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부산 광명고 故김지환교사 '참교육 짧은 삶'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9시 06분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한 분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숲 속의 나무보다, 길가의 코스모스보다도 더 아름다웠습니다. 참다운 삶을 살다 가신 한 분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참된 삶이기에 하늘도 울고 새들도 울고 우리도 울었습니다….”(1학년 2반 이정기군의 ‘선생님의 삶’)

부산의 한 고교 수학교사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지 보름이 지난 뒤에도 제자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지면서 뒤늦게 그의 ‘참교육’ 실천이 주위에 알려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 영도구 동삼3동 광명고 1학년 2반 담임 김지환(金知煥·42)교사는 16일 오후 5시반 7교시 수업을 마치고 학교 뒷산인 봉래산에서 동료 교사와 암벽을 타다 16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수십 여명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빈소가 차려진 부산 영도구 봉래동 3가 해동병원으로 바로 달려와 밤을 지샜다. 다음날인 17일에는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를 이뤘고 빈소에는 500여명의 졸업생들이 몰려와 “이 병원이 생긴 이래 최다 조문인파”라며 병원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랐다.

지금도 인터넷 홈페이지 ‘아이러브스쿨’의 광명고 게시판에는 매일 김교사를 추모하는 제자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왜 그의 죽음을 그렇게 애도하느냐는 물음에 학생과 동료 교사들은 사랑으로 ‘참교육’을 실천한 ‘부처’(김교사의 별명)였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89년 개교 이래 줄곧 이 학교에서 봉직해온 그는 92년 학생 7명이 퇴학당하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 이들을 모아놓고 검정고시 공부를 시켜 4명이 고졸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이 중 2명은 대학까지 진학시켰다. 교내에 전설처럼 남아 있는 이 일은 “교사는 제자의 학교생활만이 아니라 사회생활도 책임져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에 따른 것.

단골 지각생은 출근하면서 집에까지 찾아가 함께 등교했다. 문제학생들을 데리고 지리산 등산을 하며 마음을 바로잡게 한 일도 숱하다.

92년 1회 졸업생인 최홍준씨(28·회사원)는 “선생님 수업 중에 급우와 싸운 일이 있었는데 내 자존심을 생각해 당시에는 아무 말씀이 없다가 나중에 따로 불러 회초리로 50대를 때린 뒤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고 회고했다. 역시 1회 졸업생인 임철균씨(28·회사원)는 “김선생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선생님보다 더 훌륭하셨다”고 말했다.

1학년 2반 문병호군(16)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난 것은 내 일생에 큰 행운”이라며 “선생님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등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너무 사랑한 탓인지 그에게는 자녀가 없다.

군인이 꿈이었던 고인은 83년 육사에 합격했으나 심한 축농증 때문에 체력검사에서 떨어져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온 뒤 경북대 통계학과에 뒤늦게 들어가 87년 졸업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4년 동안 막노동과 공장 야간경비 등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어려운 학생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부산〓석동빈기자>mobid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