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9

추천

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0~2024-04-19
칼럼34%
문화 일반33%
경제일반10%
교육7%
연극7%
인사일반3%
여행3%
학술3%
  • 가정폭력-산재-임대차별… ‘다크 그림책’ 출간 잇따라

    #1. 놀이터에서 나를 밀어 넘어뜨린 녀석. 알고 보니 녀석의 엄마는 일하느라 집에 거의 없고, 다쳐서 집에 있는 아빠는 술만 취하면 녀석을 때린다. 나는 엄마랑 산다. 이혼 후 엄마는 낮에도 계속 자고 가끔 울기도 한다. 집에 있고 싶지 않다.(‘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2. 우리 집에는 식탁, 욕조가 있다. 예전 집에서는 작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고, 욕조도 없었다. 난 “우리 집 진짜 좋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는 “거긴 임대 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라고 쏘아붙이고는 학원으로 간다.(‘우리 집은’) 가정 폭력, 임대주택 차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른바 ‘다크 그림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 소년사진신문사가 글을 쓴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다봄)는 지난달 나왔고, 조원희 작가의 ‘우리 집은’(이야기꽃)은 올해 2월 출간됐다. 산업재해, 부부 싸움 등 주제도 다양하다.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가 지은 ‘엄마, 달려요’(시금치)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가장의 남은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엄마도 아이도 마음이 아프지만 같이 밥을 먹고 바람을 쐬며 일상을 이어간다. ‘혼나기 싫어요!’(나무말미)에서는 부부 싸움을 한 엄마 아빠가 아이를 다그치고 혼낸다. 아이는 부모가 싸우는 소리에 울며 잠들었다. 알코올의존증인 아빠가 엄마와 싸우는 날이면 집 밖으로 나와 달을 보는 아이를 그린 ‘달 밝은 밤’(창비),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는 아빠와 사는 힘겨운 삶을 그린 ‘아빠의 술친구’(씨드북)도 있다. 김장성 이야기꽃 대표는 “어두운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은 판매가 잘 되지는 않지만 감추기보다는 밖으로 끄집어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은’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루면서도 집은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혼나기 싫어요!’의 글을 쓴 김세실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 뒤에 언제나 두 분의 감정을 살피며 느껴야 했던 불안감과 방향 없는 분노를 떠올리며 썼다”면서 “세상 모든 어른이 어린이를, 부모가 자녀를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출판계는 그림책의 주제가 확장되면서 ‘다크 그림책’의 종류는 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자녀에게 권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우울한 현실을 미리 알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전문가들은 어두운 얘기라고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문제 해결 방법이 제시된 책을 골라 부모가 내용을 숙지한 뒤 아이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김혜진 그림책보다연구소장은 “상처 받은 아이를 돕고 지지해 주는 인물이 등장하거나 문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 책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도 찬찬히 내용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돕는 상담사가 나오는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산재 피해자 가족이 마음을 털어놓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내용을 맨 뒤에 담은 ‘엄마, 달려요’가 해결책을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예술 포교의 새로운 장 마련

    ‘때가 되면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게 되고 다가올 것은 다가오게 된다.’ 부산 대운사 주지이자 문화예술사단법인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珠昔) 스님(사진)은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소회를 밝히며 자신의 저서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의 일부를 인용했다. “밤새 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내렸습니다. 그리곤 화창…. 이렇게 화창해질 것을 밤새 그리 퍼부었을까 하다가 책 속에 써 둔 그 부분이 생각나더군요.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붓다께서 2565년 전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아픔에도 머물지 말고 기쁨에도 딱! 적당히 머물다 다음 감정으로 건너가야 되겠지요.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많이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주석 스님은 이 시대의 포교 키워드를 문화로 삼고 2013년 12월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인근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를 열었다. 스님은 이곳을 통해 예술인들에게는 문화예술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을 뜻하는 쿠무다는 종교와 예술, 문화, 먹을거리가 어우러지는 소통의 공간이다. 송정의 명소로 빠르게 자리 잡아 정기 문화공연과 북 콘서트,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 문화 강좌 등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2019년에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기획해 병원, 요양원, 경찰서 등 나눔과 사랑이 필요한 문화 사각지대를 직접 찾아가 공연을 펼치며 힐링을 선사했다. 쿠무다는 더 넓은 공간에서 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올 8월 개관 예정인 ‘쿠무다 명상빌리지’는 송정 해변가에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는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건립된다. △지하 1층에 문화예술 공연장(250석 규모) △1층 로비 및 주차시설 △2층 카페 쿠무다 아트갤러리 △3, 4층 퓨전 레스토랑과 요식 교육관 △5층 문화예술 교류 공간과 인터넷 방송국 △6∼8층 컬처스테이 호스텔 △옥상 명상공간과 휴게정원이 각각 들어선다. 쿠무다는 기존 문화예술 프로그램뿐 아니라 해외 문화예술인 초청 강연도 할 예정이다. 찾아가는 힐링음악회, 문화예술 장학생과 프로그램 지원, 갤러리 대관 사업도 진행한다. 쿠무다는 명상빌리지를 일반인들이 문화예술의 에너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문화 힐링 브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 문화복지를 키우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호민, 이번엔 ‘아버지와 함께’

