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인공호흡기’ 확보 전쟁…글로벌 車회사들도 제작 나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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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등 세계 정상부터, 글로벌 자동차 기업 최고경영자(CEO), 세계 유명 대학의 연구자들 머리 속을 지배하는 문구가 있다.

“인공호흡기를 하루라도 빨리 생산하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인공호흡기’ 확보에 각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다. 주요 대학 연구자 사이에서도 제작이 쉽고 안전한 전염병 인공호흡기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 차원의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BBC와 AFP 등에 따르면 각국 정부의 요청으로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인공호흡기 제작에 나서고 있다. 영국 롤스로이스, 프랑스 푸조, 일본 마루티 스즈키 등 각국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대표적 예다. 미국 포드는 지난달 30일 “미시간주 공장을 이용해 향후 100일 동안 5만개 인공호흡기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포드, GM 등 자국 자동차 기업에 강제적으로 인공호흡기 생산을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언급한 후 “빨리 생산하라”며 압박했다.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부탁으로 인공호흡기를 개발해 보급할 예정이다.

코로나 환자의 30%가 폐에 이상이 생긴다. 인공호흡기는 코로나19 환자의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데 꼭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자 6명 중 1명은 인공호흡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인공호흡기 인프라 차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률 차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와 언론의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치명률이 11%대인 이탈리아는 활용가능한 인공호흡기가 전국 3000여대에 불과하다. 인구 10만 명 당 약 5대 수준이다. 치명률이 7%대인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5100대, 8200여대로, 인구 10만 명 당 7대, 12대다. 치명률 1%대인 독일은 인공호흡기가 설치된 병상이 2만5000여개로, 10만 명 당 30대에 육박한다.

WHO는 조만간 전 세계 확진자가 100만 명, 사망자는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국마다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비상사태가 걸린 상황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의료 책임자 인 엔리케 루이스 에스 쿠데로 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당장 인공호흡기 등 장비가 앞으로 3배는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선별적으로 인공호흡기를 쓰자는 권고까지 나올 정도다. 영국의사협회(BMA)가 1일 사망 가능성이 높은 코로나19 환자에게는 인공호흡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전국 병원에 내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은 당장 다음주 2만 개 이상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가용 가능한 호흡기는 수십 개에 불과한 탓이다.

문제는 의료기기 전문회사가 아닌 업체들이 만든 인공호흡기의 안정성이다. 자동차 회사 중심으로 인공호흡기 제작에 나선 이유는 환자 폐로 공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마치 자동차의 흡기, 배기 원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는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안전성, 장기간 작동 지속성 등 보다 정밀한 제작이 필요하다.

화학물질 세척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영국 의료기기 전문회사 팬론의 제품 책임자 크렉 탐슨 씨는 BBC에 “규제가 엄격한 인공호흡기는 제작, 출시하는 데만 2, 3년이 걸린다”며 “차라리 기존 의료기기 회사들이 인공호흡기 공급을 늘리데 (정부가) 중점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병원 현장에서도 전문업체가 만들지 않은 의료기기를 활용하다 자칫 의료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AFP는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개조해 인공호흡기를 만드는 모습은 2차대전 때 이들 공장이 탱크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며 “그러나 생산원리가 비슷해도 자체적으로 호흡기를 생산할 자동차 회사는 드물고 결국 전문회사 부품에 의존해야 해 공급은 미지수”라고 평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의 머리 속에는 인공호흡기란 단어가 ‘수출 효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인공호흡기 제조업체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주문이 밀려들어 24시간 풀가동 중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세계 54개국이 코로나 사태로 의료장비 수출을 엄격히 제한한 탓에 중국 등 일부 국가만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보다 쉽고 안정적인 코로나용 인공호흡기를 만드는 전 세계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코넬대, 아일랜드 더블린대 등 세계 곳곳의 연구자들은 개방형 인공호흡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집단지성을 통해 3D프린터와 소형 모터 활용 등 내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생산 단가가 낮고 안전성을 담보한 오픈 소스형태의 인공호흡기 개발이 목표다.

코로나 사태처럼 전염병이 창궐해 기존 인공호흡기가 부족할 때 사용되는 위기대처용이다. 제작 후에는 저작권, 특허권 없이 누구나 제작할 수 있게 해 전염병이나 아프리카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인공호흡기 설치 비율이 높이는 게 목적이다. 현재 전 세계 연구자들이 연계돼 최소 12개의 프로토타입 인공호흡기가 개발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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