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오리엔트 특급열차 운행 폐지

  • 입력 2006년 5월 22일 02시 59분


코멘트
14명의 승객을 태운 열차가 폭설 때문에 정지하고 있는 동안 한 노인이 살해됐다. 아무도 열차를 빠져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었던 상황. 승객들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굴까. 다행히 승객 중에는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있어서 퍼즐을 풀어나가듯 치밀하게 진실을 파고든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무대인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운행하던 호화 열차였다.

벨기에의 사업가 조르주 나겔마케르가 사업을 주도해 1883년 처음 기적을 울린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호화로운 침대차와 식당차, 숙녀용 객실을 갖춘 세계 최초의 대륙횡단 특급열차였다. 전체 노선은 파리(프랑스)∼로잔(스위스)∼베네치아(이탈리아)∼베오그라드(유고)∼소피아(불가리아)∼이스탄불(터키)까지 약 3000km.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등에도 열차 정거장이 있었다.

동양의 신비로운 역사를 간직한 이스탄불의 매력에 이끌린 유럽의 왕족과 귀족, 저명인사들이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애용했다. 유럽 상류층은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고풍스러운 도시와 알프스의 풍광, 이스탄불의 신비로움을 만끽했다. 이들은 또한 열차를 중요한 사교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은은한 실내 음악과 고급 요리, 양탄자, 벨벳 휘장, 스페인제의 부드러운 가죽을 씌운 안락의자, 마호가니로 장식한 천장…. 열차의 시설과 분위기는 고급 사교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숱한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1919년 재개됐다. 당시 이 열차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가려면 생플롱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생플롱 오리엔트 특급열차’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다시 멈췄다가 1947년 재개됐지만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다. 이후에도 유럽을 횡단하면서 동서양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고급 여행가들을 쉼 없이 실어 날랐지만 비행기 등 다른 교통수단의 발달로 승객이 계속 줄었다.

적자를 견디지 못한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1977년 5월 22일 마침내 ‘역사의 터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후 파리 베니스 로마 프라하 등 일부 구간의 단거리 노선이 부활했지만 옛날의 명성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