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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달러’ 택시면허의 배신

Posted June. 01, 2019 10:30   

Updated June. 01, 20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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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퀸스에서 한국계 택시기사 A 씨(58)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커피 인심’이 후했던 그의 사망에 동료 기사들과 주변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욕에서 최근 1년간 8번째로 목숨을 끊은 택시기사”라며 고인의 사연을 전했다. 

 한국 출신 이민자로 택시를 몰던 A 씨는 2017년 ‘택시 오너’가 됐다. 1만3000개밖에 없는 뉴욕 택시면허(머댈리언)를 57만8000달러(약 6억8800만 원)에 매입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듯했다. 그런 그가 왜 끔찍한 선택을 했을까. A 씨의 동료는 NYT 인터뷰에서 “금융 문제 외엔 다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뉴욕시와 시 의회는 택시기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주범으로 우버, 리프트 등 승차공유 회사를 지목했다. 이들이 택시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기사들의 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시 의회는 지난해 승차공유 서비스 기사의 수를 제한하는 법안으로 대응했다. 그것만으로 잇단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NYT는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뉴욕 택시업계 관계자 450명을 취재한 분석 기사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신문은 “우버가 진출한 2011년 이후 뉴욕 택시 수입이 10% 감소했지만 머댈리언 가격은 96% 떨어졌다”며 뉴욕 택시면허의 ‘거품 붕괴’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1937년 도입된 택시 면허제도의 허점, 택시업계와 브로커들의 ‘약탈적 대출’ 관행을 파헤쳤다.

 NYT에 따르면 머댈리언 가격은 2002년 20만 달러에서 2014년 100만 달러로 뛰었다. 뉴욕시는 2004년 머댈리언 경매제도까지 도입하고 ‘일생일대의 기회’, ‘주식보다 나은 투자상품’이라며 광고까지 했다. 머댈리언이 비싼 값에 낙찰될수록 뉴욕시 세수는 불어났다.

 대출은 느슨해졌다. 과거엔 머댈리언 매입 금액의 40%는 갖고 있어야 나머지 머댈리언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택시업계 신용협동조합은 단돈 1달러가 없어도 전액을 대출해주고 3년 내에 상환하게 하는 상품을 내놓았다. 택시업계 브로커들은 대출 중개로 돈을 벌었다. 90%가 이민자인 뉴욕 택시기사들은 모아둔 돈이 없어도 ‘택시 오너’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거품이 빠지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보증수표’는 ‘죽음의 초대장’으로 바뀌었다. 우버와 리프트에 밀려 수입이 준 택시기사들은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면허값은 추락했다. 금융사는 대출을 회수하고 집과 소득을 압류했다. 머댈리언은 경매로 넘어갔다. 2016년 이후 택시기사 950명이 파산했다. NYT는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인 주택대출 거품과 비슷하다”며 “머댈리언 거품에 대한 경고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당국이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예일대 저널을 인용해 “(뉴욕 머댈리언은) 강력한 이익집단의 압력에 취약한 정치적 의사결정에 따라 유지되는 비효율적 사적 소유권의 사례”라며 “왜 사회가 이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NYT의 보도 이후 뉴욕주 검찰과 뉴욕시는 약탈적 대출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다. 뉴욕 택시업계가 “택시 수입은 10%가 아니라 36%가 줄었다”고 NYT 보도를 반박하면서 논란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이에 앞서 정부의 인위적인 택시 공급과 가격 통제, 택시업계와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 약탈적 대출에 대한 감시 소홀 등 구조적 문제에 귀 기울이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노력들이 있었다면 적어도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문제를 신기술과 경쟁자 탓으로 돌리는 건 진실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뿐이다.


박용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