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의 독보적인 교수? 10명도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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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백서’ 펴낸 이건우 학장
“교수들 ‘랭킹’ 허상에 사로잡혀 논문쓰기 쉬운 얼치기 연구 판쳐”

“세계 주요 대학을 보면 분야별로 독보적인 교수들이 있습니다. 서울대 공대요? 전체 교수 300여 명 중에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10명이 안 될 겁니다.”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60·사진)은 14일 ‘2015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백서’의 발간 배경에 대한 질문을 직접 받자 이렇게 말했다. 최근 백서를 펴낸 서울대 공대는 야구에서 번트를 친 후 ‘간신히’ 1루에 진출하는 타자에 스스로를 빗대면서 탁월한 연구 성과(만루홈런)가 없다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해 눈길을 끌었다.

국제적 대학평가의 하나인 QS순위 2015년판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는 화학공학 19위, 기계항공 30위, 전기공학 31위 등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 학장은 평가대로라면 이들 분야에서 유명 학자들이 적어도 한두 명씩 나와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수들이 ‘랭킹’이란 허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교수들이 적당히 쉬운 주제로 논문을 낸다. ‘교수들만의’, ‘교수들을 위한’ 연구를 한다. ‘얼치기 연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공대는 더이상 ‘탁월한(excellent) 대학’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 학장은 또 논문은 아이디어를 입증하면 되는 구조여서 연구 성과를 실제로 사용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대가) 자연현상을 관측하고 해석하는 자연대의 아류라고 할 정도로 전락했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많은 대학과 연구소가 창의적이고 성공이 불확실한 연구보다는 연구비를 더 많이 받아내려는 게임에 매몰돼 있다는 문제점도 지목했다. 그 결과 교수들이 단기성과 위주의 연구에 치중하고 살아남기 위해 연구량을 채우고 있다고 했다.

이 학장은 ‘탁월한 공대’는 실용적인 연구와 새로운 이론이 어우러지고 국가의 산업에 이바지해야 하는 곳이라고 역할을 규정했다. 하지만 서울대 공대, 나아가 대학 전체의 위기는 곧 국가 미래 경제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졸업생을 많이 보내 대기업을 성장시켰으니 잘 했지만 삼성 현대 포스코 같은 대기업에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다. 중국이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이제는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형 인재를 키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학장은 대학이 인재양성 기능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졸업한 뒤 대학에서 많이 배웠다고 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학생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키워야 하는데 대기업의 소모품을 양성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탄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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