    “어린 호민이가 누워 있어 그대로 (가장자리를) 연필로 본 뜬 다음 모양에 맞춰 쇼핑백을 붙여 ‘쇼핑맨’을 만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도운 거죠.”(주재환 작가) “어릴 때 아버지 작품은 재미있다고만 여겼어요. 만화가가 돼 보니 사회적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참 잘 풀어내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주호민 작가) ‘신과 함께’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40)과 아버지인 민중미술가 주재환(81)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7일 열린 협업 전시 ‘호민과 재환’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父子)가 작업을 함께한 건 처음이다. 주호민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신기하면서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중간에 도망가려고 했는데 학예사에게 잡혀 열심히 하게 됐다”며 웃었다. 18일 시작하는 전시는 회화, 설치작품, 영상, 웹툰 등 130여 점으로 구성된다.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7년)를 만화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년)를 패러디했다. ‘계단에서…’는 가로 220cm, 세로 740cm로 사람들은 오줌이 내려오는 계단에서 서로 끌어주고 때로 프로펠러도 타며 위로 올라가려 한다. 주호민은 “오줌 줄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억압적인 힘을 의미한다. 제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이런 구조를 깨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빈 음료수병, 캔을 빨래건조대에 매단 주재환의 설치작품 ‘물 vs 물의 사생아들’은 환경 오염으로 물을 포함해 자연 그대로가 아닌 병에 담긴 것만 마실 수 있는 현실을 비틀었다. 주재환은 “호민이가 음료수를 사왔고 마신 것도 많다”고 했다. 호랑이 울음을 반복 재생하는 ‘호랑이 소리’는 주재환이 ‘창경원’ 야경꾼으로 일하던 당시 밤에 들었던 인상적인 소리를 표현했다. 웹툰 ‘신과 함께’ ‘무한동력’의 주요 장면과 스케치, 콘티를 비롯해 주재환의 회화 ‘짜장면 배달’, 콜라주 ‘아침 햇살’ 등도 배치했다. 저울 위에 회화작품을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미술작품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해 비판하고 죽어서야 봉안당의 좋은 위치인 소위 ‘로열층’에 자리할 수 있는 현실 등 사회의 부조리와 그늘을 예리하게 짚으면서도 발랄하게 요리하는 부자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작품 가운데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상형 월드컵’식 대화를 담은 영상은 특히 웃음을 자아낸다. ‘훔친 수건’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인 수건으로 만든 작품에 대해 주호민이 “수건은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으면 주재환은 “네 엄마가 구해 왔어. 수건이 자주 없어지니까 저렇게 써 놓은 목욕탕이 있대”라고 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 부자의 작품들을 둘러보면 눈은 즐겁고 기분은 유쾌해진다. 생각할 거리도 남는다. 전시장 입구에는 노란색 동그란 얼굴의 주호민과 모자를 쓴 주재환의 얼굴 그림이 각각 걸려 있다. “예전에 그렸던 거예요. 다시 보니 호민이와 닮아 호민이 초상으로 정했죠.”(주재환 작가) “아, 그렇게 해야 재미있게 나오는데…. 마음먹고 그렸더니 재미없어졌어요.”(주호민 작가) 허탈해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여유롭게 껄껄 웃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도예가, 조각가, 동물애호가, 평화주의자… 피카소를 ‘입체적’으로 만난다

