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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걱정한다

Posted July. 04, 2019 07:45   

Updated July. 04, 20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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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마다 광화문 네거리는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언론사의 특성상 주말에도 근무할 경우가 많은데, 마이크에 대고 악을 쓰는 목소리와 스피커로 쾅쾅 울리는 노랫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시위를 하고 자기주장을 펴는 것이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위자는 몇 명 안 되는데 스피커 출력을 높여 유리창까지 흔들거나 ‘○○○ 척살하자’같이 증오의 언어를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주말의 여유와 문화공연을 즐기던 광화문을 제발 시민들에게 돌려주면 좋겠다.

 광화문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집회가 있었지만 요즘 주말엔 대체로 ‘보수’를 자처하는 태극기 부대가 점령한다. ‘문재인을 몰아내고 박근혜 대통령을 구출하자’가 단골 구호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 대표 등이 자주 강연자로 등장한다.

 우리공화당뿐인가.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보수를 자임하지만, 최근 하는 행동을 보면 ‘보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의원은 외교 비밀인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고 나섰다. 아들의 대기업 취업을 자랑했다가 ‘공감 능력 제로’라는 비판을 받은 당 대표가 “스펙을 높여서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스펙을 낮춰 말했기 때문에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건 또 무슨 궤변인가.

 문제는 이런 것들이 단순한 말실수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의 콘텐츠나 철학 자체가 빈곤하지 않은가 의심스럽다. 박정희 정부 이후 고도성장의 신화를 써온 한국의 보수는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정체성을 잃었다. 이명박 정부는 초반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더니 후반에는 친서민과 동반성장으로 방향을 바꿨고,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공(反共) 친미(親美)주의가 한국 보수의 특징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라는 희한한 미국 대통령이 나타나 독재자 김정은에게 “마이 프렌드”를 외치니 외교 안보에서도 방향을 잃었다.

 보수란 무엇인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1700년대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에 따르면 보수는 특정한 이념체계라기보다 삶과 사회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진보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개혁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한다면, 보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통을 존중하며 개혁에 신중하다. 보수는 또한 정치권력의 남용을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와 질서 있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한국당이나 개혁보수라는 바른미래당, 나아가 한국의 보수가 과연 이런 미덕을 보여 왔는지 돌아볼 일이다.

 보수와 진보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인민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던 공산주의 혁명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지금의 북한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빠뜨렸는지 역사가 보여준다. 사회적 모순을 인간의 힘으로 개선하려는 진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인위적 개조가 낳을 부작용을 경계하는 보수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고 시대에 따른 변화를 거부한다면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한국의 진보가 북한체제 추종이나 사회주의 혁명론과 단절해야 하듯이, 한국의 보수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극단주의나 국정농단 세력과 손을 끊어야 한다.

 한국당이 ‘2020 경제대전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대신할 정책들을 내놓겠다고 한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1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전환기의 한국경제를 살릴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기 바란다. 경제에 그치지 말고 외교 안보나 교육, 사회복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방안을 발표하면 좋겠다.


신연수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