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채은

전채은 기자

동아일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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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채은 기자입니다.

chan2@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문학/출판64%
문화 일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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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3%
기타3%
  • “한번 생긴 정신병, 없애려 하지 말고 적응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다. 관련 책도 많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조언, 치료에 사용하는 약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정보가 쏟아진다. 그러나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과 탈 없이 공생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0년 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삽화가 이한솔 씨(31)는 ‘정신병자의 세계’를 탐구하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정보만 주고 도망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 만화를 그렸다. 최근엔 에세이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를 펴냈다. 이 씨는 책의 초반부에 “정신질환이 가진 질병으로서의 위험성과 현실적인 파괴력을 강조하고자 ‘정신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신질환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인 ‘정신병자’도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는 맥락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책은 ‘리단’이라는 필명으로 썼다. ‘리단’은 양극성 장애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리튬 성분의 약물 ‘리단정’에서 따왔다. 그를 11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났다. “어느 날 정신질환 때문에 환청을 듣는 친구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했는데, 자기 환청이 제 농담을 듣고 웃었다는 거예요. 이런 기이한 웃을 거리들이 자주 생기는 경험이 정신질환자들에게 무척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이 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뿐 아니라 신경증, 우울증, 조현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폭넓게 다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여러 정신질환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류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트위터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과 정보를 나누던 그는 2016년 ‘여성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이르는 조어) 자조(自助·스스로 돕는다) 모임’을 만들어 많은 정신질환자와 소통했다. 이 씨는 “제가 모든 정신질환자의 자조 집단이 돼 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이나 친구를 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이 씨는 “문제는 병이 아니라 관계다. 평소 타인과 관계 맺을 때처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자살 시도를 한 곳에 자기의 일부를 두고 온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사람이 현실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는 책의 첫 장에 “노화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병은 진절머리가 나지만, 병이 펼쳐주는 지평도 상상만큼 나쁘지 않다”고 썼다. 그가 트위터와 만화, 글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통해 동료 ‘정병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신병을 소거가 아닌 적응의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정신병이 생기기 전의 삶을 치료의 목적으로 두면 실패하는 경험이 반복되며 회복을 포기하게 됩니다. 한번 생긴 정신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병에 적응하고 병을 관리하는 삶을 상상해야 비로소 정신병에 맞설 수 있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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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정제된 문장에 녹인 여성과 고통

    “트라우마와 분노가 불면으로, 염증으로, 소화불량으로, 흉통으로 기어코 드러나 그 봄에 우리는 발열 없이 계속 아팠다.”(‘여기 우리 마주’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도 느끼는 고통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이 책의 두 번째 수록작이자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여기 우리 마주’는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 펜데믹 상황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생생히 그린다. 집에서 비누를 만들어 판매한 지 9년 만에 상가에 공방을 차린 화자는 코로나19로 일과 육아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학원 차를 운전해 돈을 버는 화자의 친구 수미도 같은 고립감에 시달린다. 두 사람의 심리적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리며 작가는 한순간도 리얼리티를 잃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르포 기사보다 진실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최은미의 세 번째 소설집인 이 책에는 2016∼2020년에 쓴 단편 9편이 수록됐다. 주로 여성이 가족이나 친밀한 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일들에 집중했다. ‘여기 우리 마주’ ‘보내는 이’ ‘운내’가 여성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다뤘다면 ‘눈으로 만든 사람’ ‘美山’ ‘11월행’은 가족에 속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보내는 이’는 최은미의 서늘한 파괴력이 가장 폭발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온해 보이는 두 기혼 여성을 등장시켜 그들의 썩어 있는 내면으로 화면을 조금씩 좁혀 나간다. 화자는 딸의 친구 엄마인 진아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가 진아가 남편에게 당해 온 폭력의 실체를 알게 된다. 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눈으로 만든 사람’은 여성이 성인 남성으로부터 겪는 폭력과 이것이 생애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여성 가족에게만 요구되는 의무감을 그렸다. 정제된 문장으로 폭발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최은미의 또 다른 도약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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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만 커버린 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내 소설 속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혼자라는 상실감에 자주 빠집니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부터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브릿마리,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엘사까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 온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40)이 신작 소설 ‘불안한 사람들’(다산책방)로 돌아왔다. 전작 ‘일생일대의 거래’(다산책방)가 나온 지 1년 6개월 만이다. 배크만은 신작에서 몸만 커버린 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내 소설들은 하나의 골목, 하나의 마을을 무대로 펼쳐진다. 공간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간의 내면과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작은 스웨덴의 ‘별로 크지 않은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은행에 권총을 든 강도가 침입해 6500크로나(약 88만 원)를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금 없는 은행에 들어와 돈을 요구한 것부터 영 어설펐던 이 강도는 범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곤 아파트 매매가 이뤄지는 오픈하우스(신축 아파트에 들어선 본보기집)로 도망친다. 그때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던 방문객 8명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인다.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꿰뚫어보는 배크만 특유의 통찰은 이번 작품에서 더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가 세계적 인기를 끈 데에는 겉으로 보기에 괴팍하기만 한 59세 남성 오베를 매력적이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만든 영향이 컸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는 것만이 내가 작가가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배크만의 문학세계는 개인에서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소설에는 강도와 인질, 범인을 쫓는 경찰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다층적이고 서로 정교하게 얽혀 있다. 지난해 영어 번역본이 발매되자마자 미국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그는 2012년 데뷔 후 현재까지 중편소설 3편을 포함해 모두 9권의 소설을 펴냈다. 불안한 사람들의 소재를 어디에서 찾았는지 묻자 세 가지 기준으로 답했다. ‘첫째, 고전적인 코미디물을 쓰자. 둘째, 고전적인 밀실 미스터리를 쓰자. 셋째,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불안한 어른들끼리의 감정적 충돌을 다루자’다. 그는 “선택한 3개의 아이디어가 옳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크만은 “평소 작품을 쓸 때 실제로 떠올리는 아이디어 10개 중 7개는 끔찍하고 3개 정도만 들어줄 만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7세 소녀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과 정체성을 지닌 인물을 폭넓게 다뤄 온 배크만은 앞으로도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제가 지금껏 관심이 없었던 단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작품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연령대의 다채로운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볼 생각이에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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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핍은 나의 힘” 고유 세계 구축한 조선의 문장가들

