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부재’의 세상…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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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11일 14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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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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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은 하수상해도 지구는 돌고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코스모스들이 그 바람에 나풀거리고, 고추잠자리들은 떼 지어 맴돌고, 저 멀리 숲은 수줍게 물들어갑니다. 이런 계절엔 용필이 오빠의 ‘고추잠자리’를 한번 들어줘야 합니다.

어릴 적엔 잠자리채 하나만 있으면 온종일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았죠. 할머니께서 낡은 삼베옷이나 찢어진 모기장을 주시면, 형이 어디선가 철사와 망가진 비닐우산을 주워 와 잠자리채를 만들었습니다. 형은 늘 자기 것은 크게 만들고, 제 것은 작게 만들어줬죠. 그래도 잠자리채를 들고 뛸 때면 마치 하늘 위를 곡예 하는 비행기가 된 듯 신이 났었죠.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데, 2019년 초가을 과잉된 감정과 진영 논리로 처절하게 분단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 답을 해줄 엄마, 혹은 이견을 조율해주실 수 있는 너그럽고 현명한 어른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어른, 스승, 혹은 멘토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정서적 안정과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은 자기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울 혹은 인정 전이,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안정적 애착 상태니까요. 인간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그 어른이 옳다는 언행을 하고 그 어른을 닮아가며 정서적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성숙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더 현명하기에 덜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이타적이죠. 그러려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야 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항할 용기도 있어야 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유머와 융통성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절제하는 생활을 하지만 따뜻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점잖고 일관적이고 가정을 잘 돌보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성실하게 생활해 몸으로 모범을 보여줍니다. 훈계보단 듣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줌으로 존경을 쌓아가죠.

콜버그의 윤리 발달 단계로 해석하면 ①처벌을 피하고 칭찬받기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전 인습적 단계의 아이들을 잘 훈육해주고, ②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평등과 다수결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인습적 단계의 청년들에게 ③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외된 소수의 자유와 권리도 지키며, 보편적이고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윤리로 갈등을 해소하는 합의 원칙과 공정한 절차를 수호하는 후 인습적인(전통 이상의 윤리) 넓은 안목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죠.

슬프게도 우리는 ‘어른 부재’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 잘못은 어른들을 지켜드리지 못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권위에 저항하며 나이든 한 세대가 물러나야 안개가 걷히고 우리의 갈 길을 볼 수 있게 될까요? 소아 청소년들을 치료하는 제 생각에는 제 아래 세대는 권위에 대한 더 큰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린 언제서야 고추잠자리처럼 똑같은 궤도를 맴돌지 않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른들을 다 몰아냈다면, 어쩔 수 없이 이제라도 그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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