    도예가, 평화주의자, 동물 애호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여러 면모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5000여 점 가운데 1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피카소 단일 작품 전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특별전 작품들의 추정가는 모두 2조 원가량 된다. 피카소는 버려진 재료로 작업하기를 즐겼다. 나무판, 마분지, 천, 끈을 붙이고 색칠한 부조 ‘기타와 배스병’은 현대 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보험가액이 800억 원으로, 이번 전시에서 보험가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꽃병, 물항아리, 접시 등 도예 작품도 눈길을 끈다. 피카소는 수천 점의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국내에서 볼 기회는 드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피카소의 도자기 110여 점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포도송이와 가위로 장식한 사각 접시’는 멀리서 보면 포도알이 볼록 튀어나온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손가락으로 오목하게 누른 뒤 색을 칠해 입체감을 자아낸 작품이다. 피카소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자기가 지닌 대중적 예술성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제작된 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정권의 사주를 받은 나치의 양민 학살을 비판한 ‘게르니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3대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다만 ‘한국…’에서 군인들의 국적을 나타낸 표식은 없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동물을 좋아해 개, 염소 등을 많이 키운 피카소는 도자기, 조각, 유화에도 비둘기, 고양이, 올빼미, 염소, 개를 자주 담았다. 임신한 염소 조각과 비둘기 도자기에서는 반전 그림과 함께 평화에 대한 피카소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 하면 떠오르는 입체파 유화들도 있다. 28세 연하의 연인 마리 테레즈를 그린 ‘마리 테레즈의 초상’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여인’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나란히 걸려 있다. 셋 다 1937년에 그렸지만 ‘마리…’는 화사한 색상으로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반면 ‘팔짱을…’은 우울한 분위기에 초록색과 파란색 줄무늬를 사용해 감옥에 갇힌 듯하다. ‘창문…’은 슬픈 얼굴의 백발노인으로 그려 작품별로 마리 테레즈에 대한 피카소의 감정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피카소가 사랑한 여인 가운데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도 있다. 러시아 발레리나인 첫 부인 올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을 밝고 당당하게 그린 ‘피에로 복장의 폴’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1일 개막한 뒤 하루 3000명 넘는 관람객이 몰려 전시장은 매우 북적인다. 평일에는 전시장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춰 가거나, 오후 5시 이후에 방문하면 비교적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오후 7시 폐관). 주말, 공휴일에는 개관 전 길게 줄 선 이가 많아 오후 5시 넘어 가는 게 좋다. 8월 29일까지. 1만1000∼2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맞으면서 배운다” 부모의 변명일 뿐

    “독재자, 폭군, 고문 가해자…. 그들 대부분의 뒤에 회초리나 채찍을 휘두르는 양육자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을 쓴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평화를 위해 먼저 가정에서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한다. 1978년 그가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발표한 연설문 ‘폭력에 반대합니다’ 전문을 담았다. 그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다며 일화를 소개한다. 엄마가 말썽 피운 아들에게 회초리를 구해 오라고 하자 아이는 돌아와 울며 말한다. “회초리는 못 찾았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저한테 던질 수 있는 돌멩이를 구해 왔어요.” 엄마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어 하니까 돌멩이도 괜찮을 거라 여긴 것.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돌멩이를 부엌 선반에 올려 둔다. 이는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린드그렌은 부엌 선반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올려 두자고 제안한다. 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아동 체벌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이 연설은 가정에서 어린이들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는 지금 한국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색에 성별이 있나요? 취향을 존중해주세요

