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이승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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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승헌 부국장입니다.

ddr@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100%
  • 늘 샌드위치만 고집하던 빅터 차, 백인 아닌 한국계였기에…

    이날도 샌드위치였다. 종류는 다양했다. 참치, 햄 앤 치즈, 칠면조….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봤건만 그는 “Take Two. Help yourself(두 개 먹어도 돼. 많이 들어)”라고 했다. 지난해 4월 18일,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1층 회의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가 한반도 상황을 논의하려고 만든 브라운백(도시락 점심) 세미나에서였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그와 종종 점심을 했다. 장소와 주제는 달랐지만 메뉴는 대부분 샌드위치. 신년 초와 같은 특별한 날엔 파스타였다. 한번은 그에게 “미국인도 열에 한두 번은 일식 도시락 먹자더라”고 했다. 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며 들은 척도 안 했다. 차 석좌의 샌드위치 고집을 보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글과 같은 워싱턴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 말이 좋아 그렇지, 그 용광로 온도 조절하고 휘젓는 사람은 백인 엘리트다. 그들과 비슷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당시 주한 미대사 지명설이 돌자 ‘미국식’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확정되기 전엔 아무 말도 안하겠다는 것이다. 기자가 이날 “축하한다”고 떠 봤더니 “나는 이미 정부 일(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해봤다. 학교와 연구소 일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정색했다. 그랬던 차 석좌가 최근 주한 미대사 내정자 신분에서 ‘해고’되자 워싱턴에선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코피 전략’으로 불리는 대북 선제타격을 놓고 백악관과 의견이 엇갈렸다는 게 여전히 다수설이다. 충성심 테스트에서 밀렸다는 말도 있다. 닷새 전 워싱턴에서 차 석좌를 만난 외교 소식통 U 씨는 “러시아 스캔들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부하들에게 강한 충성심을 요구하고 있는데 빅터가 의문 부호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한국 정부가 CSIS에 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빅터가 역할을 했는데 주한미대사로서 이해충돌 문제가 걸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각종 ‘설’은 공교롭게 모두 그가 백인이 아닌 한국계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안 그래도 백인이 주도하는 워싱턴인데 백인, 미국 우선주의가 더 심해지고 있다. 가차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돌이켜보면 한국계 최초의 주한 미대사이자 대북정책특별대표였던 성김 현 주필리핀미대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활달한 성격의 김 대사는 워싱턴에선 철저히 미국인이었지만, 퇴근 후엔 종종 지인들과 한식을 먹었다. 그는 족발냉채를 좋아했다. 뼈째 뜯어먹는 한국식 족발은 ‘징그럽다’며 미국 스타일이 가미된 족발을 찾았다. 그런데 족발냉채를 먹으려고 가까운 곳을 두고 워싱턴 국무부 사무실에서 한 시간 걸리는 식당까지 나오곤 했다. 어느날 같이 족발냉채를 먹으며 물었더니 “워싱턴 근처에서 먹다가 미국인 부하들이 보면 좀 이상하지 않겠어”라며 웃었다. 한번은 지인들과 한식당에서 저녁을 하는데 미국인 직원이 배석했다. 그 자리에서 비(非) 한국인은 그 직원 한 명. 하지만 모두 영어를 써야했다. 미국인이 듣고 필요하면 기록해 ‘윗선’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평창 선전전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만큼 나쁘지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동시에 빅터 차의 낙마에서 보듯 미국에서 백인 이외의 ‘이방인’은 언제든 내쳐질 수 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는 국제관계에도 적용된다. 혈맹이라고 다를 건 없다. 좋든 싫든 냉혹한 현실이다. 트럼프 시대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이승헌 기자ddr@donga.com}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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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원조 쇼통’ 오바마의 3가지 꿀팁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한국에선 역대급 ‘쇼통’(쇼+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 그리고 지지자들이 만들었다는 지하철 광고 말이다.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고르는 장면은 야당은 물론 해외에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 지하철 광고는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아니라지만 헌정 사상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무관치 않은 일이다. ‘쇼통’이란 게 낯설어서 그렇지 나쁜 건 아니다. 대중정치는 얼마나 밖으로 잘 드러내느냐의 싸움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만나 “(문 대통령이) 쇼는 기가 막히게 한다”고 했고, MB가 “그것도 능력”이라고 한 것은 “우리는 왜 이런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는 보수세력의 한숨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쇼통’의 완전체인가. 천만에. 퇴임 직전까지 60%대의 지지율을 유지한 21세기 최고의 ‘쇼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수년간 오바마의 정치 쇼를 봐왔던 기자가 문 대통령이 진짜 ‘쇼통’으로 도약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3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①가끔은 틀을 벗어나야=2015년 6월 26일 오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실내 경기장.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기 난사로 사망한 흑인 피해자들의 영결식장에 참석한 오바마는 갑자기 반주도 없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위트 더 사∼운드….” CNN으로 생중계된 대통령의 노래에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치며 따라 불렀다. 오바마 집권 2기(2013∼2017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퍼포먼스. 오바마는 영결식장에 가기 전 부인 미셸에게만 “내가 선창하면 사람들이 따라 부를 것”이라고 슬쩍 예고했고, 아직도 회자되는 ‘깜짝 쇼’를 해냈다. 문 대통령의 신년 회견은 이전보다 덜 딱딱하고 특별한 오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②비판자도 내편으로=2015년 9월 25일,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찬을 코앞에 둔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 급히 이곳으로 왔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전역식이 열리는 곳이다. 뎀프시는 ‘이슬람국가(IS)’ 격퇴 전략을 놓고 재임 내내 오바마와 충돌했다. 지상군 파병은 못하겠다는 오바마에게 수차례 이를 건의한 것. 백악관 참모들은 언론에 그의 경질설도 흘렸지만 뎀프시는 4년 임기를 마쳤다. 뎀프시는 전역식에서 “백악관 회의 때 군인으로서 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허용해 준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했고, 오바마는 “당신을 친구라 부를 수 있어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다음 날 많은 언론은 ‘제복에 대한 헌사’라고 기사를 썼다. 기자는 아직 문 대통령이 취임식 날처럼 야당 대표를 찾아가 품에 안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③‘내 탓이오’=2017년 1월 18일 백악관 내 기자실. 퇴임을 이틀 앞둔 오바마의 마지막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여러분들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잘못하는 대통령에게 아첨하면 안 되고 거친 질문을 하는 게 맞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졌기 때문에 백악관 사람들도 (이전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고백에 몇몇 기자들은 울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에 대해 “저보다 그런 악플, 비난을 많이 당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며 담담해지라고 언론에 충고했다. “지지자들이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비판도 약이 된다”고 했다면 문 대통령의 압승이었을 것이다. 내년 이맘때는 어떤 ‘쇼통’이 되어 있을지 지켜보겠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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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이낙연과 김훈, 그리고 청쓸신잡

