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인종의 경계 허문 ‘오페라의 검은 여왕’ 소프라노 제시 노먼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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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분리 정책 시행되던 남부 미국에서 출생해 독일 작곡가 바그너 오페라로 데뷔
그래미 4회 수상…꾸밈없는 힘과 기교를 겸비한 목소리로 사랑 받아
“더 많은 흑인 오페라스타 보고 싶다” 고향에 무료 예술교육학교 설립




장중함과 호화로움을 균형 있게 갖춘 특유의 목소리와 탁월한 작품 해석력으로 클래식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미국의 소프라노 제시 노먼(사진)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뉴욕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 사인은 4년 전 입은 척수손상에 따른 합병증으로 전해졌다.

인종분리 정책이 시행되던 시절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태어난 노먼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등 음악을 사랑한 가족들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오페라를 접했다. 그는 훗날 “러브스토리가 대체로 비극으로 끝나는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오페라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워싱턴DC 하워드대를 졸업하고 1968년 독일 뮌헨 국제 음악경연대회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노먼은 1969년 베를린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엘리자베스 역으로 데뷔하며 빠른 속도로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1983년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카산드라 역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노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가 만난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라는 호평을 받고 이후 80여 회 메트에서 공연했다. 뉴욕타임스는 1992년 노먼의 무대에 대해 “소리의 대저택을 거니는 듯하다. 그는 새로운 차원의 기이한 공간을 노래로 창출해낸다”고 평했다.

억지로 꾸며낸 기색 없이 은근한 힘을 소리에 실어낸 노먼은 바그너 슈트라우스 등 오페라 작품에만 얽매이지 않고 듀크 엘링턴 등 재즈 뮤지션의 음악도 선보이며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었다. 15회 그래미상 후보로 올라 1985년 라벨의 작품을 담은 음반 이후 4회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1997년에는 케네디센터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입성했으며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노먼은 2003년 빈민층 학생들을 무료로 지원하는 예술학교를 고향 오거스타에 설립했다. 2004년 펴낸 자서전 ‘꼿꼿이 서서 노래하라(Stand Up Straight and Sing!)’에서 그는 “더 많은 재능 있는 흑인들이 뉴욕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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