    파란색 분홍색, 짧은 머리 긴 머리, 개구쟁이 말괄량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상징하는 색깔, 머리 모양, 표현이 나뉘어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짚는다. 축구공을 날렵하게 몰고 가는 공격수,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는 무용수, 자유롭게 파도 사이를 누비는 서퍼. 언뜻 봐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꼭 알아야 하는 걸까?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은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완화됐다. 하지만 성별에 따른 구분 혹은 제약은 여전하다. 저자는 이를 알록달록한 색깔의 그림과 함께 짧은 문장으로 콕 꼬집는다. 할머니의 말씀도 덧붙인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과 취향이 있는 거란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얼굴, 성격, 취향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남과 다른 건 이상한 게 아니기에, 자신감을 갖고 자기의 길을 씩씩하게 가라고 힘껏 응원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딱지치고 제기차고… 골목길서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아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 어린이박물관은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골목놀이를 주제로 ‘놀다 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행사를 연다.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이 예전에 즐겁게 놀던 골목길을 재현한 ‘추억의 거리’가 있다. 이날 이곳에서 딱지치기, 제기차기, 팽이치기를 할 수 있다. 놀이를 하며 골목대장도 뽑는다. 과거 어린이들이 문구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던 오락기를 마련해 엄마 아빠가 어릴 적 놀던 대로 즐길 수 있다. 사방치기, 고무줄놀이도 길 위에서 자유롭게 하면 된다. 종이뽑기판으로 뽑기를 하고 종이딱지, 종이인형 등을 선물하는 ‘추억의 뽑기방’도 열린다. ‘놀이마당’에서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어린이 뮤지컬 인형극 ‘효성 깊은 호랑이’를 2회(오전 11시 반, 오후 3시 반) 공연한다. 연자방아, 물레방아, 장승, 돌탑 등이 있는 박물관 야외전시장을 보고 모바일로 퀴즈를 푸는 ‘야외에서 만나는 박물관 풍경’도 진행한다. 전체 프로그램은 오전 10시, 오후 2시로 두 차례 나눠 진행한다. 이들 놀이는 현장에서 접수한다. 모든 체험은 무료다. 한편 박물관 전시를 관람한 후 작성한 그림일기와 답사기를 다음 달 말까지 받아 책으로 발간하고 선물을 주는 ‘박물관 시간여행! 나도 탐험가’도 진행한다. 보육원 등 단체와 기관을 대상으로 놀이 사진을 모아 액자로 만들어주고 상품을 증정하는 ‘신나는 놀이, 우리들의 추억 이야기’도 마련했다. 사진과 사연은 이달 말까지 접수한다. 자세한 내용은 박물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손효림]굴욕이 무릎을 꺾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저기…, 무슨 역할을 맡은 누구시죠?” 1998년 드라마 ‘대왕의 길’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이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앳돼 보이는 기자가 낯설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이 완전히 잊혀졌구나!’ 그는 탄식했다. 주연 배우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위치가 이렇구나.’ 처절하게 깨달았다. 꼭 10년 전 미스코리아 진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곧장 영화 주연, 유명 예능 MC 자리를 꿰찼지만 활동이 줄며 잊혀진 것.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도 치솟았다. 다른 배우가 거절한 역도, 단 두 장면 나오는 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드라마, 영화는 물론 광고계에서 숱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배우 김성령(54)의 이야기다. 사람들 대부분은 살면서 굴욕을 겪는다. 윤여정(74)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부담스럽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견디고, 잠깐의 촬영을 위해 수 시간 대기해야 하는 단역도 꿋꿋이 맡았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지금 이 순간은 그냥 온 게 아니란 걸 모두가 안다. 톱의 자리에 오른 다른 이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지 않다. 뮤지컬계에서 ‘핫지상’으로 불리는 배우 한지상(39)은 데뷔 초 사전 통보도 없이 두 달 치 스케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을 겪었다. 2005년 뮤지컬 ‘그리스’에서 조정석의 커버를 맡던 때였다. 커버는 해당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할 경우 대신하는 역할이다. 어느 날 새벽 인터넷으로 스케줄표를 보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삭제된 걸 확인했다. 연습 때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숱하게 혼나는 신인이었지만 단 한마디 공지도 없이 스케줄에서 빼버리자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제 이름이 없어졌어요.” 하지만 그는 매일 공연장에 가 꼼꼼하게 모니터링하고 없어진 역할이지만 커버 연습도 계속했다. 그는 “이름이 없어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의 기억이 꾸준히 노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승우 소설가(62)도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은 물론 온몸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헌책방에서 자신이 인사말을 쓰고 서명한 첫 책을 발견한 것. 그는 “정말 소중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 몇 분에게만 감사의 말을 써서 드렸다. 그렇게 드린 책이 진짜 몇 권 안 되는데 그걸 헌책방에서 본 순간 참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분은 그렇게 받는 책이 너무 많았을 거라고 이해하게 됐지만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갔고 국내는 물론 해외, 특히 프랑스에서 큰 사랑을 받는 작가로 우뚝 섰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대로 주저앉을지, 털고 일어나 나아갈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그 결과가 모두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다만 이를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 역시 자신에게 달렸음을, 많은 이들이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준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 2021-05-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일부분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창문 너머 집 안에서 늑대가 입을 벌리고 있다. 빨간 망토 소녀와 할머니를 삼킨 걸까? 알고 보니 할머니, 소녀와 함께 차를 마시고 파이를 먹고 있다. 늑대는 할머니가 만든 파이를 아주 좋아한다. 귀여운 아기 염소 일곱 마리가 엄마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앗, 그게 아니다. 식탁은 넘어져 있고 서랍장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아기 염소들이 엄청나게 장난치며 노는 통에 집 안은 엉망이다. 창문이 뚫린 앞 페이지를 통해 바로 뒤 페이지의 일부 모습이 보인다. 창문을 통해 본 상황은 전체를 다 확인하고 나면 완전히 다른 상황임을 알게 된다. 일부분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흥미로운 구성을 통해 생생하고 실감 나게 보여준다. 불길이 가득한 집, 해골바가지가 있어 무섭게 느껴지는 집 등 여러 상황이 이어져 진짜 모습은 어떤 건지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다. 추리하며 놀이하듯 즐겨도 좋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5-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숲 내음 진한 창덕궁, 옥류천 물소리에 ‘심쿵’