    “왼쪽으로 바라보니 큰 바다가 푸른 하늘에 맞닿아 천하에 아무것도 내 눈을 가리는 것이 없었다. (…) 생각해보면 구주(九州) 안의 백공 만물, 고금의 서적, 사마천이 구경했다는 것과 초나라 좌사가 읽고 기록한 것이 탄환처럼 조그마한 것이었다.”(해유록) 조선의 문장가 신유한(1681∼1752)은 1719년 일본 대마도의 항구 서박포에서 출항한 배 위에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서 겪은 일을 쓴 ‘해유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조선 기행문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신유한은 어린 시절 서당 선생이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글을 깨칠 정도로 타고난 문재(文才)였다. 하지만 그는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평생 하급관리로 전전했다. 지방의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이었다. 동시대 문인들은 신유한이 구사한 독특한 문장이 괴이하고 난해하다며 비판하기 일쑤였다. 이 시절 그가 느낀 서글픔은 ‘목멱산기’ ‘청천집’ 등의 저서에 절절한 문장으로 남았다. 당대의 주류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문장을 추구한 조선 문장가들을 조명한 시리즈가 최근 글항아리에서 발간됐다. ‘18세기 개인의 발견’(사진) 시리즈는 저마다의 결핍을 문학으로 승화한 신유한, 조귀명(1693∼1737), 유한준(1732∼1811), 이용휴(1708∼1782)의 삶을 다뤘다. 일곱 살에 스스로 한문을 깨친 조귀명은 병약하게 태어난 탓에 평생 방에서 그림과 문학, 종교를 탐구하며 살았다. 방대한 공부량은 타고난 문장력과 결합돼 독특한 문학세계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내건 조선에서 유불도의 통합을 추구한 그의 철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집 ‘동계집’과 문학 작품 ‘오원자전’은 그의 독특한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집 ‘저암집’과 ‘자저’를 남긴 유한준은 스스로 사대부이면서도 부패한 사대부를 앞장서 비판한 인물이다. 문우(文友)였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비판했지만, 유한준은 거침없는 직설을 글로 담아 지배층의 미움을 샀다. 2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하지 않고 문학에만 전념한 이용휴는 몰락 가문의 후손이었다. 큰아버지가 왕에게 직언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받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그는 평생 재야의 문인으로 살았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스스로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시대와 맞선 이들의 삶은 매일 각개전투를 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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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하는 당신, 지구를 아프게하고 있진 않나요?

    비행기로 스웨덴과 호주 사이를 왕복 여행하는 동안 약 4t의 탄소가 배출된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규정한 1인당 연간 탄소 허용치 2.5t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숙소에서 머물 때에도 여행자는 끊임없이 탄소를 배출한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여행인구도 많아졌다. 2019년 전 세계 국제 항공편 승객은 14억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세계관광기구가 예상한 시기보다 2년가량 빨랐다. 그렇다면 지구를 아끼는 이라면 당장 여행을 그만둬야 할까. 저자는 여행 방법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2008년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시작으로 ‘지속가능한 여행’을 추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터득한 친환경 여행법을 공유한다. 먼저 교통수단이다. 비행기를 최대한 적게 타고 기차나 버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게 좋다. 저자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마일(약 1.61km)을 이동할 때 버스는 0.08kg, 기차는 0.19kg, 자동차는 0.53kg, 비행기는 0.83kg의 탄소를 각각 배출한다. 어떤 연료로 동력을 얻고 승객을 얼마나 많이 실어 나르느냐에 따라서도 배출량이 달라지기에 에너지원 등도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런던과 파리를 잇는 고속철도 유로스타는 다른 열차보다 탄소를 덜 배출한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절반 이상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이동한다면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숙소를 선택할지도 중요하다. 플라스틱 칫솔과 일회용 샴푸 대신 대나무 칫솔이나 고체 샴푸를 제공하는 숙소를 고르는 게 시작이다. 신축 건물 대신 기존 건물을 개조한 숙소를 이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다. 또 직원 100%를 현지인으로 고용한 숙소를 고르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여행지에서 소비하는 음식도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들어진 걸 권한다. 식재료는 생산과정은 물론이고 각지로 운송될 때도 탄소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추구하는 숙소들은 식재료를 직접 기르거나 운반 거리를 제한하는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음료수를 고를 때도 글로벌 기업에서 만든 음료보다 지역주민이 직접 제조한 시럽을 넣은 음료나 지역에서 나는 과일로 만든 주스를 마시자.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수 없는 국내 거주자들에게는 비행기 이용을 줄이자는 제안 자체가 넘어서기 어려운 문턱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 외에도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종식돼 해외여행 길이 다시 열리면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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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만화책 관련 요청 많아… 출판 돕는 책, 앞으로 쭉 만들 생각”

