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세월 인도에 닻을 내리고' 펴낸 현동화씨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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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장'의 주인공차럼 제3국을 선택했던 반공포로 중 한 사람인 현동화씨. 눈언저리에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그는 광화문 부근을 둘러보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변영우기자
소설 '광장'의 주인공차럼 제3국을 선택했던 반공포로 중 한 사람인 현동화씨. 눈언저리에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그는 광화문 부근을 둘러보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변영우기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지나해의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최인훈의 소설 ‘광장’ 중)

이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의 ‘밀실’과 북의 ‘광장’ 어느 곳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 6·25전쟁에 휩쓸려 전쟁포로가 된다. 남과 북은 각각 자기편으로 오라고 설득하지만 결국 제3국행을 택하는 이명준. 그러나 자신이 갈망하는 곳은 지상 어디에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푸르고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여기 또 다른 ‘이명준’이 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인민군 중위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현동화씨(71). 그 역시 이명준처럼 반공포로로 제3국행 배에 올라 인도로 향했지만 그는 죽음이 아닌 성공적인 삶을 일궈냈다.

현씨는 격동기를 지나 온 자신의 역정과 50여년간의 인도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 낸 ‘격랑의 세월 인도에 닻을 내리고’(나무와숲)를 최근 펴냈다. 인도에서 잠시 귀국한 현씨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그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자유의 다리를 처음 봤습니다. 만약 그 길을 건넜다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배를 타고 인도로 가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진하게 느껴지더군요.”

현씨는 1950년 10월 강원 화천전투에서 파편에 맞아 크게 부상한 뒤 부대를 이탈해 국군에 귀순했다. 반공포로가 된 그는 마침내 제3국행을 결심하고 54년 1월 동료 반공포로 87명과 함께 인천항을 떠났다.

“소설 속의 이명준은 남과 북에 모두 환멸을 느껴 제3국을 택했지만, 저는 보다 개인적인 동기가 강했습니다. 부상으로 생긴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고, 못 다한 공부를 마저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에서도 입국희망자를 받아준다는 소식을 듣고 현씨는 멕시코 행을 결심했다. 여의치 않으면 미국으로 밀입국이라도 할 참이었다.

“수송선 ‘아스토리아’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침에 배가 떠날 때 선착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150명 남짓한 반공 청년단원들이 ‘한국의 품으로 돌아오라’ ‘내려오라’고 외칠 때는 가슴이 몹시 쓰리고 아팠습니다. 아슴푸레 멀어지는 육지를 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의 첸나이 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자신이 선택한 국가로 흩어졌다. 현씨를 비롯한 6명은 인도에 머물며 멕시코 정부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2년여간 기다렸으나 끝내 아무런 소식이 없자 멕시코 행을 포기한다. 뉴델리에서 5년이 넘도록 무국적 상태로 있었던 이들은 62년 한국총영사관이 인도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었다.

50년대 말 동료들과 함께 인도에서 양계장 사업을 시작한 현씨는 인도 낙푸르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현재 여행사와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국땅에 뿌리내린 현씨의 삶의 줄기는 여전히 힘차게 뻗어가고 있다.

“역사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지나왔지만 내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 인생역정을 정리한 이유는, 다만 제3국행을 택한 반공포로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겨 두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서죠.”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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