    창덕궁에서 달빛을 받으며 거닐고, 경복궁 흥복전에서 영화도 보고…. 궁궐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제7회 궁중문화축전이 5월 1일부터 9일까지 서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등 5대 궁과 종묘, 사직단에서 진행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궁중문화축전은 ‘궁, 마음을 보듬다’를 주제로 5월과 10월 열린다. 궁에서 휴식하는 프로그램 ‘심쿵쉼쿵’, 정조가 독서하던 창경궁 집복헌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하는 ‘나를 찾는 시간, 궁에 다녀오겠습니다’, 밤에 궁궐을 즐기는 ‘창덕궁 달빛기행, 마음을 보듬다’ 등이 진행된다. 궁궐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담은 ‘궁궐 TV’를 비롯한 온라인 프로그램은 궁중문화축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축전 기간뿐 아니라 평소에도 궁궐은 가까이할수록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궁궐, 왕릉 관련 업무를 40년 가까이 한 나명하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60)이 궁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했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 주합루 일대는 5, 6월 연두색에서 진초록으로 변하는 숲과 어우러져 참 아름답습니다. 창덕궁 깊숙이 자리한 옥류천 가는 길은 꽃과 나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정자가 어우러진 비경을 자랑합니다. 경복궁 경회루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창경궁은 덕수궁과 함께 월요일을 빼고 상시 야간 개방을 한다. 나 본부장은 “창경궁 후원의 연못인 춘당지를 바라보면 도시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옥천교 주변에서는 봄에 자두 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이후에는 밤에 다채로운 조명과 음악을 즐기는 ‘빛으로 그리는 창경궁의 밤’(가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경복궁 별빛야행은 5월 말까지, 창덕궁 달빛기행은 6월 20일까지 예매를 통해 운영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여름에는 덕수궁 정관헌 소나무 숲에서 잠시 쉬는 것도 좋다. 덕수궁 대한문 숲길은 가을에 단풍이 일품이다. “덕수궁 석조전을 지나 후문으로 나와 ‘고종의 길’을 따라 옛 러시아공사관 터를 거쳐 헤이그 특사 파견 등 대한제국의 외교 현장인 중명전을 방문한 뒤 정동길로 나오는 것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산책 코스입니다. 겨울에 눈 내린 종묘의 고요한 정취는 꼭 한번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조선 왕릉도 궁궐 못지않게 경관이 빼어난 명소다. 올해는 경기 화성시 융건릉에서 야간탐방과 군사훈련을 결합한 ‘야조’를,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에서 ‘오페라극’을 선보인다. ‘조선왕릉 길 여행 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나 본부장은 “궁궐과 왕릉은 역사적인 이야기가 가득할 뿐 아니라 경치가 아름다워 치유와 휴식의 공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며 “많은 분들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궁궐과 왕릉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文 “이건희 컬렉션 특별관 마련하라”… 지역 기증작 전시도 내달 시작

    문재인 대통령이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관련해 “국민들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을 위한 전용 미술관 건립이 추진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만16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은 1400여 점을 삼성으로부터 각각 기증받았지만 이들을 전시할 별도 공간이 없다. 현재 보유한 작품들만으로도 포화 상태여서 기존 시설에 기증품만을 위한 상설관을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28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현재 전시 공간이 매우 부족해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수장고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밝힌 바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은 미술사적 흐름에 맞춰 수집돼 왔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모아 볼 수 있어야 의미 있는 관람이 이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문체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관련 기관들과 다각도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단 아직 구체적인 시기나 용지가 거론되는 단계는 아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미술계와 박물관계의 의견을 들어보고 구체안을 만들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들은 다음 달부터 전국 곳곳에서 명작의 향연을 펼친다. 많은 명작들이 수도권 국립기관뿐 아니라 지방 미술관에도 대거 기증됨에 따라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소장품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도 활발하게 추진돼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문화 향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는 4개 지방 미술관은 관련 특별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원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은 다음 달 6일부터 10월 17일까지 여는 ‘박수근 작고 56주기 추모 전시’에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세대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의 대표작 18점을 선보인다. 올 6월과 8월에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각각 여는 국립중앙박물관 및 국립현대미술관보다 관련 작품을 먼저 관람할 수 있는 것. 기증작에는 ‘아기 업은 소녀’ ‘농악’ ‘한일’ ‘마을풍경’ 등 박수근의 대표작이 포함됐다. 이번 기증으로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유화 17점과 드로잉 112점을 소장하게 됐다. 전남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은 전남 출신 거장들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다. 김환기(1913∼1974)의 ‘무제’, 천경자(1924∼2015)의 ‘꽃과 나비’ ‘만선’, 오지호의 ‘풍경’ 등이 포함됐다. 이 미술관은 9월 1일부터 약 두 달간 기증작 전시회를 개최하는 한편 이건희 컬렉션을 모은 별도 전시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1916∼1956)의 대표작 12점이 기증됐다. 미술관은 9월부터 이 작품들의 전시를 시작한다. 이중섭이 1951년 서귀포에 머물 당시 남긴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비롯해 ‘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아이들과 끈’ 등 유화 6점과 수채화 1점이 포함됐다. 이중섭은 1951년 1∼12월 6·25전쟁을 피해 서귀포로 피란을 떠났다. 그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연인 이남덕 여사에게 보낸 1940년대 엽서화 3점과 1950년대 제작한 은지화 2점도 들어있다. 이번 기증으로 이중섭미술관은 그림 59점과 유품 등 총 96점의 이중섭 관련 전시품을 소장하게 됐다. 이인성(1912∼1950)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이쾌대(1913∼1965)의 ‘항구’ 등 총 21점을 기증받은 대구미술관은 12월 기증작들을 선보이기로 했다. 해당 기증품 작가 8명 중 4명(이인성 변종하 서동진 서진달)이 대구 출신이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이번 기증으로 지역 대표 작가들의 대표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전채은 chan2@donga.com·손효림 기자}