    “오로지 출판 편집자를 위한 8권짜리 시리즈가 팔릴지 솔직히 고민됐지요.” 2일 서울 마포구 유유출판사에서 만난 편집자 사공영 씨(34)는 “출판을 돕는 책이라면 만든다는 원칙 아래 밀어붙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문학책 만드는 법’으로 시작한 유유의 ‘책 만드는 법’ 시리즈를 지난달 4일 완간했다. 마지막 책은 8번째 책인 ‘과학책 만드는 법’. 당초 이 시리즈는 출판사 편집자를 타깃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명확한 기획 의도와 군더더기 없는 책 디자인 덕에 출판계뿐 아니라 잡지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와 일반 독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다. 이 시리즈를 디자인한 이기준 디자이너(46)는 “‘책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을 듣고 영어단어 ‘text(글)’의 어원이 라틴어 ‘textum(직물)’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표지를 씨실과 날실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까지 이 디자이너의 직관적이면서도 일관된 디자인도 한몫했다. 그는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의 표지에는 그래프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문학책 만드는 법’에서는 해석의 여지가 열린 분야라는 점에 주목해 자유롭게 떠다니는 점으로 표지를 꾸몄다. 그는 “표지가 책의 모든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증을 충분히 자아내는 데 주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당초 출판사는 이 시리즈가 신입 편집자나 편집 지망생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팔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문학이나 에세이 등 독자층이 두꺼운 분야를 다룬 시리즈는 벌써 2쇄를 찍었다. 계획했던 시리즈는 일단락됐지만 출판사는 편집자들 사이에서 요청이 많았던 분야를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예술책이나 만화책 만드는 법을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학술서, 그림책 만드는 법도 나올 수 있겠지요. 출판을 돕는 책은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도 쭉 만들 생각입니다.”(사공영)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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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는 곡마다… BTS ‘Butter’ 빌보드 핫100 1위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Butter’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Dynamite’와 ‘Life Goes On’에 이어 세 번째 정상이다. 1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21일(한국 시간) 발표한 두 번째 영어 디지털 싱글 ‘Butter’가 핫 100 순위에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전주 1위 곡 ‘Good 4 U’를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이 제이슨 데룰로의 ‘Savage Love’ 리믹스에 참여한 것까지 합치면 네 번째 1위다. 방탄소년단은 솔로가 아닌 그룹 중에서는 1970년 잭슨파이브(8개월) 이후 가장 단기간(9개월)에 4곡 1위 기록을 이뤄냈다. ‘Butter’는 발매 이후 첫 차트 진입주에 1위를 한 ‘핫샷’ 데뷔곡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핫샷 데뷔곡은 ‘Dynamite’, ‘Life Goes On’을 포함해 3곡이 됐다. 빌보드 역사상 핫샷 데뷔곡이 3곡 이상인 가수는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트래비스 스콧 등 6명에 불과하다. ‘Butter’는 글로벌 차트도 휩쓸었다. 전 세계 200개 이상 국가·지역의 스트리밍과 판매량을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글로벌 200’과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다운로드 순위를 보여주는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Butter의 뮤직비디오는 신곡 발표일에 맞춰 유튜브에 공개한 이후 2억8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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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도시 사람들의 사는 재미 담긴 ‘순한 소설’ 쓰고 싶었죠”

    《“제목이 ‘요’로 끝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여튼 순해 보일 것 같아서. 10권 정도 쓰고 싶었다. 요요거리며 자꾸 나올 것 같아서. 계속 이어 쓸 수 있다면 ‘요요 소설’이라고 해야겠다.”(‘작가의 말’ 중)소설가 구효서(63)가 한껏 친근해진 이야기로 돌아왔다. 단편집 ‘아닌 계절’ 이후 4년 만의 장편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를 통해서다. 1987년 단편 ‘마디’로 등단한 후 큰 공백 없이 꾸준히 작품을 써 온 그에게 이번 신간은 조금 특별하다. 이 작품이 작가로서의 삶에 변곡점이 될 것 같다는 그를 28일 만났다.》 “오늘 아침 이순원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번 소설 나긋나긋하더라. 그래 잘했어, 그렇게 써야지.’ 혼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구효서는 그동안 주류 문학과 실험적 작품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썼다. 특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거나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난해한 서술 방식으로 작품을 쓰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신간은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 사람들이 펜션 ‘애비로드’를 중심으로 먹고 사랑하고 울고 위로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도 6세 아이부터 89세 노인까지 모두 평범한 이들이다. 부조리나 권력, 횡포 같은 말 대신 배롱나무, 도다리 쑥국, 고추밭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그는 출간 직전까지도 전작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소설가라면 인물과 인물의 감정을 분리하고, 감정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작업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매우 중요한 작업이지만 이것에만 천착하다 보니 보편적 정서를 간과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죠.” 그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를테면 과거의 그는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도 ‘왜 눈물이 나지? 이 슬픔은 정당한가?’라는 고민에 빠졌단다. 작가 의식에만 충실한 나머지 별것 아닌 이유로도, 클리셰가 클리셰인 줄 알면서도 눈물 흘리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주 놓쳤다. 구 작가는 “겉이 없는 속이 있을 수 없듯 중심부와 주변부, 무거움과 가벼움을 편중되지 않게 다뤄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록의 안목으로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자연스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작 소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는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깊이”라며 “요새 인기가 많은 소재만 가져다 쓰고 정작 이야기에는 허점이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평창의 누나 집에 놀러 갔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돼 작품 속에서 재탄생했다. 그가 이름 붙인 ‘요요 소설’의 두 번째 작품은 경남 통영 혹은 전남 목포를 배경으로 할 예정이다. 다작하는 소설가답게 그는 한 해에 한 편씩 10년에 걸쳐 작품을 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눈만 뜨면 부동산, 주식, 물가 얘기를 나눠야 하는 대도시 사람들을 보며 ‘이게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요. 특별시, 광역시가 아닌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사는 재미에 대해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까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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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완전무결한 경제학이라는 오만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에서 인간의 욕망은 부의 증대를 가져오는 절대 이로운 가치다. 하지만 인간 욕망을 무한 긍정하면 모두가 충분한 부를 누릴 수 있을까. 저자는 지나치게 간단한 이 공식을 고집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되레 경제를 실패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주류 경제학은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지 않는다. 욕구가 탐욕으로 변질돼 왜곡된 시장을 신고전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캐비아가 비싼 값에 거래되는 요인은 재화의 희소성이나 인간의 배고픔(필요)이 아니라 탐욕이다. 욕구를 무한 긍정해도 된다는 주류 경제학의 달콤한 속삭임 탓에 윤리는 상업의 확산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왜곡됐다. 또 전체 부가 늘어도 가난한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사학자로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나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가 경제학을 공부한 건 197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 3부작’을 집필하면서부터다. 30년 동안 쓴 이 책으로 유명해진 그는 영국 워릭대 경제학부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 “정치와 역사, 경제를 아우르는 내 이력이 제3자의 비판적 시각으로 주류 경제학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가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계에 요구하는 개선점은 세 가지다. 첫째, 경제주체인 개인을 합리성으로 무장한 존재로만 설정하지 말 것. 인간은 욕망만큼이나 자신을 둘러싼 윤리나 사회,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느 상황에서나 법칙으로 통용되는 ‘물리학’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것. 결코 정량화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을 다루는 학문이 완전무결한 법칙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완전경쟁 시장을 향한 맹목적 신뢰를 거둘 것. 시장이 자발적으로 구조적 안정과 공정한 분배를 낳는다는 믿음은 시장 시스템을 공정하게 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특히 시장은 정치제도와 도덕적 믿음 같은 변수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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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님, 5월 넷째주 편지입니다” 출판가 뉴스레터 바람

