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학종, 이대로 둘 수 없다[오늘과 내일/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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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대학은 ‘기회의 사다리’… 대학입시는 공정성 확보가 생명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1980년대와 90년대 초 대학을 가려면 ‘대학입학학력고사’를 봐야 했다. 필자도 1989년 12월 이 시험을 보고 이듬해 대학에 입학했다. 수시와 정시로 뽑는 요즘은 대학에 들어가는 경로가 다양하지만 당시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지었다. 모든 수험생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필기시험으로 결판을 낸 한판승부였다. ‘선(先)지원 후(後)시험’ 방식이라 긴장도는 더 컸다. 최상위권 학생이라도 시험 당일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지나친 긴장으로 실력 발휘를 못하면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컨디션 조절 잘하는 것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회자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30년 전 대학입학시험 얘기를 꺼낸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 부정입학 의혹을 보면서 예전 대학입시가 수험생에게는 가혹했지만 ‘공정성’만은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 조 후보자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그의 딸이 명문대에 입학하면서 불법과 반칙을 썼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 딸이 2010학년도 고려대 수시전형 자기소개서에 언급한 의학 논문은 박사급 연구원이 1년간 노력해도 쓰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인데, 조 후보자 딸은 2주 인턴을 하고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제1저자는 논문의 ‘저자’로 통할 만큼 주요한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 고교생 제1저자는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고등 교육과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학은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기회의 사다리’였다. 부모가 가난하고 못 배워도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자식들이 많이 나왔다. 법대에 입학해 판사 검사를 하거나, 의대를 거쳐 의사가 되는 것은 문과 이과생들의 최고 선망이기도 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신분 상승의 성격이 옅어지긴 했지만 대학은 입신양명을 위한 가장 유력한 통로로 일컬어지고 있다. 대입시험 하나에 인생이 왔다갔다하다 보니 온 국민이 전쟁을 벌이듯 머리를 들이밀어 경쟁하고, 혹시라도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출세한 사람들을 우러러보고 존중하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면서 ‘날로 먹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응징하려는 집단심리도 가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 그랬다. 모든 젊은이가 고생고생해서 대학에 가는데,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은 정 씨만 법을 어기고 특별대접을 받아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은 것으로 드러나자 청년들을 필두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조 후보자 딸 논란은 이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과 위법성 여부를 넘어 대입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가 2014년 논문이나 인턴 등 학교 외부 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조 후보자 딸이 한 것과 같은 ‘스펙 쌓기’는 필요성이 많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봉사활동을 매개로 한 스펙 만들기는 여전히 대입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08학년도 입학사정관제 시범 도입으로 시작된 학생부종합전형은 2019학년도 전체 모집 정원의 약 25%, 서울대는 78.5%에 이를 만큼 대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잠재력 있는 다양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경제력과 인맥,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험 한 번으로 대입의 모든 것을 결정하던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되겠지만,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이대로 둘 수도 없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대입 학종#대학입시#수시#정시#조국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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