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헨리 조지의 저주

Posted April. 01, 2019 08:46   

Updated April. 02, 2019 08:57

中文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대 대통령정책실장이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조지를 추종하는 조지스트였다. 헨리 조지는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을 토지의 독점적 소유로 보고 토지 사유를 부정했다. 당시 부동산 정책이 수요공급 논리보다는 이념적 근간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철 지난 사회주의 이론을 성숙한 시장경제에 투사했으니 곳곳에서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집권세력은 ‘강남=투기’라는 프레임을 짜 놓고 여기에 보수세력과 언론을 쓸어 넣었다. 그러면서 부동산을 도덕률의 핵심 지표로 쓰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지난해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할 때 토지공개념을 명시함으로써 헨리 조지를 부활시켰다. 강남 프레임이 다주택자 프레임으로 확대된 것도 헨리 조지의 토지 공유 주장과 맥락이 닿아 있다.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팔아라”며 시한까지 제시한 정부의 요구는 부동산에 대한 기준이 갈수록 엄격하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새 헨리 조지는 사회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조지스트적 접근이 집값 안정을 가져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도층 인사들은 음습하고 탐욕적인 투자와 결별해야 한다는 사회 규범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이 규범이 너무 정치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이 수십 년 전 투자 이력에 발목이 잡혀 낙마했다. 현 정부의 다주택 불가론에 따르면 집이 두 채 있던 문재인 대통령도, 부동산 정책 주무 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잠재적 투기꾼 내지 시장 교란 세력이다. 오죽하면 이 정부 1기 내각에서 장관 10명이 ‘다주택 장관’이라는, 업무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희한한 그룹으로 불렸을까.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처럼 강남 다주택자라면 몰라도 시골에 단독주택을 한 채 더 갖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무슨 투기꾼 범주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 싶다.

 지난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재직 중 부동산 투자로 옷을 벗었고, 그 여파로 장관 후보자 2명이 낙마한 마당에 좀 생뚱맞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한발 떨어져서 생각해 볼 때다. 부동산 문제를 이념과 도덕, 정치의 수단으로 전용한 결과 정책은 정책대로 안 먹히고 정쟁은 정쟁대로 더 극렬해졌다. 여야는 스스로는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상대에게는 너무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이 와중에 김 전 대변인처럼 뒤로는 대중의 눈높이에 안 맞는 투자를 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마치 정치적 운동 하듯 벌이지 않았으면 이런 결말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를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정쟁의 무한반복으로 희생되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김 전 대변인은 퇴임 문자메시지에서 보여줬듯 사회는 그를 부도덕하다고 지적했지만 본인은 자신의 행위를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부동산이 정쟁의 도구가 됐기 때문에 정치적인 덫에 걸렸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부동산으로 낙마한 사람들 상당수가 사석에선 그렇게들 말한다.

 부동산에서 도덕과 정치를 조금 덜어냈으면 싶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집을 두 채 갖고 있으면 투기꾼이라는 해괴한 논리적 구속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그래야 시장도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고, 정쟁의 쳇바퀴에서도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00년도 더 된 헨리 조지의 사상이 저주로 남게 된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