부 체제 유지, 국방부 산하로 흡수, 외청 형태로 창설) 중 첫 번째인 사령부 존치를 선택한 것이다. 조직 이름이 바뀌고 대대적 물갈이가 이뤄져도 그 직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결국 통수권 행사를 위해선 군 내부에 대통령의 눈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을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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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21세기 북됴선 신파극

    2004년 1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칠레로 가는 길에 들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포럼 연설에서 작심발언을 했다. “핵무기가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북한은 안전만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확신한다.” 북핵 6자회담 출범 1년이 넘도록 아무 진전을 보지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인들에게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에 보좌진이 나서서 만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더욱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칠레 회담을 앞둔 터라 그 파장을 우려한 한승주 주미대사는 부랴부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나 이 발언이 정상회담 의제가 되지 않도록 사전 협의를 해야 했다. 실제로 부시는 이 발언을 거론하지 않았다. 한데 정작 그 얘길 다시 꺼낸 것은 노무현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새삼 오래전 일이 생각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싱가포르 발언 때문이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 직후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한 데 대해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은 성의를 다하는데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다.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본다.” 북한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는 동정론이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북-미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중재 외교를 다시 가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실제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잇단 방미로 이어졌다. 그런데 북한이 이 발언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설 줄이야. 노동신문은 “그 누구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 감히 입을 놀려댄다”며 ‘무례무도한 궤설’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각종 선전매체들을 총동원해 “미국 눈치나 보는 제재압박 놀음에서 벗어나라”며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군사회담에 나온 북측 대표는 “우리가 미국을 흔들다가 잘 안 되니까 남측을 흔들어 종전선언을 추진할 거라고 (남측 언론이) 보도하더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아냥조로 본심을 드러냈다. 이런 대남 폭언에 비하면 북한은 미국에 대해선 점잖기 그지없다. “미국의 부당한 입장과 태도는 조미관계 개선의 장애가 된다”는 볼멘소리가 전부다. 그러면서 미국 인공위성에 노출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미사일 공장 주변에 각종 차량들의 움직임을 대폭 늘렸다. 허공에 대고 무언(無言)의 종주먹질을 하는 셈이다. 한 세기 전 무성영화에나 나올 법한 신파극 배우 흉내 내기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 정부는 영락없이 중매 잘못 섰다가 뺨 맞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미국마저 북한을 편든다고 눈을 흘기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상투적 수법을 그저 응석으로 받아넘겨온 오랜 관성 탓인지, 우리 정부는 북한의 험구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인 국제관계의 특성상 공개 못할 막후 속사정이나 의외의 반전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든 대외정책이 그렇듯 성패의 절반 이상은 국민 지지에 달려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대북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마냥 저자세로 비쳐선 안 된다. 방자함을 내버려두면 엉뚱한 오판을 낳는다. 이제 따끔하게 한마디 할 때도 됐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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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헬싱키 외교참사, 트럼프는 안 바뀐다

    ‘Jerry, Don‘t Go(제리, 가지 마).’ 1975년 7월 23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 제목이다. 제리는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애칭. 유럽과 북미 정상 30여 명이 모이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참석차 핀란드 수도 헬싱키 방문을 준비하던 그에게 대놓고 가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언론만이 아니었다. 공화·민주 양당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CSCE 정상회의가 채택한 헬싱키협약은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동서 양 진영이 긴장 완화를 위해 안보, 경제, 인권에 걸쳐 협력하기로 포괄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 외교사적으로 냉전을 녹인 데탕트의 분수령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미국에선 소련의 발트3국 병합과 동구권 지배를 인정해준 굴욕적 합의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포드는 헬싱키협약 내 인권 조항의 잠재적 파괴력을 믿었고,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헬싱키로 향했다. 그런 그가 출국연설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한다. 소련의 반발을 의식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조언을 받아들여 연설문 초안에 있던 한 문장을 빼버린 것이다. ‘미국은 결코 소련의 발트3국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언론은 그 실종된 한 줄을 찾아냈고 여론은 더 악화됐다. 