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코로나, 세계질서 완전히 바꿀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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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 거장, 새로운 질서 강조
“무작위적-파괴적인 위협 느껴… 2차대전 때 벌지전투 연상케 해… 세대 걸친 정치-경제 격변 가능성”
전세계 협력-계몽주의 가치 촉구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초현실적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지 전투’에 비유했다. 동아일보DB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초현실적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지 전투’에 비유했다. 동아일보DB
‘미국 외교의 거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97)이 3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1979년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주인공으로 미국 외교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곳이 될 것”이라며 “미 정부는 바이러스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계획하는 시급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유대계 이민자 아들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코로나19로 인한 초현실적인 상황은 ‘벌지 전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면서 “(벌지 전투 때처럼) 특정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파괴적인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벌지 전투는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25일까지 계속된 전투로 독일군이 연합군에 대항해 벌였던 최후의 반격이었다. 양측의 사상자는 약 19만 명에 달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그러나 “당시 미국은 국가적 목표 아래 단합돼 있었지만, 국가가 분열된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정부가 필요하다는 점이 중대한 차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에 자국 중심적인 대응책을 내놓으며 각자도생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국가의 번영은 정부가 재난을 예측하고 안정을 복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는 시점에 수많은 국가가 실패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국 지도자들이 이번 위기를 국가 단위에서 대응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국경을 인식하지 않는다”면서 “개별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인 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보건 위기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정치, 경제의 격변은 세대에 걸쳐 이어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자유세계의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장벽의 시대’가 되살아날 수 있다. 미국은 계몽주의 가치들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헨리 키신저#코로나19#장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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