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서 ‘G-2’ 시대로…“美中 무역전쟁 여파로 회사 문 닫을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0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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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중소기업에도 중국이 기회의 땅이었죠. 늘 중국 시장을 어떻게 개척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경기도 부천의 한 반도체 후(後)공정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A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회사 문을 닫을 판”이라고 한숨부터 쉬었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와 같은 170억 원으로 잡았지만 11월까지 38%에 불과한 약 65억 원만 달성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둔화 여파 때문이다. A 사장은 “이미 납품한 장비대금 10억 원을 받지 못했고 올해 중국 발 주문도 지난해보다 약 30억 원 줄었다”며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내년 계획을 짜야 하는데 인원 감축부터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G2’에서 ‘G 마이너스(-) 2’


A 사장의 한탄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위기 소방수’가 아니라 ‘위기 진원지’가 된 ‘G 마이너스(-) 2 시대’의 단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7월 미국 경제전문가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조시 펠먼 JH컨설팅 이사는 국제전문 비영리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에 ‘협력의 공공재’를 수출하는 대신 양국 경제 정책이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는 ‘G-2’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하며 이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으로 막대한 돈을 풀었고 중국은 8%대 고성장을 바탕으로 각국의 수출 수요를 흡수했다. 반면 올해 양국은 첨예한 무역전쟁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은 오히려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안긴 요인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양국의 무역 전쟁이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에 약 7000억 달러(약 834조2600억 원)의 피해를 줄 것으로 추정했다. 한 해 스위스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수브라마니안 연구원과 펠먼 이사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상품에 관세와 무역 제한을 가하고, 미국이 다자간 무역규칙과 제도를 훼손함에 따라 세계 무역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제품 및 노동력 수출이 어려워진 개도국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 3분기(7~9월) 한국(0.4%), 독일(0.1%), 일본(0.1%), 영국(0.3%) 등 주요국 경제는 모두 0%대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과 독일은 각각 GDP의 약 45%, 48%를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무역전쟁의 피해가 특히 더 크다. 중국의 3분기 성장률도 1992년 통계 집계 후 27년 최저치인 6.0%, 인도도 2013년 1분기 후 6년 반 최저치인 4.5% 성장에 그쳤다.

● 무역전쟁의 전선 확대


‘G-2’ 시대의 특징은 무역전쟁의 전선 확대, 소모전에 가까운 지난한 무역협상, 이에 따른 패권 경쟁 격화 및 불확실성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구글, 애플 등 미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문제로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는 철강 관세를 부과할 뜻을 밝혔고 일본과 인도에도 농산물 관세를 위협하고 있다. 7월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분쟁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무역협상의 기간도 눈에 띄게 길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7월 서로에게 보복관세를 부과한 직후부터 1년 반 동안 협상을 지속했지만 여전히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도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1월부터 무역협정 타결을 시도했지만 아직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G-2’ 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생존법으로 아시아권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꼽았다. 그는 “원천기술 확보, 산업 고도화 등도 중요하지만 이는 당장 현실화하기 어려운 만큼 FTA가 최선”이라고 진단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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