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대화’ 출판기념 한자리에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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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서로를 끔찍이 존경하고 흠모해 온 네 사람. 왼쪽부터 법정 스님, 피천득 김재순 선생, 작가 최인호 씨. 신원건기자
평소 서로를 끔찍이 존경하고 흠모해 온 네 사람. 왼쪽부터 법정 스님, 피천득 김재순 선생, 작가 최인호 씨. 신원건기자
《수필가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94) 선생, 우암 김재순(友巖 金在淳·81) 전 국회의장, ‘무소유’의 법정(法頂·72) 스님, ‘상도(商道)’의 작가 최인호(崔仁浩·59) 씨. 좀처럼 한자리에 모시기 어려운 명사 네 분이 모처럼 오찬을 같이하며 담소를 나눴다. 얼마 전 네 사람의 대담집 ‘대화’(샘터사)가 출간된 것을 기념해 출판사 측에서 조촐한 송년 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겨울답지 않게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비치는 17일 오후 북한산 자락의 한 음식점에서 평소 서로를 끔찍이 존경하고 흠모해 온 네 사람은 건강과 나라의 장래, 교육, 여성 등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날씨가 그야말로 ‘난동(暖冬)’을 부리는 군요.” (법정)

“15년 전 스님이 계시던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을 방문해 여수 등지로 함께 여행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초콜릿을 사다드렸지요. 스님과 함께 다니면 어디서든 대접을 잘 받은 일이 기억나는군요.” (금아)

“1975년 불일암을 지으면서 여러 가지로 느낀 점이 많습니다. 공사를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추석 때도 인부들을 독려한 것이 마음에 걸려 몇 해 뒤 그 분들에게 사례를 하려고 했는데 모두들 돌아가셔서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법정)

법정 스님과 작가 최인호. 스님은 어느 직업 작가 못지않게 책을 많이 읽는 분이고, 한 때 출가를 꿈꿨던 작가는 ‘불교적 천주교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스님과 작가는 아직도 고집스럽게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쓴다.

“저는 올 봄에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아직 정을 붙이질 못하고 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집니다. 다만 매일 같이 청계산에 오르며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작가)

“최 선생님이야 오래 전부터 ‘청계산 주지’ 아니신가요. 청계산은 조선조 박해 받던 불교도들이 서울에 입성하기 전 옷을 갈아입거나 시주를 숨기던 곳 이지요.” (법정)

“저 개인적으로는 6·25전쟁 당시 아버지와 청계산으로 피란 가서 천막을 치고 산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존경해 소설로도 쓴 경허(鏡虛) 스님도 그 곳에서 동진출가(童眞出家)하셨고….” (작가)

금아와 우암은 30년 넘게 해마다 첫눈이 오면 서로 알리곤 하는 사이. 1979년 금아는 우암의 생일선물로 르누아르의 화첩을 주었고, 우암은 그 반례(返禮)로 일본에서 사 온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책을 선물했다.

“저는 요즘 시골에서 책 읽고 산책하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고전(古典)과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일제강점기에는 고교에 들어갈 때는 경쟁이 심했지만 일단 입학한 뒤에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우암)

“아마 독서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책 내용을 시험에 낸다고 하면 그야말로 난리일 텐데….” (법정)

우암이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가 “정다운 식탁에는 현명한 사람보다는 재미있는 사람을, 잠자리에서는 훌륭한 여인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토론할 때는 다소 정직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사람을…”이라고 한 얘기를 들려주자, 금아는 “만년의 아인슈타인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를 말한다.

금아와 작가는 자타가 인정하는 연적(戀敵) 사이. 한 여류 정신과 의사는 금아를 가장 ‘따뜻한 남성’으로, 작가를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구분한 바 있다.

“선생님 요즘도 데이트 많이 하시나요.” (작가)

“그럼.” (금아)

“미인들이 선생님을 너무 사모해서 질투가 나네요.” (작가)

“최 선생이야말로 인기가 있으시지. 내 구순 잔치에 한 여성이 최 선생 옆자리에 앉고 싶다고 해 데려갔는데 부인을 동반하고 오셔서 할 수 없이 내 옆자리에 앉힌 적도 있어(웃음).” (금아)

“금아 선생님이 여성들한테 인기가 있으신 것은 ‘인연’ 같이 맑고 아름다운 수필을 쓰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암)

“저는 그런 재주도 없고, 소설가들은 그렇게 짧은 글을 쓰면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곤란합니다(웃음).” (작가)

88세 된 아내와 해로하고 있는 금아는 스스로 딸을 편애했다고 고백한다. 비가 오거나 몸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집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미국 유학을 떠난 딸은 아버지가 그리워 세 번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딸은 지금 세계적 물리학자가 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부계 중심에서 모계 중심으로 옮아가는 것 같아요. 육아 교육 재산관리에서 모두 여성이 주도권을 갖게 됐지요. 여성들의 오랜 고난과 희생의 결과인데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정(家庭)’은 소멸되고, ‘가옥(家屋)’만 남게 될 수도 있지요.” (법정)

“80 고개를 넘으니 곁에 남은 친구들이 거의 없어 쓸쓸하기만 합니다.” (우암)

“소식(小食)과 유머가 장수의 비결이지요.” (금아)

금아가 어떤 양반 집 종의 아들이 엽전 하나를 삼켜서 야단법석이 나자 한 나그네가 “얘, 너희 대감님은 몇 만 냥을 먹어도 끄떡없는데 큰일 나겠니”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우암도 어느 신부가 사형수에게 “당신은 오늘 저녁 주님과 만찬을 같이할 것”이라고 말하자, “신부님 먼저 가시죠. 나는 지금 단식 중입니다”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제 은사이신 효봉(曉峰) 스님은 노년에 귀가 잘 안 들리셨는데 그래도 ‘시시한 소리 안 들어서 좋다’고 하셨지요. 이런 긍정적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법정)

두 시간여에 걸친 이들의 대화는 이날 아침 금아가 모처럼 지은 오행시 ‘소망’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아쉬움을 고했다.

‘내게는 하나/버릴 수 없는 소망이 있습니다/먼발치로 가끔/그의 모습을/바라다보는….’(전문)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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