    지인의 추천으로 본 사진 속 두 남성은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한국어 교육자 대회’. 격려차 들른 이낙연 국무총리가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소설가 김훈 씨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우연치곤 묘한 인연이었다. 언론인 출신인 두 사람 모두 글쓰기와 말로 일가(一家)를 이뤘는데, 그 유파 또한 비슷하다. 이 총리와 김 씨 언어의 특징은 군살이 없다는 것이다. ‘팩트(fact)’라는 뼈대와 근육만 남기고 지방은 최대한 걷어낸다. 그러다 보니 읽거나 들은 후 궁금증이 별로 없다. 김 씨 글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연상케 한다. 이 총리는 감성이 섞인 군더더기엔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차라리 하늘이 왜 파랗냐고 물어보라.” 10여 년 전 이낙연 당시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건 기자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런 호통을 들었다. 질문이 팩트를 제대로 파고들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다. 하긴 많은 후배 정치인도 이 총리에게 혼났다. 2002년 대선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무현 대선 후보의 부대변인이었다. 대변인이었던 이 총리에게 논평 문안을 보고했다. 이 총리는 쓱 보더니 “나는 이런 표현 안 씁니다”라며 퇴짜를 놨다. 팩트가 불분명했던 게 이유였다고 한다. 씩씩한 김 장관도 ‘멘붕’에 소주잔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이 총리의 이런 스타일은 지난해 화제가 됐던 ‘이낙연 어록’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KBS, MBC의 불공정 보도를 봤느냐”는 질문에 “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는 ‘팩트 폭격’ 한 방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이 총리 식 ‘뼈대와 근육’의 언어가 새해부터 떠오른 것은 이 총리가 몸담고 있는 집권 세력이 지난해 쏟아낸 언어와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화려하고 감성 충만한데 정작 팩트가 뭔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특히 청와대가 그러했다. 해를 넘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둘러싼 의혹이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임 실장이 왜 갔는지와 관련한 ‘사실’을 피해가다 보니 궁금증으로 그칠 일이 정치적 의혹으로 커졌다. 청와대가 공개한 팩트는 파병부대 격려→양국 간 파트너십 강화→관계 복원→대통령 친서 전달로 변하더니 이젠 “(파병부대 격려라는) 첫 브리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란 말까지 나온다. 가장 권위 있어야 할 청와대 메시지가 불신을 받게 됐다. 이 총리라면 아예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야심차게 준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프로그램 ‘청쓸신잡’(청와대에 관한 쓸데없고 신비로운 잡학사전)은 그 정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방송된 2부의 한 장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말이다. “외국 정상과 전화로 회담할 때면 특히 유럽 정상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방한한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확대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을 보지 못하면 저는 어떻게 살죠’라고 말했다.” 팩트와 대국민 홍보, 정치적 사탕발림이 뒤섞인 이 말을 당사자인 문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할까. 촛불과 탄핵, 조기 대선으로 이어졌던 지난해는 감성의 언어가 더 많았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이성과 논리의 언어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 감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엔 주변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북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무력을 과시하면서 평창 올림픽을 매개로 한미 양국을 시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선 이미 ‘북핵 시한부 3개월’ 스톱워치 단추가 눌러졌다. 법조인 출신 문 대통령부터 나서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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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이명박의 UAE 양고기

    2012년 11월 21일 오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인 아부다비 인근 상공. 임기 마지막 해외순방 중이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헬기 안에 있었다. 사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왕세제였다. 몇 시간 후 한국이 수주한 UAE 바라카 원전 1, 2호기 본공사 착공식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조금 후에 볼 텐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MB) “착공식 가기 전에 한국에서 온 기자들과 점심을 하신다고요?”(왕세제) “지금 오찬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마치고 곧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MB) “진작에 말씀하시지…. 우리 UAE 왕실 전용 양고기 몇 마리를 보내 드릴 테니 꼭 그걸로 드세요.”(왕세제) 오찬장엔 실제로 UAE 왕실 양고기가 테이블별로 준비됐다. 순방을 동행 취재했던 기자도 몇 점 먹어 봤다. 겉은 황금색으로 익혔는데 누린내는 없고 식감은 부드러운 닭고기 같았다. MB가 처음부터 왕세제에게 왕실 양고기를 대접받고 원전 사업을 따낸 것은 아니었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MB는 중동을 잘 알았다. 하지만 왕세제는 대통령 되기 전 서울시장 때 처음 알았다. 주변을 수소문한 MB는 왕세제가 청년 시절 시인 지망생이었던 것을 알아냈다. 그가 쓴 아랍어 시를 찾아내서 한글과 영어로 번역토록 해 협상할 때 ‘깜짝 카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대 눈 안에 머물고 싶으니 눈물을 흘리지 마오./그러면 내가 머물 수 없으니…’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시였다. MB는 당시 아부다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평소보다 많은 말을 했다. MB는 바라카 원전 사업에 대해 “(박근혜, 문재인 등 주요) 대선후보들이 (원전 건설에 대해) 부정적으로 공약을 해서 (한국과 경쟁국인) 일본과 프랑스는 속으로 아주, 매우 반가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나는 (곧 청와대를) 떠나니까 이걸(원전 사업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다. 내년 하반기부터 여러 가지로 일이 많을 텐데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런 MB는 퇴임 후에도 알 나하얀 왕세제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엔 왕세제 초청으로 UAE를 방문하기도 했다. MB는 주변에 “사흘 중 이틀을 왕세제와 함께 보냈다. 바라카 원전 사업은 생각보다 잘 진척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UAE를 전격 방문해 알 나하얀 왕세제를 만난 이유를 놓고 청와대가 아무리 해명해도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적폐청산 수사의 마지막 표적인 MB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은 MB 주변 사람들이 적폐세력이 된 만큼, 이번 방문이 MB와 무관하다는 청와대의 말을 잘 안 믿는 것이다. 보다 못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임 실장의 방문 내막을 잘 아는 그는 “(MB가 타깃도 아니지만) 설사 MB 비리 문제가 있더라도 UAE와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어 (건드리기) 조심스럽다. 빈대 몇 마리(이전 정권 의혹) 잡자고 초가삼간(UAE와의 관계) 태우겠느냐”고 말했다. 임 실장의 진짜 UAE 방문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댓글 의혹 등 MB의 또 다른 적폐 이슈에 대한 수사는 UAE 건과 무관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MB 잡는 것보다 한-UAE 관계 증진이 더 중요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믿고 싶다. MB가 구축한 UAE와의 네트워크는 적폐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외교적 자산이기 때문이다.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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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화 외교장관 “한중정상회담 내 점수는 90점… 홀대론은 본질 모르는 얘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에 나선 18일 서울엔 올겨울 첫 함박눈이 내렸다. 강 장관은 창 밖을 보며 “오늘 같은 날이면 뉴욕 생각이 난다”고 했다. 올해 초까지 근무했던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겨울 풍경이 그리운 듯했다. 강 장관은 그만큼 6월 취임 이후 쉴 틈 없이 달렸다. 중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16일 밤에 귀국한 강 장관은 18일 오전부터 재외공관장회의를 주재한 뒤 19일에는 한일 외교장관회담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그런 강 장관은 취임 초보다 단단해 보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의 모멘텀을 만들었지만 홀대론과 기자 폭행 사태로 얼룩진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국빈방중에 대해서는 강경하고 분명한 논리로 설명하려고 했다. 북-미 대화 가능성 등 북핵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현 정부 초기 청와대가 외교 이슈를 주도해 강 장관의 존재감이 없어졌다는 이른바 ‘강경화 패싱’ 현상에 대해서도 비켜가지 않았다. 인터뷰는 외교부 청사 접견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중 정상회담에 120점을 주겠다”고 평가했다. 강 장관의 평가는…. “90점 주겠다. 국내 평가가 하도 갈려서 (점수를 좀 깎았다.)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이번엔 너무 심한 것 같다. (한중 간) 이견이 불필요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부분이 있다.” ―청와대가 사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무리하게 연내 정상회담 일정을 추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한중 수교 25주년인데 올해 안에 (우리 정부가 사드 문제를) 풀고 나가겠단 강한 생각이 있었다. 중국도 조속한 시일 안에 (문 대통령) 방중을 원한다는 그런 교감이 있었다. 우리의 시간표도 있고 상대방의 시간표도 있어서 이런저런 요소를 고려해 12월 중순으로 잡은 것이다. 중국에 가보니 우리 기업과 주민들은 사드 보복 조치로 상당히 절박한 상황이었다. ‘아, 지금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에 대해 ‘적절한 처리’를 언급했다. 두 정상 간에 정말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3NO’ 원칙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나. “없었다. 3NO는 우리가 가졌던 입장을 쉽게 해서 (중국 측에서 먼저) 표현한 거다. 우리 안보적인 필요에 따른 정부의 결정이란 사실을 중국도 이해한다. 3NO가 (더 이상) 중국과 문제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방중 기간 내내 홀대론이 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정상 간에 어떤 일이 있었나. “정상들 간 대화는 굉장히 풍성하고 진솔했다. 정상회담에선 우리가 원한 걸 성취 못하거나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걸 상대가 제시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걸 (고려 안 하고) 홀대 당했다는 건 정상회담의 본질을 모르고 주변 얘기만 키워 나가는 거다.” ―혼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오찬이 무산되는 등 방중 기간 중 중국 측 주요 인사와의 식사는 두 차례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정 잡을 때 시간이 맞지 않는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서민 식당에서 시간 활용하는 것도 이번 (방문의) 한 목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잘 조율된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과 인사하는 과정에서 팔을 툭툭 쳐 결례 논란도 있었다. “나는 반대쪽 줄에 있어 직접 보진 못했다. 왕 부장은 7월에도 문 대통령의 팔을 쳤다고 하더라. 서양 사람들이 그럴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번 방중이 워낙 중요해서 (언론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다들 지켜봐 그 부분이 돋보였던 것 같은데 왕 부장은 늘 그래 왔다고 하더라.” ―사드 논란을 해소하는 것도 좋지만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대북 원유 중단 요청은 시 주석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은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기본적으로 안보리의 틀에서 진행되지 않나. 대북 제재를 안보리의 틀에 담는 데도 굉장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 적이 있다. 미국의 입장이 바뀐 건가. “미국 정책은 변함없다고 본다. 북한이 먼저 명백하게 기류가 바뀌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틸러슨 장관이) 대화 시작을 위해 강한 의지가 있다고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틸러슨 장관 경질설도 나오는데…. “미 정부의 특정 인사를 제가 말하긴 곤란하고…. 다만 계속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남았으면 한다.” ―최근 대북 관련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라인 붕괴로 김정은 관련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애기도 들린다. 관련 부처에서도 그런 말을 한다. 사실인가. “담당 부처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권위 있는 평가겠지. 하지만 우리는 대북 휴민트와 신호정보, (대북) 접촉 채널 모두 미국이 갖지 않은 부분도 많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한 수십 년간의 노하우가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이 15일 베이징대 강연에서 “중국은 큰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해서 비하 논란이 일었다. 이 문구는 누구 아이디어인가. “외교부가 올린 초안에는 그런 표현이 빠져 있었다. 주요 연설에서 저희가 안을 올리고 최종안은 연설비서관이 도와 대통령께서 직접 챙긴다. 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대국은 아니지 않나. ‘실질’을 중시하는 대통령께서 그런 뜻으로 말한 것 같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최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을 방문한 ‘진짜 이유’를 둘러싼 논란이 번지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의 건설 및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 “전혀 없다.” ―이달 말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가 결과를 발표한다. 정부는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를 언제 취할 건가. “TF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심도 있는 아웃리치(지원활동)를 해야 할 것 같다. 피해자를 돕는 기관이나 단체, 관련 학자들도 만나 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2월을 넘길 수도 있다는 건가. “TF는 충분히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범시켰다. (정부가 조치를 취하는 데는 2월을 넘겨) 시간을 오래 끌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외교부 중국국(局) 신설은 올해 안에 마무리되나. “조직 개편이 그렇게 금방 되긴 힘들지만 신설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외교부 내) 기획실, 혁신이행팀 차원에서 생각은 하고 있다.” ―여권에서 강 장관을 총선 후보로 징발해야 한다는 말이 나돈다. 들어본 적 있나.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도 내에서 외교부 장관 역할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이승헌 ddr@donga.com·신진우 기자}

