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향기][북카페]'정신과 영수증'펴낸 정신씨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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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아무도 나를 예뻐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옷 한 벌을 샀다. 2001년 8월 2일 오후 5시30분 원피스 76240원 ESPRIT.’

정신(본명 정경아·28)씨는 스물다섯살 때 커피우유 2개와 백열전구, 손톱깎이, 홍콩을 경유하는 서울∼파리 왕복항공권을 샀고 그 영수증을 모아두었다. ‘소비’가 남긴 흔적을 통해 그는 일상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졌다. 2001년 당시 25세였던 정씨 삶의 궤적이 영수증 사진과 함께 ‘정신과 영수증’(영진닷컴)에 담겼다. 날짜별로 왼쪽 페이지에는 영수증 사진,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에 관한 시적 산문을 실었다. 언뜻 보아 사진집인지 산문집인지, 아니면 치기 어린 장난인지 갸우뚱거리게 하는 형식의 책이다.

정씨는 서울예대 광고창작과를 졸업하고 1997년 친구 ‘사이다’(본명 김윤희)와 함께 광고기획사 ‘정신사이다’를 차렸다. 당시 ‘베네통’ 액세서리 한국편 지면광고를 따내고 ‘잘 나가는 젊은이들’이라며 TV뉴스에도 소개됐다.

그러다 투자를 받아 회사 규모를 불렸고 “한 회사를 대표하는 무거운 자리에서 매일 졸기만 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그래도 ‘새옹지마(塞翁之馬)’랄까? 그때 영수증들과 연을 맺게 됐다. 법인회사를 운영하면서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 까닭에 영수증을 꼼꼼히 모으고 기록하기 시작한 것.

“영수증마다 기록을 했어요. 그것을 살 때의 기쁨과 슬픔, 그날의 날씨,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들려오던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삶을 영수증을 통해 스스로 관찰하게 된 거죠. 훗날 2001년 서울에 살았던 한 여자의 소비 패턴으로 남을 수도 있을 테고요.”

회사를 그만둔 정씨가 ‘배고픈 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수증 프로젝트’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정씨는 이전에 잠시 일한 적이 있는 광고대행사의 사장을 찾아갔다. 정씨는 “내 기록을 사 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고 2002년 5월∼2003년 7월 그 회사 화장실 게시판에 영수증 일기가 연재됐다. 와중에 ‘어느 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준을 만났다’는 SK텔레콤의 모바일서비스 카피도 썼다.

“서른살쯤 결혼해 이듬해 아이를 갖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영수증은 또 얼마나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할까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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