포드는 헬싱키에서 “역사는 우리가 하는 약속이 아닌, 우리가 지킬 약속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헬싱키는 포드의 무능을 상징하는 도시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후 동구권 저항운동과 소련의 붕괴로 이어진 ‘헬싱키 프로세스’의 결과는 포드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잔여 임기 2년 5개월밖에 재임하지 못한 포드에게 헬싱키 외교는 사실상 그의 유일한 업적으로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역사를 알고 헬싱키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장소로 정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만큼 리스크도 만만치 않지만 핵 군축 같은 더 큰 주제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고,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이은 헬싱키 미-러 회담은 ‘스트롱맨이 만드는 세계평화’라는 자못 인상적인 큰 그림에 잘 어울린다고 여겼으리라. 하지만 트럼프의 충동적 처신이 참사를 불러왔다. 푸틴과 나란히 서서 자신에게 걸려 있는 러시아 스캔들 연루 의혹을 씻어내는 계기로 삼으려다가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푸틴의 호주머니 속에서 놀아났다” “수치스러운 반역적 행위다”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급기야 트럼프는 “이중부정 어법을 썼어야 하는데…”라며 ‘not’을 빠뜨린 말실수라고 해명해야 했다. 매사에 공사(公私)가 불분명하고 외교도 한낱 개인기(個人技)쯤으로 여기는 트럼프식 ‘나 우선주의(Me First)’가 빚은 대형 사고였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본능 외교’가 여기서 멈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천성적 속물근성을 오히려 ‘위선 떨지 않는 정치상품’으로 만든 트럼프 아닌가. 그러니 우리에겐 이런 트럼프의 노골적 현실주의가 한반도의 미래에 미칠 영향부터 다시 한 번 따져보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 같은 멋진 그림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부담이 없는 비핵화라는 조악한 차트 그림이 나을지 모른다. 나아가 그런 트럼프를 두고 “초강대국 미국이 쇠퇴하는 징조 아니냐”고 개탄하거나 “그가 한국 좌파를 도울 줄은 몰랐다”고 배신감을 토로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는 사이 정작 트럼프의 눈귀는 김정은이 사로잡은 게 아닌지도 의심해볼 문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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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終戰선언의 기원

    올해 초까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맡았던 조셉 윤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6·25전쟁 종전선언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이 제기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도 미국도 아니라면, 한국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다는 얘기다. 사실 종전선언이란 화두를 처음 꺼낸 것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안전보장협정, 평화협정, 종전선언, 전쟁종식 같은 용어를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며 “북한이 핵 포기 결단을 내린다면 나와 각하, 그리고 김정일이 함께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결짓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시 발언에서 종전선언을 포착해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은 이듬해 9월 호주에서 다시 만난 부시의 입에서 공개적인 종전선언 발언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러다 두 정상이 언쟁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백악관이 나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을 지지했다”고 설명하면서 해프닝은 수습됐지만, 그 배경엔 양측 간 큰 인식 차가 있었다. 다만 노무현과 부시 모두 임기 말 업적 만들기엔 이해가 일치했다. 노무현은 이를 토대로 한 달 뒤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협상 개시에 도움이 된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체제 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로 종전선언을 내놓은 것이다. 김정일의 답은 이랬다.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가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선포한다면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생각한다.” 아무래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0·4 정상선언 4항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 추진’이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 진전이 없는 종전선언에 난색을 표했다. 북한마저 호응해주지 않으면서 종전선언 논의는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4·27 판문점선언에서 소생했다. 아직은 미생(未生)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2 북-미 회담 직후 남북미 3자 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무산됐다. 합의문에도 종전선언 얘기는 없었다. 정부는 연내 추진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정전협정 65년을 맞는 이달 27일, 또는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정작 문제는 종전선언의 내용이다. 정부는 전쟁을 끝냈다는 선언인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선언인지조차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의 대북정책 멘토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마저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효력을 갖춘 종전협약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종전선언을 최악의 악몽이라 여기는 보수 쪽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며 관심을 보이는 만큼 종전선언이 성사될 가능성도 낮지 않다. 다만 트럼프는 최소한 김정은의 과감한 비핵화 선제 조치와 함께 종전선언을 하자는 생각인 듯하다. 성사된다면 비핵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문재인도 못다 이룬 노무현의 꿈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물도 없는 빈 그릇에 집착해선 될 일도 안 된다. 일단 떨쳐내면 의외로 쉬 다가오기도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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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미군 떠난 용산

