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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강점기 ‘군수공장 숙소’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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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강점기 ‘군수공장 숙소’ 보존한다

박희제기자 입력 2016-03-11 03:00수정 2016-03-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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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2동 ‘미쓰비시 줄사택’ 20채… 구청서 매입해 사료전시관 꾸며
한국 근대화의 어두운 역사 조명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가 대거 동원됐던 미쓰비시 군수공장의 줄사택. 부평구 부평2동 일대에 지어진 1000여 채 중 87채만 남아 있어 보존을 전제로 주거환경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평구 제공
경인전철 부평역∼백운역 사이의 인천 부평구 부평 2, 3동은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 역사의 뒤안길을 간직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군수업체에 동원됐던 노동자 공동 숙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 역할을 했던 미군 부대 주변 클럽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부평구는 자칫 흔적조차 사라질 수 있는 이들 시설에 대한 학술조사를 벌이면서 현실적인 보존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경인전철 철로를 사이에 두고 부평공원(옛 미쓰비시 군수공장)과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줄지어 늘어선 회사 숙소)이 마주하고 있다. 미쓰비시 줄사택이 있는 부평2동에는 1938년경 1000채가 넘는 사택이 있었지만 현재 87채만 있다. 지붕과 대들보가 함께 배치된 1개동에 10채 안팎의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다. 1채당 13m² 남짓한 규모인데 문을 열면 부엌이 달린 방 1개가 보인다. 집 안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외부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요즘 ‘원룸’의 원형이다.


이곳의 첫 거주자는 부평공원 자리에 있던 일본 미쓰비시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이었다. 태평양전쟁 시절 강제 징용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굴착기 등 광산기계와 제강기를 제작하던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며 줄사택을 숙식 공간으로 삼았다. 광복 이후 미쓰비시 공장은 미군정 군수공장으로 활용되다 1970년대 초 한국군으로 넘어갔다. 1997년 군부대가 이전하자 부평지역 최대 규모(11만3123m²)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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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사택에 살던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수십 년 전부터 하나 둘씩 떠나면서 현재 32채에만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50여 채는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돼 붕괴 위험과 화재 사고가 우려되고 있다. 부평역사박물관은 지난달 시작한 미쓰비시 줄사택 현장조사를 8월까지 마친 뒤 학술회의와 특별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김정훈 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미쓰비시 줄사택 인근 지역엔 인천부사와 조선주택영단이 보급한 부영주택, 영단주택 등 수천 채의 기업형 마을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평구는 폐허 위기에 처한 20채가량의 줄사택을 매입해 사료전시관으로 꾸미는가 하면 공동화장실, 정화시설 등 마을공동체 형성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부평구는 또 정부 지원으로 추진 중인 ‘음악융합도시’ 조성을 위해 1950∼70년대에 성행했던 클럽지대를 조사하고 있다.

부평공원과 가까운 부평3동(옛 신촌) 일대에는 ‘아리랑클럽’ ‘유니버설클럽’ ‘아폴로클럽’ 등 음악무대를 갖춘 술집이 20개 이상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산곡동 현대1차아파트 맞은편의 ‘드림보트’ 자리엔 음식점 등이 입점한 3층 건물 구조가 옛 모습의 5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부평 미8군(에스컴부대) 내 클럽은 배호 현미 윤복희 한명숙 신중현 등 거물급 가수들의 무대였고 2, 3류 가수들은 부평2동 일대 음악클럽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재즈 팝 컨트리 로큰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면서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부평 2, 3동에서 보존을 전제로 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인 ‘미쓰비시 줄사택 새뜰사업’을 진행시키는 한편 한국 대중음악 60년 역사의 뿌리를 찾는 음악도시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부평구#줄사택#사료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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