    •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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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트럼프가 CIA에 가서 한 말

    어느 때보다 차가운 겨울비였다. 내리면 그냥 얼었다. 올해 1월 21일, 워싱턴 특파원이던 기자는 토요일 외출을 포기하고 소파에 앉아 CNN을 틀었다. 전날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방문지인 중앙정보국(CIA)으로 가고 있었다. 겨울비는 더 차고 굵어졌다. 트럼프는 코트를 입은 채 CIA 직원 수백 명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정말 정말 특별한(very very special) 사람들이다. 그래서 취임 후 첫 공식 방문지로 CIA를 택했다. 나만큼 정보기관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 없다. 여러분은 이제 대통령이라는 ‘백(backing)’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대통령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못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대통령님, 이제 그만 지원해 주세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허풍 섞인 농담에 숨죽이고 있던 CIA 직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트럼프는 초대 CIA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힘을 실어줬다. “CIA 국장 후보로 9명이 있었는데 마이크를 만나고서 다른 후보들과의 면담 약속을 다 취소했다. 마이크는 이제 (내가 총애하는) 매티스(국방장관) 켈리(백악관 비서실장)와 함께하게 된다. CIA 여러분은 이제 마이크라는 스타를 갖게 된다. 진짜 보석(total gem)이다.” 그러더니 트럼프는 CIA 요원들을 쳐다봤다. “우리는 많은 현안에 당면해 있다. 이슬람국가(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같은 것은 박멸해야 한다. 나는 1000%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다음 방문 때는 (CIA에 있는 방 중) 좀 더 큰 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미국은 다시 승리할 것이다. 그 선봉에는 CIA가 서게 된다. 다시 오겠다.” 트럼프의 CIA 첫 연설을 다시 꺼내 보게 된 것은 국가정보원의 처지가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국정원은 CIA의 카운터파트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트럼프 연설을 지금 보니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가 국정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들었어야 할 법한 연설을 트럼프가 CIA에서 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댓글 공작 의혹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식 정보기관의 실체를 궁금해한다.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선언했는데도 해체에 가까운 국정원 개편에 몰두하고 있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등 전직 국정원장 3명은 구속됐다. 대공수사권은 폐지해 어디론가 이관한다. 이름은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꾼다. 영어명 이니셜(ISIS·International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은 트럼프가 박멸하겠다는 테러단체와 같다. 여권 내에서도 “뭘 어쩌자는 거냐”는 말이 들린다. CIA라고 문제가 없었겠나. 2014년엔 테러리스트에 대한 잔혹한 고문이 상원에서 폭로돼 홍역을 치렀다.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CIA 시설에 막 들어가고 이름을 바꿔 달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14년 상원 조사도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쯤 되면 문 대통령이 자신의 정보기관 구상을 설명해야 한다. 취임 후 “국민들께 보고드릴 중요한 내용은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최소한 정보기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도 밝혔으면 좋겠다. 정보기관도 군처럼 명예,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자부심을 먹고 사는 집단이다. 트럼프 CIA 연설문이 길면 9월 CIA 창설 70주년 성명이라도 한번 볼 것을 권한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CIA 모든 남녀 구성원은 미국을 지키는 ‘침묵의 영웅들(silent heroes)’”이라고 평가했다. 정권과 국적을 떠나 정보맨들의 역할과 속성은 다 비슷한 것 아닌가.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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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MB가 티타늄 안경 쓰고 한 걱정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청와대 시절 참모들과 모였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 안 해도 MB 생각은 다 안다. 밥맛만 떨어뜨렸을 것이다. 한 참석자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MB가 이날 쓴 안경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 쓰던 뿔테 안경이 아니라 날렵한 티타늄 소재 안경이었다고 한다. MB는 잡어회를 된장에 푹 찍어 먹은 뒤 평소 멀리하던 소주잔을 들었다. “사람이 갑자기 어디로 가기 전엔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서 바꿨어.” 폭소가 터졌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자신들이 모셨던 대통령의 농담치곤 너무 쓸쓸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적폐청산 칼날을 예감한 것 아니겠느냐고 참석자들은 분위기를 전했다. MB는 몇 잔을 더 마셨다. 그런 MB는 12일 바레인으로 강연을 떠나기 전 결국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관진 전 국방장관 구속이 그동안 은인자중하던 MB를 움직이게 했다. 김 전 장관이 군 사이버사 댓글 의혹으로 구속됐으니 검찰의 다음 목표는 직속상관인 자신일 것이라는 위기의식이다. 동시에 김 전 장관의 구속 자체에 쇼크를 받았다는 말도 있다. MB가 바레인으로 떠나면서 “중차대한 시기에 외교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게 아주 빈말은 아닐 것이다. 요즘 우리가 적폐청산이란 ‘정치적 내전’에 정신이 팔려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외국에서 전직 국가정보원장 3명, 전직 국방장관(겸 국가안보실장) 1명이 동시 구속되어 있는 이 전대미문의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는 거다. 특히 대북 정보를 총괄했던 사람들이 줄구속되는 게 북핵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주시하고 있다. 국정원장은 미국으로 치면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다. 외신들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며 국정원장을 우리의 공식 영어 표현인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Director로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Spy Chief(정보 수장)라고 쓴다. 이번 사안을 어떤 프레임에서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선 “국정원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전직 국정원장들 구속한 게 안보와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하지만 정보는 사람 장사다. 신뢰를 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주미대사관 소속의 한 국정원 직원이 동생뻘 되는 미 정보기관 관계자를 사귀려고 한식당에서 못 마시던 소주 접대를 하던 모습을 짠하게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그 미국인은 한참 뒤에야 국정원 직원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요새 한국 정보기관을 어떻게 볼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아무리 안보가 중요해도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야 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적으로 청와대에 전달하는 게 우리의 안보 능력을 높인다고 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직 국정원장, 국방장관을 무슨 잡범 취급하는 게 안보에 꼭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회사 앞에서 알고 지냈던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를 우연히 만났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이끌고 외교부, 국방부를 방문한 뒤 청계천에 놀러 왔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 결국 적폐청산 이야기로 흘렀다.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그는 기자에게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너무 나간 것 아니냐. 한국이 별일 없길 바란다(Gone too far. Good luck)”고 했다. 이름만 대면 청와대나 외교부가 대번에 알 만한 그가 하도 돌직구를 날리기에 기자가 “실명으로 인용해도 되냐?”고 했더니 “오케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냥 익명으로 남겨두련다. 미국인 친구가 ‘적폐 외국인’으로 찍힐 수도 있으니 말이다.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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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박근혜의 피아노, 그리고 안봉근