    국방부 취재를 담당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 한 육군 장성을 따라 용산 미군기지로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다. 빨간 별판을 단 승용차를 타고 별다른 제지 없이 곧장 들어선 용산기지는 시끄럽고 북적대는 서울 도심 속에 숨어있던 별천지, 고즈넉한 휴양지처럼 느껴졌다. 벌써 20년 전 일인지라 그곳 풍경은 아련하기만 하지만, 미군 레스토랑에서 호탕하게 스테이크를 주문하던 그 장성의 자못 우쭐해하던 표정은 여전히 기억에 또렷하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어제 용산을 떠나 평택기지로 이전했다.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 지 73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61년 만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들어온 미 24군단 예하 제7사단 병력은 이전까지 일제의 총독관저와 사단사령부, 사단장관저 등 병영시설이 있던 용산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를 내걸었다. 이후 세계 유일의 도심 속 군사기지 용산은 사실상 한국 안의 미국으로서 ‘용산합중국’ ‘용산공화국’으로 불렸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는 약 7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한반도를 침략한 몽골군은 한강과 가까운 용산을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구한말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끌려왔던 곳이 바로 용산기지 맨 위쪽에 있던 청군 지휘소였다. 이후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용산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가 됐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자 아픔의 땅이었던 것이다. ▷광복 후에도 오랜 기간 수도 한복판을 미군에 내준 이유는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옮겨가면서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뜻하는 ‘인계철선’ 기능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전후방이 따로 없는 현대전에서 인계철선 개념은 의미가 없고, 더 크고 좋은 새 둥지로 옮겨간 주한미군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군이 떠난 용산, 과거 행세깨나 하던 이들이나 들어갈 수 있던 그곳은 이제 모두에게 열린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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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싹싹한’ 젊은 독재자

    어르신 세계에서 30대 청년이란 대개 ‘시건방진 것들’쯤 아닐까 싶다. 어쩌다가 싹싹하고 곰살궂은 청년이라도 볼라치면 ‘저런 기특한 녀석도 있네’ 하며 쉽게 반색하기 마련이다. 서른넷의 김정은을 만나본 72세 어르신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며 폭풍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재능이 많다. 26세에 국가를 맡아 터프하게 운영한다. 그 나이에 그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만 명 가운데 한 명이나 될까.” 김정은의 재능을 ‘터프한 국가 운영’에서 찾는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권위주의 통치자도 수없이 칭송했던 트럼프이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65세 시진핑과 문재인도 ‘기특한 젊은이’를 만난 어르신처럼 보인다. 세 번씩이나 중국을 찾아온 깍듯한 청년을 바라보는 시진핑의 표정은 더없이 흡족해 보였다. 문재인도 이렇게 칭찬했다. “아주 젊은 나이인데도 상당히 솔직담백하고 침착한 면모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연장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주 예의바른 모습도 보여줬다.” 이쯤 되면 김정은은 적어도 한미중 정상 사이에선 ‘말이 통하는 젊은이’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원로들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최측근마저 굽신굽신 입을 가리고 보고하게 만든 북한의 절대 권력자로부터 어느 결엔가 예의바른 지도자로 180도 변신했으니, 김정은의 데뷔는 일단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의 새파란 나이는 부지런함과 예의바름이 덧붙여지면서 오히려 장점이 됐다. 김정은은 지난 석 달 새 정상회담을 여섯 차례나 했다. 가까이는 판문점, 멀리는 싱가포르까지 다녀왔다. 이곳저곳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게릴라 외교’도, 어려운 처지에 두루 환심을 사기 위해 ‘저팔계 외교’도 해야 하는 생계형 외교 행태라고만 보아 넘기기는 어렵다. 최고 권력자의 셋째 아들, 그것도 ‘째포’(북송 재일교포)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무엇보다 형들에게 결격 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버지와 권력층의 눈에 들기 위한 그 자신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최소한 ‘싹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사람을 어르고 구슬리는 특별한 재주도 키웠으리라. 김정은은 어르신들에게서 직접 예절 학습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이심전심으로 김정은을 지도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도 있다. 트럼프는 5월 초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북-미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확정지은 직후 “시 주석이 이틀 전 매우 구체적인 뭔가로 큰 도움을 줬다”고 시진핑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 도움이란 바로 전용기 대여였을 것이다. 당초 김정은은 안전을 이유로 장거리 외출을 한사코 거부했을 테지만 트럼프의 요청으로 시진핑이 전용기를 내주면서 일단 체면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문재인의 개인과외도 한몫했다. 한번 튕겨 보자며 북-미 회담 ‘재고려’를 꺼냈다가 전격 ‘취소’라는 강수에 놀란 김정은이 황급히 판문점에서 한 수 지도를 청한 어르신이 문재인이었다. 이런 김정은의 염치 불구 행보는 ‘아직 젊으니까’라는 이유로 양해도 받고 칭찬도 받는다. 하지만 아직은 테스트 기간일 뿐이다. 마냥 격려나 칭찬을 받을 순 없다. ‘싹수없는 어린 녀석’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제각기 요구도 다르고 시샘도 많은 어르신들이다. 모두에게 다 잘해줄 수도 없다. 특히 트럼프의 변덕이란. 김정은의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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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트럼프를 나긋나긋 녹인 ‘김정은 반성문’

