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美연준 의장 타계…향년 92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0일 0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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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8일(현지 시간) 타계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9일 전했다. 향년 92세.

1979~1987년 연준 의장을 지낸 볼커 의장은 재임 기간에 고물가와의 전쟁을 벌여 연준의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연준 의장이 단순한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이 아닌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볼커 의장은 192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뉴욕 연준에 입사했고 체이스맨해튼은행 등에서도 일했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9년 8월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그가 의장에 취임할 당시 미국 경제는 고물가와 저성장이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였다. 오일쇼크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는 가운데 경기 둔화도 심각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볼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물가를 잡는 데 집중해 ‘인플레 파이터’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1981년 미 기준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 수준인 연 21%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강력한 물가안정 의지 덕택에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2%까지 떨어졌다.

카터에 이어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인하를 압박했지만 최고권력자의 압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다. ‘오락가락 통화정책’으로 17개월 만에 의장직에서 사퇴한 전임자 윌리엄 밀러와 대조적인 모습이었고, 그런 그의 판단은 옳았음이 입증됐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아 월가 대형 은행과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 등을 규제해야 한다는 ‘볼커 룰’ 도입에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출범 후 규제 완화 등을 이유로 ‘볼커 룰’을 손보기로 하자 항의 서한도 보냈다.

그는 올해 7월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전 의장 등 후임자들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동 기고문도 게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연준에 금리인하를 요구하며 제롬 파월 현 의장을 압박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취지였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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