    “한번 쳐 볼게요.” 낡은 검은색 피아노였다. 종종 쳤는지 먼지는 별로 없었다. 덮개를 열고 건반을 두드렸다. 익숙한 동요 가락이었다. 손놀림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맑은 소리를 냈다. 피아노 옆을 보니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마크가 있었다. 조성진 등 유명 연주자들이 지금도 애용하는 미국 명품 피아노다. 12년 전 이맘때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집에서의 한 장면이다.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오픈 하우스 행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그때 이미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다. 정치적 위세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 못지않았다. 집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는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오래된 친구 같은 피아노죠. 아버지가 사주신 거예요. 청와대에 있을 때도 쳤고. 저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주변에 사람도 별로…. 외로울 때 치면 위로도 되고 그래요. 들어가서 식사하시죠.” 기자들은 처음 와 본 박 전 대통령 집에서 쭈뼛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비서가 기자들을 방 안으로 밀쳤다. “대표님 민망하시겠네. 빨리 들어가세요.” 당시 경호를 책임졌던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이었다. 그날 집 안에 당 관계자는 안봉근뿐이었다. 행사 정리도 안봉근 몫이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그를 다시 봤다. ‘박 대표가 정말 안봉근을 신뢰하는구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논란을 접한 뒤 이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안봉근이 이재만 전 비서관과 함께 국정원 특활비를 007 가방에 담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체포돼 구속됐다. 이재만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안봉근은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어떻게 썼는지 물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재만 진술과 별다를 게 없다. 안봉근은 1997년 박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함께했던 첫 비서다. 게이트 양상으로 전개되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고 있다. 물론 박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비판이 가장 많다. 국정 농단도 모자라 간첩 잡으라고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국정원 예산을 꿀꺽했느냐는 지적이다. 동시에 적지 않은 사람이 안봉근 이재만이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 이름을 댄 것을 손가락질한다. 법 집행 차원에서 보면 안봉근은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모신 ‘주군’을 검찰에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 것을 놓고 정치, 더 나아가 사람 사는 게 도대체 뭐냐고들 한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은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정치에 꽤 의미 있는 분수령이 될 듯하다. 당연히 국정원 특활비 무단 유용이라는 적폐를 근절할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정치인들은 앞으로 정치하기가 훨씬 더 퍽퍽해질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안봉근의 파국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젠 ‘절대 고독’을 즐기는, 성직자 수준에 가까운 자기 관리를 감내해야 정치인으로 롱런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인 2009년 3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은 새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 하지 마라. 진담으로 하는 말이다.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의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 … 정치의 신뢰가 계속 떨어지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검찰이 국정원 특활비가 박 전 대통령에게 흘러갔는지 조사하려고 서울 삼성동 자택을 팔고 올해 초 새로 산 내곡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토한다고 한다. 집주인이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내곡동 집엔 아무도 없다. 그 대신 삼성동 집에 있던, 오래된 친구라던 그 낡은 피아노만 먼저 옮겨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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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대통령 문재인의 ‘변호사’ DNA

    변호사 일의 대부분은 서류 작업이다.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건 영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중요한 법적 효력은 문서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잘 알려진 대로 변호사 출신이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줄곧 변호사 활동을 했다. 그런 문 대통령의 변호사 DNA를 새삼 절감했던 적이 있다. 6월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무역적자를 용납할 수 없다. 재협상을 바로 시작한다”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을 물었다. 문 대통령은 정색했다. “왜 (언론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합의문만 합의된 것이지 나머지는 합의 외의 이야기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의) 합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아무튼 (한미 FTA 발언은) 합의 외에 별도로 이야기한 것이다.” 당시 최고 이슈였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한미는 성명에 아무 내용을 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합의되거나 양해된 것 외에 미국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고 했다. 그냥 ‘의견만 나눴다’고 해도 될 내용을 굳이 ‘이견이 있어 합의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4개월이 지난 지금, 현실은 문 대통령이 말한 그 ‘합의문’과는 많이 다르다. 한미 공동성명에 빠져 있던 한미 FTA는 이달 초부터 사실상 재협상 절차에 들어갔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점증하자 환경영향평가를 마무리하기 전에 조기 배치했다. 반대로 성명에는 담겼는데 현실에선 빠진 것도 있다. 성명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고 되어 있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 “북핵을 해결할 힘이 우리에게 없다”고 토로하는 게 현실이다. 문서와 기록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의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뭐라 할 수는 없다. 없는 것보단 훨씬 낫다. 문제는 내용과 현실이 완전히 달라진 4개월 전 한미 공동성명처럼, 이전 합의문을 들이밀며 ‘법대로 해’ 같은 논리로 대처하기엔 주변 정세가 너무나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에서 부활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1인 체제 구축에 성공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장기 집권의 틀을 구축했다. 대한(對韓) 기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일본에선 벌써부터 전쟁 가능 국가로의 개헌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익이 된다면 기존 합의문이나 거래 명세서 정도는 쓱쓱 고치거나 새로 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한미 FTA는 빙산의 일각이다. 러시아까지 참여해 국제사회가 수년간 만든 이란 핵협정을 인증하지 않겠다며 내던진 그다. 다음 달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트럼프가 북핵 해법을 놓고 중국 일본 정상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돌이켜 보면 별다른 외교적 구속력도 없는 합의문에만 매달리지 말고, 수면 아래에서 논의되는 진짜 협상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 트럼프 입에서 ‘한미 동맹은 역대 최상’ 같은 말을 끄집어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란 거다.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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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적폐청산에도 ‘레드라인’은 있다