    《민음사는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뉴스레터 ‘한편’을 구독자 메일로 보낸다. 같은 이름의 인문잡지 ‘한편’의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고 편집자들의 코멘트를 함께 싣는다. 지난해 1월 잡지 발간을 앞두고 시작한 뉴스레터의 구독자는 1년여 만에 1만2000여 명으로 늘었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논픽션팀 과장은 “요즘도 매주 100∼200명이 추가로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1은 종이잡지 구독자로도 유입돼 홍보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해 출판사와 직접 소통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뉴스레터는 각종 출판계 소식이나 책 관련 콘텐츠를 담은 메일을 정기적으로 독자들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다. 출판사들은 통상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꼴로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로 독자들의 호응이 높은 출판사 뉴스레터로는 예닐곱 개가 꼽힌다. 이들 대부분이 지난해나 올해 초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판계 관계자는 “메일로 독자들에게 한 편의 글을 매일 보낸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가 성공하는 걸 보고 출판사들이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뉴스레터 목적에 따라 구성도 다양하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인 반비는 지난해 9월 뉴스레터 ‘책타래’를 시작하면서 인문서 독자들의 공동체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다. 최예원 반비 편집자는 “인문서 독자층은 일정 규모에 이르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책타래는 기존 독자들끼리 인문서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대화 거리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여성주의나 가난, 죽음 등 인문학 논의가 가능한 주제를 정해 관련된 책들을 추천한다. 자사(自社)가 아닌 다른 출판사 책들도 포함된다. 책타래는 약 3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창비는 타깃 독자층에 맞춰 두 종류의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고독단(고민해결독서단)’은 2030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책 소개와 더불어 함께 감상하면 좋은 영화나 전시를 안내한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친절한 문체로 작성되며,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지는 게 특징이다. 이와 달리 올 1월 시작된 ‘인문학레터’는 기존 인문서 독자층인 4050세대를 대상으로 밀도 높은 인문학 정보를 제공한다. 이정원 창비 홍보부 팀장은 “현재 운영 중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일방통행식 소통의 한계를 느꼈다”며 “반면 뉴스레터는 하단에 마련된 피드백 메뉴를 통해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뉴스레터는 규모가 작은 출판사들이 브랜드를 알리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은 사명에 착안해 매주 수요일 구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낸다. 뉴스레터의 하위 카테고리를 ‘일하는요일’(편집자와 북디자이너가 책을 만드는 일상에 대해 쓴 글)과 ‘읽는요일’(책 속의 의미 있는 한 줄을 소개)로 구성해 출판사 홍보 효과를 노렸다. 뉴스레터를 보고 해당 출판사를 알게 된 독자가 책을 구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박혜미 책읽는수요일 편집자는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독자뿐 아니라 출판계 내에서도 존재감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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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 다른 선택했더라면…” 판타지 열풍

    고단한 사회생활을 한다면 한 번쯤 삶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 하는 후회가 쌓여 우울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우울한 어른들’의 삶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 2030 여성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근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26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5월 셋째 주 기준 전체 베스트셀러 1위는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 2위는 영국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인플루엔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삶에 지쳐 자살을 기도한 주인공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 자기 삶의 다른 버전을 열람한다. 이를테면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은 삶, 직장에 다니는 대신 남편과 시골에서 작은 펍을 운영하는 삶을 이 도서관에서 살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이를 통해 후회로 점철된 자신의 원래 삶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은 20, 30대 직장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중에서도 여성 독자층이 두꺼운 소설 분야 특성상 여성 구매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구매자 가운데 30대 여성의 비율은 26.2%, 20대 여성은 20.1%를 차지한다. 이들은 “꼭 잘나가지 않더라도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삶임을 알려준 소설” “주인공의 삶과 내 삶이 겹치며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우울감을 이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출간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10주 만에 다시 1위에 오를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대 여성의 구매 비율이 23.1%로 가장 높았고, 30대 여성도 21.1%다. 꿈을 판매하는 신비한 백화점을 무대로 한 이 책은 소량 입고된 예지몽에 고객이 몰리는 상황을 통해 현재의 삶이 실망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뤘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방송에 소개되거나 다른 소설과 차별화되는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순위에 올랐다”며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들이 최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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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으로 식사 일기 쓰고… 손닿는 곳 간식부터 치우세요”

