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화 교수, 30년 수집한 국내 야생종자 7000여점 高大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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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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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면 보름 이상, 산과 들 다니며 채취
이제 후학들에 맡겨요

《“제게는 자식같이 소중한 종자들이죠. 제가 떠난 뒤에도 후배들이 이어받아 국내 종자 연구를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야생종자 전문가인 강병화 고려대 생명과학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64)가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30년간 수집한 국내 야생종자 7000여 점(1700종)을 모두 학교에 기증하기로 했다.》

1984년 이후 국내 야생 종자 수집 및 연구에 힘써 온 강병화 고려대 교수가 3일 학교 실험실에서 보관 중인 종자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984년 이후 국내 야생 종자 수집 및 연구에 힘써 온 강병화 고려대 교수가 3일 학교 실험실에서 보관 중인 종자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강 교수가 수집한 종자는 국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원 식물의 90% 이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강 교수는 1984년 고려대에 부임한 이후 최근까지 한 달에 보름 이상을 직접 산과 들, 논밭을 다니며 야생 종자를 채취해 왔다. 3일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로 이미 세계적으로 2만여 종의 식물이 멸종 위기에 있거나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자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발아가 가능한 상태의 종자를 확보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은 그가 종자를 찾아 전국을 누빈 지 꼭 3800일째 되는 날이다.

고려대 농과대를 졸업한 강 교수는 197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 제초제 관련 분야를 공부하려 했으나 독일에서 종자 연구의 중요성을 처음 깨닫고 전공을 바꿨다.

“당시 국내에서는 풀을 죽이는 연구만 활발했는데 정작 유럽에서는 풀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법을 공부하는 종자 연구가 더 활발하더군요.”

강 교수는 1984년 귀국 후부터는 아예 카메라와 자, 저울을 들고 전국을 누볐다. 집 주변은 물론이고 월악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단순하게 씨를 얻는 과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종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종자를 구하려면 해당 식물의 정확한 서식지와 종자 성숙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1년 전 직접 답사를 가야 한다. 이듬해 시기를 맞춰 현장을 재방문하더라도 날씨가 맞아야 한다. 비가 내리면 종자가 유실되기 쉬워 1년간의 작업도 실패로 돌아간다. 채취한 종자는 수분이 남지 않도록 바짝 말린 뒤 방부 처리해 영하 20도의 냉동 상태로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된 종자는 수백 년이 지나도 싹을 틔울 수 있다.

작은 ‘노아의 방주’를 운영하려다 보니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때 정부에서 연구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장관이나 담당직원이 바뀔 때마다 끊기기 일쑤였다. 다행히 자신의 뜻을 이해해준 아내의 지지 덕에 아파트를 저당 잡힌 돈으로 지금까지 현장을 다니고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모은 종자들은 이제 농업진흥청과 산림청에서도 탐내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강 교수는 정부의 ‘러브콜’도 모두 물리치고 그동안 자신을 묵묵히 지원해준 학교에 모두 기증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야생 종자은행이라 그 가치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대 측은 “강 교수가 평생 모아온 종자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평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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