    요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난수표에 가깝다. 중학생 수준의 쉬운 어휘를 구사한다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것이 일부러 예측불허의 불확실성을 노린, 그래서 무한한 상상력을 낳게 만드는 고도의 협상가 언어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미국 대통령의 말이니 꼼꼼히 살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트럼프는 지난 주말 백악관에서 ‘북한의 두 번째 권력자’ 김영철을 만난 직후 기자들 앞에 섰다. 그 자리에서 그는 ‘프로세스(과정)’라는 단어를 9차례나 사용했다. “그건 프로세스다. 12일 뭔가에 서명하진 않을 것이다.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거다. 그 프로세스는 싱가포르에서 시작된다. 정상회담은 무척 성공적인, 종국엔 성공적 프로세스가 될 거다.” 그동안 강조하던 비핵화의 신속한 일괄이행(all-in-one) 요구는 자취를 감췄고, 일괄타결식 합의도 한 번 만나선 어려울 수 있다며 “천천히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 ‘최대의 압박’이란 용어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다. 이렇게 북한에 너그러운 언사를 쏟아냈으니 당장 여기저기서 걱정과 지청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늘 상황과 맥락을 따져봐야 한다. 트럼프는 일부 심리학자가 진단했듯 ‘극단적 현재 쾌락주의자’다.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살면서 자아를 한껏 부풀리고 과거의 진실도, 미래의 결과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다. 당시 트럼프는 큰 봉투에 담긴 김정은 친서를 건네받은 뒤였다. 그래선지 다소 흥분상태라 할 만큼 득의만만했다. 친서의 내용이 뭔지, 김영철과는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미 일주일 전 김계관의 입을 빌려 내놓은 담화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트럼프도 이를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고 칭찬했다. 담화의 영문본은 한글본보다 훨씬 공손하게 읽힌다. 회담 취소 사태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We can not but feel great regret for it)’며 사실상 사과했고,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The first meeting would not solve all, but…)’이라며 추가 회담 의사도 밝혔다. ‘유감’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김일성이 최초로 미국에 보낸 사과의 표현과 같다. 처음에 미국은 ‘유감’ 메시지가 잘못을 시인한 게 아니라며 거부했지만 사과와 마찬가지라는 한국통의 해석을 받아들여 위기를 수습했다. 공개되지 않은 김정은의 친서에는, 나아가 진사(陳謝) 사절로 간 김영철의 입에선 유감보다 더한 사죄 표현이 있었을지 모른다. 전격적인 두 번째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코치까지 받은 터이니 가히 반성문 수준이었으리라. 트럼프의 오랜 측근은 그 상황을 “김정은이 넙죽 엎드려 간청했다”고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 북한의 태도를 확인한 만큼 보다 현실적 접근을 해보겠다는 수준이지, 그간의 기조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불미스러운 사태’는 좌초 위기의 정상회담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았다. 트럼프는 차제에 김정은의 버르장머리를 고쳤고, 당분간 어깃장 걱정은 덜게 됐다. 김정은도 체면은 구겼지만 트럼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사는 계기는 됐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만 하긴 어렵다.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걱정은 나흘 뒤 회담에서 트럼프의 충동적 협상 본능을 과연 제어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특히 굴신(屈身)도 마다않는 김정은을 상대하는 일이니 말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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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김정은의 본전 생각

    너무 순조롭다 했다. 연초 신년사부터 숨 가쁜 속도전이 진행됐다. 그래서 김정은을 달리 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북한의 갑작스러운 어깃장에 모두 ‘그럼 그렇지’ 혀를 찼다. 그런데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북한의 고전적인 벼랑 끝 전술이 또다시 먹히는 분위기다. 북한이 대화 무드에 급제동을 걸며 빌미로 삼은 것은 맥스선더 한미 연합 공군훈련이었다. 거기에 존 볼턴 미국 안보보좌관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정조준했다. 핀포인트 저격은 성공한 듯 보인다. 연합훈련에선 핵우산 핵심 전력인 전략폭격기 B-52가 빠졌다. 볼턴은 일단 입을 다물었고, 태영호는 어제 국가정보원 산하 조직에서 나갔다. 당초 김정은은 통 크게 주고 통 크게 받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권좌에 오른 이래 핵무기 완성을 위해 질주했고 그렇게 완성된 패를 가지고 큰 판을 만들 만큼 전략적 인물이었다.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에 합의하기까지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씻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초기 투입 비용도 감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그 나름의 야심작이다. 이미 억류했던 미국인 3명도 내줬고, 회담 장소도 좀체 내키지 않는 싱가포르를 수용했다. 거기에 좀 더 센 것을 보여주려 했다. ‘미래 핵’ 포기 의지를 보여주는 이벤트로 폭파 장면만 한 게 없다. 그런데 이런 액션에도 실질적으로 손에 쥔 것은 없다. 북한은 여태껏 ‘공짜 쇼’를 한 적이 없다. 2007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면서 미국에서 중유를 챙겼고 테러지원국 해제까지 얻어낸 북한이다. 결국 김정은은 본전 생각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옛날 버릇으로 돌아갔다. 아마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왔을 터. “미국에서 나오는 험한 소리들은 승전국이 패전국에나 요구하는 완전 무장해제가 아니고 뭔가. 믿었던 남쪽은 미국만 쳐다보고 손사래를 치는데 마냥 기다려야 하나.” 중국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차이나 패싱’에 발칵 뒤집혔던 중국이 후원자를 자처해 줬으니, 김정은은 이제 손해를 벌충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으리라. 한창 급가속으로 달리다 급제동이 걸리면 그 충격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세상사 예외 없는 관성의 법칙이다. 