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고통 속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코스 완주 이윤혁 씨

  • Array
  • 입력 2010년 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삶의 끝에서 찾은 희망, 포기는 없다”

2009년 7월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했을 당시의 이윤혁 씨. 코스 막바지에는 윗배가 부어올랐고 소화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통증을 이겨내고 7주 만에 코스를 완주해냈다. 사진 제공 이윤혁 씨
2009년 7월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했을 당시의 이윤혁 씨. 코스 막바지에는 윗배가 부어올랐고 소화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통증을 이겨내고 7주 만에 코스를 완주해냈다. 사진 제공 이윤혁 씨
“모두들 ‘죽으려 하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전 살기 위해 간 것이었어요. 제게 하나 남은 자전거로 ‘살아갈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떠났죠.”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300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죽음의 레이스에 도전하고 돌아온 한국 청년이 있다. 전 세계에서 200여 명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이윤혁 씨(2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던 시절 이 씨는 소위 ‘몸짱’이었다. 보디빌딩 선수로 전국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6년 학사장교로 임관해 훈련을 받으면서 몸에 이상신호가 찾아왔다. “다른 동기들은 살이 빠지는데 저만 허리 사이즈가 2인치나 늘어났더라고요.” 병원을 찾았을 때엔 이미 배 속에 종양으로 인한 복수가 가득 차 있었다. 병명은 결체조직작은원형세포암.

‘보디빌더’의 꿈은 날아갔고 항암치료만이 지루하게 반복됐다. 지쳐가는 그를 붙들어 준 것은 고환암을 이겨내고 ‘투르 드 프랑스’ 대회를 7연패한 세계적인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의 책이었다. 그의 투병생활은 이 씨의 것과 그대로 겹쳐졌고 책을 읽고 난 후 이 씨는 바로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다.

이렇게 시작된 자전거와의 인연은 이 씨를 2009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로까지 이끌었다. 2009년 5월 경제적인 이유로 더는 항암치료를 할 수 없었던 그는 무작정 프랑스행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도전해 봐야겠다 싶더라고요. 또 희귀 암 환자들이 보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도 알리고 싶었어요.” 2009년 7월 비록 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지도를 보고 선수들이 가는 코스를 그대로 따라갔다. 선수들은 3주면 끝나는 레이스를 이 씨는 7주에 걸쳐 완주했다. 코스 막바지에는 윗배가 부어올랐고 소화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코스를 완주했고 개선문 앞에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이 씨는 현재 그 얘기를 책으로 쓰고 있으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독립영화에도 참여하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이 제게 살아갈 희망을 줬듯이 저도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여건은 좋지 못하다. 부모님은 외아들 수발을 하느라 일을 포기하셨고 이제 어머니만이 간간이 생활비를 번다. 전에 쓰던 항암제는 효과가 떨어져 새로 나온 항암제를 써야 하지만 새 항암제는 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다.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측에서 제공하던 약도 1회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웃는다. “암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몸속의 종양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거예요. 전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