    • 2021-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건희 26兆 유산의 60% 내놓는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26조 원에 달하는 유산 중 60%를 사회에 기부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한다. 상속세 12조 원을 포함해 의료 기부 1조 원,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총 15조∼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8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삼성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며 기부 계획을 밝혔다. 1조 원 기부는 한국의 의료 발전에 쓰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에 7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3000억 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국보 14건과 보물 46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이 포함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실제 경매에 들어가면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컬렉션”이라고 평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예술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예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역대급 수준이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대로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낼 계획이다. 상속세 역시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분을 지키면서 상속세를 내느라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조 원대의 사회 환원에 나선 것은 이 회장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김현수 kimhs@donga.com·손효림 기자}

    • 2021-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

    이건희 26兆 유산의 60% 내놓는다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26조 원에 달하는 유산 중 60%를 사회에 기부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한다. 상속세 12조 원을 포함해 의료 기부 1조 원,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총 15조∼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8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삼성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며 기부 계획을 밝혔다. 1조 원 기부는 한국의 의료 발전에 쓰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에 7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3000억 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국보 14건과 보물 46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이 포함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실제 경매에 들어가면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컬렉션”이라고 평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예술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예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역대급 수준이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대로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낼 계획이다. 상속세 역시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분을 지키면서 상속세를 내느라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조 원대의 사회 환원에 나선 것은 이 회장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미술품 2만3000점 대규모 기증국보-보물 60건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립현대미술관, 모네 작품 첫 소장지역미술관 5곳-서울대에도 기증, 감정액 2조 추정… 정부도 “역대급”삼성이 기증하는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삼성 측과 기증 논의를 시작한 올 초까지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컬렉션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약 2만1600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번 기증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최대 기증은 고 동원 이홍근 선생이 1980, 81년에 내놓은 4941점이었다. 문화재계에선 박물관 기증품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손에 꼽는 이가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이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며 “기증품들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cm, 세로 79.2cm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추성부도는 단원이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원 그림의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 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 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의 전시실을 두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별도의 기증관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며 “기존의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내년 10월경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이건희 컬렉션 명품전(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의 근현대 미술품 1400여 점이 기증된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는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시기에 그려 당당한 기세가 돋보인다. 김환기가 한국 전통미에 주목하며 그린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소박한 정취를 풍기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도 포함됐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 중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년)도 눈길을 끈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모네가 그린 대작(가로 2m 세로 1m)으로 미술계에선 400억 원대의 가치를 지녔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와 모네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미술관은 올해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관, 내년 청주관에서 전시를 연다. 이 밖에 삼성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수집 어렵던 근대미술품 대거 보강… 엄청난 선물”전문가 “희소가치 높은 작품들로 박물관-미술관 도약 계기 기대”‘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됐다. 박물관은 보유 문화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됐고, 미술관은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하기 어려웠던 근대미술 작품을 대거 보강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발굴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사 시대 대부분을 아우르는 회화, 공예 등 문화재를 고루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작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상설전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세계 미술계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항상 볼 수 있어야 예술적 안목을 키워 한국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다”며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기증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삼성이 ‘한국의 메디치가’에 비견될 정도의 역할을 해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이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단숨에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기증이 이뤄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일찌감치 기증을 염두에 두고 걸출한 미술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과거 일본 오쿠라호텔의 뒷마당에 있던 조선 왕조 왕세자의 공부방인 자선당의 기단을 구입해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7년 펴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서 국립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손효림 기자 / 김상운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

    • 2021-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책장을 넘기는 순간, 클래식 무대가 눈앞에