그래서 판을 뒤엎겠다는 위협에 한미 양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지사지를 내세웠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잠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상대는 트럼프다. 디테일엔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지만 손익계산은 빠르고 분명하다. 진의 파악을 위해 일단 달래야 한다는 판단에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경제 번영도 기약했다. 하지만 기실 밑도 끝도 없는 립서비스일 뿐이다. 트럼프는 북-미 수교도, 평화협정도, 제재 완화도 거론하지 않으면서 정상회담 ‘재고려’ 위협에 ‘무산’ 카드를 흔들었다. 김정은은 아마도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로 옭아매는 데 성공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그런 덫은 통하지 않는다. 도박사 트럼프에겐 이런 상황이 오히려 엔도르핀을 돌게 하는 게임이다. 어쨌든 판은 커졌고 적당한 타협은 어렵게 됐다. 협상이든 전쟁이든 큰 국면을 보지 못하는 얕은 계산으론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당장의 본전을 생각하다 보면 단기적 흥정이나 전투에선 이길 수 있을망정 진짜 빅딜이나 전쟁에선 패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어렵게 쌓은 작은 믿음과 기대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다. 신뢰 없는 배짱은 불한당의 객기일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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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제독 출신 주한 美대사

    미군 중부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 예비역 해병대 대장은 지난해 군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국방장관에 올랐다. ‘2차 대전의 영웅’ 조지 마셜 이후 66년 만이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 때문에 국방장관은 대개 민간인 몫이었다. 하지만 최고위 외교관인 국무장관 자리엔 군 출신이 많았다. 마셜도 국방장관보다는 국무장관 시절 ‘마셜 플랜’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 알렉산더 헤이그, 콜린 파월 같은 4성 장군 출신이 국무장관으로 활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래 16개월간 공석인 주한 미국대사에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을 공식 지명했다. 주일미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미 해군 제독이 됐다. 전투함 함장이나 전투기 조종사가 아닌 대잠초계기 전술통제관으로서 최초로 별 4개를 단 인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해리스를 호주 대사로 지명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상황에 정통한 그를 한국으로 돌려 긴급 투입했다. ▷백악관은 지명 발표에서 해리스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폭넓은 지식과 리더십, 지정학적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해리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태평양사령관으로 임명돼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며 중국의 해양패권 확대를 견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태평양전략, 특히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해리스로선 이제 본격화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한국이 동참하도록 강하게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 대중 강경론자로 꼽히는 해리스지만 언제든 전장에 뛰어나갈 태세를 갖춰야 하는 군인으로선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그가 꽉 막힌 군인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을 때 해리스는 의회에서 ‘김정은을 무릎 꿇리기보다 정신 차리게 하는’, 즉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외교를 강조했다. 이제 군복을 벗는 그에게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탁월한 외교관으로의 변신을 기대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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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김정은의 통 큰 저자세

    아무리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던 김정은이지만 그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다. 미국 고위 관료를 만나기 하루 전 중국의 다거(大哥·형님)를 만나러 갔으니. 그것도 벌써 두 번째다. 한 달여 전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극비 방북하기 전 김정은은 첫 ‘외출’에 나서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고, 그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이 돼서 다시 온다고 하자 급거 다롄을 찾았다.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좌하기 직전 다시 중국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김정은은 얼마 전 방북 중국인들의 교통사고 참사에 ‘깊이 속죄한다’는 위로 전문을 중국 지도부에 보냈고, 다롄에서 귀국하는 길에는 ‘경애하는 습근평 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한다’는 감사 서한을 보냈다. 이 정도면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 몫”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공(過恭)은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시진핑이 보낸 특사의 면담조차 거부하던 김정은이다. 무엇이 그의 태도를 이렇게 180도 돌변하게 만들었을까. 최근 북한의 미국 접근은 분명 중국을 겨냥한 ‘탈(脫)중국 자주’ 행보였다. 4·27 판문점 선언에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명시해 중국을 배제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김정은이다. 할아버지 김일성 시절 이래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가는 등거리 외교는 북한의 전통적 외교 책략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으로선 일단 중국을 애태우게 하자는 심산이었겠지만 가뜩이나 ‘차이나 패싱’ 우려에 신경이 곤두 서 있던 이웃나라 대국의 화를 돋운 것은 아니었을까. 