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의 뉴스룸]홍준표의 위험한 트라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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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기자
홍수영 정치부 기자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다.”

5·9대선 당일, 패배를 확인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후보가 서둘러 내놓은 말에 귀를 의심했다. 그가 잠시 정치권과 거리를 두며 ‘패장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이 쉽게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홍 전 후보는 에둘러 말하며 반 발짝 늦게 대응하는 것을 ‘신중’과 ‘품위’로 여기던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서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홍준표’였다. 이튿날 바로 포문을 열더니 미국 체류가 무색하게 연일 페이스북을 통해 말 폭탄을 퍼부었다. 하루 일과 시작에 맞춰 메시지를 던지는 통에 정치권에선 ‘홍모닝’이라는 말도 나왔다.

홍 전 후보의 표적은 보수 정당 내부였다. 대선 다음 날부터 30일까지 21일 동안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26건(삭제한 글 1건 포함) 중 14건은 오로지 ‘내부용’이었다. 친박(친박근혜)계를 ‘바퀴벌레’에 비유해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 보려고 설친다”고 했고, 바른정당을 향해선 ‘패션 좌파’라며 “밤에는 강남 룸살롱을 전전하면서 낮에는 서민인 척한다”고 했다. 사무처 당직자를 비난하는 듯한 글로 논란이 일자 측근을 통해 “내부 총질을 자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딱 하루뿐이었다.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리면 홍 전 후보는 21년 정치인생에서 2011년 7월 4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소 야간 경비원인 아버지와 고리 사채로 머리채 잡혔던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그가 평소 나라의 중심이라 여겨온 한나라당의 ‘대장’이 된 날이었다. 홍 전 후보는 4선 중진 의원이던 2009년 자전 에세이집를 펴내며 제목을 ‘변방’이라고 지었다. 이미 중심에 들어왔으면서도 그만큼 변방의 정서가 강했다는 얘기다. 그런 그는 당시 176석 ‘공룡 여당’의 대표로 선출돼 당기(黨旗)를 건네받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대표 취임 직후에는 서민정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며 ‘웰빙 정당’ 탈피에 의욕을 보였다. 식사 약속이 없을 땐 만두도 없이 짜장면 한 그릇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후반기 정치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의 ‘독고다이(‘특공대’라는 일본말로 홀로 싸운다는 의미)’식 대응은 투박했다. 이듬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그리고 취임 5개월여 만에 친박과, 지금은 주로 바른정당에 있는 쇄신파에 의해 대표직에서 사실상 끌려 내려왔다.

홍 전 후보로선 억울했을 수도 있다. 그로서는 ‘금수저 2세 정치인’(당시 대선을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승민, 남경필 최고위원)의 합작으로 ‘정치 흙수저’가 쫓겨난 사건일지도 모른다. 추억은 서로 다르게 적힌다고 했다.

6월 4일 귀국을 앞둔 홍 전 후보의 말 폭탄에서 갈수록 ‘2011년의 트라우마’가 엿보인다면 과한 해석일까. 홍 전 후보는 ‘신(新)보수주의’를 내걸고 6년 만에 다시 당권 도전에 나섰다. 대선 후보까지 지낸 그에게 이제 듣고 싶은 것은 구원(舊怨)에 대한 인신공격성 폭언이 아니라 보수 재건을 위한 ‘홍준표의 철학’이다.

변방의 정서로 재빠르게 치고 나가는 기술이 홍 전 후보의 정치적 생명력이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정치인의 트라우마는 위험하고, 그는 더 이상 변방에 있지도 않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홍준표#정치 흙수저#웰빙 정당#신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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