    “다이어트를 평생에 걸쳐 식습관을 바꿔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실패라는 개념이 없어요. 못 하나 잘못 박았다고 집이 무너지지는 않는 것처럼요.” 최근 ‘맛있고 배부른 다노 다이어트 레시피’(세미콜론)를 출간한 이지수 씨(31)가 이렇게 말했다. 다이어트 노하우를 알려주며 유튜브에서 구독자 70만 명을 보유한 이 씨의 다이어트 대원칙은 ‘지속가능성’이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싸고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20kg 가까이 불어난 몸무게를 되돌리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내린 결론이다. 25일 그를 만나 꾸준히 할 수 있는 다이어트 방법을 들어봤다. 그는 남이 성공했다는 다이어트 방법을 좇기보다는 스스로의 식습관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꼭 맞는 식단을 설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빵을 몹시 좋아해서 끊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일단 현미빵으로 바꿔 보는 식이다. 달콤하고 폭신한 크림에 바삭바삭한 과자류를 찍어 먹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이 씨는 이를 그릭 요거트와 현미 시리얼로 대체했다. 평소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는다면 혹시 입맛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음식을 찾는 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만약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패턴을 보인다면 무작정 맵고 짠 음식을 참는 것은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씨는 “음식 이외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음식 중에서도 시원한 커피 등 상대적으로 건강을 덜 해치는 음식을 찾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 한식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많이 담은 것도 다이어트를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이어트 레시피는 서구권에서 먼저 개발됐기 때문에 이를 참고해 만든 한국의 다이어트 레시피도 샐러드, 샌드위치 등 서양 음식이 여럿 포함돼 있다. 이런 다이어트 식단은 기존 식재료들을 활용하기 어려워 실천하기 훨씬 까다롭다. 이 씨는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집밥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레시피라면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초보 다이어터를 위한 팁△ 사진으로 식사 일기 기록하기: 효과적인 비만 치료법 중 하나△ 좋아하는 음식 칼로리 낮춰 만들기: 카카오가루와 두부로 브라우니 만들기 △ 목적에 맞는 운동 강도 정하기: 단기 효과는 고강도 저강도 병행, 유지하려면 중강도△ 환경 바꾸기: 손이 닿는 거리에 간식 치우기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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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평범한 이의 잔혹 범행, 무엇이 그를 악의 길로…

    범죄자는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마우스’나 ‘빈센조’가 그린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보며 못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유전자가 정해져 있다면 범죄자를 교도소에 가둬 교화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범죄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고난 유전자 탓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비슷한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이와는 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는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는 전작 ‘나오미와 가나코’ 발표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이번 장편소설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동 유괴를 저지르기까지의 궤적을 탐구한다. 유머러스한 인물부터 잔혹한 범죄자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작가의 필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은 196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발생한 ‘요시노부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4세였던 무라코시 요시노부는 신체장애를 앓던 고하라 다모쓰(당시 28세)에게 유괴됐다. 단순 실종사고로 본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로 인해 아이는 사건 발생 2년 후에야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고하라는 일반 가정에 갓 보급되기 시작한 전화를 이용해 아이의 부모에게 몸값 50만 엔을 요구한 뒤 돈만 챙겨 도주했다. 범인은 목격자 진술에 의해 경찰에 붙잡혔다. 소설도 1960년대 초반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유괴된 다음 날 범인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50만 엔의 몸값을 요구한다. 경찰은 범인의 목소리를 공개하고 대대적인 공개수사를 벌이지만, 아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작가는 수사 상황을 치밀하게 재연하면서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좇는다. 유괴가 발생하기 수개월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은 1권 내내 범인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을 면밀히 묘사한다. 빈곤에 시달린 범인이 소설 초반 빈집에서 푼돈을 훔치는 대목을 읽을 때만 해도 나중에 그가 아동유괴와 살해를 저지르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중대 범죄의 실체를 마주한 대중의 반응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언론은 부모에 의해 자해공갈에 이용당한 과거 등 범인의 어린시절을 파헤치며 범죄의 원인을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에서 찾으려고 한다. 작가는 “귀축(鬼畜·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의 소행을 접했을 때 뭔가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사람은 불안해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작가는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연쇄폭발 사건을 다룬 전작 ‘올림픽의 몸값’(2008년)을 집필할 당시 관계자 인터뷰는 물론 당시 경찰 조직도와 수사 방법, 날씨까지 철저히 조사했다. 이번 장편에서도 탁월한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도입부에서 청어낚시가 벌어지는 홋카이도 바다와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그리는데, 망망대해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며 긴장감을 일으킨다. 소설은 가해자와 그를 쫓는 경찰, 피해자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그가 창조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빠짐없이 기록할 뿐이다. ‘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느 서늘한 밤, 이 책을 펼쳐도 좋을 것 같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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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사전 장인의 마지막 ‘우리말 어감 사전’