    e메일을 받고 이렇게 한참을 들여다본 것도 처음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무실에서 보낸 것이었다. 추석 다음 날이었다. 오바마의 퇴임 후 행적이 궁금해 올해 초 e메일 리스트업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거기엔 오바마의 말은 없었다. 그 대신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사무실에서 방금 이런 보도자료를 냈다”는 안내와 함께 그 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1일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생존해 있는 전직 미 대통령 5명이 지난달 미국 텍사스,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주최하는 자선 모금 행사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 된 미국의 호소(Deep from the Heart: The One America Appeal)’라고 지었다. 며칠 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콘서트 표는 이미 다 팔린 상태였다. 아버지 부시는 자료에서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데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해라. 항상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곁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초 급성 폐렴으로 입원까지 했던 고령(93)의 전직 대통령이 내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가 미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개막식에서 어깨동무를 한 사진이 국내 언론에 ‘부럽다’는 제목과 함께 대서특필된 게 불과 지난달 말이었다. 우리는 같은 기간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드라이브로 전전(前前) 대통령과 거친 입씨름을 벌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연장될지도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차이는 미국에 적폐청산이 없어서일까. 천만에. 어디 가나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 역대 많은 미 대통령들이 이전 정권을 부정하고 뒤집었다. 오바마는 부시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판하며 중동 철군을 내세웠다. 트럼프는 자신만의 적폐청산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Drain the Swamp.’ (워싱턴에서) 오물을 빼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시그너처 공약인 오바마케어 폐지를 시도 중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선 “클린턴 부부가 사상 최악의 협정을 맺었다”며 폐기나 대폭 개정을 공언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트럼프 시대에도 전직 대통령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하고 허리케인 피해 주민 돕기 행사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기자는 같은 적폐청산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정권의 철학과 정책은 비판하고 청산하더라도, 사람과 그 역사에 대해선 신중하다는 것이다. ‘Lock her up.’ 지난해 트럼프 대선 유세장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다. e메일 스캔들을 둘러싸고 거짓말을 일삼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구속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도 이 구호를 들으면 웃거나 따라했다. TV 토론에선 클린턴에게 “(내가 당선되면) 당신은 감옥에 갈 것”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대선 승리 후엔 선을 그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9일 미시간주 행사에서 ‘Lock her up’ 구호가 나오자 “이 말이 대선 전에는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젠 잊어버리자”고 말했다. 혹자는 어떻게 클린턴, 부시, 오바마가 이명박, 박근혜와 같냐고 할지 모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만큼 ‘비극의 균형’이 이뤄져야 적폐청산이 비로소 끝날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동시에 이 ‘저주의 사슬’을 이어가는 게,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되는 게 정상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 역시 많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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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우리가 트럼프 ‘디스’할 처지인가

    그 도도하던 힐러리 클린턴 맞나 싶었다. 얼마 전 CNN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듣고서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에게 당한 충격적 대선 패배 과정을 짚은 ‘무슨 일이 벌어졌나(What Happened)’라는 회고록을 낸 뒤 가진 인터뷰였다. “트럼프에 여전히 반대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사람들의 분노에 어떻게 감성적으로 대처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분노를 해결할 정책이 있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해결책보다는 함께 분노해줄 사람과 그 말을 원했다. 내가 부족했던 대목이다. 그래서 졌다.” 기자는 트럼프 등장 이후 이처럼 트럼프의 본질을 제대로 끄집어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선을 치른 적장(敵將)의 평가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클린턴의 트럼프 평가가 떠오른 것은 요즘 트럼프 말에 대한 문재인 정부 안팎의 평가가 오버랩되면서다. 김정은과 벌이는 핵폭탄급 말 전쟁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트럼프에 대한 평가가 곱지 않다. 김정은 성명처럼 ‘늙다리 미치광이’까지는 아니지만 “왜 김정은을 자극해서 한반도를 불안하게 하느냐”는 불만이다. 얼마 전 정부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미국 언론은 트럼프를 비판하는데 우리 언론은 트럼프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고 따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유엔 총회 기간에 트럼프를 만나 ‘북한을 멸망시키겠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본심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분명 트럼프의 말은 거칠고 위험하다.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했던 전임 버락 오바마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말이다. 하지만 클린턴의 평가처럼 트럼프의 언어는 땅을 딛고 있다. ‘아시아 회귀 정책’ 등 설명 없으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오바마와는 달리 곧장 핵심을 찌른다. 그래서 파장은 더 크다. 북핵 위기에선 ‘미 본토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걱정에 불을 질렀다. 물론 김정은의 핵 폭주를 자극한 측면도 있다. 동시에 국제사회에 북핵 경각심을 이만큼 일깨운 것도 트럼프의 혀다. ‘로켓맨’처럼 김정은의 핵 장난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국제적으로 이슈화하는 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3일 뉴욕에서 열린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의 기자회견 질문은 100% 북핵으로 채워졌다. 클린턴이 집권했더라면 김정은이 핵 도발을 이어가도 비핵화 운운하며 북핵 정책이 흐지부지됐을 것이라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이렇게 무식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다양한 함의와 파장을 갖고 있는 트럼프 말에 대한 우리 정부 안팎의 평가는 겉핥기 수준이다. 왜? 트럼프와 백악관 핵심의 생각을 잘 모르니까 주로 외곽 인사를 만나거나 미 언론 정도를 보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는 것도 트럼프 관련 핵심 정보는 별로 없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반(反)트럼프 성향의 진보 매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엄연한 정치적 현실이라는 점을 종종 잊고 있는 듯해서다. 우리가 북핵 제1 상수(常數)인 그의 상스러운 말에 질겁하고 김정은과 비슷한 미치광이로 ‘디스(disrespect·비난)’해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것은 없다. 오히려 트럼프의 말폭탄에 한숨쉬기보다 그 진의와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추석 앞두고 백악관에 송편이라도 돌리며 트럼프의 호흡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식의 각성과 결기가 있어야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와 으르렁거리는 중국이 왜 트럼프 큰딸 이방카와 손녀 아라벨라를 올 2월 워싱턴 중국대사관 춘제(설날) 행사에 초청하려고 혈안이 되었겠는가.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라는 요즘은 정부가 나이브한 것도 죄다.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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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버락 오바마를 원망한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김정은의 4차 핵실험 일주일 후인 지난해 1월 13일 오후 9시. 세계인의 시선은 미국 워싱턴 의회에 쏠렸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연두교서를 통해 국정 방침을 밝히는 날이었다. 우리로선 김정은의 핵개발을 어떻게 멈출지가 관심사였다. 우리 정부는 연두교서 당일까지 오바마 원고에 대북제재가 들어가야 한다고 백악관을 설득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북한의 ‘북’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오바마 쪽과 가까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현 세종연구소 산하 세종-LS 펠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는 북핵에 관심이 없나? “연두교서는 미국 이슈가 최우선이야.” ―오바마의 대북 정책, 전략적 인내의 실체는 뭔가? “요즘 백악관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표현을 거의 안 써. 대책 없이 인내만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어서….” 우선순위도 아니고 정책의 이름과 콘셉트도 불분명하니 제대로 집행했을 리 만무했다. 돌이켜보면 김정은은 오바마 임기 8년 동안 대부분의 핵능력을 완성했다. 북한은 여섯 번의 핵실험 중 오바마 시절에만 네 차례(2∼5차) 했다. 오바마는 미국에선 이미 전설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되는 특유의 감성 소통 능력은 지금 봐도 소름 돋는다. 그런 오바마는 왜 유독 북핵에선 실패하고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이라던 한미동맹에 이런 부담을 물려줬을까. 기자는 오바마 스스로 드리운 ‘오바마의 덫’이 결정타였다고 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변호사 출신인 오바마는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앞세웠다. 전임 조지 W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No boots on the ground(전투화 한 켤레도 땅에 닿지 않게 하겠다).” 오바마가 중동에 지상군을 더 이상 투입하지 않겠다며 내세웠던 표현이다. 부시의 전쟁놀이에 지친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2014년 5월 오바마는 아예 ‘제한적 개입주의’라는 외교 독트린을 발표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군사력을 동원하겠다. 좋은 망치를 들었다고 모든 못을 박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2009년) 수상자다운 노선이었다. 김정은이 쾌재를 불렀을 순간이다. 여기에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자 북핵은 점차 후순위로 밀린다. 그런 오바마가 김정은 핵능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며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은 5차 핵실험 직전인 지난해 여름 정도다. 부랴부랴 김정은을 미국 독자제재 대상으로 삼고 세컨더리 보이콧을 운운했지만 ‘허공에 총질하기’ 수준의 부질없는 대책이었다. 오바마의 북핵 실패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의 낭만적 세계관, 대북 낙관주의가 정치 성향이 비슷한 문재인 대통령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보다 북핵을 최우선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오바마의 ‘북핵 환상’ 그림자가 엿보인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은 김정은의 속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대화론자’라며 밀어붙인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 닮아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외침은 제한적 개입주의의 한국 버전 같기도 하다. 동시에 안도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오바마보단 빨리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해서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사드 배치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노무현을 이어받은 진보 대통령으로서, 남북 간 대화 모멘텀을 만들려 했던 그로선 요즘 아쉬운 순간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각성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진보 대통령의 북핵 정책 실패는 오바마 한 명으로 족하다.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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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전술핵이 김정은보다 나쁜가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엔 밖에서 보면 정체를 알기 어려운 대형 건물이 하나 있다. 외벽 콘크리트는 물론이고 철근이 일부 드러나 있다. 처음 봤을 땐 폐건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보안이 삼엄하다. 올해 초 특파원 시절 가봤더니 벨트를 풀고 신발도 벗으란다. 가방 속까지 뒤진다. 국무부나 의회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 건물은 미 에너지부 청사다. 우리로 치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원’ 파트다. 그런데 워싱턴 사람들에게 “국무부, 국방부 못지않게 힘센 부처가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가 에너지부라고 한다. 핵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 건물 1층엔 일본에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핵은 곧 미국’이라는 자부심이다. 우리가 군사용 핵물질을 갖지 못하는 것도 이 부처가 주도한 한미원자력협정 때문이다. 에너지부가 생각난 것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워싱턴에서 만나 전술핵 재배치 이슈를 논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한미 양국이 김정은의 핵 도발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으면 그동안 언급을 금기시했던 전술핵을 거론했다고 공개했을까 싶었다. 전술핵 재배치는 사드처럼 미군 자산을 빌리는 것이다. 미국은 1991년 말 전술핵을 한국에서 철수시킨 뒤 지금까지 반대해 왔다. 왜 그랬을까? 기자는 에너지부에 대한 워싱턴의 인식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핵문제만큼은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도 미국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파원 시절 주요 인사를 만날 때마다 전술핵에 대해 물었지만 답은 비슷했다.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에 만나 “미군의 핵우산으로 충분한데 무슨 전술핵이야”라며 웃어 넘겼다. 올해 초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군축·핵비확산 담당 선임보좌관이었던 존 울프스탈은 “한미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싸늘하게 말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꿈도 ‘한국 핵무장 불가론’에 한몫했다. 그런데 전술핵 ‘소유주’의 생각은 도널드 트럼프 취임 후 미세하게 바뀌고 있다. 트럼프로선 동북아 비핵화라는 ‘아름다운 목표’보다 김정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는 게 훨씬 중요하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로선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핵우산보단 미 본토의 각종 창고에서 ‘썩고 있는’ 전술핵을 재활용하는 게 더 경제적일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3월 18일 방한 후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 게 그냥 나왔겠는가. 송 장관이 전술핵을 거론했다고 밝힌 것도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당장 전술핵을 배치하기는 어렵다. 자유한국당 당론이라 보혁 간 정치 이슈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한 적이 없다”(1일 고위 관계자)는 식으로 나오는 게 전략적으로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사실 전술핵 찬성론자 중 상당수는 우리도 전술핵이든 뭐든 새로운 대북 레버리지(지렛대)를 갖자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든 정부가 북핵 외교력을 발휘해 달라는 또 다른 목소리다. 그런데도 ‘한반도 운전석’에 앉아 김정은과의 대화 모멘텀을 만들겠다고 전술핵을 북핵보다 더 나쁜, 무슨 뿔 달린 괴물 정도로 보는 반핵 단체식의 접근은 우리 스스로 선택의 폭을 줄일 뿐이다. 청와대는 지금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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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MB에게 복수하는 방법

