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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에서 레간자까지… 김우중의 대우차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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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에서 레간자까지… 김우중의 대우차 ‘흥망성쇠’

뉴스1입력 2019-12-10 06:20수정 2019-12-1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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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전자와 건설, 금융부문에서 성공을 거둔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 부문 후발주자였지만 비용을 줄여 자동차 보급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마이카 시대를 이끌었다.

수출선적이 유리한 전북 군산공장 건립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말을 남긴 김우중 회장은 국산 자동차를 해외에 알리며 입지를 다져나갔다. 자동차가 주력인 현대·기아차 아성을 넘어서진 못했으나 1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브랜드 가치를 키웠다.


그룹 해체 후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옛 대우차(한국지엠)가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군산공장 역시 폐쇄 이후 자동차 부품 컨소시엄에 매각되며 전기차 생산기지로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생산·수출에 유리한 군산공장을 택한 김우중 회장의 안목이 지금도 통용됐다. 남다른 사업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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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우차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미군 차량을 개조하던 신진자동차공업은 1963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신진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미국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한 신진자동차는 경영위기로 1976년 산업은행 관리 아래로 들어갔다. 1978년 대우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하며 대우차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르망과 티코, 누비라로 대표되는 사명 대우차는 1983년부터 사용했다.

안목이 남달랐던 김우중 회장은 최소의 투자로 보급을 늘려 밑천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1980년대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마이카 시대를 앞서 본 전략이기도 했다.

대우차는 협력 관계에 있던 GM 산하 오펠이 개발한 카데트 E를 기반으로 1986년 르망을 생산·판매했다. 날렵한 디자인과 탄탄한 하체는 젊은 고객 입맛에 맞았고 현대 포니 시리즈를 위협하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르망으로 성공 가능성을 엿본 김우중 회장은 본격적으로 마이카 시대를 대비했다. 88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에 발맞춰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국민차를 목표로 한국 최초의 경차인 티코 생산을 준비했다.

정부는 대우차 산하인 대우국민차를 국민차 사업 생산업체로 지정했다. 한국 최초의 경차는 1991년 탄생했다. 마이카 시대를 예상하고 대우국민차를 통해 경차 생산을 준비한 전략은 주효했다.

비용을 최소화한 플랫폼으로 안전성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30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과 세컨드카 열풍까지 불며 티코는 90년대 중반 이후 국민차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김우중 회장은 해외수출 준비도 병행했다. 수출선적이 유리한 군산산업기지를 눈여겨 본 대우차는 1990년 공장건설 공동사업자로 참여해 1996년 4월 세단 생산시설 건립을 완료했다.

당시는 해외 차량을 기반으로 판매를 늘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 기술개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던 시점이다.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맞는 맞춤 차량을 개발하지 못하면 현대·기아차 아성을 넘기 어려워서다. 이를 간파한 김우중 회장은 르망과 티코로 쌓은 발판으로 고유 모델 개발과 함께 이를 소화할 국내 생산기지를 준비했다.

군산공장 완공 시점은 이같은 전략변화 시기와 딱 맞물렸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라노스(소형), 누비라(준중형), 레간자(중형)은 1996년 이후 모두 개발·출시됐고 군산공장은 생산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6년 군산공장에서 첫 양산된 누비라는 이듬해 서유럽에 첫 수출되며 한국산 자동차의 해외진출에 힘을 보탰다. 독자개발 모델의 히트로 판매를 늘려가던 대우차는 1998년 상반기 현대차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은 김우중 회장은 당시 내수 100만대, 수출 100만대를 목표로 잡기도 했다.

마이카와 세계경영을 앞서 본 김우중 회장 전략은 먹혀들었고 우크라이나 등에 현지 생산공장을 짓는 등 사업확대도 계속됐다.

다만 이같은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강타한 외환위기(IMF 사태)로 대우그룹 경영위기가 시작됐다. 2000년에는 끝내 그룹이 해체됐다.

그룹 위기에도 대우차는 마티즈, 레조 등을 출시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2000년말 부도처리되는 부침을 겪었다. 2002년 GM에 인수됐지만 자체 개발하던 올뉴 마티즈와 라세티가 GM 산하에서 출시되며 옛 대우차의 명맥을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 단계였던 신형 모델은 GM이 가져갔는데 이 회사가 2000년 이후 닥친 위기를 넘기는데 힘을 더할 만큼 제품성이 우수했다”며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판도는 크게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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