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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치른 첫번째 월드컵.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오직 생존에만 여념이 없던 암울한 시기에 축구의 대제전인 월드컵이 스위스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은 먹는 것, 입는 것에 매달려 다른 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도 축구는 인기를 끌었다. 달리 구경거리나 갈 곳, 놀이가 없던 터라 공 하나로 수십 명이 즐길 수 있는 축구는 누구나 하는 놀이였고 관심 갖는 경기였다. 학교 운동장이나 들판, 동네 골목길에는 항상 공 차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붐볐다.

축구는 이렇게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월드컵이 무엇인지 몰랐고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세계축구대회가 열린다는 것도 알지 못하던 우리가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 대표로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일본에 이겼다는 사실만 알고 흥분했지 월드컵에 나가게 됐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도 두지 않았던 게 우리 현실이었다.

우리 축구대표는 훈련이 부족하고 정보가 없었으며 게다가 여행 경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간신히 서울을 떠나기는 했으나 일본에서 발이 묶였다. 스위스로 갈 비행기 좌석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얻어탄 비행기로 64시간의 장거리 여행 끝에 겨우 경기 당일에야 개최지인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선 2조에 속한 우리 나라는 헝가리, 터키, 독일과 같은 조였다.

1954년 6월16일 우리 팀은 쉬지도 못하고 3만5000여 명이 운집한 그라스호퍼 경기장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대표 팀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헝가리와 경기를 하게 된 것이다. 골키퍼 홍덕영을 비롯해 박규정, 박재승, 강창기, 민병대, 주영광, 정남식, 성낙운, 최정민, 우상권, 박일갑 등 11명이 출전선수였으며 코치는 김용식 씨였다.

상대 팀 헝가리는 당시 4년 간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강 팀으로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우리는 헝가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무려 9골이나 내주었다. 한국은 90분 경기 동안 그것도 전반에 겨우 단 두 개의 슈팅을 날려보았을 뿐이고 후반에는 거의 뛰지 못했다. 다리에 쥐가 나 여기 저기서 선수들이 쓰러졌다. 걷기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본선 사상 최다 골을 허용하며 우리의 첫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우리 팀의 대패는 기술의 열세, 정보 부재,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었다. 그 밖에 경험, 현지적응, 체력 부족 등도 요인이었다.

첫 경기에서 크게 패한 한국은 6월21일 제네바에서 터키를 상대로 두 번째 경기에 들어갔다. 이 경기는 1차전에 뛰지 않은 선수를 대폭 기용해 전열을 가다듬고 출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7대0으로 패해 두 경기에서 무려 16골이나 내주고 예선탈락했다.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수모를 당했지만 한국은 관중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는 우리가 경기를 잘 했다거나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6·25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돼 어렵게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것을 외국인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열심히 뛰는 우리 선수들의 성실성을 그들은 높이 산 것이었다. 그들의 박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어져 먹을 것과 옷가지, 생활필수품 등 선물이 우리 선수단이 묶고 있는 호텔에 쌓였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에게 보내는 구호품도 있었다. 우리는 첫 월드컵 참가를 이렇게 치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