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거목 신용하교수 "퇴임뒤엔 고대민족사 연구할것"

  • 입력 2003년 2월 27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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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정년 퇴임하는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토착적 사회학’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종승기자
28일 정년 퇴임하는 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토착적 사회학’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종승기자
“연구가 이어지는 한 정년은 없습니다. 강의 부담에서 벗어났으니까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진 셈이죠. 허허허.”

1975년부터 서울대에서 강의해 온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66)가 28일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식을 갖는다. 신 교수는 ‘독립협회연구’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등의 저서로 사회사(社會史)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80년 한국 사회사학회를 창립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를 본격화했다. 신 교수는 다음 학기부터는 명예 교수로 대학원 강의 한 과목만을 맡는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신 교수는 서구의 이론 수입에 급급했던 초창기 사회학계 풍토에 ‘토착적’ 사회학을 정립하고 정착시킨 학자”라고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정년’이라고 하면 나름의 소회가 있을텐데도 신 교수는 그저 “공부할 시간이 늘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사실 그는 서울대에서도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는 교수’로 널리 알려졌다. 한여름 방학 중에도 연구실에서 러닝셔츠 차림에 바지를 겉어붙이고 연구하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정년을 맞은 요즘도 학교로 출근하는 날이면 오전 7시반까지는 연구실에 도착해 밤 10시반까지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공부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연구는 주로 사회학을 한국의 근대사와 결부시켜 이루어져 왔다. 특별히 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소년기에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당연히 ‘동족 상잔’, 즉 민족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결국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보고 싶었고 거슬러 올라가 19세기부터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던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혹자는 ‘사회학을 하면서 웬 역사학 연구냐’고 하는데 저로서는 불가피한 연구였습니다.”

신 교수는 격동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제주 출신인 그는 8세 때인 1945년 일본군의 ‘소개령’ 때문에 제주를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다 6·25전쟁을 맞았다. 그는 대학 4학년 때는 4·19의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4·19세대’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한국 사회와 민족에 관해 공부해 보려고 사회학과를 택했다”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최문한 교수의 ‘사회사상사’와 이상백 교수의 ‘사회사’ 강의를 듣고 전공을 굳혔다.

그의 연구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독립운동사 연구’. ‘독립협회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일제 강점기 전후의 한국 민족의 역사와 한국 사회에 관한 연구를 이어왔다. 신 교수는 “민족 문제, 특히 일제 강점기 전후의 민족 문제를 연구하는 데 독립 운동의 역사는 필수 과목”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근대사를 해석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민족주의는 한 민족의 자주와 독립, 통일에 기여하는 아이디어”라며 “결코 과거의 제국주의적,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제창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을 견지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에서 ‘목적’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풍부한 사료가 뒷받침되는 철저한 실증주의가 그가 진행해온 방법론이다. 그는 “사회과학은 철저히 귀납적인 학문”이라며 “사실을 통해 이론을 도출해야 하며 그 이론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는 주저없이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며 후학들에게 ‘뼈있는 충고’를 던졌다.

신 교수는 요즘 올해 말 출간을 목표로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 하권을 집필 중이다. 그는 “참조할 논문이 많아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동북아 지역의 고대 민족사 연구도 병행하고 있는데 특별히 전공과는 다른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재미있다.

“한국 민족의 형성 과정에 대해 늘 궁금했어요. 이에 관련해 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히 주변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도 찾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죠. 한국 민족의 뿌리에 대해 설명해 놓은 책이 있으면 읽겠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흡족한 책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아예 내가 스스로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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