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그 종착지는 어디?<하>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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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경제성과에 대해 논해보자면, 역시 다수의 시민이 부정적인 응답을 하리라 생각한다. 재임 기간 내에 최저시급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 이행 의지는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사 양측, 자영업자와 시간제 근로자 그리고 비정규직 근로자 모두가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한편, 전임자의 경제 민주화 공약에 필적할 만큼 우직하게 밀어붙인 소득주도 성장 정책 역시 해외 성공 사례나 충분한 검토 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현 정부는 부정적 전망이나 현실과의 괴리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 과정에서 경질성 통계청장 인사교체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경제 양극화와 청년실업률이 보수 정권 때보다 악화하였다는 것도 각종 통계조사나 소비자 지수 등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대통령의 주요지지층에게서조차 경제문제에서만큼은 부정적인 여론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자, 또 야당의 경제지표 악화에 대한 공세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반일 기조를 내세웠다.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야당의 경제 부진 책임론에 대항하고자 이른바 토착 왜구 엄벌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 거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원장으로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주연구원의 내부 보고서조차 한일 관계 악화가 총선승리에 유리할 것이란 내용을 담기도 했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선거 승리에 있고 집권당의 경우, 정권 재창출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선거전략의 일환에서 정부의 반일 정서 자극은 효과적인 계모(計謀)라 할 수 있다. 특히 차기 총선은 임기 후반부에 접어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범국민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정략적 의미가 큰바, 청와대는 레임덕 지연 전략으로 반일 카드를 구상해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로서 국익 극대화와 국민통합에 앞장서는 대통령을 희구하였던 시민들로서는 이후 청와대 주요 인사와 집권 여당의 반일 선동 언행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부 주도의 반일 공세로 피해를 볼 국내기업과 재일한국인에 대한 대응책은 마련한 채 정부가 일본 때리기에 나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한국은 불과 2년 전 중국발 사드 보복 사태를 통해 한 국가에 지나치게 편중된 무역전략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당시에 통상 전문가들은 25%에 이르는 대중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입전략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또한, 비단 중국의 사례에만 국한하지 말고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부품·소재의 경우에도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수출입 시장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게 하여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대응할 힘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언이 있고 나서 2년여가 흘렀는데 한국의 대 중국 수출 의존도는 지난해 26.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를 보면, 현 정부가 사드 보복 사태 이후에도 중국을 비롯한 인접국의 무역보복 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해오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일본의 백색 국가 배제 조치는 불공정 무역보복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사드 사태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아 보이기에 이를 반면교사 삼았다면 진즉 무역분쟁 국면을 극복해 나아갈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애당초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처져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국민에게 ‘남북경협으로 평화경제만 되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라는 민족주의적 호소를 한 것만큼이나 문재인 정부가 한일 무역분쟁 해소를 위한 다층적 외교채널 활용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의 경제지표 악화에 대한 모든 이유를 일본에 전가하는 한편, 이로 인해 우리 국민과 기업이 입고 있는, 또 입게 될 피해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국민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전적으로 일본발 무역보복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기업들의 자체적 위험관리 능력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일제 불매운동을 토대로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경기불황을 초래한 문재인 정부는 애국심·반일 민족주의 프레이밍을 통해 시민사회와 기업이 이루어낸 공로를 자신들의 성과로 간주하고 있다. 