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2년 산호해 전투 시작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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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에 둘러싸여 있고 산호초가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산호해(珊瑚海). 2000km에 이른다는 산호초 그레이트배리어리프가 바로 이 해역에 있다.

지금은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이곳 역시 태평양전쟁의 전화(戰火)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을 공격해 태평양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동남아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1942년 4월 파푸아뉴기니의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해 산호해에서 미국과 호주의 해상교통로를 봉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미국은 항공모함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중심으로 한 함대를 산호해로 급파했다. 일본도 항모 쇼가쿠와 즈이가쿠를 출동시켰다.

5월 4일 새벽 미 함대는 솔로몬 제도의 툴라기 항에 정박해 있는 일 함대를 함재기로 기습했다. 최초의 ‘항모 대 항모의 전투’로 기록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습은 큰 전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적에게 항모의 존재만 알려줬다.

양측은 상대를 먼저 발견하려고 마치 ‘눈을 가린 채 술래잡기하듯’ 안간힘을 썼다. 7일 미 해군의 함재기들이 먼저 포트모르즈비 상륙작전에 투입되던 일 항모 쇼호를 격침했다. 쇼호는 태평양전쟁에서 격침된 최초의 항모가 됐다.

8일엔 양 측 정찰기가 거의 동시에 적함을 찾아냈다. 일본이 한발 빨랐던 데다 날씨마저 미 측 해역 ‘맑음’, 일 측 해역 ‘흐림’으로 일본에 유리했다. 게다가 일 정찰기 조종사는 돌아갈 연료까지 소진하며, 출격한 동료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리고 요크타운에 달려들었다. 요크타운은 폭탄 한 방에 갑판이 손상돼 항모의 기능을 잃었고 렉싱턴은 대파됐다. 미군은 함체를 일본에 뺏길까 봐 스스로 렉싱턴을 수장했다. 미군기의 절반쯤은 적함을 찾지도 못한 채 기수를 돌려야 했고 나머지만 공격에 나섰다. 그나마 쇼가쿠 갑판에 폭탄 몇 발을 명중시키는 데 그쳤다.

이 전투에서 일본은 전술적으로는 승리했으나 포트모르즈비 상륙작전을 포기해 미군의 해상교통로를 유지시켜 주는 전략적 오판을 했다.

산호해 전투는 항모 대 항모의 전투였지만 함정끼리는 서로 적함을 보지도, 적함에다 함포 한 방 쏴 보지도 못하는, 또 다른 ‘최초’를 기록했다.

6월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대패한 일본은 7월 육상으로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하려 했으나 패퇴하고 말았다. 이때 한국인 징병 징용자도 많이 희생됐다. 산호해를 관광하는 동포라면 그곳을 맴돌고 있을 억울한 넋들을 위해 꽃 한 송이쯤 바치는 게 어떨지.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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