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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에 논리 입힌 美참모들, ‘트럼프 동맹관’ 현실화

궤변에 논리 입힌 美참모들, ‘트럼프 동맹관’ 현실화

Posted November. 25, 2019 08:13   

Updated November. 25, 20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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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20일(현지 시간) 상원 외교위 청문회장. 시작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조사 관련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국무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의회와 충돌하고, 관계자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소환된 상황에서 국무부 2인자 후보의 대응 방향을 따지려는 위원들의 질의는 매서웠다.

 비건 지명자의 답변은 인상적이었다. 3시간 동안 탄핵은 물론이고 주요 외교안보 정책을 두루 다룬 청문회 내내 그는 송곳 질문들을 능숙하게 받아냈다. “판단을 피해가지 않겠다”며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고, 민감한 내용에도 좀처럼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 여야 위원들에게서 모두 “답변에 동의한다”, “통찰력 있는 설명이었다”는 추임새가 나왔다.

 그런 그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관련된 질문에 ‘무임승차’를 언급한 것은 의외였다. 한국이 무임승차자가 아니라는 것은 워싱턴 싱크탱크와 의회 인사들도 줄곧 지적해온 내용 아니었던가. 더구나 비건 지명자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수없이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왔다. 한국의 군사 분야 기여도를 모를 리 없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한국 외교관들 사이에서 “비건 당신마저…”라는 탄식이 나왔다.

 비건 지명자는 다음 날 워싱턴을 방문한 여야 3당 원내대표들에게 동맹관계의 ‘재설정(renewal)’ 필요성을 역설했다. 원기 회복, 재생(rejuvenate)이라는 단어도 썼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동맹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밑도 끝도 없이 5배로 증액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황당하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똑똑하고 유능한 참모들에 의해 논리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건 같은 고위 당국자들이 지원할 것이다. 참모들은 결국 대장의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다. 설사 이들이 반대 입장으로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해도 최종 결정권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가 지시하면 대북제재가 철회되고, 국방부 대변인이 “예정대로 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공언한 한미 연합 공중훈련도 불과 보름 뒤 중단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올해 초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끈끈한 동맹인데 한미 균열을 이야기하느냐”고 손사래를 치던 미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미국의 정책과 꼭 일치하는 건 아니니 걱정 말라”던 귀띔도 이제는 없다. 실무 의견이나 정책 방향이 한순간에 뒤집어지는 것을 그도 여러 번 경험한 탓일 거다.

 동맹을 가치가 아닌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식 동맹관’은 이제 트위터와 유세 현장의 수사(修辭)를 넘어 실제 정책으로 넘어오고 있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에서 봤듯이 집권 초부터 주한미군 감축을 염두에 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외교안보뿐 아니라 경제, 정보 공유 등 다른 분야에서도 지금껏 경험한 적이 없던 충돌 가능성이 있다. 현재 워싱턴에선 동맹 간 공동의 가치와 신의 얘기는 마냥 순진하게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