    ‘공원에 벚꽃이 만발했다’는 문장을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로 바꿔 쓸 수 있을까? 두 문장 모두 비문이 아니지만,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만발’을 쓰면 공원이 수많은 벚꽃으로 뒤덮였다는 뜻이지만 ‘만개’를 쓰면 벚꽃의 개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도 일상에서는 유의어를 동의어인 양 서로 바꾸어 쓰는 경우가 잦다. 국어사전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오류다. 의미가 비슷해 헷갈리는 단어들을 한데 모아 뜻풀이한 유의어 사전이 출간됐다. ‘우리말 어감 사전’(유유)에서 저자 안상순 씨(사진)는 ‘고독’과 ‘외로움’, ‘시기’와 ‘질투’ 등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어감이나 뉘앙스, 말맛, 쓰임이 다른 단어 90개 묶음의 의미를 구별했다. 안 씨는 1985년 사전전문편집회사인 신원기획 편집자로 출발해 금성출판사와 국립국어원을 거치며 34년간 사전을 만들었다. 유의어 의미 분별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신문이나 출판물, 방송 등에서 드러나는 한국어 사용자의 언어 사용 양태, 즉 ‘말뭉치’를 풍부하게 수집한 뒤 그 차이를 일일이 솎아 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가령 ‘고독을/외로움을 술로 달래다’와 같은 문장에서 ‘고독’과 ‘외로움’은 같은 뜻으로 어색하지 않게 쓰이고 있지만, ‘예술가는 운명적으로 고독과/외로움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문장에서는 ‘외로움’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여기에서 ‘고독’은 ‘쓸쓸함’이라는 의미에 더해 ‘자발적 고립’의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 낸다. ‘시기’와 ‘질투’는 어떨까. ‘영우는 찬경이를 질투했다/시기했다’는 문장에는 두 표현이 모두 쓰일 수 있지만 의미가 서로 달라진다. ‘질투’는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에게 언짢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고, ‘시기’는 그런 상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순환정의에 빠진 단어 뜻풀이도 바로잡고자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모습’을 ‘사람의 생긴 모양’으로, ‘모양’을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경우 두 단어의 의미를 모두 모르는 사람은 사전을 찾아도 뜻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저자가 볼 때 ‘모습’은 표정, 동작 등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상을 가리키지만 ‘모양’은 추상적이고 유형적인 형상을 뜻해서 맥락이나 상황과는 무관하다. ‘산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르는 모습’, ‘달 모양이 둥글다’는 두 문장은 각각의 단어가 모두 알맞게 쓰인 용례다. 저자가 유의어 분별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지병을 앓던 안 씨는 집필 작업을 마친 직후 올해 1월 6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 책은 그가 만든 마지막 사전이다. 그의 아내 박모 씨(61)는 “앞으로 2주 남았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남편이 가장 먼저 한 말이 ‘원고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가제본 된 책을 받고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저자 주변인들의 설명을 통해 그가 어떤 신념으로 책을 썼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국어를 오래 다룬 자가 빠지기 쉬운 실수가 스스로를 써도 되는 표현과 쓰지 말아야 할 단어를 구분 짓는 언중(言衆)의 선도자로 여기는 것이다. 저자는 반대였다. 언중의 한가운데에 머무르며 말과 글이 막힘없이 흐를 수 있도록 길을 내는 사람이기를 자처했다. 금성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한 동료는 “철저히 말뭉치에 근거해 단어를 수집하는 선배였다. ‘얼짱’과 같은 신조어도 언중이 널리 사용한다면 사전에 등재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은 2017년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사계절)을 집필하면서 안 씨를 인터뷰했던 웹사전 기획자 정철 씨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정 씨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 회의 때도 안 선생님은 언제나 언중의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공간과 기기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하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제작자 공간’이 아닌 ‘열린 제작실’이 된 것도 안 씨의 의견이었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 책이 언어 규범서는 아닙니다. 언어 현실을 규범의 틀로 재단하기보다는 그 실상을 최대한 존중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책을 절대 원칙이 아닌 현재의 언어문화를 잘 담은 가이드북 정도로 읽는다면 저자의 바람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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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마음 상상해 ‘ㅅㅅㅎ놀이’ 익살 삽화에 스르르 화 풀려요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이가 갑자기 놀이를 ‘시시해’하고 마음은 ‘싱숭해’한다. 함께 놀아주지 않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섭섭해’하다 이내 ‘소심해’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심심해’하더니 번뜩 이런 결론을 내린다. 심심하면 어떡하지? 상상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출간돼 어린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색 그림책들이 있다. 7일 출간된 그림책 ‘내 마음 ㅅㅅㅎ’(사계절)은 참신한 콘셉트와 재치 있는 삽화로 인기다. 이 책은 출간 약 열흘 만에 알라딘 유아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책은 한 어린이에게 일어난 마음의 변화를 따라가며 초성이 ‘ㅅㅅㅎ’인 단어를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ㅅ’자를 기울여 만든 ‘ㄱ’자로 ‘궁금해’라는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뒤집어 ‘냠냠해’라는 단어도 만든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어를 하던 그림책 속 어린이는 ‘ㅅ’자를 하나씩 더 붙여 ‘씩씩해’지고 ‘쌩쌩해’진다는 행복한 결말이다. 이 책은 글자를 그림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 김지영은 어린이 얼굴의 눈썹과 귀를 각각 ‘ㅅ’자와 ‘ㅎ’자로 그리는 등 글자를 재미있게 시각화했다. 출판사는 지난해 이 작품에 사계절그림책상을 수여하며 “언어를 물성과 의미의 차원에서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독자들은 “자녀와 함께 해당 초성의 단어를 얘기하는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작가는 “초등학교 1, 2학년 자녀 둘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이들의 마음, 감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이 책도 자녀가 ‘시시해’, ‘심심해’ 등 초성이 ‘ㅅㅅㅎ’인 말을 유독 많이 해서 착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그림책도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끌고 있다. 이달 초 출간된 ‘화가 호로록 풀리는 책’(위즈덤하우스)의 주인공 어린이는 엉엉 울기, 편지 쓰기,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혼자 있기 등 방법으로 화를 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체가 익살맞아 책을 읽기만 해도 화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다. 어린이들의 ‘화’에 대한 그림책은 많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화를 푸는 과정에 집중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김숙영 위즈덤하우스 그림책팀 편집자는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는 편”이라며 “보통 화에 관한 그림책 속 어린이들은 대부분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인상을 쓰거나 짜증내지 않고도 화를 풀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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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삶을 되찾기 위해 이름을 훔치다

