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장애인父子 14년 돌본 주부 엄연호씨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3분


「申福禮 기자」 큰아들 철희(26)의 대학졸업식을 앞둔 어머니 엄연호씨(44)는 요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화재로 얼굴과 다리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손가락 10개를 모두 잘라내야 했던 철희가 갖은 고생끝에 내달 인하대 법학과를 학업우수장학생으로 졸업하기 때문이다. 사랑 하나로 헤쳐온 지난 14년간의 힘겨웠던 세월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간다. 『지금 그렇게 다시 시작하라면 할 수 있을까…』 엄씨는 철희의 생모가 아니다. 본처가 인연을 끊고 떠나버린 불구의 남자와 그 아들. 지난 83년 갑작스런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고 재산마저 잿더미로 날려 정부가 주는 구호양곡과 연료비에 목을 걸었던 이들 부자를 남편과 아들로 택한 그녀였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고 친정어머니로부터는 내쫓긴 딸이 됐지만, 사랑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아니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 사랑한 남자였어요. 세관 공무원이었지요. 직장이 무역회사라 세관에 자주 가야 했는데 절차가 까다롭고 불친절해 죽기만큼 싫었어요. 어느날 지금 남편이 일을 처리해줬는데 다른 담당자들과는 달랐어요. 친절하고 자상했지요. 혼자 사랑을 키웠지만 알고보니 유부남이었어요』 입술을 깨물며 그를 잊었다. 그리고 6년. 그가 사고를 당했고 아내마저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달려가서 만난 그는 몸의 절반이상이 3도화상으로 썩어가고 있었고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1년 이상 병원생활을 하면서 일곱번이나 피부이식수술을 받았다. 『퇴원해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셋방을 얻고 시골에 맡겨져 있던 둘째아들을 데려왔어요. 생선장수 백화점종업원 화장품외판원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고생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갖춘 사람들이 모르는 큰 기쁨도 맛보며 살았습니다』 4년동안 방에서만 지내던 남편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 일 돕기에 나섰다. 철희도 6개월간 눈물겨운 연습 끝에 한 손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일그러진 얼굴이 창피해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다니는 철희에게 웅변연습을 해보도록 했다. 철희는 곧 남앞에 나서는 두려움을 이겨냈고 전국웅변대회의 상이란 상은 거의 휩쓸면서 인천을 대표하는 학생 웅변가로 자라주었다. 그리고 올봄 대학을 졸업하고 법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성균관대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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