    영어 간판이 넘쳐나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묵향(墨香)이 가득하다. 벼루에 먹을 직접 간다. 그러고는 천자문을 쓴다. ‘하늘 천, 따 지’ 천자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1000) 자를 꾹꾹 눌러 쓴다. 붓도 큰 것, 작은 것 여러 자루다. 며칠 동안 계속 썼는지 까만 먹이 선명한 종이 수십 장이 뒤편에 걸려 있다. 요즘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무실 풍경이다. 나흘 전 비서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때도 마침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몇 해 전 기자가 필자로 참여한 ‘(MB 5년) 비밀해제’라는 책을 전달하려 MB를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바깥활동 좋아하는 MB가 왜 붓글씨를 쓸까? 직접 물었더니 “마음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했었다. 아마도 두려움 불안감 회의감 등을 누르려 붓을 드는 것 같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검찰 라인업을 보면 더 그럴 것이다. MB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을 이끌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된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이다. 팀원이었던 진재선은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장으로 최근 영전했다. 이 사건의 재수사를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왜 MB를 겨냥하는지는 자명하다. “이명박 사죄해! 여기가 어디라고 와.”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MB를 겨냥한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의 분노는 지금 벌어지는 많은 것을 설명한다. 장례식 상주 격이었던 문 대통령은 MB에게 사과했지만 마음이야 그랬겠나. 문 대통령은 훗날 인터뷰에서 “나도 (백원우와) 꼭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백원우는 지금 사정라인을 실무 총괄하는 대통령민정비서관이다.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문재인 청와대의 심리를 이해한다. 잘못한 게 있다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북핵 사태는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를 넘어 전 세계의 1순위 이슈로 떠올랐다. 요즘 미국 워싱턴에서 이슬람국가(IS)는 김정은에게 밀려 존재감이 사라졌다. 촛불 정국 때보단 정도가 낮아졌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과거 역사를 탈탈 터는 적폐 청산이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우선순위인 게 적절하냐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미 간 수평 비교는 곤란하겠지만, 미국은 위기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머리를 맞댄다. 2014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IS 문제 등을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둘은 동갑(71)이지만 모든 면에서 달랐다. 심지어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의 재선을 막았다. 그런데 둘은 웃으며 “조지 그림 실력이 나아졌다” “빌이 날씬해졌다”고 하더니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미국은 위기에 뭉친다’는 게 핵심이었다. IS의 미 본토 테러 위협에 떨던 미국인들은 이런 메시지에 푸근함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나 국가 원로 등 ‘과거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북핵 해결을 위한 지혜와 경험을 구하겠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하긴 전직 대통령은 초청 대상도 마땅치 않다. 대부분 서거했거나 병상, 감옥에 있다. 자유로운 한 명도 주로 붓글씨를 쓰고 있다. 문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은 임기 초 적폐 청산 이슈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보수 세력의 설 자리를 더욱 좁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국정 에너지를 집중해 북핵의 실마리라도 잡으면, 안보 세력이라고 자임하던 ‘적폐 세력’에 이것만큼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과거와 좌충우돌했던 노무현의 실패에서 배우고 진화해 오늘에 이른 문 대통령 아닌가.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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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내가 만났던 존 매케인

