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전문가들 “포항지진, 사전 경고 많았지만 무시…파국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5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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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5의 포항지진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피할 수 있었다는 국내외 전문가의 주장이 제기됐다. 지진의 유발시킨 지열발전소의 건설을 위한 땅 선정부터 건설 과정까지 10여 개에 이르는 명확한 지진의 ‘징조’가 있었지만 지질학 조사나 분석을 등한시해 파국을 키웠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건설 과정에서 문제가 된 단층면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도 제시됐다. 현재 포항지진을 두고 진행되는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열린 ‘2019 포항지진 2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포항 지열발전 건설 주체들은 지열공학에만 신경을 썼을 뿐, 사전 조사와 건설 과정에서 지질학이나 지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안전을 등한시해 결국 대형 지진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김광희 부산대 교수는 이날 오후 주제 발표자로 나서 부지선정부터 건설 과정까지 지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던 다양한 징조가 있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부지 선정 단계에는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오직 지하 5.5㎞ 지점의 온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사실만 고려했다”며 사전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사전에 땅에 균열이 있는 파쇄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단층일 가능성을 무시하고 정밀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물 순환이 잘 이뤄질 조건으로 보고 건설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포항이 큰 지진이 잘 일어나는 지질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는 “지진학에서 가장 먼저 공부하는 개념 중 하나에 ‘b값(밸류)’이 있다”며 “이 값이 작으면 큰 지진이 많이 발생하며 전 세계 평균은 약 1인데, 포항은 물 주입이 이뤄질 때 발생한 지진 기준으로는 0.73, 여진 기준으로는 0.79로 매우 작다. 지진 발생 횟수는 적더라도 큰 지진이 나올 가능성은 높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포항이라는, 인구밀도가 1㎢에 450명이나 되는 대도시 부근에서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질학적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건설 과정에서도 단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개발자들이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지하 3800m 지점에서 물(이수·흙이 포함된 물)이 상당히 많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됐다”며 “땅이 푸석푸석했다는 뜻인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물을 잃는 현상과 미소지진이 여럿 발생한다는 데 의구심을 갖고 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3800m 지점은 단층면에 의해 주입정이 끊겨 주입한 물이 새어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다.

시마모토 도시히코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 역시 “이 부근에서 단층에 의해 갈린 돌이 많이 발견됐다”며 “단층이 이 지역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시마모토 교수는 “이 지역에서는 나무조각이나 조개껍질 같은 이물질도 나왔다”며 “끊긴 주입정에서 이수가 유출되자 이를 막기 위해 아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넣은 결과”고 추정했다.

시마모토 교수는 나아가 개발자들이 단층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개발자 측의 시추기록을 보면 3800m 지점과 4200m 지점에 단층면의 존재를 기술하고 있다.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고 위치 분석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했다.

특정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추가적인 지진 위험을 막기 위해 지열 개발 중단하는 안전 시스템인 ‘신호등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포항이라는 대도시가 가까이에 있는데, 인구밀도가 절반에 불과한 영국보다 4~5배 큰 지진이 일어나도 개발을 중단하지 않게끔 신호등 체계가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비판이다.

영국은 규모 0.5의 지진만 나도 지열발전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포항은 기준이 규모 2.0이었고, 그나마 나중에 2.5로 더 느슨해졌다. 김 교수는 “심지어 이 기준에 육박하거나 넘는 미소지진이 발생했는데도 결국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만약 사전에 제대로 지진 가능성을 인지하고 공사를 중단시키기만 했어도 포항지진이라는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오전 발표를 진행한 세르게이 샤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포항지진의 상황을 분석해보니 물 주입을 미리 멈췄다면 규모 5.5의 지진을 1% 미만 확률로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항의 지질 특성을 고려해 계산한 결과 포항 지층에 5841㎥의 물을 주입했을 때 포항지진의 규모인 5.5 이상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15%였다”며 “하지만 만약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포항지진 발생 7개월 전 규모 3.3의 유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중단했다면 이 확률은 3%, 1년 전 2.3 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중단했다면 1% 미만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현재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아 국제공동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큰 불만을 표했다. 시마모토 교수는 “정부 연구개발비를 받아 진행된 프로젝트인데 관련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며 “포항지진 사례는 이 분야의 표본이 될 사례인 만큼 중요해서 연구자료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한 고려대 교수 역시 “연구를 위해 데이터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신영 ashilla@donga.com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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