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번호 물려주며 혹독하게 조련… 리그 최고의 가드로 키운 애제자
유감독 “지도자로 출발하는 동근 어떻게 지원할지 가장 큰 고민”
양동근 “감독님께 앞으로도 배울래요”
“(양)동근이는 16년 전부터 제가 한 말을 다 적어놨어요. 준비된 지도자죠.”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57)에게 2004년 프로농구에 데뷔한 가드 양동근(39)의 첫인상은 ‘투박함’이었다. 당대 최고의 가드로 이름을 날린 이상민(48·삼성 감독), 김승현(42·해설위원)과는 달랐다. 그들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늘 투지가 넘쳤다. 경기 중 레이업슛을 실수한 뒤에는 불 꺼진 체육관에서 레이업슛 300개를 연습하는 선수였다. 유 감독은 양동근의 그런 근성을 보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양동근이 데뷔하며 유 감독이 처음 모비스 지휘봉을 잡은 2004∼2005시즌. 두 사람은 나란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모비스는 7위(24승 30패)로 시즌을 마쳐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유 감독의 혹독한 조련은 그즈음부터 시작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모비스 관계자들은 “감독님이 (양)동근이를 혼내는 건 옆에서 보기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네가 가드냐?”는 독설이 가슴에 박혔지만 양동근은 유 감독의 지적 사항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패스 궤적을 그린 쪽지를 숙소 곳곳에 붙여놓고 외우고 또 외웠다. 유 감독은 “동근이는 원래 포인트가드가 아니었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 안에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양동근은 “옛날에는 감독님이 참 냉정한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사제(師弟)는 이후 6차례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했다. 양동근은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의 가드로 우뚝 섰다. 이전의 역대급 포인트가드들과 비교해도 최상급의 공격력은 물론 수비에서도 상대 에이스 가드를 틀어막는 ‘스토퍼’ 역할을 수행했다. 모비스의 팀 컬러가 된 유재학표 ‘질식 수비’는 양동근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양동근은 “감독님은 아직도 경기 중에 내가 놓친 부분을 정확히 잡아내고 왜 그렇게 했는지 질문하신다. 감독님께는 늘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배워야 한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은 모비스의 영구 결번이 됐다. 6번은 유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오래하지 못한 유 감독은 양동근을 최고의 선수로 키우겠다는 뜻을 담아 6번을 추천했다. 17년을 줄곧 같은 감독과 호흡을 맞췄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유 감독은 1일 KBL센터에서 진행된 양동근의 은퇴식에 참석해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앞둔 제자를 꼭 끌어안았다. 유 감독은 “동근이가 코트에 없다고 생각하면 몸의 어느 한 군데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하다. 이제 지도자로 출발하는 동근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것이 내겐 가장 큰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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