일각에서 현 정부에 대해, 집권당 대표가 주창한 ‘진보 20년 집권 플랜’의 실현에만 전력을 다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정권의 경제적 부진을 안보 문제와 결부짓는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한 자충수까지 두었다. GSOMIA 일방종료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에서 수차례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바가 있다고 언급한 GSOMIA를 종료하는 결정을 하며 청와대는 그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7~8월경 일본의 백색 국가 배제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청와대와 여당 중심으로 GSOMIA 파기가 논의되자 주한미국대사가 이례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이 양국 간 문제로 이 합의를 파기하려고 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울 것(regrettable)으로 생각한다”라는 입장표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과 한일 간 GSOMIA 파기는 무관하다는 정부의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해당 사안과 관련하여 청와대가 항상 강조하는 ‘진실 보도’를 정작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단적으로 ‘미국이 충분히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였다’라는 청와대의 입장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은 미국에 이 문제를 협의한 적이 없고, 미국은 이에 대해 이해를 표명한 적이 없다. ‘통보(inform)’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반박한 것이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한국이 정보보호협정에 대해 내린 결정을 보고 실망했다(disappointed)”라고 언급하였으며, 국무부 성명에서는 “미국은 이번 결정이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에 거듭 분명히 했다(The United States has repeatedly made clear to the Moon administration).”, “이번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안보 도전들에 대해 심각한 오해(a serious misapprehension)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우방국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고강도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GSOMIA 일방종료를 한국이 일본에 통보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국의 주요부처에서 이례적으로 비판 강도를 높여가는 현 사태를 볼 때, 정말 GSOMIA 종료 결정이 문재인 정부의 주장처럼 한미동맹과는 무관한 사안인지, GSOMIA 종료로 비로소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해지고 한국의 국익이 증진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는 무리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 고수로 초래한 내수 경제 위기 및 집권당 지지율 하락의 난관을 반일 관제 민족주의를 통해 타개해보려다 한미 간 혈맹관계에서까지 파열음이 나도록 자초한 셈이다. 이러다 럭비공으로 비유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논의까지 본격적으로 나온다면 한국은 안보·경제 두 축에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뒤늦게 한미동맹 악화사태를 수습하고자 미국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된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 과도한 방위비를 청구받거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의 득실을 고려하지 못한 채 사실상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할 우려도 있다. 나아가,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유지할 때에만 자주국방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전시작전권 환수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더라도 GSOMIA 일방종료 결정으로 인해 초래될 한미동맹 간 신뢰 관계 훼손은 심대한 국익·안보 저해요소로 자리매김할 우려가 상당히 커 보인다.

결과적으로 아베 내각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보겠다던 현 정부의 GSOMIA 일방종료 카드는 역설적이게도 한미일 삼각 공조의 축에서 한국의 역할을 축소하고 미일 양자 관계 공고화를 도모한 아베 내각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한미일 삼각 공조에 있어 한일 양국의 GSOMIA는 그 상징적·전략적 의미가 상당히 컸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제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에서 한국의 역할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중·러 양국이 한미동맹의 균열사태를 악용하여 KADIZ·영공 침입, 혹은 그 이상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GSOMIA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 폄훼하는 한편, 우리를 향해 수차례 무력도발을 감행해온 북한에 맞서 연합훈련을 진행하고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해온 한미동맹의 신뢰 관계는 명백하게 훼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권국가의 독자 결정’이라는 이유로 불공정한 사드 보복을 감행하였던 중국은 GSOMIA 종료를 선언한 한국의 결정을 두고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행사’라고 논평하였다. 한반도 유사시에 가상적국이 일본이 될지 북한이 될지, 유사사태 발생 시 한국의 우방국이 미국이 될지 중·러가 될지는 자명해 보이는바, GSOMIA 일방종료 결정이 한국의 국가 이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부 측 입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GSOMIA 협상은 결렬되었고 고작 학부생 신분의 필자가 정부의 결정을 번복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또, 아직 식견이 부족하여 정부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우국지정에서 작금의 사태에 대해 논평해본다면 경제부문에서의 부진을 관제 반일 민족주의를 통해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닌지, 그 과정에서 정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정부가 과연 어떠한 태도로 임해왔는지 재차 묻고 싶다. 나아가, 경제부문에서의 갈등요소를 안보 부문까지 끌어들여 한미동맹과 한국의 안전보장 전망조차 불투명하게 만든 집권당과 청와대의 GSOMIA 일방종료 결정이 과연 순수하게 국가의 미래와 이익을 고려한 애국 행보였는지,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실체였는지 반문하고 싶다(끝).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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