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王 ‘상사맨’ 변신 세계 비즈 격전장 뛴다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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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인터내셔널 공채 입사한 이치성 씨 이색경력
“매일 운동하면 근육 생기듯
목표 간절하면 못할일 없어”

《올해 6월 입사한 대우인터내셔널의 신입사원 중에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가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스피릿MC’에서 2004년 미들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이치성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재학 당시 격투기에 입문해 3년 만에 정상에 올라 화제가 됐던 선수다. 아직도 많은 격투기 팬 사이에서 ‘챔프’로 통하는 그가 ‘상사맨’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본사를 찾았다.》

회의실에서 마주앉은 그는 새하얀 와이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를 단정히 맨 모습이었다. 트렁크 하나만 입은 채 강펀치로 상대를 때려눕히던 ‘파이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챔피언 때의 그 에너지를 쏟아 부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았습니다. 바로 비즈니스죠.”

사실 이 씨는 중학교 시절 반에서 1, 2등을 다투던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해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홀로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검정고시를 보고 국내 대학에 진학했지만 해외를 무대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시절 치솟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어딘가 풀 곳이 필요했죠. 그러다 친구랑 우연찮게 격투기 동영상을 봤는데 조금만 연습하면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 싶더라고요.”

이 씨는 대학까지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프로에 도전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심한 거니까 원 없이 해보고 돌아가겠다”고 설득했다. 결국 ‘외도’에서 뜻을 이루고 2008년 봄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취업의 세계는 격투기의 그것보다 냉혹했다. 여기저기 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여기서 이러느니 아예 외국에서 일을 찾는 게 낫겠더라고요. 그렇게 찾은 일자리가 싱가포르에 있는 영국계 회사의 스포츠 마케팅 세일즈였어요.”

말이 취업이지 최소한의 기본급에 비즈니스 성과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철저한 ‘실적급’ 일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한번 정한 먹이엔 무섭게 덤비는’ 특유의 근성으로 1년 만에 정상급 세일즈 사원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이 열정으로 ‘대우’ 같은 브랜드를 달고 일하면 정말 재밌겠다 싶었죠. 우리나라에서 상사업무하면 대우가 최고잖아요. 싱가포르에서 무작정 휴가를 내고 한국에 온 적도 있어요. 대우의 인사담당자를 찾아가서 날 뽑지 않겠냐고 막 들이대면서(웃음).”

결국 이 씨는 올해 공채에서 대우의 상사맨이 됐다. 요즘 이 씨는 기계본부 플랜트3팀에서 유럽시장 개척 업무를 배우고 있다. 현지시간에 맞추다 보면 퇴근은 늦은 저녁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토요일에도 학원에서 비즈니스 프랑스어를 배운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일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담당 분야가 “무겁고 큰 먹이(중공업 사업)를 찾아 헤매는 일”이라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람들은 선수들이 어떻게 저렇게 근육을 만들었을까 하지만 하루도 안 빼고 매일 같은 곳에 자극을 주면 근육은 만들어지게 마련이거든요. 몇 년 후 거울을 봤을 때 문득 자신의 변한 모습을 알게 되듯 시간이 지나면 비즈니스맨으로서도 반드시 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명확한 목표에 간절히 도전하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 챔피언 시절 얻은 교훈이에요.”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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