    걸어오는데 175cm쯤 되는 듯싶었다. 하도 베트남전 ‘전쟁 영웅’이라고 해서 거구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이(81세)를 고려하면 작은 키는 아니지만, 71세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0cm에 육박하니 백인치고 큰 덩치는 아니다.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전달력도 좋았지만 톤은 높지 않았다. 고령에 말을 힘겹게 이어가거나 잘 안 들릴 때도 있었다. 마른기침도 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인터뷰차 만난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 얘기다. 매케인이 얼마 전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지난달 25일 뇌종양 수술 후에도 상원의 오바마케어 폐지 토론에 나선 그에게 동료 의원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진 장면이었다. 그는 토론에 참석하려고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에서 5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26명이 문재인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효도관광, 출장 등의 이유로 빠진 것과 맞물려 “우리 국회엔 왜 매케인 같은 정치인이 없느냐”는 보도와 인터넷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의회주의의 화신’처럼 묘사된 매케인은 실제론 앞서 말한 대로 하루하루 의정활동을 충실히 하려는 노(老)정객에 가깝다. 뇌종양 수술 때문에 부각됐을 뿐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알고 지내던 매케인의 보좌관에게 엊그제 전화해 “한국에서 당신네 의원이 떴다”고 했더니 “관심을 부담스러워하신다. 별거 아니지 않으냐(Not a big deal)”고 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거물이지만 아들뻘인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언제 봤다고 “헬로, 마이 프렌드(안녕, 친구)”라며 당시 터진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한반도 이슈를 놓고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자는 그가 군사위의 각종 회의, 청문회에 빠졌다는 말을 의회나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 트럼프 이후 미국 정치가 꼭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엔 여전히 매케인 같은 원로 정치인이 꽤 있다. 민주당 하원을 이끄는 낸시 펠로시 원내대표는 정력적인 활동 때문에 못 알아볼 뿐이지 77세의 할머니다. 2014년 상원 정보위원장으로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고문 실태를 파헤친 민주당의 ‘여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우리 같으면 은퇴했을 84세다. 이들을 보면 미국인이 왜 종종 직업을 ‘job’ 대신 ‘calling(소명)’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치열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정치적 무게를 쌓으며, 어느 덧 원로가 된다. 우리에겐 왜 매케인이 없느냐는 질문은,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왜 누구나 존중하고 의지할 어른이 없느냐는 갈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김정은의 핵장난으로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어떤 중진이 나서 국민적 단합을 울림 있게 호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북핵에 대한 각 정당의 메시지는 전부 다르다. 여전히 당 대표나 원내대표는 물론 3선만 돼도 뒷짐을 진다. 본회의장 좌석을 보면 중진은 대부분 단상에서 가장 먼 맨 뒷줄에 앉아 있다. 우리도 여의도에서 매케인을 보고 싶은가? 유감스럽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정치권만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결국 정치라는 공공 서비스의 수요자인 우리 수준을 높이고 눈을 더 부릅뜰 수밖에 없다. 아이돌 가수에 대한 팬덤(fandom)처럼 바람에 휩쓸리거나, 문재인 대통령 공격했다고 문자 폭탄 보내는 수준으론 어림없다. 선수(選數)에 기대 폼만 잡는 사람은 표로 꾸짖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키우고 응원해야겠다는 절박한 자각과 노력이 있어야 우리도 언젠가 매케인의 투혼을 한국에서도 구경할 토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

    •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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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14차례 사드시험 100% 요격성공… 성주 배치 빨라질듯

    미국이 11일(현지 시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첫 요격시험에 성공하면서 경북 성주의 사드 배치에 가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청(MDA)은 알래스카주 코디액 기지에서 진행된 요격시험에서 사드가 IRBM 표적을 명중시켰다고 밝혔다. 요격시험은 미 공군 C-17 수송기가 하와이 북쪽 태평양 상공에서 공중 발사한 IRBM을 알래스카주에 배치된 사드 탐지레이더(AN/TPY-2)가 탐지 추적한 뒤 요격미사일을 쏴 격추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사드의 요격미사일은 적 탄도미사일에 직접 충돌해 파괴하는 직격형(hit to kill)이다. 미사일방어청은 요격시험 과정이 담긴 동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까지 14차례에 걸친 단거리미사일(SRBM)과 준중거리미사일(MRBM), IRBM의 사드 요격시험이 모두 성공해 요격률 100%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의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 직후 실시된 이번 요격시험은 미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핵 공격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에선 사드의 효용성이 입증된 만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성주의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이 ICBM급 도발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서는 마당에 절차적 정당성을 이유로 사드 배치를 중단한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정부 방침의 변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드 부지의 환경영향평가를 ‘적절한 시기 내’ 마무리하고 연내 1개 포대 배치를 완료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군 안팎에선 정부의 환경영향평가 재검토 방침에 따라 사드 배치가 1년 이상 지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현재 성주기지에는 사드 발사대 2기와 교전통제소, 탐지레이더가 배치돼 운용 중이다. 나머지 발사대 4기는 인근 미군기지에 보관돼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핵·ICBM 추가 도발 시 미국은 주한미군 보호와 한미 공조 차원에서 사드의 조속한 배치를 요구할 것”이라며 “이 경우 정부가 국내 사정을 들어 사드 배치를 마냥 미루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원은 심의 중인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법안에 사드의 한국 배치를 명문화하고 나섰다. 11일(현지 시간) 미 의회에 따르면 상원이 심의 중인 국방예산법안은 “의회는 평화적인 군축을 위해 미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포함해 역내 동맹에 대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인식한다”는 내용을 새로 담고 있다. 한미일 3국 국방당국은 12일 화상회의를 열어 북한의 ICBM급 발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대화에 복귀하도록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데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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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장남의 자충수… 공개한 e메일이 ‘러 내통’ 증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해 대선 기간 러시아 인사들과의 회동에 앞서 교환한 e메일 내용을 공개하면서 러시아 스캔들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할 로버트 뮬러 특검은 트럼프 주니어의 e메일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CNN이 전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11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러시아 여성 변호사 나탈리야 베셀니츠카야와 자신의 회동을 주선한 러시아 팝스타 에민 아갈라로프의 대리인과 나눈 복수의 e메일 내용 전체를 공개했다. 스스로 밝힌 대로 ‘완벽하게 투명하게 하기 위해’ 둔 초강수였다. 트럼프 주니어가 베셀니츠카야를 만나기 6일 전인 지난해 6월 3일. 러시아 팝스타 에민의 홍보 대리인 롭 골드스톤은 트럼프 주니어에게 e메일을 보내 “러시아 ‘크라운 검찰총장’이 에민의 아버지 아라스를 만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를 지원하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다.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고 묻는다. 트럼프 주니어는 17분 후 “감사하다. 그런 내용이라면 나는 매우 좋다”고 회신한다. 러시아 정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제공하겠다고 분명한 의사를 표시했고 트럼프 주니어도 이를 받아들였다. 만남 3일 전인 6일 두 사람은 하루 동안에만 6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러시아 정부 측의 제보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상의한다. 7일 골드스톤은 “러시아 정부의 변호사가 모스크바에서 직접 날아와 만나고자 한다”고 트럼프 주니어에게 알리고 보안 조치를 미리 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 변호사를 실질적으로 연결한 에민과 아라스의 역할도 주목된다. 에민은 2013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러시아에 유치하는 과정에서 대회 소유주 트럼프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부동산 부호이자 푸틴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친(親)정부 인사인 그의 아버지 아라스도 트럼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e메일 공개 후 논란이 확산되자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의 회동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이어 “만남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시간을) 낭비한 부끄러운 20분이었다”며 “e메일을 주고받은 것은 상대 후보(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조사 차원이었지만 아무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필요하면 의회에서 관련 증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류 언론들과 야당인 민주당은 역으로 이것이 러시아 스캔들의 실증적 증거라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 변호사의 만남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NYT는 11일 “이보다 더 구체적일 수 없다”고 평가하고 트럼프 주니어가 베셀니츠카야를 만난 곳은 트럼프 후보의 사무실 바로 아래 층이라고 지적했다. 의혹의 정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뜻이다.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브라이언 팰런도 CNN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고 흥분했다. 특히 베셀니츠카야가 문제의 e메일에서 러시아 정부 변호사로 언급된 만큼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 정부 공식 직책이 없는 데다 크렘린을 위해 일한 걸 부인하고 크렘린도 그를 모른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주니어가 접촉한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정부와 직결된 믿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이 드러나야 하는 만큼 결국 특검 조사를 해봐야 의혹의 진위를 가릴 수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트럼프 주니어와 베셀니츠카야의 만남에 동석한 것도 트럼프 측의 추가 설명과 특검의 수사가 필요한 대목으로 꼽힌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구자룡 기자}