    영화 ‘해리포터’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 영화 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만든 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이 들어간다는 것. 알고 보면 오케스트라 음악은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바이올린, 클라리넷, 트럼펫의 구조와 특징부터 오페라와 발레처럼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장르까지 오케스트라에 대한 정보를 쉽게 풀어 정리했다. 오케스트라에서 부드럽고 은은한 소리를 내는 현악기는 앞쪽에, 크고 힘찬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와 타악기는 뒤쪽에 자리한다. 연주 소리가 조화롭게 전달되도록 한 것. 연주 전 모든 악기는 안정적으로 음을 내는 오보에 소리에 맞춰 조율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비발디와 중세 독일의 천재 여성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겐, 미국 여성 최초로 교향곡을 작곡한 에이미 비치도 소개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오케스트라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노 마스크’ 신고당한 블랙핑크 멤버 제니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 방역 수칙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사실이 19일 알려졌다. 제니는 14일 경기 파주시의 한 수목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고, 17일 신고가 접수되자 게시물을 내렸다. 제니와 스태프로 추정되는 2명은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7개를 모아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며 제니의 행동을 지적하는 댓글을 올렸다. 다만, 일부 사진에는 마스크를 쓴 모습도 있었다. 수목원 측은 제니가 유튜브 촬영 업무를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시민은 “유튜브 촬영은 사적 모임의 예외가 아니다”며 제니를 신고했다. 파주시는 관련 민원 내용을 알아본 뒤 절차대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가족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먼저 돌보세요

    “오늘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엄마의 폭탄선언에 깜짝 놀란 아빠와 아이. 엄마는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느라 진을 빼고, 회사 일은 만만찮은 데다 혼나는 것도 다반사. 마음속 사랑이 사라진 것 같다. 한 조각만 빼고. 그래서 결심한다. 남은 사랑은 나에게 쓰자고.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떡볶이와 순대도 잔뜩 먹고 노래방에서 가슴이 터져라 노래 부른다. 몸과 마음이 텅 비었을 땐 스스로를 먼저 챙겨야 한다고 토닥인다. 아빠와 아이는 집안일을 나눠 하며 엄마를 말없이 응원한다. 아침에 힘차게 일어나 다시 하트를 뿅뿅 날리는 엄마. 그래, 사랑을 나누려면 나도 사랑해야 해. 지친 나날과 충전 후 활기 찬 모습, 그에 따른 변화무쌍한 표정과 행동을 동글동글한 그림으로 귀엽게 담아냈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그림책이다. 아이에게 읽어주다 먼저 울컥하는 어른이 적지 않을 것 같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깊은 바다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산에도… 물결치듯 생명이 이어진다

    깊은 바다에는 층위가 다른 여러 결의 물길이 있다. 묵직하게 고요히 흐르는가 하면, 좀 더 세차게 속도를 내기도 한다. 시간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산은 많은 생명을 은근하게 품는다. 화가 최아영 씨(73)가 꾸준히 화폭에 담아낸 바다와 산의 모습이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일조원갤러리에서 다음 달 6일까지 열리는 ‘최아영 초대전’에서 22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에서 14일 만난 최 작가는 “바다와 산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색깔과 무늬, 질감은 편안한 데다 볼 때마다 새로워 작업을 하는 그 모든 순간에 큰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바다의 깊은 단면을 잘라내 보여준다.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본 경험이 강렬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물결의 층을 조금씩 변화하는 색채와 다른 두께의 미세한 무늬로 정밀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겨울 산과 바다를 그린 ‘눈꽃 축제’,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초봄’은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차분하고 평화롭게 만든다. 멕시코의 오팔 광산을 담은 ‘추억의 산’은 산 아래 오팔이 바다처럼 일렁이고 있다고 상상해 그린 그림. 진청색의 오팔과 황금빛 산을 오묘한 빛깔로 표현했다. 바다 표면의 반짝임, 일렁이는 물결 등을 표현하기 위해 진주구슬, 유리 조각, 색깔 있는 철사도 활용한다. 짙푸른 파란색이 특히 눈길을 끄는 ‘찬란한 수평선’에는 이런 작업 방식이 도드라진다. 웅장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은 또렷한 경계 없이 여러 색과 모양이 물결치듯 이어진다. 늦가을의 갈대, 산속의 나무는 명확한 형체가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조용하게 자리를 지킨다. 반추상화 같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노르웨이 피오르가 지닌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바다와 산에 갈 때면 간단히 스케치를 합니다. 같은 풍경을 여러 번 그리기도 하는데 매번 스스로 놀랄 정도로 다르게 표현되더라고요. 작업을 할 때의 감정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는 자연이 선사하는 한없는 자유로움과 변화, 도도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에 매료된다고 했다. “자연은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무한한 위안을 건넵니다. 이를 화폭에 담아 따뜻함과 충만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광화문에서/손효림]기억을 잃어가는 존재들 마음 열면 더 이해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만나게 해줘.” 흐느껴 울면서 간절히 엄마를 찾는 이는 아이가 아니다. 백발의 노인이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앤서니는 요양병원 간호사의 어깨에 기대 하염없이 울며 말한다. 84세의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분장이 필요 없고 이름마저 자신과 같은 앤서니 그 자체가 된 듯하다. ‘더 파더’는 앤서니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알츠하이머 환자가 겪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처음 보는 여성이 딸 앤이라고 말하고, 거실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낯선 남자가 있다. 앤은 혼자 사는데 그 남자는 앤의 남편이란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병원 복도가 나타나고 잠깐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몇 주가 지났다고 한다. 사람, 공간, 날짜가 수시로 휙휙 바뀐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많지만 가족, 간병인의 시각에서 그렸기에 안타까운 감정이 주를 이룬다. ‘더 파더’를 보며 환자의 입장이 비로소 이해됐다. 이런 거구나. 이상하고 답답하다가 점점 두려워진다. 겁을 먹은 채 막막함에 울음을 터뜨리는 앤서니를 보니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언제 왔니?”라고 스무 번 이상 묻는다고 한다. 그 역시 스무 번 넘게 답한다. 아버지는 그 상황이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리라.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그가 살아온 역사는 엄연히 존재한다. 박희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암과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생애 마지막 1년 동안 간호하며 어머니가 한 말을 적고, 그 의미를 헤아려 정리한 책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환자의 말 하나하나에 그가 겪은 세월이 묻어남을 깨닫게 한다. 어머니는 병원에 온 아들에게 “피곤한데 베개 내 잠시 자고 가라”고 한다. 서울 수유리 집에 온 그에게 하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수유리 집에 있다고 혼돈하면서도 아들을 챙겼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요양원에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를 쓴 전계숙 요양보호사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대화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기에 얘기가 엉뚱하게 흘러도 이어가라고 조언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환자가 ‘부처님 오신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에 드디어 그날이 되자 알려드렸다고 한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부처님이 어디 갔깐?” 이런 유머는 어디에서도 못 찾을 거라 단언한다. 그는 환자가 인식하는 상황이 달라져도 이를 인정하고 말하다 보면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령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가족, 지인,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이가 기억을 잃는 모습,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고통스럽다. 다만 먼저 경험한 이들이 책으로 전하는 이야기,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은 이 병에 대해 좀 더 알게 만든다. 상황이 닥쳤을 때 견딜 수 있는 힘은 그렇게 조금씩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 2021-04-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어린이 책]친절을 베풀면 행운이 따라와요

