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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의 오늘과 내일]이러다 ‘386 김기춘’ 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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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의 오늘과 내일]이러다 ‘386 김기춘’ 나올라

신석호 국제부장 입력 2017-06-13 03:00수정 2017-06-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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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대학 동기 중에는 정치 지망생이 많았다. 전직 대통령과 같은 이름도 둘이나 됐다. 정치외교학과 89학번.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최모가 “난 대통령 될 끼다. 아님 넌 여기 왜 왔는데?”라고 묻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모는 2학년이 되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을 정점으로 기세가 점차 잦아들었고 ‘선배들이 하라니까 그냥 하는’ 분위기였지만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였다. 민주화보다 탈냉전 이후의 세계가 더 궁금했던 나 같은 다른 부류는 선배 세대라면 느꼈을 죄책감 없이 강의실과 동아리방, 여대 앞 찻집을 기웃거렸다. 선배들은 우릴 ‘정치외면학과’의 ‘빠진 후배들’이라 불렀다.

우린 선배들과 다른 세대적 경험이 많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1983년 전두환 정권이 교복과 두발 자유화를 단행해 까까머리도, 일제 교복도 모르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했을 땐 군부대 입소 훈련이 사라진 뒤였다. 그해 가을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4학년 땐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배들의 고민이 민주화였다면 우린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입사하자마자 혹독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을 만났다. 특별한 배경이 없다면 오로지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생존 법칙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우린 생활인이 됐다. 전직 대통령 이름 가진 아이도, 최모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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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선배들은 대거 진짜 정치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386 운동권 세대’의 시대가 등장했지만 우린 ‘386 따라지’(30대, 80년대 학번이지만 70년생인 민주화 이후 세대)로 구분됐다. 노무현 정권까지 10년을 누린 선배들은 ‘무식하고 싸가지 없다’는 비난 속에 ‘친노 폐족’의 낙인이 찍힌 채 사라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쉬고 50대가 되어 나타난 그들은 옹골차게 장기 집권 플랜을 준비하고 나온 듯하다. 옛 운동권의 ‘인물론’을 상기시키는 인사 면면과 화려한 이미지 정치를 보면 장차 ‘386 김기춘’이 나올 거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가 이뤄지고 있다. 의원 한 명 없는 신생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이끌고 39세(프랑스 나이)에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11일 총선 1차 투표에서 최다 455석을 싹쓸이하는 선거 혁명을 이뤄냈다. 1977년 12월에 태어난 마크롱도 ‘탈냉전 세대’다.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것은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쫄딱 망한 좌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었다.

2012년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엘리제궁에 입성한 마크롱은 2014년 36세로 경제부 장관직에 올랐다. 지난달 기성 정치판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아 대통령이 된 마크롱은 모로코 출신 페인트공 아버지와 청소원 어머니 밑에서 자란 33세 무니르 마주비를 디지털 장관에 임명했다. 마주비는 총선에서 사회당 대표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를 크게 눌렀다.

12일 조간신문 두 곳에 ‘보수도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칼럼이 실렸다. 하지만 진보라고 다를까. 현재까지 발표된 모든 단위의 인사에서 50세가 최연소인 현상은 ‘민주화운동 세대’와 ‘민주화 이후 세대’를 가르는 선배들의 오랜 습성과 무관한가.

칼럼의 초안을 잡고 대학 시절 친하지 않았던 운동권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월 바뀌었는데, 넌 정치 안 하니?”

“보수든 진보든 우리 정치권은 너무 폐쇄적이고 지독하게 불확실하고…. 난 착실하게 벌어서 애들이나 잘 키울란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정치 지망생#386 운동권 세대#386 김기춘#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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