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드라마캐릭터열전⑧ 당신은 꽃뱀 윤나영에게 돌 던질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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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4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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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끈적거린다.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물론 가족의 인생을 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쯤은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이라 생각하는 여자의 삶은 거칠고 끈적일 수밖에 없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헌신적이며 순종적인 언니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조차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한다. 이 여자의 삶이 거칠고 끈적거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어쩌다 이런 욕망의 불꽃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부나비가 된 것일까?

재벌가를 배경으로 부에 대한 동경과 멸시, 권력을 향한 비정상적인 갈구, 애증이 엇갈린 사랑의 본질을 모색하는 '욕망의 불꽃'(정하연 극본, 백호민 연출). 이 드라마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여성 윤나영(신은경 분)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나이에 경제적 궁핍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몸으로 깨달은 윤나영은 "아버지보다 돈이 더 좋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늙은 소녀'다.
'욕망의 불꽃'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로 등장하는 윤나영. (사진출처=MBC '욕망의 불꽃' 홈페이지)
'욕망의 불꽃'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로 등장하는 윤나영. (사진출처=MBC '욕망의 불꽃' 홈페이지)

토건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아버지 친구 김태진(이순재 분)이 젊은 시절의 빚을 갚겠다며 찾아와 언니 윤정숙(김희정 분)을 며느리로 삼겠다고 약속하자 다른 아들은 없냐고 따지듯 묻는 어린 윤나영. 그 모습은 가난 때문에 황폐하게 늙어버린 소녀의 절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른들은 당찬 아이라고 웃어넘기지만 어린 윤나영에게 그것은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욕망이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돈을 향한 그녀의 욕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학교를 휴학하고 버스회사 경리로 일을 하면서 만난 사장 아들 박덕성(이세창 분)과 연애를 하면서도 그녀는 사랑보다 그가 물려받게 될 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속물적인 근성을 드러낸다.

사랑보다 돈을 앞세우는 그녀의 속물근성은 박덕성의 사주를 받은 깡패들에 의한 집단 린치와 강간이라는 잔인한 상황을 초래했고 결국 냉정한 현실 논리에 짓밟혀 처참해진 몰골로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간호사로 일하던 언니의 도움을 받아 난산 끝에 사생아를 출산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부자가 되겠다는 윤나영의 욕망 앞에 모성(母性)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박덕성과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윤나영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연분만을 선택한다.

자신과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왕절개를 선택할 경우 몸에 남겨질 수술 자국이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원천 봉쇄할 낙인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태어난 아기가 결혼도 못한 동생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언니는 난산 끝에 사산(死産)됐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기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에도 윤나영은 사생아로 태어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홀가분해한다. 돈을 향한 욕망 앞에 모성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윤나영은 모성이라는 숭고한 감성과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욕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는 독한 여성이다.

비록 사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죽은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언니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대서양그룹 회장 김태진의 셋째 아들 김영민(조민기 분)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윤나영에게 사랑은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사랑조차 자신이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언니를 사랑하는 강준구(조진웅 분)의 마음을 이용해 언니를 불행에 빠뜨리는가 하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문상 온 김영민의 품에 안겨 거짓으로 흐느껴 울면서 김영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로 위선적인 행동을 할 만큼 그녀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사랑조차 도구화한 욕망의 화신 윤나영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부채 의식이 남아 있는 김태진을 찾아가 집안 간의 혼사를 지킬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버지의 유언을 가짜로 꾸며 마침내 김영민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가난한 집안의 딸, 용서받지 못할 과거가 있는 여자로서 대서양그룹의 셋째 며느리로 들어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돈이 보장해주는 행복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가족 간의 치열한 암투였다. 그만큼 그녀는 더 독해져야 했다.

그룹 경영에는 관심 없이 대학교수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김영민과의 결혼 생활이 출발부터 삐걱거린 것도 윤나영의 독기를 자극한 요인이었다.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해야 했던 김영민에게는 이미 미국 유학 생활 중에 만난 술집 여자 양인숙(엄수정 분)이 있었다. 김영민과 양인숙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은 윤나영을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이미 처녀 시절의 난산으로 인해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던 윤나영은 양인숙이 낳은 아들 김민재(유승호 분)를 마치 자신이 낳은 것처럼 꾸며 시아버지인 김태진의 환심을 사는 데 이용할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욕망의 불꽃\'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로 등장하는 윤나영. (사진출처=MBC \'욕망의 불꽃\' 홈페이지)
\'욕망의 불꽃\'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로 등장하는 윤나영. (사진출처=MBC \'욕망의 불꽃\' 홈페이지)

윤나영은 자신의 욕망을 숨긴 채 철저하게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집안 살림밖에 할 줄 모르는 전업주부로 행동하면서 손위 동서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10년 넘게 도우미 없이 혼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림을 하면서 대서양그룹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꿰뚫고 있을 정도로 치밀한 면모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김민재를 대서양그룹의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어려서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편과 아들은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그만큼 그녀의 독기는 더 강해진다.

그룹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순진한 표정, 그 가면같은 얼굴 아래에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의 그림자를 숨긴 채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면서 윤나영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이런 윤나영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주저앉는다. 돈과 권력 외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윤나영의 삶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시켜 만들어낸 욕망의 대리체인 아들 김민재가 영화배우 백인기(서우 분)와 사랑에 빠지면서 대서양그룹의 실세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질주하는 욕망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그녀의 아들을 움직이면서 윤나영은 순식간에 욕망의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욕망의 대리인으로 키웠던 아들 김민재를 빼앗아 간 백인기가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윤나영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던, 그만큼 단조로운 캐릭터였던 윤나영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쳐놓은 운명의 덫에 걸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태생적 애정 결핍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을 부정했던 윤나영이 그녀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주저앉아버린 것은 돈과 권력을 향한 그녀의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거나 때로는 한 없이 약한 여자의 가면을 쓰고 위선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던 윤나영이 맞닥뜨린 비극적 운명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가 묵인한 일그러진 욕망의 초상화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돈과 권력에 집착했던 윤나영. 그녀의 욕망이 지나칠 정도로 억지스럽게 과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나영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을 타자화 시킨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의 화신 윤나영. 그녀는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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