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떠나는 양동근… 스승 유재학의 ‘무한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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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번호 물려주며 혹독하게 조련… 리그 최고의 가드로 키운 애제자
유감독 “지도자로 출발하는 동근 어떻게 지원할지 가장 큰 고민”
양동근 “감독님께 앞으로도 배울래요”

17년간 정든 프로농구 코트를 떠나는 양동근(오른쪽)이 1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리그 최고 가드로 키운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양동근은 “코트 위에 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면서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KBL 제공
17년간 정든 프로농구 코트를 떠나는 양동근(오른쪽)이 1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리그 최고 가드로 키운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양동근은 “코트 위에 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면서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KBL 제공
“(양)동근이는 16년 전부터 제가 한 말을 다 적어놨어요. 준비된 지도자죠.”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57)에게 2004년 프로농구에 데뷔한 가드 양동근(39)의 첫인상은 ‘투박함’이었다. 당대 최고의 가드로 이름을 날린 이상민(48·삼성 감독), 김승현(42·해설위원)과는 달랐다. 그들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늘 투지가 넘쳤다. 경기 중 레이업슛을 실수한 뒤에는 불 꺼진 체육관에서 레이업슛 300개를 연습하는 선수였다. 유 감독은 양동근의 그런 근성을 보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양동근이 데뷔하며 유 감독이 처음 모비스 지휘봉을 잡은 2004∼2005시즌. 두 사람은 나란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모비스는 7위(24승 30패)로 시즌을 마쳐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유 감독의 혹독한 조련은 그즈음부터 시작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모비스 관계자들은 “감독님이 (양)동근이를 혼내는 건 옆에서 보기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네가 가드냐?”는 독설이 가슴에 박혔지만 양동근은 유 감독의 지적 사항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패스 궤적을 그린 쪽지를 숙소 곳곳에 붙여놓고 외우고 또 외웠다. 유 감독은 “동근이는 원래 포인트가드가 아니었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 안에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양동근은 “옛날에는 감독님이 참 냉정한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사제(師弟)는 이후 6차례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했다. 양동근은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의 가드로 우뚝 섰다. 이전의 역대급 포인트가드들과 비교해도 최상급의 공격력은 물론 수비에서도 상대 에이스 가드를 틀어막는 ‘스토퍼’ 역할을 수행했다. 모비스의 팀 컬러가 된 유재학표 ‘질식 수비’는 양동근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양동근은 “감독님은 아직도 경기 중에 내가 놓친 부분을 정확히 잡아내고 왜 그렇게 했는지 질문하신다. 감독님께는 늘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배워야 한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은 모비스의 영구 결번이 됐다. 6번은 유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 못한 유 감독은 양동근을 최고의 선수로 키우겠다는 뜻을 담아 6번을 추천했다. 17년을 줄곧 같은 감독과 호흡을 맞췄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유 감독은 1일 KBL센터에서 진행된 양동근의 은퇴식에 참석해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앞둔 제자를 꼭 끌어안았다. 유 감독은 “동근이가 코트에 없다고 생각하면 몸의 어느 한 군데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하다. 이제 지도자로 출발하는 동근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것이 내겐 가장 큰일”이라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양동근#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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