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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거침없는 압박 VS 北 노골적인 불만

Posted August. 06, 2018 08:04   

Updated August. 06, 201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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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비핵화 로드맵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북-미 간의 신경전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양 측 외교 수장은 웃으며 악수를 나눈 몇 초간의 조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정식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상대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외교전에 집중했다.

 북 측은 ‘단계적, 동시적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지만, 정유 및 석탄의 불법거래를 지적한 유엔 보고서와 추가 독자제재를 앞세운 미국의 강도 높은 압박은 예상보다 강도가 높았다.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불과 두 달 전의 싱가포르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거침없는 압박 VS 노골적인 불만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4일 ARF 자유토론에서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미국의 선제 조치를 재차 요구했다. 그는 “북측의 선의의 조치들에 대한 화답은 커녕 미국에서는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조선반도 평화보장의 초보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에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리 외무상은 영어가 아닌 한글로 진행한 연설에서 “미국 내에서 수뇌부 의도와 달리 제재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지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를 표출해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대북제재를 강조해온 폼페이오 장관은 물론 북핵팀을 지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제재 이행수위를 낮추라고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자회담과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진행하며 대북제재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보란 듯이 ARF 회원국들을 상대로 제재 이탈 단속에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과 동행한 한 외신기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아세안 미팅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대북제재 이행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데 쓸 계획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ARF에 참석하기 전부터 대북제재 메시지를 작심하고 준비해왔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싱가포르 ARF 의장성명 초안에는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와 함께 “한반도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가져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북한이 안간힘을 썼음에도 미국이 이를 강하게 요구한 결과로 알려졌다.

○ “北, 석유 불법거래에 시리아와 불법 무기거래도 지속”

 트럼프 행정부는 신규 대북 제재에도 시동을 걸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협상 기간에는 추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3일 북한과 거래한 러시아 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러시아의 아그로소유즈상업은행과 조선무역은행이 내세운 유령회사로 알려진 단둥중성공무유한공사와 은금기업, 리종원 조선무역은행 러시아지부 부대표가 북한과 거래한 혐의로 미국의 신규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이룰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해 북한으로 향하는 불법적인 돈의 흐름을 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대북 제재 강화의 정당성 확보에도 나섰다. AFP와 로이터통신은 유엔 안보리 산하 전문가패널이 작성해 안보리에 보고한 보고서를 입수해 “북한이 핵무기,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았다”며 “영변 핵 단지에서 여전히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원자로도 계속 가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 패널은 또 “대형 유조선을 이용해 이뤄지는 석유제품 환적이 북한의 주요한 제재회피 수단이 되고 있다”며 1∼5월 불법 환적 사례로 89건을 제시했다. 환적에 연루된 선박이 40척, 기업이 130곳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석탄, 철강 등 수입 금지 품목들을 중국 인도 등에 수출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1400만 달러(약 158억 원)를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이 시리아 정부, 예맨의 반군 등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 · 싱가포르=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