    그릇과 책과 연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사는 주인공 아델라이다 팔콘이 잃어버린 것들은 의미심장하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통치 시절의 베네수엘라를 떠올리게 하는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은 팔콘으로부터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까지 앗아갔다. 잔혹한 폭력이 일상이 된 도시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것도, 무언가를 읽고 배우는 것도, 서로 사랑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차베스’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지만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역사를 아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소설이 차베스 정부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차베스는 빈곤 해방과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약속했지만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탓에 결국 베네수엘라의 경제와 민주주의를 파탄 낸 통치자다. 차베스가 이끌었던 사회주의 혁명인 ‘볼리바르 혁명’의 신봉자들은 정부에 헌신하며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챙겼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끝없는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됐다. 팔콘 역시 ‘혁명의 아이들’ 또는 ‘보안관’으로 불리는 혁명 세력의 피해자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를 잃은 팔콘에게 보안관들은 집마저 앗아간다. 팔콘이 ‘스페인 여자의 딸’로 알려진 아우로라 페랄타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곳에서 페랄타의 시신을 발견한 팔콘은 절대적 빈곤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페랄타가 돼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운다. 과연 팔콘은 무사히 베네수엘라를 탈출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이름과 삶을 훔치는 설정은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가 그랬던 것처럼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마련이다. 화차는 실종된 약혼녀가 다른 사람의 신분을 훔쳐 살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팔콘의 선택은 베네수엘라의 잔인한 현실과 교차되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나 박진감을 자아낸다기보다 그저 처절하게만 그려진다. 베네수엘라의 지독한 현실을 정교한 서사와 접목한 이 소설은 단숨에 22개국에 판권이 판매되며 세계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20년 동안 2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저자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역시 결국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언론에서만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베네수엘라의 진짜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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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금희 소설가 “기성세대의 무지와 오만 나부터 반성하고 싶었죠”

    “제가 40대로 접어들다 보니 기성세대가 ‘기성’으로서 저지르는 실수들을 직접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 때는 분노에 그쳤던 것 같아요. 이번에 묶은 단편들 중 여러 편이 기성세대의 무지와 오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쓰게 된 작품들입니다.” 최근 4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창비)를 발표한 김금희 소설가(42·사진)가 말했다. 이번 소설집은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는…’을 표제작으로 ‘마지막 이기성’(2020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기괴의 탄생’(2019년 김유정문학상 수상후보작) 등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단편 7편을 묶었다. 12일 서울 마포구 창비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단편 ‘우리는…’은 주인공 ‘나’가 대학교 선배 ‘기오성’과 함께 노교수의 종택에서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던 3개월을 그렸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 탄탄한 물질적 사회적 토대를 가진 노교수를 병치하며 그 격차를 짚어낸다. 동년배의 세 주체인 나, 기오성, 노교수의 손녀인 ‘강선’의 위계도 각자 다르다는 점을 드러낸다. 김 작가에게 이 소설은 가장 고통스럽게 써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소설의 모든 세부를 결정한 뒤 쓰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그는 “처음에는 ‘강선’이 너무 미웠지만 쓰는 동안에 그를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발표 직전까지 소설을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첫 번째 수록작인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는 청년 세대가 감내하고 있는 팍팍한 세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대학 삼수생과 학교 적응에 실패한 의대생 두 주인공을 앞세워 젊은 세대가 느끼는 빈곤과 무기력을 그렸다. 그는 “청년 세대에게 ‘목적과 목표를 잃었다’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걸 성취하기에 세상이 이미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재단이 기성세대의 오만이라는 생각에서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에게 이번 소설집은 작가로서의 삶에서 두 번째로 맞은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그가 꼽는 첫 번째 슬럼프는 5년간 책을 내지 못했던 등단 직후의 시기다) 그는 201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이 7만 부 이상 판매되며 한국 문단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이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앞으로 더 잘 쓰지 않으면 시장 논리에 휩쓸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충고하는 문단 선배들도 있었다. ‘마지막 이기성’은 그런 부담을 안고 쓰기 시작했다. 연인인 일본 유학생과 재일 한국인을 통해 외국인으로서 겪는 차별과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김 작가는 “장편을 마무리하고 좀 쉬어야 했는데 부담감 때문에 2019년부터 계속해서 단편들을 써 나갔다. ‘마지막…’은 정말 울면서 썼다”며 웃었다. 김 작가 소설의 애독자라면 그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소설을 쓰며 작품 속 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경애의…’도 원래는 좀 더 비관적인 결말이었는데 자꾸만 경애가 소설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문단에서 자신이 ‘과장’급 정도의 연차가 쌓였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한다. 소설을 쓰면 쓸수록 점점 품이 커진다는 점이 그가 꼽는 가장 큰 성장이다. “세상에서 성장한 김금희가 더 성숙한 소설을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소설 속에서 김금희가 더욱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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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트 뇌과학-연구실의 일상… 과학, 대중에 스며들다

