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아프간전 승산 없는데 국민 속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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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장성 증언 등 기밀문서 공개
“뭔지도 모르고 싸우다 죽었는데… 옳은 일 하는 것처럼 데이터 조작”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아프가니스탄전쟁의 승산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국민에게 이를 숨기고 호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2001년 9월 ‘9·11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범 오사마 빈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18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며 현재까지 약 2300명의 미군이 숨지고 20만 명이 부상했다.

9일 워싱턴포스트(WP)는 정부와 약 3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 입수한 2000쪽 이상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며 “군인, 외교관, 구호단체 직원 등 전쟁에 관여한 428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 대부분이 ‘전쟁의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인터뷰 대상자에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및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모두 아프가니스탄전쟁 관련 고문을 지낸 육군 3성 장군 출신의 더글러스 루트 씨, 육군 대령 출신 밥 크롤리 씨, 해군특전단 출신 제프리 에거스 씨 등이 포함됐다.

루트 씨는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다.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며 “의회, 국방부, 국무부의 관료주의로 병사들이 죽었다”고 일갈했다. 에거스 씨도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거론하며 “2011년 미국이 빈라덴을 사살하긴 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를 안다면 빈라덴이 무덤에서 우리를 비웃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크롤리 씨는 “모든 데이터와 설문조사 등이 우리가 하는 일이 맞는 것처럼 보이도록 바뀌었다.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문서를 작성한 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의 존 소프코 감사관은 “미국인들이 계속 속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P에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1만3000여 명인 아프간 주둔 미군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무장 반군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해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정정 불안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 정부#아프가니스탄전쟁#국민 호도#기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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