    •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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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이승헌]우리는 진짜 미국을 알고 있나

    워싱턴 이임 인사차 만난 지인의 추천으로 얼마 전 휴일에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를 다녀왔다. 게티즈버그는 한국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명연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북군이 승기를 잡아 오늘날 미합중국 탄생을 가능케 한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링컨의 연설은 그곳에서 산화한 수만 명의 영혼을 달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게티즈버그는 형제끼리 피를 뿌려 가며 만들어낸 ‘소중한 미국’을 상징하는 곳이다. 버몬트주에서 왔다는 이라크전 참전용사 피터 설리번 씨는 “이런 미국을 지키는 데 참전했던 건 일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게티즈버그 방문은 지난 3년간 워싱턴에서 매달렸던 ‘미국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정리하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됐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미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다고 하겠지만 미국은 차원이 다르다. 최근 ‘화성-14형’을 비롯해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할 때마다 미 언론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 땅에 닿을 수 있다(reach US soil)”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영토(territory)라는 국제법적 개념은 잘 쓰지 않는다. 어렵게 일군 조국의 흙 한 줌도 적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애국자(patriot)라는 표현이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것도 나라를 지키는 사람, 제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조건적 신뢰를 보여준다.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패트리엇 미사일), 최고 인기 있는 미식축구팀 이름(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도 들어간다. 9·11테러 후 만든 테러방지법 이름도 애국법(Patriot Act)이다. 우리 같으면 ‘국뽕’(지나친 애국주의)이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기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도드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트럼프보다 표현이 고상했을 뿐 ‘미국을 지킨다’는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가 추진했다 트럼프가 좌초시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시장을 확장시키려는 오바마판 ‘미국 우선주의’의 세련된 버전이었다고 나는 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한국, 본질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지키기 위해 오바마 때 결정됐다. 이렇게 미국을 알아가던 차에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한국 주도권론’을 접하고 있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당시 만난 문 대통령은 이 대목을 설명하며 유독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미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가 문 대통령과 만나 한반도 이슈에서 한국 역할에 무게를 실어준 것은 외교적 성과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높아지면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대화와는 무관하게 ‘미국 지키기 플랜’에 몰두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백악관 주인이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북핵에 대처하고 우리를 지키려면 아직은 미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그걸 이끌어 내려면 겉으로 드러난 외교적 수사 외에 미국인들의 의식 밑바닥에 흐르는 본질까지 들여다보려는 수고와 인내가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가? 한국 외교의 치열한 각성과 건투를 빌 뿐이다. 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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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겨냥한 美 “무역도 ‘탄약’ 될수있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은 미국과 동맹국에 엄청난 위험”이라며 강력한 대북제재를 다시 경고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미국은 유엔의 새 대북제재안 결의를 위해 중국과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헤일리 대사는 9일 CBS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미국은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밀고 나갈 것”이라며 “북한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ICBM 발사 실험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제”라며 “중국이 과거에 했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헤일리 대사는 또 “제재나 무역도 탄약(ammunition)이 될 수 있다”며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무역 보복까지 언급했다. 미국은 지난주 강력한 대북제재를 담은 결의안 초안을 중국 측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연간 1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 북한 해외 노동자의 급여 송금 제한 같은 금융 제재와, 핵실험이나 미사일 개발 관련 물품 수입을 막는 해상 및 항공 규제 등의 두 갈래 제재 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해외 노동자 송금 제한은 핵개발 ‘돈줄’을 차단하는 효과와 인권 문제 제기라는 두 가지 명분이 있어 원유 수입 제한과 함께 강력한 제재 안으로 거론된다. 헤일리 대사는 “중국이 우리와 협력할 것인지는 현재 협상 중인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며칠 내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뉴욕 라디오 방송 AM970 인터뷰에서 “남북통일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며, 이것이 어려우면 미국은 대북 군사력옵션 사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젊은 지도자들은 북한을 매우 불쾌한 짐 덩어리로 이해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현재 일련의 대북 옵션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코리아가 통일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뉴욕=박용 parky@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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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김정은 타격 훈련’ 공개… 北ICBM에 ‘맞짱 무력시위’

    8일 오전 강원 필승사격장 상공. B-1B 초음속 전략폭격기 2대가 굉음과 함께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나타났다. 이어 기체 하부의 무장창을 열어 레이저통합정밀직격탄(LJDAM)을 1발씩 투하했다. 폭탄은 가상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대에 정확히 내려 꽂혔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가차 없이 보복 응징에 나설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에 맞선 한미 연합 무력시위가 계속되면서 ‘강 대 강’ 대결 국면이 벼랑 끝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이날 투하된 LJDAM(GBU-56·탄두 무게 900kg)은 폭약을 제거한 비활성탄이어서 폭발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B-1B가 한반도에서 폭탄으로 대북 타격훈련을 벌인 것은 처음이어서 북한에 주는 충격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LJDAM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및 관성항법장치(INS)가 탑재된 기존 통합정밀직격탄(JDAM)에 레이저 유도장치까지 달아 오차가 1m 안팎에 불과하다. 김정은의 집무실이나 지하 은신처를 초정밀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백조를 닮은 외형 때문에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는 미국 폭격기 가운데 최대 무장량(약 60t)을 자랑한다. 최대 24발의 GBU-56을 실을 수 있다. B-1B 10대가 한 차례 출격으로 북한의 이동식미사일발사대(TEL)와 핵시설, 지휘부 등 240여 개의 핵심 표적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핵·미사일 추가 도발을 하면 미국은 B-1B의 추가 전개는 물론이고 B-2 전략폭격기와 전략핵잠수함(SSBN) 등 대한(對韓) 확장억제 전력을 대거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서 본토와 동맹국(한국)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 태세도 과시할 방침이다. 조만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알래스카주 태평양 우주발사시험장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요격시험이 처음 진행된다. 미국 미사일방어청(MDA) 대변인은 이번 시험이 북한의 화성-14형 발사 이전부터 계획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북한 미사일 요격훈련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 현지 소식통은 “북한 핵미사일의 미 본토 타격 위협이 현실로 닥친 만큼 실제 격추하는 상황을 상정한 훈련”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노동신문은 9일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지지를 얻어낸 ‘한반도 주도론’과 ‘단계별 해법론’을 ‘파렴치한 기만술’ ‘낯 뜨거운 변명’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철저한 ‘승인’하에 북남관계 개선이나 대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와 전면 대결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의 근원적 청산 없이는 핵과 탄도로켓은 끝을 모르고 강화된다”며 “조선반도 평화와 북남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북핵 폐기’ 망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 대통령이 방미 기간에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찾은 것에 대해 “미제 침략자들이 자기 민족과 부모, 자기 인생에 새겨놓은 사무친 원한을 절규하기는커녕 머리를 조아리며 생의 ‘은인’으로 떠받든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트럼프가 베푸는 서푼짜리 환대에 넋이 나가 백악관 방문록에 ‘대한미국’이라는 글까지 남겨 세인을 웃겼다”며 조롱도 했다. 다른 논평에서는 “(B-1B의 출격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핵전쟁 도화선에 불을 달려는 전쟁 미치광이들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박”이라고 비난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황인찬 기자}

    •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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