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락에 에너지 기업 휘청… 금융회사들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

[코로나19 확산]
美 셰일가스 산업에도 타격

요동치는 세계 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과 유가 폭락 등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10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외벽에 표시된 환율상황판의 모습. 급등세를 이어가던 환율이 이날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9일(현지 시간) 미국 증시 급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와 함께 국제유가 대폭락이었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생산 원가가 줄어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가격 하락은 다국적 에너지 기업의 수익 악화, 미국 셰일가스 개발 업체 타격, 금융회사 부실 증가로 이어지는 이른바 ‘역(逆)오일쇼크’를 초래한다.

실제로 9일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에너지 섹터는 전 거래일 대비 20.1% 떨어지면서 뉴욕증시 하락세를 주도했다. 메이저 원유 개발 업체인 엑손모빌이 12.2% 하락하는 등 최고 50% 넘게 빠진 종목도 나왔다. 시장에선 2014, 2016년 석유 수요 감소로 큰 타격을 입은 에너지 기업들이 이번 유가 하락으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육성해 온 셰일석유도 유가 하락으로 치명타를 입고 있다. 생산비용이 원유보다 많이 드는 셰일석유는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 기업에 자금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 셰일 업계가 2024년까지 갚아야 할 금융권 부채가 860억 달러(약 104조 원)가량인데, 이 중 60% 이상이 상환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셰일 기업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그 절반 정도인 30달러 선이다.

셰일석유 탐사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스콧 셰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앞으로 2년간 셰일가스 관련 자원개발 업체의 절반이 파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 기업과 셰일석유 업체들의 부진은 곧장 금융회사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9일 미 증시에선 JP모건체이스(―13.5%), 뱅크오브아메리카(―14.7%), 씨티그룹(―16.2%), 웰스파고(―12.4%) 등 대형 상업은행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금융주 전체로도 10.3% 떨어져 이날 다우지수 낙폭(―7.79%)을 웃돌았다.

국제 유가 하락은 원유에 의존하는 신흥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등 주요 산유국의 주가와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신흥국에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9일(현지 시간) 멕시코 페소화의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3% 상승(통화가치 하락)해 페소화 가치가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날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