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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건국설화 새긴 토제방울 1점 발견

Posted March. 21, 2019 07:50   

Updated March. 21, 20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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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그렇지 않다면 구워 먹으리.”

 가야 건국설화인 ‘구지가(龜旨歌)’의 한 구절이다. 임금 없이 추장 9명이 다스리던 가락국에서 백성들이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귀공자 6명을 내려 보내 금관가야와 대가야 등 6가야를 세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설화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편 등 오직 문헌으로만 전해져 왔다. 그러나 최근 가야 건국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유물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에서 발굴조사를 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20일 “지난달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5세기 말 조성된 한 무덤에서 가야 건국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해 낸 토제(土製) 방울 1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날 경북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에서 공개한 토제방울은 직경 5cm 정도의 작은 크기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니 방울을 둘러싼 겉에 6개의 문양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문양은 △가야산 정상 ‘상아덤’을 표현한 남성 성기 △거북이 등껍데기 △지도자를 형상화한 관을 쓴 남성 △춤을 추는 여성 △하늘을 우러러 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자루 등이다.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각각의 그림은 가락국기에 나타난 내용과 부합한다”며 “가야뿐 아니라 삼국 전체를 통틀어 문헌으로만 전하는 고대 건국설화를 시각화한 유물이 발견된 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를 통해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수로왕으로 대표되는 금관가야뿐만 아니라 가야 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였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토제방울은 1500년 전 가야 유물이 큰 훼손 없이 원형을 거의 유지한 채 발견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방울을 발견한 무덤이 봉분이 없어 지상에서 확인이 되질 않고 길이 165cm에 너비 45cm, 깊이 55cm 정도로 소규모여서 도굴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또 방울과 함께 발견한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편도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연구원은 무덤 주인이 신장이 1m 정도인 4∼5세 어린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장은 “방울이 왼쪽 허벅지 근처에서 나왔는데 손목에 걸려 있거나 손에 쥐여진 것으로 보인다”며 “함께 나온 토기와 쇠, 낫 등의 형태를 고려하면 시기는 5세기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탐방로 조성을 위해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는 5세기 말∼6세기 초 소형 돌덧널무덤(석곽묘) 10기와 돌방무덤(석실묘) 1기를 확인했다. 특히 6세기 초에 조성한 석실묘는 지금까지 대가야 유적지인 고령 지역에서 확인된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의 횡혈식(橫穴式·굴식) 무덤이라고 연구원은 전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