트럼프는 어제 “시 주석이 이틀 전 어떤 특별한 것과 관련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줬다”며 시진핑에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김정은이 갑작스레 깍듯하고 예의바른 젊은이가 된 데는 이런 미중 간 ‘특별한 도움 주고받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저자세 외교가 바로 김정은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달리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정치는 몇몇 강대국이 주도하는 독과점(獨寡占) 시장 체제다. 강대국의 불편은 참을 수 없는, 그래서 세계적 격변의 요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국제 정치라는 버스에 약자 배려석 같은 것은 없다. 김정은도 늦게나마 이런 현실을 절감했다면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미관계라고 그리 다르지도 않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당초 외교부 장관 물망에 올랐지만 “나이도 있는데…”라며 고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 출장이 적을 법한 안보실장 자리가 나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한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러 워싱턴에 세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최근 방미는 볼턴의 긴급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지만 보자고 하면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굳이 국제 정치 현실이 아니더라도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파야 한다.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으로 시작됐다지만 그 미래는 동북아 세력 균형을 좌우하는 미중 두 강대국 간 조율 없이 쉽게 그려질 수 없다. 특히 중국은 평화체제 논의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일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정작 한반도의 진짜 당사자인 남과 북은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낙관론을 경계한다. 지금부터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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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높이 5cm 너비 50cm 군사분계선

    북한 김정은이 오늘 넘는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은 높이 5cm, 너비 50cm의 콘크리트 경계석이다. 당초 판문점은 남북이 유일하게 경계선 없이 공존하던, 말 그대로 공동경비구역(JSA)이었다. 그러나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 이후 MDL을 따라 남북으로 분할됐다. 남쪽에 있던 북한군 초소 4개가 철거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차단됐다. 회의장 건물 구역의 시멘트 경계선도 이때 만들어졌다. 8·18 사건은 6·25전쟁 이후 최초로 전투준비태세 ‘데프콘 3’가 발령된 일촉즉발의 위기를 불러왔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무자비하게 살해되자 미국은 “북한이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헨리 키신저 국무장관)며 보복을 별렀다. 박정희 대통령도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고 일갈했다.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내는 대응 작전에는 100명가량의 부대가 투입됐다. 하지만 그 뒤엔 어마어마한 전력이 동원됐다. 상공엔 헬기 수십 대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선회했고, 더 높이엔 B-52 전략폭격기가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었다. 멀리 오산기지에선 중무장한 전폭기가 대기했고, 더 멀리 해상엔 미드웨이 항공모함 소속 기동부대가 정박해 있었다. 워싱턴에선 핵폭탄 투하까지 거론했다. 작전 직후 김일성의 이례적인 ‘유감’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면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분단과 대결을 상징하는 판문점은 역설적으로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기에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북한의 집요한 정전체제 무력화 시도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정전협정의 효력을 부인해왔고, 2013년엔 협정 백지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판문점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기능은 사실상 정지된 지 오래다. 오늘 정상회담에선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를 논의한다. 금기로까지 여겨졌던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남북, 북-미 간 핵심 의제로 논의되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그런 만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디테일의 악마’가 잔뜩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 즉 남북 동시 비핵화다. 그래서 그간 국제적 합의에는 한국의 핵 부재 확인 조항도 들어 있다. 북한이 최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대신 한국 내 미군 전략자산의 철수와 한미 연합훈련 때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지를 내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때맞춰 미국이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뜬금없이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완전한 체제보장을 원한다. 그런 상응조치는 분명 65년 정전체제에 기반을 둔 한미동맹의 근본적 재조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내부의 엄청난 논란도 불가피하다. 우리가 그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으려면 북한이 완전 비핵화에 대한 확신을 줘야 한다. 그것이 근본적 전제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넘은 MDL은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의 노란 선이었다. 원래 아무런 표지도 없었지만 방북 전 노란 페인트로 굵게 선을 그었다. 그에 비해 김정은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판문점의 콘크리트 MDL은 역사적, 실존적 무게감이 훨씬 크다. 김정은은 얼마나 무겁게 이 선을 넘을까. 과연 그는 어떤 신뢰를 심어줄 수 있을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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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흰 가운 걸친 김정은