    여성이 강아지를 찾는 포스터를 벽에 붙인다. 그러다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청년을 본다. 배가 고픈 걸까. 여성은 그에게 사과를 건넨다. 이를 본 한 남성은 찌그러진 캔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린다.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아이는 풍선을 잃고 우는 소녀에게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풍선을 사서 전한다. 작은 친절이 호수의 파장처럼 번져가는 광경을 글 없이 그림으로만 잔잔하게 묘사했다.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본 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른 이를 배려한다. 사과, 풍선, 우산 등 마음을 전하는 물건은 빨간색으로 돋보이게 그렸다. 친절의 행렬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놀랍게도 여성은 강아지를 찾게 된다! 기적 같은 행운은 사실 여성 자신에게서 시작됐다. 앞 면지에 그려진 깜깜한 마을은 뒤 면지에서 수많은 창문에 불이 켜져 환해진다. 마음과 세상을 마법처럼 밝히는 친절의 힘을 풍부하고 다정하게 담아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흙 파먹는 재미를 갸가 알간디?

    간호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전북 무주군의 보건진료소로 내려가 30년 넘게 근무하는 이가 있다. 박도순 보건진료소장이다. 그가 산골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지낸 이야기와 함께 일상을 직접 촬영한 사진을 엮은 책 ‘거기 사람 있어요’(윤진·1만8000원)를 출간했다. 농사일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친 할머니에게 도시에 사는 아들은 “한 번만 더 밭에 나가시면 코끼리차(포클레인) 끌고 와서 파 버린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소장님이 어머니에게 밭에 가시지 말라고 말씀 좀 잘해주세요’라고 읍소하듯. 하지만 아들이 가고 난 뒤 할머니는 다시 밭에 나간다. “갸가 흙 파먹는 재미를 알간디?”라고 씩 웃으며.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도시에 사는 딸과 팩스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어느 날 왕진을 간 박 소장에게 할아버지는 “알 낳는 거시기(팩스)가 고장 났다”고 하소연한다. 살펴보니 팩스 종이가 떨어진 것. 박 소장이 종이를 가져다 넣으니 밀린 편지가 주르륵 나오고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모내기가 끝난 정갈한 논, 평생 농사짓느라 손마디가 굵어지고 누렇게 변한 손톱, 길쌈하는 할머니들…. 산골의 하루하루와 이를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이 운치 있게, 때론 질박하게 담긴 사진들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귀가 어두운 노인들은 보건진료소에 전화한 뒤 잘 들리지 않아 계속 “거기 사람 있어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들과 부대낀 시간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21-04-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