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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도 안 보고 ‘묻지마 투자’…남북 접경지에 기획부동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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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도 안 보고 ‘묻지마 투자’…남북 접경지에 기획부동산 ‘기승’

파주=주애진기자 입력 2018-12-02 16:40수정 2018-12-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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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이후 지분거래 상위 1~3위 파주·연천
1인당 60평씩 200명이 현장도 안 보고 임야 매입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의 한 야산. 임진강과 5㎞가량 떨어져 있어 파주에서도 최북단에 속하는 곳이다. 산 아래 왕복 2차로에 가끔 대형 트럭들이 지나다녔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8월 OO경매라는 이름의 회사 10곳이 이 곳 임야 69만3310㎡를 32억8500만 원(3.3㎡당 1만6560원)에 공동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이들은 이 땅을 202명에게 쪼개 팔았다. 가격은 3.3㎡당 5만2000~6만2000원 선이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12년 전쯤에 3.3㎡당 5만 원에 나왔던 땅인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못 팔았다”고 했다. 기획부동산의 매입가가 1만 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땅값이 뚝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대부분 보전산지로 분류돼있어 정부나 지자체의 도시개발계획에 부합하지 않으면 개발허가를 받기 힘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훈풍을 타고 접경지 땅값이 오르자 기획부동산까지 뛰어들어 투기 열풍을 조장하고 있다. 저렴한 땅을 사들인 뒤 3~4배 더 비싼 값에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개인 투자자에 되파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블로그 등을 통해 ‘통일수도 파주,’ ‘파주·철원에 제2, 3개성공단 추진’ 등의 문구를 내세우며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고 선전한다. 투자처의 정확한 위치도 알려주지 않고 일단 투자금의 10%를 계좌이체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겠다는 식이다.

마지리 임야를 광고하는 회사에 전화했더니 “그 땅은 분양이 끝났다. 대신 파주시 법원읍 대능리에 3.3㎡당 14만9000원짜리 좋은 땅이 있다”고 소개했다. 회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서울 강남 사람들이 접경지 투자를 많이 한다. 남은 물량이 많지 않으니 입찰금부터 내고 자세한 정보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0% 환불해준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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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의 한 임야도 5월 3개 회사가 산 뒤 220명에게 3.3㎡당 4만9000원에 팔았다. 처음 사들인 가격(3.3㎡당 1만908원)의 4.5배다.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회사의 홍보글을 보고 전화했더니 “최소 500만 원부터 투자할 수 있다. 적금이라 생각하고 오래 넣어두면 효자노릇 할 것”이라고 했다.

기획부동산들이 활개치면서 접경지 지분거래도 늘고 있다. 토지·건물 실거래가앱 밸류맵이 국토교통부의 토지 실거래가 자료를 토대로 10월 1일~11월 21일 계약한 경기 지역 지분거래(8582건)를 분석한 결과 1~3위가 모두 접경지였다.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가 228건으로 가장 많았고,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210건),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175건) 순이었다.

파주 영장리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근처 임야 2곳을 기획부동산이 산 뒤 7월부터 갑자기 매일 1, 2명씩 찾아와 그 땅이 어떠냐고 물었다. 차마 말은 못해줬지만 좋은 물건이었으면 내가 받아서 팔았지”라고 했다. 마지리의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은 기획부동산들이 싼 땅을 사들여 몇 배씩 뻥튀기해 팔아 땅값 상승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발계획이 구체화된 것도 없는데 접경지 땅을 무작정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싸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개발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샀다가 투자금만 묶일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직전 매매가의 3, 4배로 비싼 가격에 샀기 때문에 주변 시세 상승에 따른 지가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달로 예정된 국토부의 3기 신도시 발표를 앞두고 이런 현상은 수도권 다른 지역까지 확산할 조짐이다. 일부 기획부동산은 기자가 접경지 투자를 문의하자 “요즘은 정부가 택지 조성을 많이 하고 있어서 수도권 내 다른 지역이 유망하다”며 경기 시흥, 광명, 하남시 등에 투자할 것을 추천했다. 한 기획부동산 관계자는 “나도 시흥시 능곡역 일대 땅을 샀다. 접경지보다 이쪽이 훨씬 빨리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기획부동산들은 공유지분 형태로 토지를 파는데 이렇게 되면 권리관계가 복잡해져서 개별적으로 개발하기가 어렵고 대규모 개발로 수용한다고 해도 보상절차가 복잡해 이용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파주=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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