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종로꼬마' 이상욱씨 시신 기증…아름다운 인생마감

  • 입력 2000년 2월 18일 19시 23분


‘마지막 의리파 주먹, 보스 곁으로 가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함께 종로통을 누비며 ‘조선 주먹’의 기개를 떨쳤던 ‘종로 꼬마’ 이상욱(李相旭)씨. 의리하나를 생명처럼 여겨 ‘우리 시대의 마지막 주먹’으로 불렸던 이씨가 자신의 전재산인 ‘몸’을 세상에 기증하고 15일 파란만장했던 82세의 삶을 마쳤다.

이씨는 김두한과 함께 어린 시절을 거지로 보냈고 그 후 김두한의 둘도 없는 친구로, 또 가장 믿음직한 부하로 종로 주먹패를 이끌었던 열혈남이었다. 10여년 간 동맥경화를 앓은 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이씨는 생전에 부인(72)과 3남1여의 가족에게 “내가 죽으면 꼭 시신을 기증해달라. 이것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의리”라고 당부했다.

“의리를 지키며 남을 돕는 것은 김두한과 내가 평생을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는 게 그가 시신을 기증한 이유였다. 이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18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해부학 연구를 위해 기증됐다.

이씨는 젊은 시절 작은 키(160㎝)로 인해 주먹패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종로 꼬마’라는 애칭을 얻었다. 하지만 중국무술을 익혀 동작이 대단히 빠르고 기습가격에 능해 김두한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고 전해진다.

덩치 큰 상대방의 가슴 밑으로 파고들어 순간적으로 얼굴을 들이받는 ‘박치기’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그의 장기.

이씨는 60년대 군사정권의 ‘깡패 소탕’ 정책에 의해 주먹생활을 청산하고 종로에서 전기사업을 시작했다. 돈도 제법 벌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탕진하다시피 해 한번도 넉넉한 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

70년 기독교에 귀의한 뒤에도 ‘용팔이’ 김용남씨나 ‘낙화유수’ 김태련씨, 김두한의 절친한 친구 김동회씨 등 쟁쟁한 주먹들과 교류를 계속했다. 주먹 외에 딱히 장기가 없어 살길이 막막했던 후배들에게는 “사업자금으로 쓰라”며 선뜻 큰돈을 내놓기도 했다. 72년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인 김두환이 숨졌을 때 “내 몸이 반도막 난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며 1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던 이야기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강서구 방화2동 자택에 마련됐던 빈소에는 대부분 60,70대인 이씨의 후배 수백명이 찾아와 옛 시절을 회상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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