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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정훈]‘운전사 문재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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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정훈]‘운전사 문재인’의 운명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7-07-19 03:00수정 2017-07-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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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탄핵 위협은 천형(天刑)이다. 아들과 사위까지 연루된 러시아 의혹으로 임기 내내 악몽에 시달릴 팔자다. 한 정치평론가는 CNN에서 “남자의 뇌가 섹스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는데, 트럼프의 뇌는 탄핵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트럼프에게 북핵 위협은 ‘솟아날 구멍’이다. 위대한 전임자도 풀지 못한 이 난제를 해결하면 탄핵에서 벗어나 재선까지 노릴 수 있다. 북핵이 근본적으로 미국 국내 정치 이슈인 이유다.

하지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하면서 트럼프는 궁지에 몰렸다. 믿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속았다는 걸 알고는 더 강경해지고 있다. 2006년 대북 선제타격을 주장했던 애슈턴 카터 전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백악관이 트럼프에게 대북 선제타격을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제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사꾼 DNA가 있는 트럼프에게 선제타격은 ‘달콤한 옵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4월 시리아 공습으로 재미를 본 기억도 생생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쓴 ‘공감 전략’은 전쟁 위협을 의식한 고육지책이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열 대 때리고 싶어도 우리가 한 대만 맞으면 아플 것 같아 못 때리겠다”는 말로 트럼프의 인상을 풀게 했다고 청와대 핵심 참모가 전했다. 트럼프의 제재 의지에 공감하면서도 전쟁은 불가능한 옵션이란 걸 주지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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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트럼프 정부 내에도 선제타격은 블러핑(bluffing·엄포)이란 공감대가 있다. 강행하려면 한미 간 협의가 전제돼야 하는데 문 대통령이 동의할 리도 없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타기팅(targeting)이 불가능한 군사 작전으로 북핵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믿고 있다”며 “중국과 북한이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건 미국이 쉽게 때리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미국은 답답하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를 흔들지 않을 테니 믿어 달라”고 호소해도 북한은 콧방귀를 뀐다. 시간이 지나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약속도 뒤집힐 수 있다는 걸 아는 탓이다. 북한은 미국의 말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만 믿는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미국이 아무리 제재 수위를 높여도 북한은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조만간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핵을 흔들며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까지 철수하면 우리는 중국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북핵이 우리에게 재앙인 근본적 이유다.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은 이미 늦었다”며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까지 깔아뭉갰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별로 얻을 게 없다고 보는 거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필자와 만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 건 국제적 제재의 틀을 넘는 지원을 해달라는 뜻인데 현 시점에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6자회담은 실패했고, 타협만으론 북핵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화론자인 문 대통령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북핵을 저지할 수도 없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전석에 앉아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공허하다. 자동차는 운전사 맘대로만 가는 게 아니다. 좋든 싫든 뒷좌석엔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가 타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사고만 막아도 성공이다. 그게 ‘운전사 문재인’의 운명이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운전사 문재인#6자회담 실패#문재인 대통령#베를린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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