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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울음

Posted March. 25, 2019 07:25   

Updated March. 25, 201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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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한 명의 ‘인간’을 발견한다. 사상과 감정과 문화의 세계이자, 길들여지고 순화된 천성의 세계를 발견한다. 또한 그는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 늑대를 발견한다. 본능과 야성과 잔혹한 천성의 순화되지 않은 야만의 어두운 세계를 발견한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늑대’


 그동안 준비했던 영화 시나리오를 죄다 허물고 중국의 다국적기업과 드라마로 개작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는 답답한 우리 현실의 체증이라도 뚫듯 시공간을 초월하고 초능력이 자연스러운 판타지 세계가 주류를 이룬다. 상상의 외연이 아무리 넓어졌다 해도 인간 내면의 치열한 성찰을 통해 실존을 해석하려는 집요한 시도는 늘 순수 문학 쪽에 있다. 비범한 초능력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날마다 왜소해져 가던 어느 날, 서점에서 반갑게 헤세의 황야의 늑대를 만났다. 젊은 시절 기름진 장발을 뒤로 넘기며 읽어냈던 기억이 나를 소환했다.

 이 책은 헤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주인공의 이름(하리 할러·Harry Haller)을 본인 이름(Hermann Hesse)과 동일한 이니셜(H. H)로 작명해 헤세의 자아가 가장 많이 투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은 할러가 25년을 살았던 도시로 귀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시민의 청결과 세심함이 빚어낸 기막히게 좋은 향기에 이끌려 하숙집을 선택한다. 그러나 결국 할러 내면의 거칠고 굶주린 늑대는 이 하숙집을 시민의 숨 막히는 규범이 상주하는 역겨운 곳으로 인식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민과 늑대의 자아가 서로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에서 그들이 공존하게 되는 삶을 묘사한다.

 고전 읽기는 이성의 빗장을 튼튼하게 만드는 정신의 운동으로 청소년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일상에 지친 어른들도 가끔은 달빛으로 샤워를 하듯 거친 황야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부름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