    북한 김정은이 23일 ‘새벽 6시 30분’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전날 저녁 황해북도에서 교통사고로 중국인 3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지 12시간도 안 돼 중국대사관을 찾아 위로한 것이다. 북한 매체가 김정은의 방문 시간을 분 단위까지 소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의 중국대사관 방문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 김정일을 닮아 늦은 밤까지 활동하는 야행성으로 알려진 김정은이다. 노동신문 1면에 실린 대사관 방문 사진의 김정은은 중국대사와 나란히 앉아 손을 모은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잠이 덜 깬 듯 얼굴은 다소 푸석하고 부어 보인다. 김정은은 중국대사에게 “후속 조치에 최대의 성의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저녁엔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의사용 흰색 가운을 걸치고 환자 손을 붙잡은 채 위로하기도 했다. 순발력 있고 배려 깊은 지도자의 모습을 세련되게 연출한 것이다. ▷이번 사고는 베이징 여행사 직원들을 비롯한 중국인들을 태운 버스가 개성 관광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발생했다. 버스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수를 위해 통제 중이던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피해 비포장도로를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연쇄 정상회담으로 대외관계의 극적 변화를 노리는 김정은으로선 자칫 중국 내 반북(反北) 정서까지 불러올 돌발 악재를 맞아 신속한 수습으로 이미지 개선에 나선 것이다. ▷김정은의 행보는 자국에서 일어난 외국인 인명사고에 지도자라면 응당 취할 지극히 정상적인 조치다. 한데도 낯설고 어색하게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북한 특권 엘리트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엔 늘 ‘사고를 빙자한 암살 아니냐’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더욱이 이번 사고는 2004년 김정일 암살 시도설이 나돌았던 용천역 폭발사고와 같은 날 발생해 벌써부터 온갖 상상력이 가미된 음모론이 나올 기세다. 자폐 수준의 폐쇄국가에선 정상(正常)도 늘 괴상하게 비칠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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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철희]최은희와 김정일

    “오시느라 수고했습네다. 내레 김정일입네다.” 1978년 1월 홍콩에서 납치돼 막 북한 땅을 밟은 최은희를 맞은 이는 국방색 점퍼 차림의 곱슬머리 젊은이였다. 당시 한국에선 김정일이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이 됐다는 루머가 퍼져 있었지만 그는 멀쩡하게 선착장에서 한국 여배우 앞에 나타나 악수를 청했다. 김정일은 닷새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선 이렇게 너스레도 떨었다. “최 선생 보기에 내가 어떻게 생겼습네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 하하하.”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농담으로 삼은 김정일의 ‘자학 개그’는 그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과시하는 자신감의 산물이었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에선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30대 후반의 김정일은 그 때 이미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의 말 한마디면 스파이 영화에나 나오는 납치극이 버젓한 현실이 되고, 밤이면 측근들을 불러 먹고 마시는 비밀파티를 여는 실질적 권력자였다. ▷베일 속 김정일의 실상은 8년 뒤 최은희 신상옥 부부가 탈출한 뒤 세상에 알려졌다. 이 부부가 녹음한 테이프 4개엔 김정일의 육성도 담겨 있었다. 거기엔 김정일이 90분 이상 속사포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남자를 데려오는 건 무리다. 그래 신 감독을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최 선생을 이렇게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른바 ‘문화교류’를 위해 신상옥이 필요했고, 그래서 최은희를 이용했다는 터무니없는 자기 정당화였다. ▷최은희 신상옥 부부는 1986년 탈출해서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마련해준 안가에서 은둔 생활을 해야 했고, 1989년 일시 귀국해서도 중앙정보부에 갇혀 조사를 받아야 했다. 납북, 그리고 이어진 10여 년의 망명 생활은 노년까지 깊은 상처로 남았다. 최은희는 자서전 ‘고백’의 에필로그에서 다가올 죽음을 또 하나의 ‘납치’에 비유했다. “아마도 이번에 납치된다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이북이 아닌 지구상엔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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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아베의 ‘겐세이 외교’

    “미국은 견제하고, 중국은 애를 태우며, 남조선은 가지고 논다. 이것이 장군님 외교의 특징이다.” 북핵 6자회담이 한창 가동되던 2000년대 중반, 북한 노동당은 내부 강연을 통해 김정일의 외교 전략을 이렇게 선전했다고 한다. 이런 북한의 주장에선 주변국을 보는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강연에선 아예 거론 대상에 끼지도 못한 일본에 대해선 어땠을까. 당시 6자회담 북한 대표는 일본을 두고 “그저 미국만 따라가는 정치적 난쟁이는 상대할 필요도 없다”고 아예 무시했다. 북한만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6자회담 내내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집착하는 일본을 향해 한국 대표마저 “납치 문제로 6자회담을 납치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납치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아베 신조 정권의 가장 중요한 최우선 해결 과제다. 그도 그럴 것이 별 존재감이 없던 세습정치인 아베를 일약 보수우파의 스타로 만들어준 게 바로 납치 문제였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2002년 평양을 전격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줬다.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한 것이다. 이는 김대중(DJ) 대통령의 훈수에 따른 것이었다. DJ 특사로 방북한 임동원 대통령특보는 김정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납치 문제는 지난날 극렬 맹동분자들이 저지른 소행이라는 정도로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면서 조속히 귀환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는 게 김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사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역풍을 불러왔다. 