    대중에게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이른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복잡한 과학 개념을 쉽게 풀어쓴 시리즈나 과학계 뒷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등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을 거치며 일상에 파고든 과학의 영향력을 대중이 실감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과학 전문 출판사 MID는 ‘강석기의 과학카페’ 10번째 시리즈(‘과학의 향기’)를 7일 펴냈다. 2011년 첫 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후 10년 만이다. 저자 강석기 씨는 정통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화학 및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뒤 기업 연구원을 거쳐 과학 전문지 기자로 활동했다. 출판계에선 대중을 상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인으로서 그의 이력이 고정 독자층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리즈는 과학 배경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들도 관심을 가질 법한 일상 속 소재를 앞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트로트 열풍과 관련해 좌뇌 및 우뇌가 소리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설명 방식이 쉽다고 다루는 정보의 깊이가 빈약한 건 아니다. 저자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뇌 과학 관련 최신 논문의 주요 내용을 책에 담았다. 올 3월 출간된 ‘기발한 천체 물리’(사이언스북스)도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쓴 책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학자라기보다 방송인에 가깝다. 칼 세이건의 후계자로 불리는 그는 세계적인 우주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후속작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내셔널지오그래픽·2014년) 내레이터를 맡았다. 이어 이듬해부터 교양과학 방송 토크쇼 ‘스타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우주 사진을 통해 독자들이 천체물리학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이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중쇄를 찍었다.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의 과학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도 2월 출간 후 한 달 만에 1만3000부가 팔려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도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상승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심 박사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다. 책에는 망원경이 아닌 연구실 컴퓨터와 씨름하는 천문학자의 일상과 더불어 우주과학계 뒷이야기를 담았다. “막연하게 동경해온 천문학자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과학자들의 학문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인상적”이라는 독자들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출판계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출판계 관계자는 “한국은 오랫동안 고교 때 문·이과를 나눠 왔기에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이들의 갈증이 있다”며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연결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에 대한 수요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과학책 저자들의 출신이나 연령대가 다양해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은 “과거 과학책은 은퇴한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가는 젊은 저자나 준전문가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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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후의 비밀노트]“식물의 고유한 특징 살리는데 세밀화만한 게 없어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씨(37)의 작업실 한쪽에는 영국, 프랑스, 일본에서 건너온 식물세밀화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 씨가 해당 국가에서 직접 구매했거나 경매에 올라왔던 희귀 서적들이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식물도감도 이 씨의 책장에 꽂혀 있다. 식물세밀화 책 사는 데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냐고 물었더니 이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책 써서 번 돈 전부 식물세밀화 책 사는 데 쓴 것 같아요.” 이 씨는 식물의 시간과 면면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내는 식물세밀화가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지만 대학생 때 우연히 들은 수목학 강의 시간에 식물 해부도를 그리다가 식물세밀화에 관심이 생겼다. 이에 식물화 그리는 사람을 수소문해 1년간 그림을 배운 후 2009년부터 3년간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를 그렸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진 것. 지금은 식물원 등 식물 관련 기관뿐 아니라 제약회사, 화장품 제조사와 같이 식물세밀화가 필요한 곳의 요청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다. 식물세밀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식물 산책’(글항아리), ‘식물의 책’(책읽는수요일) 등 저작 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10일 경기 남양주에 있는 이 씨의 작업실에서 식물세밀화의 매력을 물었다. ―식물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진은 어느 한 개체를 선택해서 촬영하기 때문에 해당 식물 종의 보편적인 특성을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식물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식물세밀화가 필요하다. 식물세밀화는 여러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을 오랜 기간 관찰해서 그 식물의 고유한 특징은 살리고 외부적 요인에 의한 변이는 축소해 그린다.” ―도구는 어떤 걸 쓰나. “펜촉이 얇은 게 중요하다. 나무로 된 펜대에 펜촉을 끼우고 잉크를 묻혀 그리는 편이다. 요즘엔 로트링사의 제도용 펜도 0.03mm까지 생산되고 있어 그림 그리기에 좋다. 모두 5000원 이하의 저렴한 도구들이다. 채색은 수채 물감이나 수채 색연필을 사용한다. 화가에 따라 유화 물감을 쓰거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식물을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식물이나 꽃, 가드닝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식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식물을 가장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식물을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식물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다.”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일 좋은 건 집이나 근처 화단에 있는 식물들을 대상으로 식물 관찰 일지를 쓰는 거다.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식물이 살아온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어떤 지점을 강조해야 할지 알게 된다. 식물도감을 휴대하면서 일상에서 발견한 식물들을 해당 식물이 소개된 페이지에 수집하는 것도 재밌는 방법이다.”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것만이 주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각 개체의 현재 생김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주변의 다양성에 눈을 뜨면서 세상을 보다 다층적으로 감각하게 됐다는 점이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남양주=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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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혐오 막으려면 서로의 문화 꾸준히 가르쳐야”

    1991년 3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슈퍼마켓. 오렌지주스를 사려고 들어온 15세 흑인 소녀가 주스 병을 집어 배낭 안에 넣었다. 소녀가 손에 쥔 지폐를 미처 보지 못한 50대 한국인 상점 여주인은 계산대로 다가오는 소녀를 도둑으로 오인해 멱살을 잡았다. 소녀는 이에 맞서 주인의 얼굴을 때려 쓰러뜨렸다. 소녀가 계산대에 주스 병을 올려둔 채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주인은 권총을 집어 들었다. 소녀는 뒤통수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흑인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당시는 백인 경찰 4명이 교통 단속 중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로드니 킹 사건’ 직후였다. 이 두 사건은 미국 내 흑인들이 한인 가게에 불을 지르고 아시아계 인종을 무차별 폭행한 ‘LA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 황금가지에서 최근 출간됐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스테프 차(35)는 장편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에서 유색인종 간 인종 범죄에 얽힌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11일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스테프 차는 “백인의 인종 혐오에 관한 책은 이미 아주 많다. 나는 유색인 커뮤니티 간의 갈등을 살피고 싶었다”고 밝혔다. 신간은 28년 전 벌어진 가상의 인종 범죄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LA 폭동의 시발점이 된 한인 상점에서의 상황과 같다. 인종 범죄 가해자의 딸인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 박과 피해자의 동생인 흑인 남성 숀 매슈스가 화자로 번갈아 등장하며 각자의 가족을 조명한다. 그레이스는 인종 혐오 반대 시위에 수차례 참여할 정도로 유색인종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자신의 언니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한다. 숀은 그 사건 이후 흑인으로서의 삶에 좌절한 가족들이 반복적으로 범죄의 길에 빠지는 것을 보고 영원히 누나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 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물려받아야 했던 소수 인종 가해자 가족과 분노를 물려받은 피해자 가족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그레이스와 숀을 화자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레이스 자매는 죄가 없지만 ‘한인 가해자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숀은 살인이라는 폭력의 피해를 직접 당하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고통에 시달린다. 저자는 “소수 인종이 수치심이나 분노, 죄책감을 경험하는 과정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인과 흑인 간 갈등의 역사가 이어진 LA에서 자란 저자는 유색인종 간 갈등에 관심을 깊이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인종 갈등과 혐오가 매우 다층적이며 어떤 인종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색인종 간의 혐오 범죄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 저마다의 문화와 편견이 서로 다르고 갈등이 매우 다양한 양태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인종 갈등 해소에 대한 그의 전망은 밝지 않다. 그는 “공개적인 인종차별 발언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인해 인종 혐오가 더 심각해졌다. 행정부가 바뀌어 이런 분위기가 잦아들 수도 있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종 혐오 범죄를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더디더라도 다양한 인종의 문화와 역사를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무고한 아시아인들이 거리에서 공격당하는 걸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인종 간 역학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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