일본 국민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고, 당시 고이즈미 방북을 수행한 아베의 강경한 대북 자세에는 찬사가 이어졌다. 아베는 식민지배의 ‘가해자’ 일본을 하루아침에 납치만행의 ‘피해자’로 변신시킨 주역이었다. 이후 그는 강력한 대북 압박으로 북핵과 납치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아베에게 최근 한반도 정세의 급변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자신과 관련한 사학 스캔들이 잇달아 터지는 와중에 대북 외교의 ‘일본 실종(저팬 패싱)’에다 미국발 철강관세 펀치까지 맞았으니 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결국 아베는 서둘러 미국행을 추진했고, 다음 주 트럼프를 만나 납치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삼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아베의 행보는 6자회담 당시 ‘성가신 존재’였던 일본의 행태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새롭게 변화하는 정세에 주도적인 대북 외교로 적극 대처하기는커녕 다시 미국에 기대 어떻게든 자신의 과업인 납치 문제를 비핵화 외교에 얹어 보겠다는 ‘도돌이표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시간은 여전히 2002년에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일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다. 혹시라도 미국이 완전한 북핵 폐기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에 타협하거나 평화협정 체결을 명목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면 유사시 최일선의 위협은 고스란히 일본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이런 의심스러운 거래를 막는 견제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납치 문제 해결의 기회도 온다. 일본말 겐세이는 한자어 ‘牽制’를 일본식으로 읽은, 말 그대로 견제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훼방이나 어깃장 놓기 같은 부정적 뉘앙스가 다분한 비속어가 됐다. 일본이 ‘겐세이 외교’나 하는 신세로 전락할 것인지, 아베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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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철희]트럼프니까 기대 걸어본다

    남북, 북-미 릴레이 정상회담의 성공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높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잘될 거라는 낙관으로도 이어진다. 한 지인은 “은퇴 후를 대비해 그동안 경기도 남쪽 농가를 알아봤는데, 이제 북쪽에서도 찾아볼까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엔 비관론이 압도적으로 많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릴지도 의문이고, 열린다 해도 비핵화 합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들 얘기한다. 얼마 전 방한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도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0%에서 1% 사이’라고 봤다. 미어샤이머는 국가는 힘의 균형보다는 힘의 극대화를 통해 패권을 추구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 주창자다. 그는 일찍이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물려받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핵을 내주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의 예견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현실화됐다. 이런 냉혹한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어느 나라보다 충실한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핵무장 평화론이 대표적이다. ‘평화애호 핵무장국’이란 선전 논리의 이론적 스승 격인 미어샤이머의 예측을 북한이 벗어날 것 같지 않다. 학자뿐만이 아니다. 북한 정책을 다뤄본 전직 관료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 결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는 김정은 체제 보장이란 선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닌가, 충분한 준비도 없이 대통령이 나섰다간 무슨 위험한 사태로 번질지 모른다는 등 분분하다. 정상회담 연기론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유일하게 낙관론을 펴는 이가 있다. 바로 ‘외교의 현자’라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지녔고 당장 그게 바뀔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북-미 대화 같은 기회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 전통주의자들이 권하는 방식은 아니다. 한데 그런 방식이 우리가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게 하고, 내켜 하지 않는 나라도 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독특한 스타일? 트럼프의 못 말리는 기질과 괴벽을 에둘러 가리키는 외교적 표현이 노회한 키신저답다. 트럼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 눈엔 악성 나르시시스트, 성공적 소시오패스, 경조증 환자, 한마디로 위험한 정신병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트럼프가 뭔가 일을 낼 것이라고 키신저는 기대한다. 자신이 보좌했던 대통령, 신경안정제와 알코올에 절어 있었지만 중국 방문 같은 외교적 대사건을 이뤄낸 리처드 닉슨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천재성과 광기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과대망상, 조울증, 의심증, 도덕불감증은 늘 천재에게 잠복해 있다. 대놓고 “나는 천재”라는 트럼프를 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만, 원래 천재는 겸양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이 다져놓은 길은 가지 않는다. 또 한번 꽂히면 끝까지 간다. 김정은은 새해 들어 현란한 언동으로 한반도 정세를 휘저으며 사실상 독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배운 재주를 치밀하게 펼치는 능재(能才)인 것은 맞지만 천재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트럼프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마침 이번처럼 북핵 해결의 기회가 무르익은 적도 없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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